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개업
최 장 순
(왼쪽이 2012년 9월의 제 모습. 오른쪽은 U3A '아름다운 인생학교'를 운영하는 백만기 선생)
“머리가 좀 빠지긴 했지만 보기 싫은 정도는 아닌데요?”
미용실 아가씨는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듯 선뜻 이발 기계를 들지 않고 있었다.
“그냥 해 주세요.”
단호한 내 목소리에 그제야 전동이발기계가 서서히 삭발의 길을 내기 시작했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릴적 집에는 보물처럼 아끼던 이발기계가 있었다. 두 손으로 잡아야 머리를 밀 수 있는 기계. 그 앞에서는 지엄한 할아버지도, 장손인 아버지도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아버지의 손은 거칠었다. 그 손에 머리를 맡기는 날에는 몇 번의 비명은 필수였다. 머리카락을 따갑게 낚아채거나 기계충으로 딱지 앉은 자리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 때문이었다. 눈물을 짜내고 일어서면 내 머리는 골판지 같은 몇 개의 길이 나있었다.
"다 됐습니다."
미용사의 말에 눈을 떴을 때 거울에는 막 삭발식을 마친 스님이 머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낯설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니 조금은 낯익기도 했다. 왜정倭政 때 찍은 빛바랜 사진 속에서 보았던 빡빡머리의 아버지가 거기 앉아 계신 것이 아닌가. 꿈에서도 보이지 않던 아버지였다.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일어섰다.
몇 달 전 의사는 약물부작용은 거의 없을 거라고 했다. 더구나 탈모는 백 명 중 서너 명 정도에서 나타나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켰다. 그런데 하필 그 서너 명 중에 내가 포함되었다니. 조금씩 빠지던 머리카락이 아예 산림을 간벌하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확 밀어버려?’ ‘아니야 서두르다 후회하지’ 듬성해진 머리를 보면서 며칠째 망설였다.
“서두르지 마세요. 좀 더 두고 보다가 천천히 결정하세요.”
아내가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빠질 머리면 지금 밀어버리세요. 요즘 일부러 미는 사람도 있는 걸요. 걱정 마세요. 멋질 거예요.”
어느 지인의 말이었다. ‘멋질 것’ 이라는 말에 내 망설임은 끝났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것도 아닌 일, 외국에 나가있는 애들에게 환하게 웃음까지 섞은 내 모습을 첨부해 메일로 보냈다. 아이들은 즉각 나름의 소감을 보내주었다.
“아빠 멋져요.”
아들은 간단명료했다. 그곳에서는 흔한 스타일이어서인지 거부감이 없었던 모양이다. 녀석이 만약 내 옆에 있었다면 굿! 엄지를 세우고 웃어주었을 것 같다.
“아빠 요즘 많이 아프세요? 힘들어요?”
딸의 반응은 의외였다. 걱정하는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빠, 그 머리에는 동그란 안경이 어울릴 거예요.”
걱정하면서도 딸은 미술학도다운 생각을 보냈다.
“아이고, 최집사님……. 어쩐다요?”
(스위스 여행중 필자)
며칠 후 교회에서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 울먹였다. 중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 모양이었다. 손을 놓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난감했다.
“와! 멋진데요? 얼굴 좋아 뵈는데 건강 괜찮으신 거죠?”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이도 있었다. 그날은 그런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남들의 반응에 너무 민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을 개성 있게 보이려고 일부러 삭발하는 사람도 있고, 군 입대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서 삭발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약물부작용으로 빠지는 머리 모양새가 싫어서 삭발한 것이다. 깨끗하게 밀어버리는 것이 병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깔끔해 보일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외모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하면서도 남들의 시선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머리모양 하나 바뀐 것뿐이었지만 생각지 않은 것들이 따라붙었다. 민머리에 어울리는 패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의 말을 떠올리며 복고풍의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샀다. 차갑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런대로 어울렸다.
바람을 쐴 겸 이틀 후 양평에 만개한 연꽃을 찍으러갔다. 땡볕에서 사진 찍기에 열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머리가 따끔거리기 시작해 급히 그늘에 들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머리는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갛게 익어버렸다. 밤새 찬 물수건 찜질을 해야 하는 호된 신고식을 치르면서 갖추어야 할 것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모자를 구입하고 셔츠와 재킷도 밝은 색으로 장만했다.
안경에, 셔츠에, 재킷까지. 거울속의 내가 그럴듯하다. 마치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된 듯 특유의 액션 포즈까지 잡아보았다. 그러다 멋쩍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브루스 윌리스라니! 배우보다는 괜찮은 작가의 모습으로 더 어울리는걸.”
내 생각을 읽은 아버지가 거울 속에서 빙그레 웃고 계셨다.
머리모양이 바뀌니 패션이 바뀌고 마음도 새로워졌다. 나는 지금 신장개업新裝開業중이다.
<현대수필 2013년 여름호)
첫댓글 쭝긋쭝긋 돋아나는 흰 머리,
그나마 머리숱이라도 풍성하면 좋으련만
성근 데다 흰 머리카락까지...
짜증은 그럴 때 나지만 속절이 없지요.
차라리 확 밀어버려?
가끔 드는 생각입니다.
신장개업을 축하드립니다.
ㅋㅋ~그것도 옆지기의 반대로 개업하지마자 폐업시켰으니...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오우, 멋지신데요. 머리모양이 바뀌니 패션이 바뀌고 마음도 새로워지셨다구요.
다시 까까머리 젊음을 누리시는 것도 같습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선생님, 감동입니다.
감사하신 말씀, 한 때의 고통도 지나면 좋은 추억도 되나 봅니다.
패션이 바뀐다고 까까머리에 아무다 다 어울리겠습니까만 최장순 선생님은 그 게 아닙니다요.
아주 패기가 넘치고 그래서 전혀 환자 같지 않습니다요. 완전히 회복하셔도 '신장개업'을 초지일관 밀고 나가십시오.
분점이 여러 곳에 생길 것입니다. 최장순 선생님, 파,파팅~!^^*
제가 아버지 판박이라는걸 그때 알았습니다. 일제시대 때에 젊으셨던 아버지의 빡빡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