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추억들
이경란
행복의 동아줄처럼 아스라이 느껴진다
그리고 천생연분인 같은 부모님의 인연
신기하고 놀라웠다.
꿈에 본 모습 그대로 만나보니 똑같았다고
똑같이 그렇게 이야기하셨다
결혼 후 2남 4녀를 키우시게 되셨고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무남독녀 부잣집에서 자라고 공부를 해서인지
늘 글을 가까이 하며 편지글 잘 쓰시고 난초 그림을 치시었다.
일본말도 잘하여서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에 부탁하러 왔다.
그때는 모두 사주단자 같은 걸 보낼 때라서 편지글 지문인지 종이 두루마리를 쓰시곤 했다.
어머니는 이웃 어른들과 잘 지내시고
행시같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도움 주시고 사람을 잘 가려 말수가 적고 말을 잘 섞지 않으셨다
외딸이었던 외로움에도 늘 혼자 놀기를 좋아하시고 우리들에게 경제 개념도 잘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는 월급을 타 오면 우리에게 용돈을 주고 우리 가족은 명랑가족이라고 늘 말씀하였다
행복의 열매를 가꾸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노래자랑 장기 자랑을 했다
상품은 노트나 색연필 과자를 준비하였다. 행복한 순간의 파티는 이어지고
나와 동생 셋은 평소에 잘 먹을 수 없던 각 분유 캐러멜 한 통을 사서 질릴 때까지 먹으면서 꿈을 키웠다
그 순간의 행복이 파도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어린 시절 형제자매 중 공부 못한 돌연변이 늘 걱정거리였던 나 장학생 언니 우등생 동생들 틈 속에서 위아래로 중간에 끼여 기 못 펴고 말에 힘이 없었고 나는 늘 기죽어서 살았다
한 번은 홍역 한다 밖에 못 다니게 하였을 때
나는 말 잘 들어 집에서 잠 많이 자고 놀아서 홍진 기침을 하지 않는데
언니는 활달한 성격에 밖으로 돌아다니며 놀다 홍역이 심해져서
겨울이 오면 그 여파로 기침의 잔 여운이 남아 고생을 하였다
어디 가든 우등생인 언니는 사회생활도 일등,공무원으로 존경받고 칭찬 듣고 인정받았고
동생도 우등생으로 시견dl 있어 부동산도 여기저기 잘 옮겨 타고 능력 타고났지만
뛰어난 것 없는 나는 늘 그림자처럼 부동산에 실패하고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니의 훈련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언니의 훈련 과정이 벅차서 날짜를 정해 놓고 죽기까지 결심도 했다
그러나 끈기를 가르쳐주고 훗날 그것이 내 삶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구봉산 아홉 봉 오리 돌고 아침 먹자고 깨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늘 동생들 데리고 남천교 사과 사러 다니면서 많은 훈련 시켜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도
그때 깨달은 덕분에 모두 잘 사는 것 같다
고귀한 듯, 티 내지 않는 끈기, 교양 있는 언행으로 “이 퇴계 후손답게 살아야 된다”면사 그것을 교육시켜 몸에 배게 해 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십원자리 말들이 오고 갔지만, 우리 집에는 성품 고우신 부모님 두 분 때문에조용하고 큰소리 나지 않았다.
부부싸움은 본 적이 없었다. 다정한 소리만 기억날 뿐, 금실이 좋았던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는 명랑하였고 늘 남에게 돈 빌려줘서 못 받은 적이 있다.
엄마는 돈 받으러 이곳저곳 다니던 기억이 파도치듯 억 갈린 박자로
가슴 파고들고 돈 떼인기억이 서늘한 바람처럼 서리발 되어 나온다.
아버지는 정직 절약 경제관념을 가르쳐 유비무환을 준비하라 말씀하였다
뿌리내린 가정교육 바탕으로 서울 경기도에서 집 지키고 잘 살고 있는
언니 동생 가족들도 부모님 교육이 확실히 배인 것 같다.
언니 동생 자녀들 착하게 잘 자라 서울에 유명 대학교 정교수가 되고
말로만 듣던 검찰청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교육도 개인과외 시키면서 저를 무시하듯 나중에 후회할 거라
자녀 신경 써라 조언도 했지만 방치하다시피 키워야만 했다
방목했고 관심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게임 오락 놀 것 다 놀고 그래도 기본이 있는 듯
하나님의 은혜인 듯 공직자로 잘 자라주고 올곧은 첫 번째 나의 손님으로 산다
자녀 키울 때 아픔은 누구에게 말할까
부부가 함께 살아야 자녀 교육이 똑바로 되는데
남편이 서울에서 직장 근무하다 보니
주말부부라서 영이 안 서고 그 순간 뿐아었다
늘 게임에 빠져 공부 안 하고 피시방 밖으로 돌고 사춘기 때 부모를 멀리하여 나는 나대로 직장생활과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었다.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니까 성적이 꼴찌 가까이 곤두박질치고
유명 메이커 옷 신발 그런 것에만 관심을 두니 삶이 벅차서 나도 뭔가 의지 할 곳이 필요했다.
그때 에인헤어 권사님을 만나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많은 체험을 겪으며 믿음도 키워나갔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야자 수업하는데 주동자가 되었다. 공부도 안하는데 시간 낭비라고 야자 학습 폐지하자 주동해서 부모님 둘 다 학교로 불러갔던 기억이 더오른다.
그때 제 자녀를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인도해 주소서 하면서 매달렸다.
정말로 체험의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은 공무원 시험 보는 날도 똑 같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 오르는 무지개 빛이 되었다.
시험 시작하는 9시부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살아 계심을 확인하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한 이야기였지만
아들은 합격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