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9일 화요일
제1독서: 다니 7,9-10.13-14
복음: 요한 1,47-51
-김웅태요셉 신부-
열린 하늘, 우리 곁에 닿는 하느님의 손길
미카엘의 믿음, 가브리엘의 희망, 라파엘의 치유를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기쁘게 지냅니다.
‘천사’라고 하면 흔히 서양 성화에 등장하는 하얀 날개의 아기 천사나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로운 존재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천사는 단순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천사’라는 말은 본래 ‘하느님의 심부름꾼’, 곧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수행하는 존재를 뜻합니다. 천사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느님을 가리키고, 자기 뜻을 이루기보다 하느님의 명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천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천사를 보내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승리를 증언하는 천사들
오늘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천상 어전의 환시를 봅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 앞에 모여 선 이가 억만이었다.” (다니 7,10)
수많은 천사가 하느님을 모시고 섬깁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영원한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를 받습니다. 그의 통치는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 환시는 세상의 역사가 혼란스럽고 악의 세력이 강해 보일지라도, 최종적인 주권은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천사들은 바로 이 하느님의 영광과 승리를 증언합니다.
우리 삶에도 하느님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걱정, 반복되는 유혹, 병고와 외로움, 깨어진 관계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면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오늘 다니엘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의 역사는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 악과 죽음이 마지막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 마지막 말을 한다.”
예수님 안에서 열린 하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의심했던 나타나엘이 주님께 마음을 열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1)
이 말씀은 야곱이 꿈에서 보았던 사다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야곱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 위로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바로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결정적인 자리임을 밝혀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닫혀 있던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이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따라서 열린 하늘은 먼 미래에만 있는 광경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과 함께 살아갈 때, 하느님의 돌보심은 이미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시어 우리를 지키고 이끌어 주십니다.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
성 미카엘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하느님께 맞서려는 모든 교만을 무너뜨리는 신앙고백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우며 하느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천사로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도 치열한 영적 싸움을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전쟁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교만과 이기심, 탐욕과 질투, 불안과 절망도 우리가 맞서야 할 어둠입니다.
특히 세상의 성공과 재물과 권력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질 때, 미카엘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
세상의 어떤 힘도 하느님보다 크지 않습니다. 어떤 불안도, 어떤 유혹도, 어떤 실패도 하느님의 사랑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전구를 청한다는 것은 하느님만을 우리 삶의 참된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다.
성 가브리엘의 이름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나자렛의 성모 마리아에게 나타나 구세주의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평범한 나자렛 처녀의 삶 안으로 들어와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을 선포한 것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처음에는 놀라고 두려워하셨지만, 가브리엘이 전한 말씀을 믿고 응답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때때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아무런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고, 모든 길이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가브리엘 대천사가 전한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희망은 모든 일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이 아닙니다. 희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전구를 청한다는 것은 절망 속에서도 복음의 기쁜 소식을 붙들고, 우리도 그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길을 인도하고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느님
성 라파엘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는 뜻입니다.
토빗기에서 라파엘 대천사는 젊은 토비야의 여행길에 동행합니다. 토비야가 위험한 길을 무사히 지나도록 인도하고, 눈먼 아버지 토빗을 치유하며, 고통받던 사라에게도 하느님의 구원을 전합니다.
라파엘은 길의 동반자이며 치유의 천사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고통받는 사람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험한 인생길에서 함께 걸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도 치유가 필요한 상처가 있습니다. 몸의 질병뿐 아니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의 아픔, 용서하지 못한 기억, 깨어진 관계와 오랜 외로움이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전구를 청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우리의 상처를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도 아파하는 사람 곁에 머물며 치유의 도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우리 삶에는 때때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생계를 꾸려 가던 한 자매님이 너무 지치고 외로운 나머지 성당 뒷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본당의 한 연로한 단원이 조용히 다가와 따뜻한 음료 하나를 손에 쥐여 주고, 아무 말 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훗날 그 자매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날 그 어르신의 따뜻한 손길이 없었다면 저는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게는 그분이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사람이 실제로 천사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한 사람의 따뜻한 손과 다정한 말, 말없이 곁을 지켜 주는 사랑을 통하여 천사와 같은 돌보심을 베풀어 주십니다.
절망한 사람에게 먼저 내미는 손, 병든 이의 손을 꼭 잡아 주는 위로,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인내, 가족을 위해 말없이 흘리는 땀과 눈물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선행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손길을 전합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다니엘서가 보여 주는 하느님의 영광과 승리,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하늘은 결코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의 믿음을 살아갑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쁜 소식을 전할 때 우리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희망을 살아갑니다.
상처 입은 이웃 곁에 머물며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내밀 때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의 사명을 본받습니다.
오늘 하루, 세 대천사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두려움과 유혹 앞에서 하느님을 굳게 믿고 있습니까?
나는 낙심한 사람에게 희망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까?
나는 상처받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곁에 머물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어 일상 안에서 우리를 지키고 이끄시는 당신의 손길을 알아보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또한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게 보호와 희망과 치유를 전하는 하느님의 도구가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성 미카엘 대천사여, 저희를 영적 싸움에서 보호해 주소서.
성 가브리엘 대천사여, 저희가 복음의 기쁜 소식을 담대히 전하게 하소서.
성 라파엘 대천사여, 저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인생길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소서.
그리고 저희도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