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刻을 세우다
김현주
내 삶의 무늬목에 조각도가 춤을 추면
숲을 감싸 휘어 감던 물소리가 풀어지고
옹이는 섬으로 떠서 불러오는 화폭 하나
전서 예서 옛글 속에 새김질 운필들이
중봉의 끌기법에 울울창창 일어선다
목질은 넓은 품인 양 온 산하를 다 품고
새들이 앉았던가 구름들이 놀았던가
유려한 산정으로 나이테 감는 세월
여백의 진경산수가 새날처럼 돋아난다
무사의 노래
김현주
갑옷도 투구도 없이 전장으로 오는 장수
식당 문 왈칵 열며 "칼 좀 가소 칼 갈아요"
허리춤 걷어올린 채 이미 반쯤 점령했다
무딘 삶도 갈아준다 너스레를 떨면서
은근슬쩍 걸터앉아 서걱서걱 칼을 민다
삼엄한 적군을 겨누듯 눈은 더욱 빛나고
칼끝을 가늠하는 거친 손이 뭉텅해도
날마다 무림 고원 시장 골목 전쟁터에서
비릿한 오늘 하루를 토막 내는 시늉이다
적군이 퇴각하듯 자꾸만 허방 짚는
가장의 두 어깨가 칼집처럼 어둑해도
생의 끈 날을 세우며 바투 겨눈 하늘 한쪽
- 김현주 시조집『눈부신 침묵』 2025. 좋은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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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刻을 세우다 / 무사의 노래 / 김현주
김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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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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