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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한 분: 콩새, 진달래, 망고, 방패연, 미쳐, 알모, 알이, 연어알
모과 한알의 기쁨...^^
이안 선생님이 보내주신 모과 한알로.. 알모님은 맛난 차를 만들어주셨어요..
달달한 모과차와 알모님이 만들어주신 고구마빼때기로 시작한 동시모임 두 번째 시간..
달콤하고도 달달하고도 고소하고도 정겨운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달동안 어떤 시를 읽고 마음에 담아오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시가 참 신기하더라구요. 눈으로 읽는 것과 듣는 게 참 느낌이 달라요^^
항상 혼자 읽다가 동시모임에서 들려주시는 시를 듣고 나니.... 집에서도 이젠 속으로 읽지 않고 낭송하게 되네요^^
그러나 제 목소리보다는 함께 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더 좋더라구요.
낭랑한 목소리의 콩새님, 감동적인 시에 마음을 담아 울컥 읽어주시는 미쳐님, 섬세한 마음이 느껴지는 알모님의 목소리..
그리고 진달래님의 목소리, 방패연님의 목소리, 망고님의 목소리, 그리고 충청도 사투리를 아~주 구수하게 읽어준 우리의 막내 알이님의 목소리까지...
정말 행복합니다.
출발은 콩새님께서 낭송해주신 천양희님의 <오래된 골목>.
오래된 골목 / 천양희
길동 뒷길을 몇 번 돌았다
옛집 찾으려다 다다른 막다른 길
골목은 왜 막다르기만 한 것일까
골과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아
엉거주춤 나는 길 안에 섰다
골을 넘어가고 싶은 목을 넘어가고 싶은 골목이
담장 너머 높은 집들을 올려다본다
올려다볼 것은 저게 아닌데
높은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낮은 지붕들이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골목 끝에 서서
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나무 오래된 미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나무가 미래일까
오래된 몸이 막다른 골목 같아
오래된 나무 아래 오래 앉아본다
세상의 나무들 모두 無憂樹 같아
그 자리 비켜갈 수 없다
나는 아직 걱정 없이 산 적 없어
無憂 무우 하다 우우, 우울해진다
그러나 길도 때로 막힐 때가 있다
막힌 길을 골목이 받아적고 있다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고
옛집 찾다 다다른 막다른 길
너무 오래된 골목
콩새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죠?
두번째 시는 역시 천양희 시인의 <단추를 채우면서>
단추를 채우면서/ 천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그리고 자작시 <종우 화분>
<종우 화분>
교실 창가에
내 화분과 나란히 있는
종우 화분.
전학 간 뒤론 내가 물 줬다.
내 화분에 물 줄 때마다
똑같이 물 줬다.
내 꽃과 종우 꽃
서로 키 재기 하며
잘 자랐다.
선생님이 학교 꽃밭에
옮겨 심으라 하실 때
종우 화분도 들고 나갔다.
내 꽃 옆에 종우 꽃
나란히 심었다.
종우가 내 옆에 앉아 있다.
진달래님은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책하면서도 풍경이 보이고 사람도 섬세하게 보인다고 하십니다. 나뭇잎의 비상을 보면서 새떼를 생각했는데 스스로도 나뭇잎에서 새를 보는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사람이 보이고 풍경이 보여서 참 좋다고 하는데요. 이야기를 줍는다.. 이야기를 줍는 사람이 생각나자 <프레드릭>이 떠올랐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진달래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도 모으고, 색깔도 모으고 , 이야기를 모으는 프레드릭이 되어보기도 하고, 프레드릭의 햇살과 색깔을 느끼고 이야기를 마음의 양식으로 듣는 친구들이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알모님은 오늘따라 프레드릭의 친구들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고 하셨어요^^ 친구들이 떠올리는 색깔이 모두 다른 순서로 그려져 있는 모습이나 분도출판사에서 나왔던 프레드릭의 옛날 번역본 <잠잠이>를 추억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어지는 시는 남호섭 시인의 <새들도>
남호섭/ 새들도
새들도 숲에서는
걷는다.
날개 접은 채
낙엽 밟는 소리
노래하거나
울지 않아도
때로는 온 숲을 깨운다.
- 굳이 동시라고 할 필요가 없는 시. 동시의 격을 높혔다.
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문태준
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 운문사 뒤뜰 천 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 제 몸 그늘에 쌓이고 있더라
오직 한 움직임
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
나무가 황금사원 같더라 나무 아래가 황금연못 같더라
황금빛 잉어 비늘이 물속으로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있더라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
권정생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혼자 읽기 쉽지 않은 시, 권정생 선생님이니까 출판 되지 않았을까. 세대가 달라 동떨어지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듣는 동안 한 행 한 행 곱씹게 되는 맛이 있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다.
권정생 <하얀 도라지꽃>
먼지/ 이상교 (먼지야, 자니?)
책상 앞에
뽀얀 먼지.
"먼지야, 자니?"
손가락으로
등을 콕 찔러도 잔다.
찌른 자국이 났는데도
잘도 잔다.
똥의 시 /이대흠
고마운 일/ 이면우
소풍가는 길에서/ 안진영
말꼬리/이묘신
아빠 나이대결/ 신민규
우리 아빤 삼십 살이야
우리 아빤 사십 살이다!
원래 우리 아빤 오십 살이야
그럼 우리 아빤 백 살이다!
................
대결에서 지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천이란 숫자가 떠올랐다.
이소/ 송진권
오빠랑 언니 들도 아까부터 지달리구 있는디
뭘 그르케 자꾸 꾸물대는 겨
그르케 자꾸 꾸무럭거리믄 떼놓구 갈 텡께 알아서 햐
어여 어여 날 새기 전에 가야 하니께
싸기싸기 내려오니라
비얌이랑 쪽제비가 일어나기 전에
어여 물로 가야 하는디
당최 쫑마리가 저런다니께
엄마두 인지 몰러
오든지 말든지 맘대루 햐
엄마 원앙이가 언니들 앞에 서자
일곱 마리 원앙이가 졸래졸래 따라간다
멈칫대던 막내가 그때사
느티나무 고목 둥치에서 띠어내린다
엄마 같이 가
하냥 가자니께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둥구나무 딱따구리가 뚫어놓은 원앙이네 둥지
- 아리의 구수한 사투리가 일품이었던^^
단풍나무 빨간 빛/ 김미혜
별 같은 단풍잎 하나
엄마가 주워 들었을 때
빨간 빛 한 줌
아빠에게 뿌렸을 때
내년 가을엔 단풍놀이 가자
꼭 가자 하셨는데
가을이 왔다.
텅 빈 가을이 왔다.
교회 앞 단풍나무 빨간 빛
하늘나라 아빠도 보고 계실까.
훌쩍 지나가면 좋을 가을.
몰래 지나가면 좋을 가을.
추리닝 바지/ 김미혜
옷장에서 아빠 추리닝 바지가
하나 나왔습니다.
몸이 쏙 빠져나간
매미 허물처럼
늘어진 발목
튀어나온 무릎.
"아빠 같아."
아빠 옷을 꼭 껴안았습니다.
뺨을 댔습니다.
-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마음을 읽는다는 것. 맑고 투명한 마음을 만나는 일. 그런 의미에서 <아빠를 딱 하루만>에서 나오는 아빠를 잃은 화자의 여러 시들은 기교가 없이 쉽게 쓰여졌고, 마음이 잘 느껴지는 시다. 연이어지는 시들을 읽으며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말과 시는 어떻게 다를까 고민하기도 했다. 어떤 시는 그냥 말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하고...
비 그친 뒤/ 김미혜
숲 속에
어부가 산다.
비 그친 뒤
호랑거미 한 마리
은빛 그물을 친다.
목련꽃/ 성명진
복지관 앞
앙상한 그,
무얼 얻으려 서 있나 했는데
아니었어요.
오히려
환한 밥덩이 몇을
가만히 내놓는 것이었어요.
비 그친 하늘/ 김영일
소낙비 그쳤다.
하늘에
세수하고 싶다
이밖에도 방패연님의 <지나가다 들르는 이상한 문구점>과 미쳐님의 자작시를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시를 읽는 목소리도 예쁘고, 시를 읽는 마음도 예쁘고,
세상을 보는 눈도 예쁘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시를 생각하는 동시모임 선생님들의 마음도 참 예쁘고,
제 눈에는요. 여기 모인 사람 모두가 시인 같아 보였어요^^
다음 모임은 2014년 1월 8일입니다!
좋은 시 많이 읽고 소중한 시간 같이 나누어요^^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 사진 촬영: 알모님^^
첫댓글 사진만 봐도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좋았겠다~~~
시를 나누는 기쁨이 느껴지지요?
다른 건 모르겠고...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이렇게 놓고 보니 완전 시선집이 되었네요.
내 친구 중 누군가는 친구들과 함께한 소풍으로 6개월을 버틴다고 하던데,
전 동시모임 덕분에 한 달을 씩씩하게 보내겠어요~
후기짱 연어알님~
동시모임 친구들~
한 달 뒤에 만나 좋은 시 나눕시다요.
그동안은 아쉬운대로 까페에서...
아, 시를 나누고픈 분이라면 누구나 오셔도 좋아요.
시는 나눌수록 더 행복한 것!
하~ 멋지다.....
한 달에 한 번 영양제를 맞고 오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시 향기와 사람 향기에 시인이 보내주신 모과로 담은 알모표 모과차 향기가 잘 어우러진
우리 동시모임, 그윽했습니다.
어쩜 그리들 조곤조곤 잘 읽어주시던지, 하루가 넉넉해지더이다~~~
벌써부터 담 모임이 기다려진다능...
저는 제대로 복을 받았어요... ^^ 이렇게 좋은 분들... 이렇게 좋은 시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불과 몇달 전 제인생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말이예요... 아~~~ !!
멋진 후기 짱이에요. 우리가 읽은 시들을 다 찾아 올려놓으셨네요. 와우!
연어알님 오셔서 모임이 더 풍성해졌다는 거 아시죠? 호호.
이번엔 제가 집에서 바로 가느라 동시집을 챙기지 못해 시만 읽었지만, 다음엔 좋은 동시 잘 뽑아가서 읽을게요~.
정말 후기 짱임다~^^ 같이 해서 참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다음 시간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우짜냐고요. 담 시간 후기는 뉘신지...왕부담일듯.
미쳐님 말씀이 맞다고요. 담 후기 쓰시는 분은 어쩌라고~^^
넘 잘 올려주셔서 읽기가 황송했습니다.
책읽기 모임도 넘 좋은데 시를 읽는 모임은 또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참 신기하기까지한~ 언어의 표현이 달라서 그런가요.
연어알의 글이 좋아요.
따뜻한 연어알의 글 읽고, 으랏차차 하루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