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는다(한경선)
어머니는 도끼뿔로 얼음장을 깨고 빨래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도끼뿔을 받아내는 얼음 두께를 가늠하며 어머니의 손끝이 내 마음 끝에 닿아 시렸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셨다. 동네사람들이 신기한 장갑을 보며 부러워할수록 오빠가 사다 준 고무장갑을 자랑하는 빨랫방망이 소리가 높았다.
그 고무장갑은 최첨단 과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도 제 역할을 단단히 한다. 거의 날마다 내 손은 고무장갑을 믿고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물에도 거침없이 들어간다. 비린내나 군내도 꺼리지 않는다. 흙 묻은 채소를 다듬을 때도 망설이지 않는다. 걸레를 빨 때도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고무장갑 속 내 손은 겁쟁이가 아니다. 장갑을 벗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말쑥하다.
그런 손을 씻고 손톱도 자주 깎으며 내 손이 깨끗하다 여겼다. 이웃을 위해 통 크게 봉사하는 손은 못 되어도 성실하고 부지런한 손이다. 검은 비닐봉지에 지저분한 것들을 감춘 손이지만 분에 넘치는 것을 탐낸 손은 아니다.
눈을 감아도 손으로 사물의 결을 읽을 수 있고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애틋한 사람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쉬워 얼굴을 쓰다듬으며 손으로도 본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 마음을 알 수 있고 그 또한 내 마음을 그대로 읽을 것이라 믿는다. 그저 손만 잡아도 좋다. 꼼지락거리는 작은 움직임조차 내게 건네는 속삭임 같다.
손톱이 닳도록 일하고는 김치 가닥 죽죽 찢어 따뜻한 밥에 올려주던 손, 한 손으로 뒷머리 받치고 한 손의 엄지와 검지를 코에 대고 ‘흥 해라.’ 코 풀어주던 손, 할머니의 손이 마음에 남아 있어 손에 대한 기억은 더욱 정답다.
감염병이 돌자 손을 꼼꼼히 자주 씻으라고 여기저기서 말한다. 눈 코 입을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도 한다. 내 손이 아주 더럽고 위험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 손 내미는 것을 주저한다. 내가 내 손을 꺼리는데 다른 사람이 내 손을 그리 반길 리 없다. 혼자 있을 때도 손을 씻는다. 어쩌다 차 한 잔 건네기 전에도 손을 씻는다. 살아오면서 쌓인 내 부끄러움들이 모두 손으로 모인 듯해서 잘못을 뉘우치듯 손을 씻는다.
흔쾌히 손을 잡던 일, 마주 앉아 소찬을 나누던 일,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나쳤던 일들을 옛일처럼 부른다. 이때가 지나가면 사소한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기를, 서로의 손을 아끼게 되기를……. 숨죽이며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