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은 흘러 내 나이 어언 70 이되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이었다
지난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서 이 글을 올립니다.
지금도 형제와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애증의 도시 진주...지금 부터 50여년전 중학교 3학년 여름 어느날 .
그날도 우리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책가방을 팽게치고 정영주와 황기호 그리고 나는
남강으로 달려갔다. 의암 바위에서 상류쪽으로 20m정도에 떡바위가 있었다 . 우리들은 옷을 벗기가 무섭게
물속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뛰어들었다.
그러든중 내가 손바닥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다. 약간의 핏물이 맑은 강물에 번지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피를 막어면서 발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손을 다친 것을 아는지 누군가 물밑에서 양팔로 나의 두다리를 감싸 주었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가만이 있었다. 그리고는 의암 바위쪽으로 5~6m정도 수평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물밑으로 사정없이 당겼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하여 한발을 뽑아서 고함을 치면서 팔을 걷어 찼다.
허겁지겁 떡.바위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영주와 기호는 떨어진 곳에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놀란 영주와 기호도 올라왔다 . 물 밑에 누구 없느냐고 소리쳤다. 물은 잠잠하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옷을 입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였다 .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물놀이를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누군가 나를 가운데로 와서 강을 건너 보자고 했다 . 30m쯤 가면 건너편 모래톱으로 갈 수 있었다.
앞에는 영주가 뒤에는 기호가 ....우리는 헤엄쳐갔다. 마지막 도착할때는 비슷하게 모래톱에 닿았다.
그 순간 이번에도 나의 발목 한개를 잡고 사정없이 끌어 당겨ㅆ다 . 사력을 다 하여 박차고 모래톱으로 올라섰다
놀란 영주와 기호도 어쩔 줄 몰라했다.지척이 천리라더니 바로 건너편에 옷을 두고 다리를 건너 빙 돌아 가야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수영복도 아닌 펜티 바람이었다 ,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보자고 했지만 우리는 용기기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건너기로 했다. 수영 형태는 올때와 마찬가지로 하였다,
마지막 떡바위에 도착 할 무렵 또다시 나의 발목을 잡아 당겼다. 물속으로 달려 들어갔다가 티어 나오는 나를 보고
영주와 기호도 놀랐는지 옷을 입고는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들의 남강 추억은 긑이났다 .그후로 낭강에는 가질 못했다.
언제나 따뜻하고 매력이 넘치는 영주를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오늘따라 영주가 그리워진다.
하늘나라에서 부듸 행복하길 기원해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난끼 많고 호기심이많은 김문상 동기가 변고를 당한 곳이다 남강으로 우리반은 선생님의 배려로
찿아갔다 손가락에는 이끼가 새파랗케 끼어 있었다 , 호기심이 많은 문상이는 무엇인가 확인 하려다가 변고를 당하지
않았나 생각하게된다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엇이가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있다
그랬다면 나는 아마 지금 이글을 쓰지 못했으리라 , ,,,,,,,기호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를 기억 하리라
옛날을 회상 하면서
첫댓글 소름이 돋네! 물믿 소용돌이가 잡아 당기는것 같이 느껴지는것 아닌가??
나도 그렇케 생각해 보았지만 세번씩이나 그리고 모래톱 가까운 곳에서도,,,,,,,
그때 확인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해.
확인을 어떻게 해 무서워서 내뺐는데ㆍㆍ 물귀신이다 그건~~ㅋㅋ
고송이 뉘신가요?
나는 우회장을 뚜렷히 기억합니다 . 3학년3반 정재권 입니다.
동기생 아호 목록에 고송이 없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