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던 광고 소리가 어느 덧 학습이 된 것처럼 수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입을 열면 바로 뛰쳐 나온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무을면민 여러분 본 영화사는 방금 절찬리에 전국을 순회 상영하고 오늘 드디어 무을면민 여러분들을 찾아왔습니다.
이번에 가지고 온 작품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질펀한 영화 소개가 쉰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차량 뒷 꽁무니를 쫓아 다니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기웃기웃 넘어가는 햇살을 잡아 놓고, 먼지가 묻은 하얀 천막에 비추면 집집 마다 밥 짓는 연기가 동네 어귀에 하나 둘 피어 오르는 풍경과 스피커에서 째질 듯 들리는 노래 소리가 온 동네를 잔칫집 마냥 들떠게 한다.
저녁노을도 산 넘어 떠나고 천막 사이로 만들어 놓은 입장 게이트에는 천막 극장을 지키면서 입구에서 돈을 받는 아저씨들이 잠시라도 영화 한 장면을 보여 줄 수 없다는 신념처럼 꽁꽁 싸맨 천막을 움켜잡아 마치 액션 영화배우처럼 포즈를 취하고, 느슨한 경계를 비웃으며 사각으로 둘러쳐진 천막 사이 개구멍으로 쏜살같이 들어가다 잡힌 동네 형들의 처량한 모습과 부잣집 가족은 미리 입장하여 한가운데 자리 잡고 그 중심에 양복 입은 동네 어른들의 모습이 하나의 풍경처럼 정겨움이 묻어 나는 천막 극장 그 그리운 장면이 눈앞에 하나, 둘 주마등처럼 선보인다.
예고편을 상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이 필름의 타들어 가는 소리에 이구동성으로 “돈 내놔라”라고 하는 소리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영사기를 돌리던 그 풍경이 눈앞에 선하게 떠 오른다.
천막 극장이 자리 잡았던 그 풍경이 몇 번을 지나 아이들이 점점 구렛나루가 덤성 덤성 자랄 즈음, 지붕 위에 텔레비전 안테나가 하나 둘 세워져 신작로에 내놓은 텔레비전이 천막 극장을 대신하여 늘 보아 오던 “괴수 용가리”라는 영화를 대신하여 아이들의 로망인 “타잔”이 자리 잡았고, 온 가족이 함께 봄 직한 대한민국 최고의 사회자 변웅전 진행자의 유쾌한 청백전을 보면서 웃음 보따리 터뜨리던 그 시절,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시어머니와 악질 일본 순사 무라카미, 독립군 김달중, 드라마의 주인공 영구의 열연에 장욱제, 태현실은 가히 국민배우의 원조로 거듭난 “여로”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물 한 바가지 쏟아 내던 그 시절 흘러나오던 노랫소리 “그 옛날 옥색 댕기 바람에 날리며...”가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귀에 박혀 입으로 절로 노래가 나오는데
그 시절 함께 천막 극장을 개구멍으로 드나들었던 동네 형들도 “타잔” “유쾌한 청백전”, “여로”를 보면서 웃고 울던 동네 어르신들과 지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기억속 에만 존재하는 사람으로 필름처럼 떠오른다.
천막을 내어 주던 빈 공터는 농협이라는 큰 건물이 들어서 있고 농협에 들어서면 티비가 한 켠에 자리잡아 드라마, 영화가 아닌 사업 설명을 하는 알림장으로 무을농협을 홍보하고 그 옛날 함께 보던 영화, 드라마 등은 손에 놓인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급작스런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서서히 막 속에 숨어 버린 천막 극장은 옛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고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텔레비전 화면이 흐트러져 지붕 위에 올라가 안테나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서 안테나 방향을 잡아 주던 그 풍경은 이제 재개발 구역에 조금 남아 있는 흘러간 풍경이 되었다.
길 지나는 사람들 손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이 스마트폰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세상이 되었고 우주선보다 빠르게 영화 한 편이 내 손으로 들어와 내 손안의 티비가 천막극장을 대신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
장마철에 찾아온 천막 극장을 걱정 하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반세기 전에 펼쳐진 아련한 풍경이 있어서 일 것이다.
천막 극장이 다시 온다면 동네 형들이 하던 개구멍 입장을 하고 싶고 혼쭐이라도 나서 동네 형들과 걱정 하던 그 모습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것은 그 작은 천막극장의 설레임보다 더 그리운 무엇이 있어서 일 것이다.
지금은 방향 잃은 전파를 찾기 위해 안테나를 돌릴 그 추억은 찾을 길이 없고 그 추억 따라 가버린 모든 것이 아련한 것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시간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일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추억만이 허공에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고 돌릴 수 없는 안테나가 되어 지난 시간이 눈앞에 서성이고만 있다
첫댓글 예 시절의 추억을 정답게 이야기하듯 기록하신 작품입니다
세월은 너무도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산업화와 정보화로 세계에서도 가장 급속하게 변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이 아닐까요?
그 세태를 따라 즐거웠던 추억들이 너무도 쉽게 묻혀가는 느낌은
진한 아쉬움과 서운함으로 다가옵니다
저도 어린시절 동네 한 집 밖에 없던 테레비 있던 집에 온 동네 아이들 모두 모여
주말이면 타잔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콩나물 시루에 마루가 내려앉을 것 같던 시간이었죠
그 시절이 다시 도래한다면 그리운 부모님과 떠나버린 님들도 재회할 수 있겠지요
아련하기만 합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어릴적 기다리던 천막 극장도 이젠 사진속의 추억으로만 있습니다.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가진 특별한 추억일것입니다. 함께 동시대를 살아 가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선주문학회가 참 좋습니다.
친구 따라 면소재지에 영화 보러 갔지만, 돈 없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소리만
들었습니다. 그나마 포장이 일찍 걷히면 끝에 조금 봤습니다. 그 신기 함이란???
녜, 선배님 그리운 그 시절입니다. 극장 상영이 끝나고도 남은 여운에 서성일라 치면 천막이 걷히고 천막 밖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운 그 시절은 벌써 저만치 달아 나고 이제는 사진으로도 접하기 힘든 시간이 되었습니다. 늘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