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살 3살짜리 아들들을 데리고 미국에 와서
남편이 먼저 전기공학으로 박사학위 끝내고 취직을 하고
그리고 내가 뒤따라 컴퓨터 공학으로 석사학위를 해서 직장을 갖고
봉급쟁이로 맞벌이로 하고 사는것 밖에는 몰랐었다.
그런데 이제 은퇴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사람들 미국에 와서 참 다양한 방법으로 자리잡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오래전 뉴져지 교회에 다니실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아들을 만나러온 한 할머니는
아들네가 미국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는 것에 대단히 실망 하셔서
"아니 서울대학까지 나왔는데 미국에 와서는 미국놈들 빨래를 해주고 있어"
속상해 하시더라고...
그런데 요즈음 보니 우리교회에 세탁소 하는 사람이 알부자 였다.
아틀란타에 은퇴해서 살 좋은 집도 미리 마련해 두고...
이 미국에서는 세탁소 하는 사람들이 돈을 잘 버는것 같다.
우리집에 오는 간병인들을 보면 바지 단도 줄일 줄 모르는 것은 물론
단추도 달 줄 몰랐다.
"그러면 단추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 물어보니
"세탁소에 갖고 가던지, 버리고 새 옷을 산다"
해서 깜짝 놀랐었다
우리동네에 한국에서 선생님을 하시던 이화여대 선배가 (남편은 한국에서 의사셨었고)
오랫동안 세탁소를 하셨는데 나도 옷들 세탁을 맡길겸 가게를 가끔 들러보면
잠시 이야기할 틈도 없이 바쁘셨었다
세탁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옷 수선을 하러 왔었다. 단추달러, 바지, 치마, 소매등 새로산옷 줄이는 등...
세탁값도 비싸지만, 옷 수선은 바지단 하나 줄이는 것도 꽤 비싸
회사에 다니는 월급쟁이들에게 비교가 안돼게 돈을 잘 버시는 것을 알았다
몇년전에는 우리동네에 사는 40대 한국 남자가
차 밑에 들어가서 자동차를 고치는 중에 자동차가 가슴으로 떨어져 죽었는데
우리는 만나본 일이 없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직장 휴가를 내어 장례를 도왔다
그때 그집 아이들은 어리고 친척들도 별로없어 관들 사람들이 없어서
남편이 pallbearer 관드는 사람이 되어 주었었다
오지랍 우리남편은 그 부인이 아이들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을 하며 자기 회사에 취직을 알아봐 주고 싶어했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네일(손톱 치장) 비즈니스를 하고 있어서 우리남편 회사에는 흥미가 없어했다.
나는 네일 살롱이 밥벌이가 돼나 했더니 우리집 간병인 아줌마들을 봐도
2주에 한번씩 꼭 네일 쌀롱에 가서 50딸러(약 5만7천원)씩 내며
손톱을 길게 매니큐어를 아주 멋지게 하고 다니는데 가격이 너무나 싸다고 좋아했다
미국에서 간병인들 같이 저임금을 받는 사람들 부터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네일샾을 다녀
네일샾 비즈니스가 그렇게 호황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나는 평생 네일살롱에 가본적이 없어서.. 너무 몰랐었다
또 우리교회에 가발가게를 하는 사람도 아주 돈을 잘 버는 부자였다
우리집에 오는 간병인들이 대부분 흑인 이었는데
가발없이는 외출을 못하는것 같았다
매일 머리를 감는 나와는 다르게 2주에 한번씩 미장원에 가서 가발로 머리 손질을 한다는데
가발한개에 몇백불씩 하고... 머리손질에는 돈을 많이 들였다.
전에 어느 신문에서인가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큰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대부분 기껏 세탁소, 가발가게, 네일샾 같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
라고 읽은적이 있는데..
그때는 나도 "아~ 그렇구나" 했었는데
요즈음에 와서야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세탁소, 가발가게, 네일샾등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
나는 뭘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미국에 이민와서 누구든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던지
열심히 하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는것 같다
또 우리교회에 흑인동네에 들어가서 생선가게 하는 분도
돈이 너무 많아서 이 근처에 100에이커(12만 2천평)
땅을 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