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등장인물이 된 것만 같은 『혼불』의 매력, 『혼불』의 마술 (김대연)
『혼불』을 읽고 내가 제일 처음 느꼈던 건 딱딱하고 어려울 것만 같았던 책이 조금 가까워 보이고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처음 책을 접할 때 읽어내려 가기가 조금 힘들었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엇비슷해서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남원 사투리는 그런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고, 캐릭터들이 모두 개성이 뚜렷해서 읽기가 쉬워졌다. 내용도 그런대로 따라 읽을 수 있어서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모르는 말이 많이 나왔지만 그래도 책을 읽어나가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려운 말이 많아서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조금씩 친근감을 느껴갔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글 하나하나에서 향토적인 냄새를 물씬 느꼈다. 말투와 단어들이 모두 생생해서 내가 일제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내가 영화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된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특히 혼례식 장면에서는 혼례를 올리는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안 보이는 것만 같아서 꼰지발을 하고서 쳐다보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발끝에 힘이 가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내 자신도 몰래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아, 이것이 바로 『혼불』의 마술이고 매력이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세상에 독자를 소설 속의 등장인물로 만들다니, 그런 마술을 어떻게 부릴 수 있을까. 이런 마술을 부리려고 최명희 선생님은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멋진 마술사가 되기 위해서 오랫동안 수련을 하고 반복 연습을 해야 한다던데 최명희 선생님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원고지 위에서 연습을 했으면 독자를 등장인물인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마술을 부리고 최면을 걸 수 있었을까. 아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시간과 피와 땀을 흘려 일궈낸 결과일 것이다.
개성이 뚜렷했던 인물들을 잊을 수 없다. 양반인데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강태와 전형적인 양반의 모습인 강모의 대화들은 모두 흥미로웠다. 양반인데도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양반의 모습은 그때 당시에 얼마나 파격적이고 개혁적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물론 같은 양반이 보았다면 욕을 얻어먹었겠지만 말이다. 전형적인 양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강모의 캐릭터를 잘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좀더 머리가 크면 강모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언가 깨달아서 강태를 따라갔다는 것은 내용상으로 알겠지만 무엇을 깨달았는지 아니면 생각없이 따라간 것인지 알 수 없다.
청암부인의 자태는 얼마나 엄숙하고 근엄한가. 물론 젊은 시절에는 악랄한 지주가 되기도 했었지만 늙어서 하는 말에는 한마디 한마디에 연륜이 묻어난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하며, 아이를 낳았을 때 쌀이 없어 쌀을 훔치려고 광에 들어왔다 청암부인에게 들키지만 오히려 쌀을 주면서 어서 가서 죽을 쑤어 먹이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다 나올 정도이었다.
반면 춘복이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다. 더벅머리 노총각. 왜 아직까지 장가를 안 갔는가.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갔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가 장가를 가면 또 자기와 똑같은 상민의 아들을 낳아 그 자식도 자기와 같이 서러운 상민의 삶을 살아야 한다지 않는가. 왜 아무 것도 모르는 자기 자식이 자기처럼 누구에게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해야 하고 양반이 무엇이길래 양반에게 하대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하대는 자기 혼자만 당하면 될 것을 죄없는 자식에게는 물려줄 수 없다고 해서, 자식을 낳지 않기 위해서 장가를 가지 않으려 한다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가. 그때 당시 종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춘복이의 모습은 어찌 보면 그 때의 모든 종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옹구네의 모습도 안쓰러웠다. 과부가 된 여자가 그 당시 얼마나 천대받고 힘들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때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뽕을 딸 때는,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대로 따지 말고, 뒷그루를 살펴 줘야 헌다. 뒷날에 움이 새로 돋을 자리를 다치면 안되지. 말라버린 가지는 찍어 주고, 새 순에서 핀 햇잎을 골라, 뒤로 젖혀서 따라. 뽕잎 하나라도 그것이 다 목숨 있는 것이니 함부로 상허게 허지 마라.”
봄에 짠 봄나이 필 무명을 빨래하여 볕에 바래던 오류골댁은 뒤꼍으로 돌아가는 강실이에게 그렇게 일렀을 것이다.
기응은 못줄을 옮겨 꽂으며, 논의 도랑을 치고 물길을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지붕에 비 새는 곳은 미리 개와(蓋瓦)를 해 두어야, 곧 닥쳐올 장마철의 음우(陰雨)도 막아 낼 것인데. 꽃 피고 새 닢 나면 벌통에 분봉(分蜂)한 벌들도, 새 통에 옮겨 주어야 한다.
기응의 귀에는 꿀벌들의 닝닝거리는 소리가 햇발에 섞여 감미롭게 들린다. 여왕벌 하나를 모시고, 있는 힘을 다하여 꿀을 물어 나르며 자기의 직분과 의리를 다하는 평화가 그대로 전해진다.
기응은 고개를 들어 바람을 마신다.
北支事變(북지사변)이 勃發(발발)한 以來(이래) 軍(군)을 爲始(위시)하야 各方面(각방면)에 殺到(쇄도)하는 國防獻金(국방헌금) 恤兵慰問金(휼병위문금)은 莫大(막대)한 金額(금액)에 達(달)하고 잇는데 總督府(총독부) 調査(조사)에 依(의)하면 十月末(시월말)까지 僅(근) 三個月(삼개월)에 全半島(전반도)로부터 모인 國防獻金(국방헌금)은 朝鮮軍(조선군)과 龍山師團(용산사단)에 二百 三十四萬六千圓(이백삼십사만육천원)이외에 總督府(총독부)를 通(통)하야 한 獻金(헌금)을 合(합)하면 約(약) 二百五十四萬六千圓(이백오십사만육천원)에 達(달)하야 其他(기타) 愛國飛行機(애국비행기) 十四機(십사기)와 多數(다수)의 高射機關銃(고사기관총) 諸軍事器材(제군사기재)도 獻納(헌납)이 되어 잇다.
누에한테 먹이를 주기 위해 뽕잎을 따는데 함부로 따면 안된다고 일러준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아무렇게나 많이 따기만 하면 될텐데 조심스럽게 다음에 딸 것까지 생각해서 따야 한다고 말한다. 뽕잎 하나라도 그것이 다 목숨 있는 것이니 함부로 상허게 허지 마라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 조상들은 나만을 생각하는 나 위주의 일을 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일본놈들이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국방헌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자가 많이 나오고 옛날 말이 나와서 무슨 말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 분위기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국방헌금, 휼병위문금이라 했는데 휼병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휼병이 무슨 말인지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물품이나 금품을 보내어 전장(戰場)의 병사를 위로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위문금이란 말이었다. 이러한 모르는 말을 다 찾아보기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간혹가다 기억에 남는 단어를 골라 그 뜻을 찾아보면서 아 이런 말이 다 있었구나 할 때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영조 31년 을해, 문형국(文亨國)의 따님으로 태어나서 이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시었던 그 어른의 육필 유서였다. 군데군데 얼룩이 진 것은 이백여 년의 세월 동안 유서의 먹빛에서 배어난 한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가슴이 짓무르는 심정이 그렇게 번진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 어른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여 일찍이 소학(小學)을 배우고 시문(詩文)을 지으니, 영묘한 문장이 아름다웠으며 행실 또한 요조숙녀였다. 거기다가 가을 바람에 씻기운 달이라고나 할까, 고고한 천품이면서도 그 용색의 그윽함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 어른은 꽃다운 나이 스물하나에 매안의 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왔으나, 불행히도 신랑은 홍역을 치르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누가 그리도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의표를 찌른 말을 하였던고.
재사(才士)와 가인(佳人)은 단명(短命)에 박복(薄福)하다더니, 그 어른을 두고 한 말이었던가 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옛날 오래된 문서를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 옛사람을 대하는 듯하다. 그리고 정말 할머니의 엄한 목소리가 귀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혼불』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접하기 힘들었지만 참는 것만큼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