다 이해한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어떤일에 대해서도 실상은 다 이해하거나 다 알고있는 일이 있을수 있을까. 어쩌면 나만 그럴지도 모른다. 다들 현명하고 많이 배웠으니까. 현명과도 거리가 멀고, 가방끈은 짧고, 어리섞고 욕심으로 가득찬, 고집만 센 나이먹은 여자에게 기대할만한게 있을리 없지않는가. 고집만 세고 나이먹은게 다인게 바로 나다. 조금은 이해가 가는듯 싶었던것들도 어쩌면 생소하기까지 한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상을 보는 눈은 더욱 그렇다. 그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센가 아닌게 되어버린게 부지기다. 따라갈수가 없다. 그래서 구세대란 말도있게 된것인가. 저 멀리 아프리카 사람이나 유럽 사람을 살피고 이해하라는게 아니다. 바로 내 가까이 있는 내자식 내 가족에게 관심을 배풀어 달라는게 어찌 이해가 필요한 일인가. 엇그제는 '사건반장' 에서 보지말아야할 얘기를 보았다. 모든 여자에게 모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것은 편견이다?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것은 한참 후였다. 나 자신도 뭐 모성이 각별했다고는 생각안한다. 아들 딸이 고삼일때도 백일 산기도 한번 안했으니까. 그러나 모든 엄마들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돌보는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삼고있다. 그리고 이걸 당연하게 여긴다. 좀더 잘해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게 엄마다. 아니, 지금도 대다수의 엄마들은 이렇게 살고있다고 본다. '나를' 우선시하는 엄마들마저도 마음 믿바닥에는 아이들이 있지않을까. 아이들이 있기에 나를 뒤로 미루눈 상황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되겠는가. 맞다. 특별한 사람은 어느세대에나 있는일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남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자신을 기꺼히 내어주는 삶을 살기도 하는데, 자기 자식을 위해서 뭔들 아끼랴! 이게 거이 모든 엄마다. 어쩌다 있는 별난 엄마을 만난 아이의 불행은 재앙 그 자체겠지만 흔한일은 아니니 다행이라 해야겠고,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도 살길을 열어주시리라 믿는다. 암, 그렇고 말고. 그런 재앙을 엄마로 주신분도 하나님 그분이시니 당연히 다른길도 예비해 놓으셨을것을 믿어보자. 세상에 나를 있게해준 엄마가 재앙이라면 그건 불행중 불행이다. 나는? 나는 재앙아니었다고 단언할수 있는지? 당연히 못난 엄마 맞다. 무능한 엄마였다.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좋은 교육도 못시켰다. 다행이 무탈하게 살고있지만 아들은 아직 집도 없다. 어쩌면 평생 집 못갖을수도 있다는게 공포스럽다. 노점상을 했던 어떤 엄마는 아들 형제에게 아파트를 안겨 결혼시켰는데, 나는 겨우 마련했던 내가 살던 아파트까지 지키질 못했는데 말해뭐하랴. 다들 힘겹게 살고있다. 그래서 그만 가고싶다. 어차피 가야하는 것아닌가. 좀 빨리가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 서두른 결혼이 낭패를 경험하게 했다고해서 죽엄을 두려워 하지는 말자. 솔직히 죽엄 넘어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천국이나 지옥이 내 생각과 다 맞는다고 할수는 없을태니까. 아니, 같은 여건에 같은 풍경이라도 사람마다 받아드리는 느낌은 서로 다르니까. 반듯이 칠보석 열두대문으로 치장된 천국문을 기대하고 있지만 않다면 말이다.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대로 살다가 가자. 또 내 이해가 반듯이 필요한것도 아니니까. 그냥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