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거꾸로 따라가면 어디에 닿는가
오래된 담벼락에 금이 하나 가 있습니다.
넓게 벌어진 쪽에서 시작해 손가락으로 천천히 따라가 봅니다. 금은 점점 가늘어집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끝납니다.
거기가 금이 시작된 자리입니다.
병도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에 닿습니까.
지난 호까지 병이 시작된 순간을 보았습니다. 알았다고 마음먹은 그 자리, 하늘 쪽이 끊어진 그 자리 말입니다.
이제 그 끝점에 이름을 붙일 차례입니다.
책은 여기까지 온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인간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천품을 버리고 지격의 수성(獸性)과 교합,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조건을 수용하게 됨으로써 발병시원자(發病始原者)가 되었다."
96호부터 여기까지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병의 원인이 되게 한 그 존재는 누구입니까.
강연의 답이 짧습니다.
"병의 원인이 되게 한 그 존재가 누구예요? '나'기 때문에."
여기서 한 가지를 반드시 짚어야 합니다.
발병시원은 사건이 아니라 관점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다는 역사 기록이 아닙니다. 병의 원인을 어디서부터 세느냐의 문제입니다.
증상에서 세면 증상이 원인이 됩니다. 장부에서 세면 장부가 원인이 됩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거슬러 올라가 위쪽과의 연결이 끊긴 그 지점까지 가서 세는 것 — 그 관점이 발병시원입니다.
책의 정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상태의 시점을 병리가 전개하게 된 병발(病發) 원인의 초시점(初時點)으로 하는 사고를 발병시원이라 한다."
'사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관점이라는 뜻입니다.
104호에서 내 안의 셋을 보았습니다. 위와 가운데와 아래 말입니다.
가운데가 위와 이어져 있어야 하는데 아래와 붙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책은 그 상태를 불결합적(不結合的) 조건이라 부릅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묶였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붙어 있으니 계속 어긋납니다. 그 어긋남이 병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조심해서 읽어야 할 대목이 나옵니다.
"발병시원자가 나다"는 말은 개인을 향한 고발이 아닙니다.
지금 아픈 어떤 사람이 스스로 병을 불러들였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인류 전체가 놓인 조건을 말합니다.
책은 우리 모두가 고통과 병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조건 아래 살아가고 있다고 씁니다. 예외가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강연은 같은 말을 훨씬 편하게 합니다.
"도토리 키 재기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보면 다들 비슷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완전치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무엇인지 모를 요인에 침해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는 말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여기서 강연의 방향이 바뀝니다. 지금까지가 진단이었다면 여기서부터가 처방입니다.
사상을 떠나서, 동양의학의 정신에 입각해서라도 나를 정결케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나옵니다.
"그 정결케 하는 방법, 이것을 의료(醫療)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의료의 정의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그 의무를 사명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진단입니다.
인간이 무엇이었고, 무엇을 잃었고, 어떻게 잃었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
이제 시리즈의 후반부로 넘어갑니다.
다음 네 편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스승도 없고 책도 없던 시대에,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3년을 품팔이한 사람.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손에 넣은 밤에 달빛 아래 주저앉아 통탄한 사람.
허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