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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일 새벽에 일어나 홍제천 1시간 20분을 달리고 돌아왔다. 천변을 따라가다 월드컵공원에 들어서면 호수와 조형물들로 시원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가려고 부지런히 집에 왔더니 어제 시험을 마쳐서 오늘은 재량으로 휴교라고 한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내일 평창에 가는 일정을 설명하는 중에 내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 신내동에 알리겠다는 아내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명절에 참석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사정을 미리 알리려고 했을 것으로 서로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학원에 가면서 지저분한 세피아 승용차를 내부까지 세차했고 점심이 되어서는 동생 정환이가 찾아와 식사를 함께 하는 중에 계약기간이 끝나는 금년 11월 말까지만 학원을 하겠다고 한다.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든 쉬운 일은 없고 이번에 정리하면 다시 하기 어려우니 심사숙고 하라고 일렀다. 학원에 들어가 수업을 마치고 내일 가족여행을 하는 날이라 일정마련과 준비물 등을 위해서 집에 바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내가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으로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 2시에 깨어보니 아내는 아직도 준비를 하고 있다.
2일 강원도 여행을 가는 날이라 가족이 모두 일찍 일어났고 TV에서는 추석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성객들의 모습과 붐비는 고속도로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다. 가급적 한산한 곳인 양평을 거쳐 횡성을 지나는 코스를 정하고 7시에 내부순환도로에 올랐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덕소IC 근처에 다다르니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는 차량들로 여기도 정체가 심했고 양평을 지나 용문산 근처를 벗어나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시골처럼 한산한 용두리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횡성을 지나 영동고속도로 옆을 달리는 국도를 이용하여 봉평에는 12시에 도착했다. 시원한 강원도의 가을을 만끽하며 먼저 무이예술관에 들어가 조각이며 사진 등을 감상했고 야외에서는 조각물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특히 대나무를 이용하여 통으로 만든 그네는 인상적이었고 메밀밭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원두막은 동화속의 장면을 연상하게 하였다. 예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정적인 소설가 이효석 문학관이 있었는데 주변이 온통 메밀밭이어서 내가 작품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말끔한 생가 마당에 동상으로 남아 있는 그를 만나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2시가 되어 봉평을 가로 지르는 넓은 천변 근처로 이동하여 메밀국수와 젬병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봉평 읍내를 구경하고 나와서 금당계곡과 뇌운계곡을 거쳐 방림면 황토찜질방 펜션에 5시가 지나 도착했다. 가는 곳마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산세가 아름다웠고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하며 아들 딸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명절날 고향에 가지 않은 것도 가족과 떨어져 보내는 것도 나로서는 이번이 처음인데 지난날 단란했던 고향의 시간들을 많이 생각했다. 명절이라 그런지 원뿔형 찜질방은 손님이 없어 우리 가족만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오늘 밤 아들은 여기서 혼자 잠이 들었다.
3일 조용하고 공기가 좋은 산 속에서 잠을 잘 잤고 새벽에 일어나 된장찌개를 만들어 두고 찜질방에서 혼자 자는 아들을 불러 식사를 마쳤다. 동해안을 가기 위해 9시에 펜션을 나서 장평 IC에서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했고 대관령에서 휴식을 취한 뒤에 차량의 행렬에 묻히어 강릉Ic를 벗어났다. 방향을 남쪽으로 바꾸어 한참을 달렸더니 푸른 바다와 함께 우뚝 선 모래시계가 우리를 반기고 큰 파도가 밀려오는 정동진에 도착했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청주에 사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온 적이 있는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닷가 갯바위에 올라 연신 밀려오는 파도에 환호성을 올렸고 경기용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아들 딸과 모래밭을 질주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동진을 출발하여 다시 대관령을 넘으면서 남강릉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평창 대관령 양떼목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TV이나 그림에서 자주 보아 한 번은 와 보고 싶었던 곳으로 순서를 기다리다 셔틀버스를 타고 거대한 풍향계가 돌고 있는 정상에 올랐다. 하늘이 손에 잡힐 듯 했고 오른쪽으로는 동해의 물결이 다른 방향은 굽이굽이 산맥들이 이어져 뛰노는 양떼들과 더불어 이국적인 장관이었다. 바람이 다소 거세기는 했어도 광활한 목장과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드라마 촬영 나무도 구경하고 꼬불꼬불한 언덕 같은 길을 다시 내려왔다. 아름다운 목장과 가을의 정취를 남기고 대관령을 내려와 오대산 입구에 위치한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에 들어섰다. 월정사는 석탑으로 상원사는 범종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특히 상원사 마당은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 한참을 더 머물렀다. 상원사를 내려오는 중에 명절이니 식사를 함께 하자며 신내동으로 오라는 여동생 연락이 와서 여행 중이라고 문자는 했지만 가족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동생을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지면서 산사를 내려와 펜션에는 8시에 돌아왔고 김치찌개를 만들어 맛있게 먹고 어제와 다르지 않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4일 어제 추석 명절을 동해안과 오대산에서 보냈고 새벽에 일어나 찜질방에 내려갔더니 오늘은 단체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어 샤워만 하고 나왔다. 아침식사 된장찌개는 얼마나 구수했던지 먹는 과정을 잊을 정도였고 식사 후 잠깐 자고 일어나니 아내와 아들 딸은 찜질방에서 보내고 있다. 밖으로 나와 마당에서 건너편 산과 들을 바라보니 멈춰 있는 듯 고즈넉하여 여기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점심으로 라면을 5개나 끓여서 식사를 마치고 친절한 주인과 인사를 나눈 뒤 오후 1시에 평창을 떠나 안흥을 거쳐 서울로 방향을 잡았다. 안흥을 나오면서는 이 곳의 명물이라는 찐빵을 사 먹었고 서울로 가져갈 분량을 더 주문하여 새말 IC를 지나 횡성으로 진입했다. 횡성에서 양평으로 이동하면서 거의 10년 만에 용문사에 들어섰는데 변화가 심한 세상과 다르게 사찰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여전히 오랜 시간을 견디고 있다. 아들과 딸은 처음으로 와 본 곳이라지만 역시 사찰에는 흥미가 없어 보이고 내려오면서 초입에 있는 오락시설에 관심이 있어 기웃거리는 정도다. 용문사를 6시에 나와서 양평을 거쳐 서울로 오는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막히지 않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김치찌개를 만들어 늦은 식사를 했다.
5일 여행을 마친 어제 저녁에 일찍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오늘까지 추석 연휴라 무악재 고개의 차량 행렬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도 듬성듬성하다. 아침에 된장찌개로 식사를 마쳤고 산에 오른다는 아내가 나간 후에 체육관에 가서 2시간을 보내고 왔더니 아들은 외출을 했고 딸이 집을 지키고 있다. 점심을 하고 학원으로 나가면서는 퇴계원에 간다는 아내를 태워 태능입구에 내려주었고 신설동으로 돌아가 임대료에 대하여 3층 세입자한테 각서를 받았다. 여행 후유증이 남아 있기는 했어도 학원에 들어가 7시까지 수업을 열심히 했고 저녁에 텅빈 거리를 달려 집에 들어오니 아내도 퇴계원에서 돌아와 있다. 청주에서 올라오신 장모님을 뵙고 왔다는 아내는 싱글벙글 표정이 밝았고 이미 식사를 마친 딸을 제외하고 아들과만 삼겹살을 함께 먹었다. 밤에 가을바람을 친구 삼아 거실에 혼자 있는데 안방에서는 아내와 딸 아들이 웅성거리며 즐겁게 TV를 보고 있다.
6일 오늘 음력 8월18일 내 생일인데 돌이켜보니 50년의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생일은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언제나 시들하고 이번에도 엊그제 여행까지 다녀왔으니 미역국만 먹기로 했다. 식탁에 앉아 있는 아침에 무표정한 딸과 달리 오늘은 아들이 아빠 생일을 축하한다며 가까이 와서 나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오전에 홍제천으로 나가서 성산대교부터 마포대교를 지나 한강철교까지 달렸다가 돌아서 왔더니 12시가 지났다. 3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린 28킬로의 거리였는데 25킬로 이후부터는 종아리와 발의 통증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침의 미역국으로 점심을 하고 신설동에 나가 3층 임대료 문제를 처리하는 중에 정식이 전화가 왔다. 아들 상윤이가 오늘 의정부 훈련소에 입대를 했다며 그 동안 해 준 것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인다. 일찍 이혼을 하고 아들과 둘이서 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았으니 가난한 아버지로서 미안함이나 회한이 있을 것이다. 강의를 마친 저녁에 정식이를 만나 식사를 했는데 그는 슬프고 나는 생일이라 기쁜 날 희비가 함께한 친구와의 밤이었다.
7일 새벽에 일어나니 어질하고 어제 마신 술기운이 아직도 계속이다. 아침 9시에 신설동 누수탐지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식사를 하고 차를 몰고 나갔더니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1층 화장실 벽에서 누수가 되기 때문에 입구 계단에서 창고 벽을 뚫고 보완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시간이 걸려 점심쯤에 마쳤다. 고향에서 동창들이 모임을 준비하면서 총무를 중심으로 일부는 대천으로 모이라 하고 회장은 김제 벽골제로 오라고 하여 당혹스런 모양이 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현재의 대립 상황에 대하여 나에게 계속 하소연을 하는데 모임은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 것 같다. 평소에 느낀 바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 동창이라고 해도 한마음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학원에 가서 수업도 하기는 했지만 생일이라고 술을 많이 마시고 나태하게 정신을 놓고 보낸 어제와 오늘이 아닌가.
8일 오늘도 정신이 흐리고 컨디션이 좋지가 않아 아침을 먹고 체육관으로 먼저 나갔다. 달리기와 기구운동까지 땀을 흘렸더니 12시가 지났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은행에 들어가서 신설동 건물을 구입하면서 받은 만기된 대출금 4건을 연장처리했다. 건물은 구입한 지가 7년이 지나 가격 상승과 더불어 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이자부분도 어렵지 않게 해결하고 있다. 점심을 먹고 대치동에 갔다가 마원장과 수익금을 나눈 뒤에 어제 두고 간 차를 가지러 신설동으로 왔더니 견인이 되어졌다. 중랑교 근처 차량보관소에 가서 차를 가지고 나오는데 이번 견인은 벌점과 벌금이 없다고 하여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고 아마 착오로 가져간 것은 아닌가 생각하였다. 요즘 무절제하게 보낸 시간이 많아 수업을 하는 중에도 피곤했고 저녁에 일찍 집에 들어와 식사를 마치고 바로 잠이 들었다.
9일 거실에 불이 켜져 있어 자다가 나왔더니 새벽 2시가 되었는데 아들이 컴퓨터를 하고 있고 다시 들어가 5시에 일어나 거실에 나왔다. 기온이 내려가 서늘한 새벽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가 궁리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아들은 오늘이 인창중 체육대회 날이라고 하더니 신종인플루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며 식사도 거르고 늦게까지 잠만 자고 있다. 10시에 홍제천으로 나가 성산대교까지 왕복 13킬로 1시간 20분을 달리고 가뿐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함께 롯데백화점 본점에 나갔다. 세일기간으로 사람들도 많은데 이번 행사는 추첨을 통하여 1등은 아파트 5억짜리를 경품으로 준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역시나 현실은 물질이 좌우하는 세상이 되었다. 쇼핑을 하는 동안 요즘 백화점은 화려하기가 딴 세상 같았는데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던지 아내는 나를 향해 백화점에 자주 다니고 좋은 옷도 사 입으라고 조언을 한다. 한글날 행사로 인하여 차가 막히는 도심을 통과하여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었고 월요일 중간고사를 보는 수강생들 수업을 하러 다시 학원으로 나갔다.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왔더니 아내는 요가를 한다고 나가고 식사를 하는 중에는 음악을 연습했다는 아들이 들어왔다. 늦은 밤에는 세계 청소년축구 4강전을 아들과 시청했는데 8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 열광했던 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10일 축구 때문에 늦게 잤지만 평소처럼 6시에 일어났다. 강동구에서 주최하는 풋살대회에 참가하는 아들을 출발지 서대문구청에 태우고 갔는데 건강한 청소년 육성을 목적으로 실시한다는 대회가 학생들을 새벽부터 소집하여 오히려 건강을 더 해칠 것 같다. 홍제천으로 내려가 마라톤을 하려다가 어제 잠도 많이 못 자고 기온까지 쌀쌀하여 그냥 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개로 식사를 했다. 오전에 잠을 조금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는 수업한다고 교실에 올라갔고 산에 가자는 영식이 문자가 와 있다. 내일 서울시청에서 출발하는 하프마라톤에 참가하기 때문에 오늘은 어렵다는 문자를 보내고 홍제천으로 나가 새벽에 못한 7킬로를 달렸다. 집으로 돌아와 딸과 점심을 하고 학원에 나가 수업을 마친 저녁에는 퇴계원에 가서 장모님을 뵙고 오후에 미리 와 있던 아내를 태우고 돌아왔다. 오늘이 주말인데도 새벽부터 바삐 다니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고 풋살대회에 나갔던 아들은 예선을 통과하여 내일 또 출전을 한다고 의욕이 남아있다.
11일 오늘 서울 하프마라톤 출전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어제에 이어 풋살을 가는 아들을 서대문구청에 내려주고 돌아와 식사를 마친 뒤 시청광장에 나갔다. 미처 참가신청을 못하여 현장에서 접수를 하고 출발을 했는데 아름다운 청계천을 따라 달리는 서울시내의 코스라서 참가한 주자들이 많다. 나로서는 10월 25일 풀코스를 대비하여 달리는 것으로 평소 20킬로 이상 연습을 했기 때문에 오늘 하프마라톤은 전혀 부담이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8시에 청계천을 달리다가 마장동 축산시장 아래로 내려가 한양대 주변을 통과하고 한강변으로 나가서 한남대교를 돌아 성수동 서울숲에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멈추지 않고 잘 달리기는 했는데 처음가는 코스라서 그런가 힘이 들었고 기록보다 14분이나 뒤진 1시간 59분에 골인을 했다. 보름 후 풀코스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배가 고파서 왕십리 설렁탕 단골집으로 택시로 갔다가 점심을 먹고 집으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풋살을 마친 아들은 준결승에서 탈락하여 공동 3위를 했다며 아쉬워하기에 뭐든지 아들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명심하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일렀다. 논술교실에 수업하러 올라가는 아내를 보내고 21킬로를 달린 피곤함으로 누워서 저녁을 보내다가 잠이 들었다.
12일 어제 마라톤을 하고 일찍 누웠다가 아침까지 자고 일어났더니 정상 컨디션이 돌아왔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면서 오늘 월요일이니 힘내고 뭐든지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했다. 집으로 왔다가 엊그제 점검한 누수공사를 시작하는 날이라 10시에 신설동에 갔더니 공사가 벌써 진행되고 있다. 누수공사는 생각보다 복잡하여 오늘 시멘트 공사를 하고 내일 2차 공사를 한다고 해서 추가비용 80만원을 일단 송금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영식이 전화가 와서 중학교 동창이 중국에서 큰 사업을 하는데 구체적인 목적은 모르고 초청을 받아 내일 4시에 출국한다고 알린다. 바람이 부는 오후에 학원으로 들어가 수업을 하고 저녁에 영식이를 만났더니 초청하는 친구는 대기업 회장 최태원과 가깝고 SK의 모든 자금을 조절하는 김원홍(SK 해외자금 문제로 최태원과 함께 구속. 2018년 현재 수감 중)이라 하고 자신은 40일 일정으로 상해에 머문다고 한다. 밤 10시에 대치동 마원장을 만나 이전한 학원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는 그에게 노량진이든 대치동이든 학원도 일종의 사업이라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고 했다. 마원장은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을 믿고 금방 무엇이든 될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하지만 조건이나 환경이 좋아도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3일 어제 늦게 와서 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신설동 공사현장에 나갔다. 오전에 오늘 상해로 떠나는 영식이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기로 해서 새벽부터 움직였는데 그의 부인이 공항에 동행한다고 하여 여유가 생겼다. 상해 푸동에 있다는 김원홍 친구는 미국에서 하버드대학을 나오고 어마어마한 재력가에 대기업을 움직이는 정도이니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고 또한 학창시절에 반듯한 영식이를 성공한 친구가 도움을 준다니 결과야 어떨지 모르지만 부럽기도 하다. 낮에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 점심으로 먹은 간장게장은 맛도 없으면서 가격만 비싸 불만이었고 동창들 모임에 대하여 앞으로의 대책을 의논했다. 10월 중순의 거리는 누런 은행잎이 장식했고 인왕산이나 안산의 붉은 단풍은 보는 그대로 물감을 뿌려놓은 듯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화려한 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푸른 여름이 지나고 지금의 시간은 오늘을 살아가는 50대들의 삶 같기도 하다. 저녁에 친구들 전화가 많이 왔고 낮의 화려함과 반대로 어둠이 내리면서는 천둥이 치고 비가 요란하게 내려 정신없는 가을 밤이 되었다.
14일 아침에 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머리도 식히고 정신도 다스릴 겸 홍제천으로 나갔다. 9시30분에 출발하여 1시간을 달려가니 어김없이 양화대교 근처에 도착했고 돌아서 달려오는 중에는 한강에 투신한 50대 남자의 시신을 성산대교 아래에서 보게 되었다. 이제 막 물속에서 끌어올린 상태라 정면에서 마주했는데 세상을 등진 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고 내 나이와 비슷해서 연민이 더 했다. 2시간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하려니 오늘은 어인일인지 의욕이 생기지 않아 일찍 나왔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신설동에 가서 누수공사를 확인하니 공사가 완결되어 인쇄소로 이동하여 투병기 책자를 마무리 했다. 페이지를 만들고 사진을 정렬하며 일을 도왔는데 젊은 사장은 빠르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하여 타고난 솜씨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저녁에 학원으로 들어가 시험을 마친 수강생들에게 맥도날드 햄버거를 주문해 주고 영어 수학에 이어 마지막 수업을 하고 마쳤다. 9시에 집으로 오면서 밖에서 놀고 있다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오늘은 유독 염려스러운 마음이 많이 생겼다.
15일 오늘 최저 기온이 11도까지 내려갔으니 일찍 일어난 새벽이 쌀쌀하다. 며칠 전만 해도 더워서 짜증이 났고 찬바람이 그립더니 이제는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아침식사로 청국장이 식탁에 올랐고 어제 아파트 단지에서 놀았다는 아들이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나간다. 나에게 학교 음악부원들과 놀고 있다고 어제 말한 아들이었는데 아내가 목격했다는 내용과 달라 아침에 한 마디 하려던 참이었다. 인사동에서 모임이 있다는 아내가 외출을 하고 나는 동대문 수도사업소에 가서 신설동 누수금액 부분을 처리하고 돌아왔다. 누수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고 담당 공무원이 대충 금액을 줄여서 불러주는 대로 납부를 했으니 우리나라의 행정이 아직도 이런 수준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한성대 근처에 있는 인쇄소에 가서 책자의 순서와 사진 등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오늘은 표지의 색깔까지 정했다. 몇 번을 봐도 실증나지 않았지만 다만 노력한 정도에 비하여 부족하고 어머니에 대한 죄송스런 내용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밤 8시에 집에 들어왔고 영식이는 자기도 강남에서 부유하게 사는 편인데 상해에 와서 본 친구의 생활에는 입을 다물 수 없다고 문자가 왔다. 상해에서 푸동은 세계적인 갑부들만이 사는 곳으로 친구 집도 구경하는 시간만 30분이 걸리고 비서와 보좌관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 회사도 아닌 집에서 식사하는 인원만 20명이라고 놀라움을 전했다.
16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새벽에 추웠으니 얼마 전 더울 때와 비교하면 완전 딴 세상이다. 보일러도 켜지 않은 방에 공기마저 차가우니 어쩔 수가 없고 여러 번 자다 깨다 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금년에 수확한 햅쌀로 아침 식사를 하고 3교시 수업 후 축제 리허설을 한다며 빅보이 복장을 하고 나가는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갔다. 취미나 재미로 한다지만 모범생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차림새의 아들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었다. 체육관으로 곧장 가서 12시까지 운동을 하고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사 가지고 들어와 아내와 김치찌개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 논술교실에 오르는 아내를 보내고 신설동에 가서 임대 현수막을 옥상에서 아래로 걸고 학원으로 이동하여 수업을 하며 보냈다. 마원장은 어려운 중에 9월분 수익금을 보내 약속을 지켰고 상해에 있는 영식이는 현지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지 갈등이 생긴다고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 조건이 좋아도 자신과 일이 맞아야 하고 또한 국내에서 추진하는 일들을 제쳐두고 상해에 머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밤비가 내리고 지하철로 집에 도착하여 마라톤 출전을 염두하고 절제된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17일 주말 아침이 상쾌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가려는데 오늘 학교에서 공연(보컬싱어)을 한다고 이제는 나의 구두를 준비한다. 갈수록 황당한 상황으로 공연 의상이 검정 색이라 흰 운동화보다 구두가 좋다고 하여 말을 못했지만 결국 발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구두는 신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딸을 학교에 보내고 점심을 준비하여 지하철을 타고 구의동으로 와서 오늘은 고구려의 전설이 있는 아차산을 올랐다. 우리가 결혼한 어린이대공원 후문을 나서 고구려정과 대성암을 지나니 눈 아래 한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보이고 30여분을 더 올라 정상에 있는 온달장군 옆에 섰다. 고향에서는 회장과 총무의 갈등으로 실망한 친구들이 나를 주축으로 새롭게 시작하자고 연거푸 문자가 많이 왔다. 산에서 내려와 가까운 장안동에 가서 정식이를 만났고 술을 마시고 택시로 나오면서는 기사와 말다툼을 하고 집에 와서는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는데 내 심성도 적지 않게 까칠하다.
18일 거실에서 자는데 새벽에 아내가 깨운다. 어제 늦게 들어온 내가 정신을 잃은 모습으로 우왕좌왕하고 횡설수설 했더니 아침에 나를 보는 표정이 어둡고 아들과 딸도 겁을 먹은 사람처럼 말이 없다. 일요일이라 이른 시간 아내는 논술수업으로 교실에 올라가고 축구하다가 오후에 학원으로 간다는 아들은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나도 마라톤을 하기 위해 간편하게 준비하고 먼저 안산에 올라 1시간을 걷다가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 홍제천에 섰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처음에 빠른 속도로 모래네 근처까지 달리고 자전거를 대여하여 성산대교 아래에서 일단 점심으로 컵라면을 사 먹었다.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한강 분수대에서 뿜어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의 모습이 살아있는 한 폭의 수채화와 다르지 않았다.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 옥수역 부근까지 쌩쌩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심하게 바람이 불어 힘이 들었고 자전거는 4시경 반납을 했다. 마라톤 연습을 이유로 산행과 자전거까지 긴 시간을 보낸 주말, 집으로 오면서 홍제역 부근에서 튀김을 사 가지고 들어와 딸과 함께 먹었다.
19일 어제 운동을 과하게 했는지 제대로 잠을 못 잤고 새벽에는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며 비가 내리는 요란한 날씨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서 몇 시간 전과는 딴판으로 잠잠해졌고 이내 해까지 떠서 오늘은 두 얼굴의 아침을 보게 되었다. 학교를 가는 아들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딸이 먼저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자신의 차례라고 외쳐대는 아들 때문에 집안이 어수선해졌다. 밥도 거른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가면서 뒷좌석을 돌아보니 배는 고픈지 엄마가 만들어 준 주먹밥을 정신없이 먹고 있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주고 체육관으로 갔다가 운동을 하고 집에 왔더니 학교에서 체력검사를 마쳤다는 딸이 돌아와 있다. 당연 키와 몸무게를 물었더니 한사코 모른다고 일관하여 어쩔 수 없었고 함께 점심을 먹은 뒤에 나부터 학원으로 나갔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거리에 은행나무가 누렇게 물들어 가고 이따금 흩날리는 낙엽은 10월의 중순을 아름다움의 극치로 만들어 놓았다. 하늘만 보아도 저절로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저녁이 되면서는 쌀쌀해져 오늘은 새벽부터 날씨와 기온의 변화가 심한 날이다. 수업을 하고 나오면서 날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힘이 들어도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고 돌아온 집은 아들과 딸이 잠을 자는지 괴괴하다. 아내의 말인즉 이번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아들의 평균점수가 80점도 되지 않아 울상이라고 하고 듣는 나도 심난하기만 했다.
20일 성적이 좋지 않은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밤을 보내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조선일보 마라톤은 D-6일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오늘 마지막으로 장거리를 달리고 내일부터는 거리를 줄여가며 컨디션 조절을 해야겠다. 식사 후 일단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바로 홍제천으로 이동하여 준비운동을 하고 마포대교를 돌아오는 왕복 22킬로 2시간 이상을 달렸다. 홍제천 길이가 6킬로가 되고 성산대교부터 마포대교까지가 정확하게 5킬로가 되는데 초반에는 까마득하다가도 돌아올 때는 힘이 생기고 그러다가 서대문구청을 지나서는 완전 단거리 선수로 들어온다. 다가오는 일요일에 반드시 완주한다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김치찌개를 만들어 점심을 먹고 대치동에 가서 마원장을 만났더니 건물이 매매가 되어 다시 학원을 옮겨야 한다며 고민을 하고 있다. 성격이 나쁜 사람들은 시설비나 이전비를 요구하며 배짱으로 버티고 투쟁할 것이지만 마원장처럼 선한 사람들은 압박을 피하지 못한다. 저녁에 신설동 3층에 가서 숙식을 하는 나이든 세입자와 임대료 문제로 오늘도 옥신각신 하다가 돌아왔는데 나도 매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
21일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맞이했고 7시가 지나서는 등교를 준비하는 아들을 보다가 7시30분에 식사를 함께 했다. 아들과 학교에 가면서 중간고사가 엉망이라는 내용을 강조하려고 돌아오는 2학기 기말고사는 잘 보아야 한다고 여러 번 언급을 했는데 단순한 아들은 멀뚱멀뚱 하다가 코만 훌쩍거리고 학교에 이르니 내리기에 급급하다. 학교 성적에 대하여 일일이 지적할 수도 그렇다고 날마다 따라다니며 지도할 수도 없으니 아들을 교육하는 일은 역시 쉽지가 않다. 홍제천으로 이동하여 월드컵 공원을 돌아오는 1시간 달리기를 마쳤고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더 했더니 12시30분이다. 체육관 1층 마트에서 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와 찌개를 만들어 혼자 점심을 먹었고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 많이 남겨두었다. 정환이 동생이 학원을 이전한다고 하여 상황도 보고 위치나 조건 임대료 등을 감안하여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려고 오후에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중랑구 묵동에 갔다. 몇 시간을 보내면서 아파트가 많은 사거리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2층을 지정해주고 학원으로 돌아와 저녁 수업을 마쳤다. 10시경 놀다가 들어오는 아들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는데 중간고사도 엉망인데 오늘은 무엇을 하고 이제 오는지 갑자기 불만이 생겼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지 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얼렁뚱땅 나가기에 화를 냈더니 밤이 편하지 않았다.
22일 어제 늦게 칼국수를 먹어서 그런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몽롱한 채로 아침을 맞이했고 아들과 학교도 동행하지 못했다. 오전에 퇴계원에 간다는 아내를 보내고 컴퓨터 앞에서 조선일보 마라톤 출사표를 작성하여 마감이 임박한 시간에 메일로 전송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힘들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 출판사 측의 배려로 마지막에 접수를 하게 된 것이다. 11시에 마라톤 연습을 나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신설동 2층에서 1층 화장실 부근으로 물이 떨어진다는 전화가 왔다. 급히 나가서 2층에 올랐더니 역시 물을 틀어 놓은 상태였고 하지만 물이 어떤 과정으로 1층으로 흘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청량리에 가서 며칠 전에 구입했던 25일 마라톤 춘천행 새벽 열차표를 가족과 하루 전에 가기로 해서 반납을 했다. 마라톤이 열리는 당일 새벽에 출발하는 것보다 미리 도착하여 코스도 답사하고 다음 날 부담없이 달리는 것이 좋을 듯 해서다. 신설동 3층은 오늘도 임대료 연기를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고 1층 동신필름 사장도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학원으로 가서 내일 자연농원으로 소풍을 가는 학생들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TV에서 한국시리즈 야구경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논술을 마친 아내가 10시에 돌아와 피곤한지 식사도 거르고 더 늦게는 코를 훌쩍거리는 새까만 아들이 인상을 쓰며 들어왔다.
23일 조선일보 마라톤 이틀 전으로 오늘도 마무리 연습을 하려고 일단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곧장 홍제천으로 나갔다. 40분 6킬로를 달렸다가 중간에서 자전거를 대여하여 성산대교에서 북쪽 가양대교와 행주산성 방향 북쪽으로 질주를 했다. 한강은 가는 곳마다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운동이나 휴식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는데 나이가 들면 이 곳에 나와 산책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행주산성 아래에서 숨을 고르다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20분을 달려서 출발점에 다다르니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점심을 하고 임대료를 계속 연체하는 신설동 3층을 강제로 내보내기 위해 임대 현수막을 외부에 걸었더니 다음 주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결산을 하든 아니면 사무실을 나가든 선택을 하겠지만 무능력하고 신용도 없는 이런 세입자와는 하루라도 함께 하고 싶지가 않다. 인쇄소에서 책자가 나오는 날이라 갔더니 드디어 580일의 요약집이 완성되었고 어머님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생겼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전달하려고 우선 30권을 받아 집에 돌아왔다. 내일은 마라톤 코스 답사도 하고 며칠 후 생일을 맞이하는 아내에게 의암호 구경도 시키려는 목적으로 가족이 춘천에 가기로 한 날이다.
24일 마라톤 출전과 다음 주 화요일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는 여행을 한다고 김밥까지 만들어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다. 공연연습을 한다는 아들은 못 가고 대신에 퇴계원에 계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아름다운 경춘고속도로를 달렸다. 낮에 구경하며 함께 보내다가 저녁에 가족들이 기차로 서울로 가면 나만 춘천에 남아 내일 마라톤을 완주하고 내려가면 된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어제 받아온 어머니 책자를 아내와 아들 딸에게 각각 주면서 오래 간직해 달라고 했더니 이런 과정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놀란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까지 모두 떠나고 허망한 마음에 그리움과 원망이 쌓였는데 나만이라도 아들 딸을 비롯하여 후손들에게 삶의 발자취를 남겨 놓고 싶은 것이다. 춘천에 도착하여 우선 내일 달릴 코스를 따라 의암댐으로 들어섰다가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감상하고 고려의 충신 신숭겸 무덤과 방동리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했다. 박사마을을 경유하여 춘천댐에 올랐다가 중도 선착장에 와서는 10여분 배를 타고 유원지 섬에 들어가니 아담하고 깨끗한 또 다른 세상이다.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고 아내와 딸을 번갈아 가며 자전거에 태우고 섬 안을 돌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완연한 가을의 정취와 함께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일 출발하는 송암 스포츠타운을 지나 시내에서 닭갈비로 저녁을 먹고 남춘천 역에 가족을 내려준 뒤 효자동 찜질방에 들어가 TV를 시청하다 잠이 들었다.
25일 춘천 자수정 찜질방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오늘 풀코스를 달리는 주자들이 전국에서 올라와 나처럼 밤을 보낼 것이다. 생각보다 잠을 잘 자고 일찍 송암스포츠 운동장에 도착하여 닭꼬치로 요기를 하고 다리에 물파스도 바르고 테이프도 붙이고 준비운동까지 하며 긴 거리를 준비했다. 일찍 자리를 잡은 음식점이나 스포츠용품 판매처는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 날을 방불케 했고 9시가 지나자 주자들이 구름처럼 밀려와 출발지를 가득 메웠다. 청명한 날씨와 붉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워 오래 기억될 춘천대회라고 여기며 완주를 다짐하는 사이에 국제선수들이 먼저 나서고 이후 A그룹부터 N그룹까지 차례로 출발선을 떠났다. D그룹의 나도 여러 주자들과 춘천 마라톤에 돌입하여 아름다운 의암호에 섰고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거쳐 서상리 3층탑까지 쉬지 않고 21킬로 절반을 달렸더니 2시간이 지났다. 긴 언덕을 올라 춘천댐 24킬로 지점에 이르니 정식이 고향이라고 30년 전에 왔던 동춘매운탕 집이 아직도 자리를 하고 있어 반가움이 생겼다. 3시간을 달린 31킬로 춘천시내로 들어서면서 지루하고 지치고 힘이 들었지만 작년 임진각 마라톤보다는 정신이 온전하여 자세를 유지하고 달릴 수 있었다. 35킬로 소양대교를 건널 때는 발목이 아프고 배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 급격히 속도가 떨어졌고 38킬로 공지천을 돌아 출발한 42.195킬로 송암스포츠타운에 4시간33분이 지나 들어왔다. 후련함과 완주의 기쁨을 만끽하고 메달을 목에 걸었더니 지난 시간의 고통과 어려움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고 아직도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순간이었다. 춘천을 출발하여 가평 청평을 거쳐 8시에 서울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26일 잘 자고 눈을 떴는데 몸이 아프고 무겁다. 7시50분에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갔다가 돌아와 식사를 마친 뒤에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엊그제부터 마라톤이 끝나면 무엇을 할까 생각했는데 완주한 정신력으로 이제는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했다. 집에서 나가는 중에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선배하고 산에 갔다가 점심을 먹는다고 하고 학원 근처 우체국에 도착해서는 조카 효정이한테 어머니 기록 책자를 보냈다. 조카들이 자라면 나를 알 수 있을 것이고 훗날 저승에서 형을 만난다면 열심히 형의 몫까지 살다가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0월의 하순 마지막 월요일을 보내면서 학원 창밖을 바라보니 물이 흐르듯 가을이 저만큼 가고 있다. 밤에 우현이 전화가 와서 영등포 문래동에서 저녁을 먹었고 마라톤 이야기에 친구도 다음에는 참가하겠다며 의욕을 보인다.
27일 마라톤을 한다고 10여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다가 어제 우현이와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마셨는데 금방취하여 횡설수설하다가 12시에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아침에 눈을 뜨니 7시가 되었고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라 제과점에 나가 어제 딸이 시킨 대로 케익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내 생일 때와는 달리 오늘은 입을 꾹 다물고 목소리는 커녕 눈도 뜨지 않고 앉아 있는 아들 대신에 나와 딸이 열심히 노래를 불러 생일을 축하했다.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갔다가 여름에 만났을 때 어머니 기록집을 약속한 담임에게 책자를 전하라고 건네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체육관에 가서 오후 1시까지 운동을 하고 근처 우체국에 가서 여동생과 우현이에게 책자를 보냈고 특히 여동생에게는 임종 직전에 벚꽃이 만발한 요양원에서 찍은 어머니 사진을 10여장 동봉하여 보냈다. 점심으로 아내와 생일 미역국을 먹었고 오후에 학원에 가서는 어머니 책자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많이 울컥하기도 했다. 아들 담임한테도 감동이라고 문자가 왔고 저녁에는 정식이 만나 책자를 전달하며 식사를 하고 새벽 1시에 왔더니 아내는 호성이 집에서 놀다가 나보다 더 늦게 돌아왔다.
28일 아침에 청국장으로 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우체국에 가서 청주 류승철과 동렬이에게 책자를 발송했다. 이어 홍제천으로 이동하여 5킬로를 달리고 자전거를 대여하여 성산대교와 행주산성까지 2시간을 다녔다. 누렇게 물든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에 한강을 누비는 지금이 좋기는 해도 마라톤도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집념을 발휘하여 엊그제 다짐한 대로 돈이 되는 시간을 만들어 갈 것이다. 1시에 집으로 들어가 딸과 함께 점심을 먹었고 학원에 가면서는 떨어지는 낙엽에 한 해가 저무는 쓸쓸함도 생겼다. 교무실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신설동에 가서 임대료 문제를 논의하고 수업을 하려고 다시 돌아왔는데 영어선생이 연속으로 한다기에 집으로 일찍 돌아왔다. 낮부터 몸이 춥고 컨디션이 나쁘더니 감기가 오는 것 같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코막힘과 목감기가 심해지는 양상이다. 요즘 신종인플루 때문에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데 내가 감기에 걸리다니 아무튼 잘 이겨내야 할 것같다.
29일 새벽에 코가 막히고 목소리는 완전 딴사람이 되었다. 오늘 고향에 논농사 건으로 상희 형을 만나야 해서 내려가야 한다. 컨디션이 최악이라 내키지 않았는데 선약을 해 두어 오후라도 가기로 했다. 일단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 동네의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도 거부하고 나와 12시에 점심을 먹고 혼미한 정신으로 용산역에 가서 고향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병원에서 약을 거부하여 엉뚱했지만 태어나서 죽을 고비를 넘겼어도 성장하면서는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 약을 먹은 기억은 많지가 않다. 집에서도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고 약을 먹어야 한다는 아내와 가급적 약을 멀리 하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내 입장과 언제나 상반된 생각이다. 김제까지는 3시간이 걸려 지루했지만 그나마 등산복 차림으로 나섰던 것이 여행하는 기분이라 위안이 되었다. 고향에 도착하여 반가운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셨고 감기환자로서 스스로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찜질방에서는 밤에 열이 나고 고생을 하다가 새벽 3시가 되어 겨우 잠이 들었는데 차라리 내려오지 않고 서울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뿐이었고 집을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30일 새벽 5시에 일어났고 몸도 아프고 공기가 탁하여 밖으로 나왔더니 시골의 서늘한 공기가 상쾌했다. 엊그제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던 사람의 자존심과 자신감으로 가로수 길을 걷고 달리며 컨디션 조절을 했고 날이 밝으면서 부지런한 농부도 만났다. 가는 곳마다 붉은 단풍은 가을의 절정을 말하고 있고 낙엽이 쌓인 거리에는 이슬이 내려 안개와 더불어 회색의 고향을 만들어 놓았다. 시래기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어머니 산소에 갔더니 추석에 벌초를 해서 잘 정리된 모습이었고 적막함 속에 무덤만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을로 돌아와 우리의 논과 반포 형수가 가진 논을 동시에 경작하는 선배를 만나 내년 계획을 이야기했고 특히 반포 형수네는 논이 2필 2400평이니 20킬로 쌀 60개를 매년 주는 걸로 합의했다. 점심을 먹고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감기로 여전히 피곤했고 터미널에서 학원으로 갔다가 수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김장을 한다고 청주에 내려가 있고 내일은 내가 가서 김치를 싣고 와야하는 일정이지만 오늘 저녁은 아들과 딸에게 식사부터 준비하여 주었다.
31일 밤새 기침을 하며 보냈더니 여전히 피곤하다. 비가 오려는지 날씨는 잔뜩 흐리고 청주에서는 김장김치를 가지러 오라고 아내의 전화가 연속으로 오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침이 오면서 비가 쏟아지고 밥을 먹인 아들을 태우고 학교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오전을 보냈다. 김치를 가지러 가야 된다고 생각만 하고 궁싯거리는데 청주를 출발하여 서울로 온다는 아내의 전화가 왔다. 점심 때 도착한 아내는 배추 70포기를 김장했다며 피곤한 기색이고 우리 김치는 내가 내려가지 않아 택배로 보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점심을 먹고 신설동으로 가서 임대료 문제를 이야기하고 학원으로 가는 중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낮이 밤처럼 어두워졌다. 수업을 마치고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10월의 마지막 날 집으로 오는 중에 보쌈용 돼지고기를 사 왔는데 준비가 늦어 짜증이 났다. 낮에 라면으로 점심을 먹어 배가 고프다고 여러 번 말을 했는데 아랑곳하지 않아 방으로 들어가 배고프고 우울한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내일 11월은 찬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고 하순이 되면 첫 눈도 내릴 것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새롭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