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계란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
계란값 폭락했지만…소비자 ‘한숨’ 그대로
춘천 퇴계동에 사는 주부 박소라(36) 씨는 지난 8일 오후 집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다가 계란 진열대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박씨는 공지된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고 30개들이 대란 한 판을 손에 들었다. 그러나 쉬이 가시지 않는 불안감에 계란을 다시 내려놨다.
박씨가 읽었던 안내문은 대형마트 계란 납품 농장 현황을 나열한 것으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한 식용란 안전성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 목록이다. 대형마트 측은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안내문을 내걸었지만 고객 몰이에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내 첫 ‘살충제 계란’ 사례가 등장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에그포비아(Eggphobia-계란공포증)’ 현상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달 20일 축산기술연구소와 가금연구소, 일반농가를 포함한 47곳의 적합성 검사를 완료했다. 이 중 철원의 지현농장(09지현)과 서산농장(08LNB)을 제외한 45곳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4일 부산에서 유통되던 계란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살충제 성분이 나와 또다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도는 15일까지 도내 시장 30곳, 식용란 수집판매업체 3곳 등 총 33곳의 계란을 수거해 검사할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끝나지 않는 ‘살충제 계란’의 공포로 계란 판매량이 곤두박질치자 대형마트들은 줄줄이 계란값을 인하하고 있다. 춘천시내 대형마트 3사는 지난달 23일 1차 인하에 나섰다. 이마트는 30개들이 대란 기준 6천980원이었던 소비자가를 6천480원으로 내려 판매했다. 같은 원가로 팔았던 롯데마트 역시 600원 내린 6천380원에 판매했다. 홈플러스는 7천990원에서 6천980원으로 할인해 팔고 있다. 그러나 매출 감소는 여전했고, 27일 2차 인하에 돌입했다. 각각 500원, 400원, 1천원을 내려 모두 5천원대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7일부터는 한시적 할인행사 형식으로 가격을 또 인하해 5천원 초·중반대의 가격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6일까지의 계란 매출 상황을 보면 이마트는 전년 대비 13.2%, 롯데마트는 13.5% 감소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 직후인 지난달 17~23일 매출이 각각 31.2%, 36.0% 곤두박질쳤던 것에 비하면 많이 좁혀진 수치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얻진 못했다.
“살충제 성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정부가 실시한 안전성 검사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계란을 쉽사리 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살충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신철경(51·주부) 씨는 “검증됐다고는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며 “검증할 때도 모든 계란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없었을 테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 장을 보러 나왔다는 주부 김진희(39) 씨는 “어린 아이가 셋이라 계란을 안 먹을 수 없다”면서도 “예전엔 30개들이 한 판을 사두고 먹었지만 요즘은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마음에 10개들이로만 산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살충제 계란 소식을 들었을 때 허겁지겁 집에 있던 계란을 다 버린 적 있다”며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조바심에 대량으로 사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의 보여주기식 할인? 일부러 안 사”
대형마트가 위축된 소비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일제히 계란값 인하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너무 비싸다”는 소비자들도 있다. 김진형(62) 씨는 “원래 가격보다는 싸졌지만, 산지 가격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인 것으로 안다”며 “이때다 싶어 친환경 브랜드 달걀이 눈에 띄는데 그 가격은 손도 못 댈 정도”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의 계속된 가격 인하가 오히려 의심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평화(44·주부) 씨는 “그동안 얼마나 비싸게 팔아온 건가 하는 생각에 일부러 안 산다”며 “창고에 오래 보관하던 달걀을 싼값에 푼 게 아닌지 의심까지 든다”고 밝혔다.
대형마트 판매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계란값 하락세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 살충제 계란에 대한 불신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 매출 현황이 반등의 기미를 보인다는 것이 이유다. 글·사진=문지연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