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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상담자
상담의 기본요건은 신뢰와 수용, 긍정적 존중과 공감, 그리고 솔직성 등이다. 바람직한 상담이 이루어지려면 진지한 대화와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태도가 먼저다. 그리고 피상담자에 대한 편파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그를 긍정적으로 존중하여야 한다. 중요한 요건으로 상담자는 공감과 신뢰감이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정직하여야 한다. 대체로 학교에서의 상담은 상담 교사, 담임, 존경하는 스승과 이루어지지만 최근 또래상담자(친구)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즉 또래 간의 상담이다.
선생님과의 상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학생들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선생님들의 행동이 먼저다. 먼저 주의 깊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언어 또는 비언어적 수단으로 학생의 말에 피드백을 해 주어야 한다. 가끔 학생들의 현재 감정을 다시 이야기 해 줌으로써 학생들은 자기가 경험한 내적 감정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아 깊은 위안을 얻게 된다. 그런데 선생님과의 상담은 많은 제약이 따른다. 시간과 장소를 예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는 또래 상담이 필요하다. 학교 부적응, 친구관계, 진로 등 고민이 많은 교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1월 28일, <함께하는 교육> 김지윤 기자는 또래상담 현장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앞두고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가운데 하나는 ‘학교 적응’ 문제다. 반이 바뀌거나 전학을 가는 경우, 진로 때문에 단짝 친구와 다른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과 같은 반이 되는 경우들이 그 예다. 부모세대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십대들에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다. 청소년 시기 마음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 혼자 속앓이하며 마음속에 자꾸 벽을 쌓기도 한다. 지난 25일, 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찾았다. 고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학교와 교실에서 또래상담자로 활동하는 십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들은 모두 ‘또래상담 기본 교육’을 마쳤다. 센터는 10년 가까이 또래상담 연합회 등을 운영하며 각급학교에 또래상담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5년 이상 또래상담자로 활동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교실과 기숙사 등 십대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 ‘학교’에서 이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저 또한 또래 친구 덕분에 초등학교 때 힘든 시기를 이겨낸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중학교 2학년 때 ‘또래상담부’에 들어가 고3인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래상담은 ‘우정의 마중물’이다. 또래상담자인 그는 학교생활 동안 친구들의 다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상담자이면서도, 자신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진로도 정했다. 심리상담사가 되어, 보다 전문적인 상담기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천천히 다른 친구들과의 ‘접점’도 만들어주는 게 그의 역할이다.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우정의 마중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중·고교 시절의 대부분을 또래상담자로 활동해오며 친구 관계, 십대 당사자들의 고민,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신뢰 쌓기 등을 고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교과 활동, 성적, 입시 모두 중요하지만 하루 종일 교실에서 얼굴 맞대고 사는 친구들의 내밀한 감정선을 살핀 뒤 아픈 마음을 경청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청소년백서를 보면 십대들은 고민상담 대상으로 친구나 동료(44.4%)를 1순위로 꼽았다. 부모(24.1%), 스스로 해결(21.8%), 형제·자매(5.1%)도 있었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또래 친구를 ‘적합한 상담자’로 생각했다. 청소년들은 고민이 있을 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대상 1순위 역시 또래친구(37.8%)였으며, 이는 교사와 대화하고 싶은 청소년 비율(13.8)의 약 3배, 청소년상담사와 대화하고 싶은 청소년 비율(18.5%)의 약 2배에 해당한다.
교실에서 이름으로 장난치는 것도 십대들에게는 큰 고민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괴롭힘이 학교 폭력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친구의 이름을 자꾸 이상한 별명으로 만들어 부르는 것도 교실 안에서는 심각한 갈등 요소라는 이야기다. 또래상담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고교 2학년 학생은 “교실에서 생활하다보면 어느 순간 갈등 상황이 감지될 때가 있다. 이름으로 놀림 받는 친구는 너무 마음이 상하는데, 그걸 표현하면 ‘뭘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느냐’라는 반응이 있다”며 “그럴 때 그 친구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교실 안에서 갈등을 조정· 중재하는 것까지 또래상담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래상담을 하다보면 우리들 고민이 거의 다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일 같지만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 기숙사나 교실에서 몰래 우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래상담자의 역할은 그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주는 것이고요.”
또래상담자는 몇 가지 상담 기법이 있다.
또래상담이라고 해서 아무런 훈련·교육 없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솔리언 또래상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솔리언(solian)이란 ‘솔브’(solve, 해결하다)와 ‘이언’(ian,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의 합성어로 또래의 고민을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돕는 친구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솔리언 또래상담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하 개발원)에서 제작하고 보급하는 또래상담 프로그램의 고유 명칭이다.
잠하둘셋 상담기법 생소한 단어지만 개발원에서 십대 또래상담자 교육을 위해 만든 상담기법이다. 잠하둘셋은 ‘잠깐, 하나, 둘, 셋’의 줄임말이다. 잠하둘셋 기법의 핵심은 ‘잠시 멈춤’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 좋은 감정이 생길 때는 일단 ‘잠깐’ 대화를 멈춘 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여유를 찾는 것이다. 또래상담자 는 ‘아이 메시지’(I-message) 기법도 활용한다. 학생들 대부분이 ‘나’를 주어로 감정이나 기분 변화 등을 말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또래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원무지계’ 상담기법 원(원하는 게 뭐니?), 무(무엇을 해봤니?), 지(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계(계획을 세워보자) 등 어른들이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또래상담을 할 때 이 네 단계를 거쳐 경청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기역차’ 상담기법 어(어떤 이야기인지 잘 들어준다), 기(기분을 이해해준다), 역(역지사지로 공감해준다), 차(생각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어기역차’ 상담법은 실제 또래상담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된다. 한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또래상담자로 활동해왔는데, 5년 동안 활동해보니 ‘어기역차’ 방법만큼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평소에 또래 관계 조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또래상담연합회에서 기본·심화 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상담기법들을 평소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비롯해 제가 속한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역지사지’처럼 와 닿는 게 없더라고요.”
또래상담연합회 상담원의 한마디 “공감하기, 잘 들어주기 등은 아주 중요하면서도 쉽게 잊을 수 있는 ‘상담 덕목’입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 시선을 맞추는 것부터 ‘음’, ‘맞아’, ‘그래’ 등 짧게 동의하는 말만 해봐도 친구들 대부분이 마음 편하게 또래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학생 상담이 진로 상담의 개념이었지요. 진로·진학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관계’에 대한 상담이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제 위기청소년에게도 효과가 있고요. 또래 상담의 시작과 끝은 ’경청하고 공감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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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또래상담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갈수록 고독과 스트레스에 쌓인 현대 성인들에게도 필요한 듯,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우정의 또래상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