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무인시대 홈페이지 게시판을 둘러보시면 전반적인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제 경대승정권기가 펼쳐지므로 일부 고려시대에 대해 박학다식한 분들께서도 더 자세히 글을 써주실 것으로 보입니다.
경대승에 대해 제가 아는 내에 한에서 써 보겠습니다.
경대승은 청주인으로 그 아버지 경진은 중서시랑평장사 벼슬을 지냈습니다.
경진은 고려 무신정변을 일으킨 정중부의 측근 인물 가운데 하나로, 이의방 정권이 끝나고 정중부 정권이 시작되자 기탁성, 진준, 양숙, 이소응 등과 함께 실세로 등장합니다.
즉 청주경씨 집안은 무신정변을 기점으로 하여 역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셈입니다. 그 이전의 경진은 아마도 다른 무신들처럼 문신들에게 눌려 역사에 정식으로 등장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대승은 기록상으로만 볼때 특이하게도 그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데, 바로 선친인 경진의 동료였던 정중부의 일당들을 모조리 몰아낸 것입니다.
이는 분명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데, 아마도 어느정도 알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버지 경진과는 달리 청렴한 생활을 하여 이후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에게서도 거의 유일하게 무신정권 시대의 반역자에서 제외가 되었습니다.
경대승은 기록상에서 정중부 정권의 실세로 있는 사람들이 전횡을 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허승, 김광립, 손석 등과 함께 정중부 정권을 몰아낸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는 무신정권 자체를 부정하려 했으며 그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신정변을 통해 왕위에 오른 명종을 부정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경대승이 죽고 난 뒤에도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슬피 여겼지만 황실에서는 안심을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경대승은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정치적인 제도를 마련했는데, 바로 도방정치의 등장입니다. 이는 분명 이전 무신정권과는 약간 다른 면을 띄는데 아마도 무신정권을 부정하려고 했던 경대승이 만들어낸 모순인듯 합니다.
이후 경대승은 갑자기 죽었다고 했는데, 이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의 심복 김자격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거나 정중부의 잔당에게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습니다.
경대승은 무신정권에서 반역자로 낙인 찍히지 않은 몇몇 인물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패자에 대해서는 일절 깎아서 기록되는 것이 역사서이기에 우리는 단순히 반역자로 기록된 사람들을 올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무신정변을 실제 주도한 이의방의 경우 고려에서 그토록 천대받던 백제땅에서, 그것도 후백제의 수도였던 전주에서 태어난 인물입니다.
당시 이의방은 견룡행수라는 관직에 있었는데, 이 관직은 높은 길로 출세할 수 있는 직책이었기에 사실 이의방은 단순히 하급무인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먼저 무인으로 출세하였던 부친의 후광을 입었기에 그에게 출세의 길은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무신정변을 주도한 것은, 고려에 대한 원한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과연 그를 단순 반역자로 볼 것인지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무신정변은 고려에서 지역적 차별이 심했던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쓰고 나니 별로 자세히 쓰지는 못했군요. 앞으로 무인시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더 자세한 글들이 올라올 것입니다. 그것들을 참조하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