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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정치의 본질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와는 정반대의 주장이나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를 불신하거나 심지어는 혐오를 하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 현실을 염두에 놓고 볼 때, 특히 정치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여론 조사의 결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는 단지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라는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의 본질은 물론 정치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탐구 대상이 되는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 체제를 겪고 현실과 역사의 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상가로서, 히틀러 체제의 2인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대인 학살을 진두지휘했던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의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인간의 얼굴을 한 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을 사랑하고, 맡은 바의 임무에 충실한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렌트는 누구든지 아이히만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산다면 악에 노출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면서 판단에 이르기까지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사유하고 판단하지 않는 시민에게 정치적 자유는 없다!’는 이 책의 부제는, 아렌트의 사상을 통해서 우리가 갖춰야할 자세를 촉구하는 가장 중요한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아렌트의 저서들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는 10개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지 아렌트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렌트의 사상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2016년부터 시작된 ‘촛불혁명’ 등 한국의 현대사의 주요 계기들을 지속적으로 호출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가 아렌트의 정치사상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도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만들어가는 정치적 공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모두 10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내용들은 대체로 아렌트의 주요 저작들에 기술된 내용들을 제시하고, 그것을 다시 저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쉽게 이해시키는 내용을 덧붙이면서 이끌어나가고 있다. 예컨대 ‘이제 전체주의는 끝났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정권은 몰락했지만 언제든 다시 그러한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결국 전체주의란 인간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전체주의는 외부의 자극에 쉽게 휩쓸리는 대중들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들의 행동과 호응을 통해서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칸트의 개념을 빌어 아렌트는 ‘근본악’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는 후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하게 된다.
아렌트는 히틀러 정권의 2인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괴물 같은 악을 저지른 자는 왜 괴물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의 관심은 오로지 명령을 잘 수행함으로써 직업적으로 성공하는데 있었’으며, 오히려 ‘지시되고 명령된 일을 아무런 생각 없이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가’였기 때문에 그러한 비극이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정치에 있어서 ‘공적 영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왜 완전히 사적인 사람은 자유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동양의 관점과 달리 서구에서는 ‘정치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별함으로써 시작한다’고 전제한다. 때문에 ‘가정이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불평등의 장소라면, 폴리스는 자유와 평등의 장소’라고 규정한다. 폴리스는 그리스시대 공론의 장이었으며, 그것이 현대에는 정치가 이뤄지는 장이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의 영역에 경제가 개입되면서, ‘사회의 출현은 경제의 부상과 정치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또한 ‘왜 우리는 다른 의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자는 정치적 영역이야말로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교환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다원성의 문제를 강조하면서, 최근 제주에 도착한 난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양극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때로는 의견이 아닌 ‘여론’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인식하는 태도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자유로운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렌트의 ‘탄생성’의 개념을 전제하면서, 저자는 ‘정치적으로 탄생한다는 것은 공동세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행위를 함으로써 관계를 시작’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치권력은 꼭 폭력적이어야 하는가?’라는 항목에서는 혁명과 쿠데타에 대해서 자세한 비교를 곁들이면서, ‘촛불혁명’이 혁명일 수밖에 없다는 근거와 설명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를 다룬 ‘정치는 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가?’라는 항목에서는,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고 때로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자신이 생각하고 보고자 하는 것만 취하는 ‘확증 편향’이나 ‘체리 피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결국 ‘이미지를 위해 정보와 사실을 조합하고 조작하는 조작된 거짓말’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사유하고 판단하는 개인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배 관계를 넘어서는 평등의 정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공화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어떻게 정치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항목에서는 개개인들의 생각과 판단력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를 바라보는 아렌트의 개념들이 매우 독특하다고 전제하면서, 그 논리를 통해 접근하면 현실의 문제와 정치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여전히 우리의 정치 상황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정치가 우리의 일상에 끼치는 영향과 의미에 대해서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아렌트의 주요 개념들과 전반적인 사상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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