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영아리
노창호
긴긴 겨울밤 인내속에 몸속 깊숙히 품고 있던 꽃망울을 스치는 봄바람 느낌으로 꽃대올려 노랗게 피워져.... 지나는 차창 밖으로 길게 수 놓아진 유채꽃을 흘리며, 한라산 봉우리 하얗게 눈덮힌 설경이 노란 유채와 어우러져 한폭 이국적 풍경을 그려가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물영아리 삼나무 숲이 하늘을 찌르듯 녹색으로 덮여 긴 터널을 음영으로 덮고, 정상을 향하는 계단 끝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508m 높이의 제주에서 낮지않은 오름이 정상까지 일천여개의 목조 계단으로 이어지니, 도회지 미세먼지 속에서 폐속 깊이 누적된 오물이 가빠오는 호흡으로 삼나무 숲에 뿌려지고, 비어진 폐 공간을 피토치드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한톨 쌓여있을 오염 마져 모두 내 뿜고, 그 힘겨움에 이마에 몽실 몽실 땀 마져 맺혀 혈관에 뒤섞여 있던 오염물까지 배출시켜, 깨끗하게 정화된 이 숲속의 피톤치드로 혈관마져 채워간다.
가방에 붙어 있던 노란 "인천자연사랑산악회" 리본을 떼어 대자연 속 이루어진 아름다운 이 숲속을 다녀갔다는 흔적으로 걸어 놓는다.
정상 오르니 300m둘레 분화구는 여느 오름과 달리 물이 고여있어 작은 산정호수를 이루고,
능선 지나던 바람을 세워 잠재운듯 고요한 침묵과 작은 물고기 움직임이 둥근 파형을 그려가고 있다.
40m 깊이 이루어진 수면으로 연결된 분화지까지 목조계단을 따라 내려서니 움푹파인 그곳은 오직 나만의 고요한 세상이되어, 호수에 띄워진 수초와 벗이 되련다.
우측 능선을 따라 야자메트길이 이어지니, 가도 가도 긴 삼나무 숲으로 이어져, 상쾌하여진 발걸음이 사뿐하게 옮겨진다.
자연과 동화된 오늘의 오후 일정을 붉은자연휴양림으로 옮겨 350m 낮은 오름 정상에 상상치 못할 큰 분화구를 만난다.
정상 관망대 오르면 일반산 정상처럼 보여 분화구임을 인식치 못하지만, 이어지는 메트길 따라 이동하다 보면 큰 분화구가 눈에 들어 온다. 분화구 둘레가 무려 넘잡아 1,5km정도 능선길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오르던 530여 계단길을 만나게 된다.
샤르니 숲길을 가까이 둔 탓인지, 이곳 역시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평소 잡나무 숲을 지나던 등산길과 판이하게 다른 어두움과 산뜻함을 동시에 담는다.
긴 길을 돌아 돌아 쉼 없이 마냥 숲을 담고 걷는 이 순간의 만족감....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 할 시침이 가까워 왔다.
긴 여운이 아까워 남아 있던 마지막 리본을 떼어 나무가지에 다녀 갔다는 흔적을 걸어 남기는 이 숲과의 이별을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