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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공주
깊은 바닷속은 아름다운 수레 국화의 꽃잎처럼 푸르고, 투명한 유리처럼 맑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어떤 닻줄도 닿을 수 없고, 바닥에서 물 위까지는 수없이 많은 교회종탑을 포개어 쌓아 놓아야 할 정도로 깊었답니다.
그 깊은 곳에 바다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저 흰 모래밭만 있다고 생각해서는안 된답니다.
그래요, 그 곳에는 이상한 나무와 식물들의 줄기와 잎들이 어찌나 유연한지 물살이 조금만 일어도 움직인답니다.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닙니다.
새들이 하늘에서 공기 속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에요.
가장 깊은 곳에는 바다 왕의 궁전이 있습니다.
벽은 산호로 되어 있고, 길고 뾰족한 창문들은 가장 맑은 호박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지붕은 물이 밀려들 때마다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조개 껍질들이랍니다.
모든 조개껍질 속에 빛나는 진주들이 놓여 있는 궁전은 참 굉장해 보인답니다.
아주 조그마한 진주 조각이라 하더라도 왕관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다 왕은 혼자 살고 있답니다.
그의 늙은 어머니가 살림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영리한 부인이었으며, 귀족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녀는 꼬리 위에 열두 개의 굴을 달고 다녔는데, 다른 귀부인들은 여섯 개만 달고 다닐 수 있었답니다.
그것만 빼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요.
그녀는 나이 어린 바다의 공주들을 몹시 사랑했답니다.
여섯 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인데, 그 중에서도 막내가 가장 예쁘답니다.
피부는 장미꽃잎처럼 깨끗하고 맑았으며, 두 눈은 깊은 바다처럼 파랗답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발이 없고 물고기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주들은 바닷속 궁전에서만 살았습니다.
살아 있는 꽃들이 벽에서 자라는 큰 수문에서 하루 종일 놀았습니다.
커다란 호박 창문이 열리면 물고기들이 헤엄쳐 들어온답니다.
우리가 창을 열면 제비가 날아 들어오듯이.
물고기들이 작은 공주에게로 헤엄쳐 오면 공주들은 먹이를 주기도 하고 물고기를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궁전 바깥에는 불길처럼 붉고 검푸른 나무들이 있는 큰 정원이 있었습니다.
과일들은 황금처럼 빛났고, 꽃들은 타고 있는 불길 같았습니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 있었는데, 그 모래는 유황의 불길 같은 푸른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바닷속 공주들은 바람이 잠들면 해님을 보러 나온답니다.
공주들에게는 해님이 자줏빛 꽃처럼 보인답니다.
꽃받침이 모든 것을 뿜어내는 그런 꽃말이에요.
공주들은 정원 안에 자기만의 구역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땅을 파고 식물을 가꿀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공주는 고래 모양으로 만들었고, 다른 공주는 인어 모양의 꽃밭을 만들었지요.
그러나 막내 공주는 꽃밭을 해님처럼 둥글게 만들고, 붉게 빛나는 꽃들을 심었습니다.
막내는 조용하고 신중하며 특별한 공주 였지요.
다른 언니 공주들이 난파한 배에서 주워 온 진기한 물건들로 치장을 해도
그녀는. 저기 위 해님과 닮고, 장미꽃처럼 붉은 꽃들과 오직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만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것은 흰색의 맑은 돌로 조각된 아름다운 소년상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서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온 것이랍니다.
막내 공주는 조각상 옆에 장밋빛처럼 붉은 수양버들을 심었습니다.
수양버들은 근사하게 자라 푸른 모랫바닥을 향해 싱싱한 가지를 뻗었습니다.
조각의 그림자가 바이올렛 빛으로 모래바닥에 비치고 수양버들의 가지들이 흔들흔들 움직이면,
마치 수양버들의 꼭대기와 뿌리가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주는 저 위쪽 인간 세계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할머니는 배와 도시, 인간과 동물 등에 대해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주는 그 중에서 꽃들이 향기를 낸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했답니다.
바닷속 꽃들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숲들이 초록색이라는 것과 나무들 사이에서 고기들이 큰 소리로 근사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 등이 정말 신기했답니다.
할머니가 나무들 사이의 고기라고 부른 것은 작은 새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공주들은 한 번도 새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너희들이 열다섯 살이 되면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나가서 달빛이 비치는 바위 위에 앉아 지나가는 큰 배들을 볼 수 있단다.
그러면 숲들과 도시들도 볼 수가 있지."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큰언니 공주가 제일 먼저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공주들은 꼭 한 살씩의 나이터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내 공주가 인간 세상을 보려면 아직도 5년이나 남았습니다.
공주들은 자기가 본 것을, 그리고 첫날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공주들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할머니가 충분히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공주도 막내 공주만큼 동경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막내 공주는 가장 바다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가장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창가에 서서, 물고기들이 지느러미와 꼬리를 움직이며 이리저리 첨벙거리는 바닷물을 통해 저 위를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주 희미하게 비쳤지만 달과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검은 구름 같은 무엇인가가 그 아래를 스쳐 지나가면 고래이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을 태운 배 일거라 생각했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닷속에서 작고 아름다운 인어공주가 하얀 손을 내밀고 있으리라곤 정말이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가장 큰언니 공주가 열다섯 살이 되어 바다위로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큰언니는 돌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달빛을 받으며 고요한 바닷가의 모래 언덕에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곳에 앉아 수백개의 별 같은 불빛들이 반짝반짝 하는 큰 도시를 바라보는 것,
음악과 마차와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많은 교회 종탑을 바라보면서 종소리를 들었던 것은 잊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막내 공주는 그 곳에 가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 모든 것을 정말 그리워했답니다.
오! 막내 공주는 얼마나 열심히 귀를 기울였는지요.
늦은 저녁 창가에 서서 검푸른 물결을 통해 위를 올려다보면서 떠들썩하게 소리가 울리는 큰 도시를 상상했답니다.
그러면서 교회 종소리가 바다 밑까지 울려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둘째 공주가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을 때였지요.
해가 지는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온 하늘이 황금처럼 보였지요. 그리고 그 구름들! 그래요, 그 아름다운 모습은 도저히 그려 낼 수 없었답니다.
구름은 붉은색과 바이올렛 빛을 띠고서 그녀의 머리 위로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리고 길고 하얀 면사포처럼 한 떼의 들오리들이 해가 떠 있는 물 위를 향해
구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그녀는 해를 향해 헤엄쳐 갔습니다.
그러나 해는 곧 가라앉고 바다 표면과 구름 위의 장밋빛 홍조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셋째 공주가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자매들 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바다로 흘러드는 넓은 강을 따라 헤엄쳐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포도 넝쿨이 우거진 찬란한 초록 언덕과 찬란한 숲들 사이로 성을
보았습니다.
또한 공주는 새들이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햇볕이 어찌나 따뜻하게 비치는지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물 속으로 들락날락 해야만 했지요.
바닷가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발가벗은 채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뛰놀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놀라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때 작고 검은 동물이 다가왔습니다. 개였어요.
어찌나 심하게 짖어 대는지 공주는 무서워서 얼른 바닷속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결코 그 찬란한 숲들과 초록의 언덕을, 그리고 물고기 꼬리가없이도 물 속에서 헤엄을 치던 그 귀여운 아이들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넷째 공주는 그리 호기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바다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었지요.
그리고 그곳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고, 그 위로 하늘이 유리로 만든 종처럼 펼쳐져 있다고 했습니다.
또 배들도 보았지요. 멀리서 지나가는 배들은 갈매기처럼 보였답니다.
돌고래들은 즐겁게 재주를 넘고, 큰 고래들은 콧구멍으로 물을 뿜었습니다. 마치 수백 개의 분수가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다섯째 언니의 차례가 왔답니다.
마침 그 공주의 생일은 겨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공주들이 못 본 것을 볼 수 있었답니다.
바다는 완전히 초록색처럼 보였습니다.
큰 빙산들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빙산들은 마치 진주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지은 교회 종탑보다 컸으며 아주 근사한 모양을 하고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가장 큰 빙산 위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저녁 때가 되자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답니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습니다.
파도가 몹시 일어 커다란 빙산 조각들이 붉은 번개 불빛 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배들도 돛을 걷어올렸습니다.
모든 것이 무섭게 보였지만 공주는 떠다니는 빙산 위에 조용히 앉아 푸른 번개 불빛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바다로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공주들은 너나없이 바다 위로 올라갔다 오기만 하면 그들이 본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자랑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지었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대로 바다 위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해 곧 무관심해졌습니다.
그리고는 바닷속 우리 집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섯 공주는, 서로 손을 잡고 열을 지어 물위로 오른답니다.
인어 공주는 그 어떤 인간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요.
폭풍우가 올 때면 그들은 배 가까이 다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지요.
폭풍이 몰아친다는 것을 선원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은 인어공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답니다.
오히려 인어 공주들의 노래를 들으면 폭풍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선원들은 바닷속의 장관을 보지 못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 모두 죽은 시체로 궁전에 오니까요.
언니들이 물을 헤치고 높이 올라가고 나면 막내 공주는 혼자 남아 언니들의 뒤를 바라본답니다.
그럴 때마다 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에게는 눈물이 없었습니다.
"아, 나도 빨리 열다섯 살이 되었으면......"
막내 공주는 말했어요.
"그러면 정말 저 위 세상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텐데."
시간이 흘러 마침내 막내 공주는 열다섯 살이 되었답니다.
"자, 봐라. 너도 이제 다 자랐다."
할머니는 말했어요.
"이리 와라. 다른 언니들처럼 너도 치장을 해야지."
할머니는 흰 백합 화환을 만들어 막내 공주의 머리에 씌워 주었습니다.
그 화환의 꽃잎 하나하나는 진주였답니다.
할머니는 또 여덟 개의 큰 굴을 공주의 긴 옷자락에 달아 주었습니다.
"아파요!"
"그렇지만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참아야 한단다."
오, 공주는 차라리 이 온갖 치장들을 떨쳐 버리고 무거운 화환도 벗어 버리고 싶었답니다.
정원에 핀 붉은 꽃들이 훨씬 더 어울릴 거예요. 하지만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답니다.
"안녕!"
마침내 막내 공주는 꿈에 그리던 바깥 세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공주가 바다 위에 닿았을 때 막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노을빛에 물든 구름들이 장미꽃처럼 붉게 반짝였습니다.
그리고 저녁 별들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고, 공기는 신선했으며, 바다는 아주 평온했답니다.
바다 위에는 세 개의 돛대를 가진 큰 배가 떠 있었습니다.
돛 한 개만이 감아 올려져 있었습니다.
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했습니다.
활대 위에는 선원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배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수백 개의 화려한 등불이 켜 있었습니다.
그 등불들은 마치 온 나라의 국기들이 공중에서 펄럭이고 있는 것 같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선실의 창문까지 헤엄쳐 갔습니다.
공주는 일렁이는 물살을 타고서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창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크고 검은 두 눈을 가진 젊은 왕자도 있었답니다.
왕자는 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지요.
왕자는 틀림없이 열여섯살 이상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오늘은 바로 왕자의 생일날이랍니다.
그래서 배안이 화려한 것이었습니다.
선원들은 갑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공중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불꽃은 바다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깜짝 놀라 물 속으로 몸을 숨겼어요.
그러나 곧 다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때 하늘의 별들이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번쩍이며 튀는 불꽃은 화려한 불꽃 물고기들이 되어 푸른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맑고 조용한 바다를 비추고 있었지요.
왕자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왕자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갔습니다.
그러나 인어 공주는 아름다운 왕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화려한 등불은 모두 꺼지고 불꽃도 더 이상 공중으로 날아오르지 않았습니다.
대포 소리도 멎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가만히 배를 바라다 보고 있었답니다.
돛이 활짝 펼쳐지면서 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점점 파도가 높아지더니 큰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번개도 쳤습니다. 곧 폭풍이 올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은 재빨리 돛을 접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파도 때문에 그 큰 배가 거친 바다 위를 마치 날아가듯이 항해하면서 이리저리 그네를 탔습니다.
파도는 배를 휘감으려는 듯이 크고 검은 산처럼 솟아올랐습니다.
배는 백조처럼 높은 파도 사이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치솟으면서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모습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렇지가 않답니다.
탁탁 소리를 내며 선체가 툭툭 부러지기 시작했지요.
두꺼운 배의 선판이 강한 충격에 휘어지면서 물이 배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어요.
순간 돛대의 한가운데가 딱 부러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어쩔 줄 몰랐답니다.
하지만 인어공주도 부서진 배의 조각들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지요.
그 때 다시 한번 번개가 번쩍 쳤습니다. 다시 주위가 밝아졌어요.
선원들은 침몰하려는 배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요.
인어 공주는 왕자를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하지만 왕자를 본 순간 배는 두동강이 나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몹시 기뻤습니다. 왕자가 바닷속으로 들어올 테니까요.
하지만 곧 인간은 물 속에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왕자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왕자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답니다.
인어 공주는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배의 조각들을 헤치고 왕자에게로 헤엄쳐
갔습니다.
잘못하면 자신이 다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말이지요.
인어 공주는 바닷속 깊이 잠수했다가 다시 파도를 뚫고 왕자에게 헤엄쳐
갔습니다.
왕자는 폭풍우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두 눈은 감겨 있었지요.
인어 공주가 아니었다면 왕자는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바다는 다시 평온해졌답니다.
배의 흔적은 자취도 없었습니다.
해님이 반짝이며 붉게 떠올랐습니다.
왕자의 두 뺨은 햇빛을 받아 발그레해졌지요.
하지만 두 눈은 그대로 감긴 채였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지요.
왕자는 바닷 속의 작은 정원에 서 있는 조각상처럼 보였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왕자에게 입맞추면서 살아나기를 기도했어요.
그 때 그녀는 육지를 보았습니다.
백조처럼 하얀 눈이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높고 푸른 산도 있고, 아래쪽 해변에는 근사한 초록 숲이 보였습니다.
그 앞에는 교회나 수도원 같은 집이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레몬 나무와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고 문 앞에는 키 큰 종려나무들이 서 있었습니다.
바닷가에는 희고 고운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왕자를 안고 모래밭으로 헤엄쳐 왔습니다.
그리고는 따뜻한 햇볕 속에 왕자를 눕혔어요.
그 때 종소리가 울리고 정원을 가로질러 젊은 처녀들이 달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얼른 바위 뒤로 숨었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저 불쌍한 왕자에게 다가오는지 살펴보았어요.
한 젊은 처녀가 왕자를 발견했답니다. 그녀는 몹시 놀라는 것 같았어요.
처녀는 곧 사람들을 데리고 왔지요.
인어 공주는, 정신을 차린 왕자가 둘러서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소 짓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에게는 미소 짓지 않았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가 자기를 구한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몹시 슬펐지요.
왕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람들에 둘러싸여 교회로 들어갔답니다.
인어 공주는 슬픈 마음으로 바닷속 궁전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내 공주는 항상 조용하고 생각이 깊었답니다. 그런데 바깥 세상에 다녀온
뒤로는 더욱 말이 없어졌지요.
언니들은 맨 처음 본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막내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매일 밤 왕자가 누워 있던 곳으로 올라가 보았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왕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새 높은 산을 덮고 있던 눈이 녹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항상 슬픈 마음으로 되돌아오곤 하였지요.
인어 공주는 이제 꽃을 가꾸지도 않았답니다.
꽃과 풀들은 날이 갈수록 시들어서 정원은 그만 황폐해져 버렸습니다.
마침내 막내는, 한 언니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차차 다른 언니들도 모두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한 언니가 그 왕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답니다.
언니도 배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 왕자를 보았던 거예요.
"이리 와, 동생아."
공주들은 막내를 이끌고 왕자의 궁전이 있는 곳으로 솟아올랐습니다.
궁전은 반짝이는 노란색 돌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큰 대리석 계단이 있었는데, 그 계단의 한 끝이 바다로 이어져 있었지요.
지붕에는 황금을 입힌 둥근 탑들이 솟아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답니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화려한 궁전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궁전에는 값비싼 휘장과 벽걸이들, 그리고 벽에는 큰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었답니다.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었는데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천장을 덮은 둥근 유리창에까지 솟아올랐지요.
인어 공주는 매일 왕자의 궁전을 찾아갔답니다.
언니들보다 훨씬 더 가까이 육지로 헤엄쳐 갔지요.
바다 위에 긴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그 화려한 대리석 발코니 아래까지 가 보았답니다.
그리고 이 곳에 앉아 왕자를 바라보았지요.
왕자는 혼자 밝은 달빛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또 왕자가 음악을 들으며 보트를 타는 것도 보았답니다.
녹색 갈대를 통해 살짝 엿보았지요.
그러나 바람에 그녀의 은백색 긴 머리카락이 날리면 왕자는 그것이 날개를 퍼덕이는 백조라고 믿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왕자를 자신이 구했다는 사실이 기뻤답니다.
그리고 왕자가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품에 누워 있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지요.
인어 공주는 그 때 왕자의 모습에 넋을 잃고 입맞추었지요.
하지만 왕자는 꿈 속에서조차도 그것을 모른답니다.
인어 공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바닷속보다 훨씬 더 넓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고 싶었답니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높은 구름위로 날아오를 수도 있지요.
그리고 세상은, 숲과 들판을 끼고 그녀가 바라볼 수 있는 곳보다 훨씬 넓게 뻗어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언니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 없었으며, 할머니만이 바다 위의 세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물었어요.
"만약 사람들이 빠져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나요? 바닷속의 우리와는 달리 죽지 않나요?"
할머니는 말했지요.
"그들도 죽어야만 한단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산단다. 우리는 300년까지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죽으면 물 위의 거품으로 변한단다.
사람들처럼 영혼이 없으니까. 무덤도 갖지 못하지.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없단다.
우리는 초록색 갈대와 같단다. 한번 꺾이고 나면 다시는 녹색으로 살아나지 못하는 갈대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죽어서 흙이 된 후에도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갖고
있단다.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솟아올라서 반짝이는 별에게로 가지. 우리가 물
위로 떠올라 인간의 나라를 보는 것처럼, 인간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올라간단다."
"우리는 왜 영혼을 얻지 못하나요?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제 목숨과 바꾸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단다! 우리는 인간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단다."
"제가 죽으면 바다 위의 거품으로 떠다니겠지요? 파도의 음악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들도 보지 못하고, 붉은 해도 보지 못하겠지요? 영혼을 얻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나요?"
"없단다. 하지만 인간이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만약 그 인간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게 된다면, 그의 영혼이 네 몸속에 흘러들어와 인간의 축복을 함께 받을 수 있단다.
서로의 영혼을 간직하게 되는 거란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사람들은 네 물고기 꼬리를 이상하게 생각한단다.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다리라고 부르는 것을 갖고 잊지."
인어 공주는 슬픈 얼굴로 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자, 이제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자꾸나. 우리는 300년 동안이나 살 수 있지 않니? 그건 정말 좋은 시간이란다. 인간들은 무덤에서 살지만 말이야. 오늘 저녁에 궁중 무도회를 열자."
할머니가 말했어요.
바닷 속의 무도회는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화려한 축제였답니다.
무도회장의 벽과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지요. 장미처럼 붉거나 초록색인 조개껍질들이 사방에서 열을 지어 서 있습니다.
이 조개껍질들이 내는 푸른 불꽃은 무도회장을 아름답게 밝히고 있답니다.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유리벽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지요.
물고기들의 비늘은 자줏빛과 붉은 색으로 반짝였고, 또 어떤 물고기들의 비늘은 금과 은처럼 반짝였어요.
무도회장을 가로질러 넓은 시내가 흐르고 있었는데, 이 곳에서 남자 인어들과 여자 인어들이 사랑스러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아마 인간들은 그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지 못할 거예요.
그 중에서도 막내 인어 공주가 가장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래요, 막내 인어 공주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왕자를 잊을 수가 없었지요. 왕자처럼 영혼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아무도 몰래 궁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슬픈 마음으로 작은 정원에 앉아 있었지요.
그 때 뱃고동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틀림없이 왕자가 탄 배일 거야. 그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 나는 꼭 왕자를 얻을 거야.
그리고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할 거야. 그래, 마녀에게로 가야지. 어쩌면 마녀가 도와 줄지도 몰라."
인어 공주는 정원을 빠져 나와 거칠게 날뛰는 소용돌이 속으로 갔습니다 바로 그곳에 마녀가 살고 있었답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이었지요, 꽃은 커녕 해초도 나 있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헐벗은 회색 모랫바닥만이 뻗어 있었지요.
마녀의 집에 가기 위해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진창을 지나야만 했답니다.
마녀의 집은 그 너머 이상한 숲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모든 나무와 덤불은 두족류로 이루어져 있었답니다.
그것들은 마치 흙에서 솟아나 자라는 수백 개의 머리가 달린 뱀같이 보였습니다.
모든 가지는 마음대로 휘어질 수 있는 긴 팔 같았지요.
또 몸통이 따로따로 움직이기도 하고, 한 번 붙잡은 것은 단단하게 껴안아 다시는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너무도 무서워서 그 앞에 멈추고 말았답니다.
가슴에서는 소리가 났지요.
차라리 돌아가려고도 했지만 인어공주는 순간 왕자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생각했지요.
인어 공주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팔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단단하게 묶었습니다.
두족류들이 손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위에 모두어 얹고 유연한 가지를 내뻗는 무서운 두족류 사이를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날아갔답니다.
두족류의 덤불 속에 빠진 인간들의 하얀 해골이 보였습니다.
또 두족류들이 목졸라 죽인 여자 인어도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에게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습니다.
이윽고 아주 큰 늪지로 나왔습니다.
크고 살진 물뱀이 이리저리 뒹굴면서 못생긴 연노랑색 배를 드러내고 있었지요.
이 늪지의 한가운데에 난파당한 인간들의 백골로 지어진 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녀가 살고 있는 집이었지요.
"네가 뭘 하려는지 난 이미 알고 있단다."
마녀가 말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아름다운 작은 공주님.
그래도 넌 네 물고기 꼬리를 없애고 그 대신 인간들처럼 걸어다닐 수 있는 두 개의 다리를 갖고 싶어하지?
그 젊은 왕자와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기 위해서 말이야."
마녀는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 나쁘게 웃었습니다.
"때맞춰 잘 왔다. 내일 해가 떠오르면, 다시 1년이 지날 때까지 너를 도울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잘 듣는 물약을 만들어 줄 테니 그걸 가지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육지로 나가야만 한다.
그 곳에서 물약을 마셔라. 그러면 네 꼬리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다리가 되는 것이지. 날카로운 칼날이 네 몸을 뚫고
들어가듯이 몹시 아프겠지만,
사람들이 네 모습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할 게 틀림없어.
하지만 네가 걸으면 걸을수록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아플 거야.
이 모든 것을 참겠다면 너를 도와 주마."
"네!"
인어 공주는, 왕자와의 불멸의 영혼을 생각하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봐."
마녀는 말했습니다.
"인간의 몸을 얻으면 다시는 인어가 될 수 없어.
다시는 네 언니들이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왕궁으로 내려올 수 없어.
그리고 왕자가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떤 영혼도 얻을 수가 없고 결국 네 심장은 쪼개지고, 곧 물 위의 거품으로 변하게 돼."
"그렇게 하겠어요."
인어 공주는 말했어요. 하지만 몹시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요구도 들어 주어야만 해."
마녀는 말했습니다.
"너는 이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그 목소리로 왕자를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 목소리를 내게 주어야 해.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당신이 내 목소리를 얻으면 나는 뭘 얻게 되나요?"
"아름다운 모습이란다. 경쾌한 걸음걸이, 말하는 듯한 두 눈, 그것으로도 너는 충분히 인간의 마음을 유혹할 수 있어.
아직도 그럴 용기가 있니? 네 작은 혀를 내밀어 봐, 그걸 잘라야 하니까."
"그렇게 하세요."
마녀는 마법의 물약을 끓이기 위해 솥을 불 위로 얹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가슴을 칼로 그어 검은 피를 방울방울 솥에 떨어뜨렸답니다. 그러자 김이 솟아올랐습니다.
마녀는 계속해서 솥 안에 알 수 없는 것들을 집어 넣었습니다.
마침내 물약이 완성되었답니다. 다 된 약은 아주 맑은 물 같았습니다.
"자 이제, 네 혀를 다오."
마녀는 인어 공주의 혀를 싹둑 잘랐습니다.
이제 인어 공주는 벙어리가 되었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네가 숲을 빠져 나갈 때 두족류들이 너를 잡으려고 하면 이 물약을 한 방울만 떨어뜨려라. 그러면 두족류들의 팔다리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인어 공주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답니다.
두족류들이 물약을 보자마자 놀라서 움츠러들었거든요.
인어 공주는 소용돌이 속을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궁에 닿았습니다. 무도회장의 불빛은 꺼져 있었지요.
틀림없이 모두 잠이 들었겠지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영원히 떠나려 하고 있었으니까요.
인어 공주는 아버지와 형제들 생각에 몹시 슬펐답니다. 그래서 살그머니 정원으로 들어가 언니들의 꽃밭에서 꽃 한 송이씩을 꺾었지요.
그리고는 궁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푸른 바다로 나왔습니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으며, 달빛이 바다를 조용히 비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굳은 결심을 하고는 물약을 마셨습니다.
마치 잘 드는 칼이 연약한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지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해가 바다 위로 높이 떠올랐을 때에야 인어 공주는 깨어났답니다. 살을 에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녀 앞에 아름다운 왕자가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왕자는 검은 두 눈으로 인어 공주를 보고 있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지요. 인어 공주는 꼬리가 있던 자리에 작고 하얀 두 다리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완전히 발가벗은 채 말이지요. 인어 공주는 부끄러워 얼른 긴 머리카락으로 몸을 감쌌습니다.
왕자는 그녀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 곳에 왔는지를 물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왕자를 바라보았지요.
하지만 혀를 잘린 인어 공주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왕자는 곧 인어 공주를 궁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걸을 때마다 마녀의 말처럼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잘 참았답니다. 왕자의 손에 이끌려 마치 비눗방울처럼 가볍게 걸어갔습니다.
왕자는 우아하고 경쾌한 인어 공주의 걸음걸이에 감탄을 했답니다.
인어 공주는 비단옷을 입게 되었으며 궁전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지요.
그러나 그녀는 벙어리였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지요.
인어 공주를 환영하는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비단과 황금으로 치장한 시녀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왕자는 박수를 치면서 시녀들에게 미소를 보냈지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슬펐답니다.
"아, 왕자님의 곁에 있기 위해서 내 아름다운 목소리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 주기만 한다면!"
시녀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도 춤을 추었답니다.
발끝으로 마룻바닥 위에 서서 그 누구도 출 수 없는 아름다운 춤을 추었지요.
아름다운 춤은 시녀들의 노래보다 더 깊이 가슴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의 모습에 넋을 빼앗겼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요.
그럴수록 인어 공주는 더 열심히 춤을 추었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와 함께 말을 타기 위해 승마복도 만들어 주었답니다. 인어공주는 왕자와 함께 작은 새들이 나무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초록색 숲을 말을 타고 달렸지요.
또 높은 산에도 올라갔어요. 그럴 때마다, 연약한 발에서 피가 흘렀지만 인어 공주는 오히려 즐겁게 웃곤 했답니다.
인어 공주는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넓은 대리석 계단을 내려와 차가운
바닷물 속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러면 불에 타는 듯한 발이 시원해졌지요. 인어공주는 저 아래쪽 깊은 곳에 있는 형제들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여느 때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다리를 물에 담그고 있는데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언니들이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언니들에게 손짓을 했지요. 언니들은 그녀가 얼마나 그들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뒤로 언니들은 매일 밤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한 번은, 여러 해 동안 바다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늙은 할머니와, 아버지도 왔답니다.
그들은 멀리서 인어 공주를 향해 손을 뻗으며 불렀지만 육지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했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를 몹시 사랑했답니다. 하지만 왕비로 맞을 생각은 아직 하지 않았지요.
인어 공주는 꼭 왕자와 결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도 얻지 못하고 바다의 거품이 되어야만 했으니까요.
"왕자님, 나를 가장 사랑할 순 없나요?"
왕자가 인어 공주의 이마에 입맞출 때면 그녀의 두 눈은 이렇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넌 내게 가장 사랑스런 사람이란다. 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내가 언젠가 한 번 보았던 소녀와 꼭 닮았어. 그 때 나는 배를 타고
있었는데, 그 배가 난파당해 파도에 휩쓸려 바닷가로 밀려나왔지. 그리고 어떤 아름다운 처녀가 내 생명을 구해 주었어. 그래, 나는 아직도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
그런데 너는 꼭 그녀를 닮았어. 아마도 행운의 신이 너를 내게 보낸 모양이야. 우리 결코 헤어지지 말자."
"아, 내가 바로 그 소녀예요, 왕자님!"
인어 공주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자가 말하는 그 소녀는 왕자를 교회로 옮겼던 소녀였답니다.
"그래, 나는 바위 뒤에 숨어서 그 소녀를 보았어. 왕자님을 교회로 옮긴 그
아름다운 처녀를 말이야."
인어 공주는 깊이 한 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래, 그 처녀는 성스러운 사원에 소속되어 있다고 했지. 그녀는 결코 이 세상에 나와 살지 않을 거고 왕자님과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나는 이렇게 왕자님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 내가 왕자님을 돌볼 거야. 왕자님을 위해 내 생명을 바치겠어."
그런데 인어 공주의 귀에, 왕자가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한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신이 왕자의 마음 속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나는 떠나야 해!"
왕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결혼하기를 원하신단다. 하지만 난 그녀를 사랑할 수 없어. 그녀는 너를 닮은 사원의 그 아름다운 처녀와 닮지 않았을 거야.
만약 마음대로 신부를 택할 수만 있다면 너를 택할 거야."
왕자는 인어 공주의 붉은 입술에 입맞추었답니다.
"넌 바다를 무서워하지는 않겠지?"
이웃 나라로 가기 위해 화려한 배에 오른 왕자가 물었습니다.
왕자는 인어 공주에게 폭풍우와, 바람이 잔잔한 바다와, 바다 깊은 곳의 이상한 물고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자코 미소만 지었습니다.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모두 잠든 밤이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배의 난간에 앉아 맑은 물 속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바닷속 궁전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머리에 은관을 쓴 할머니가 인어 공주가 타고 있는 배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니들이 물위로 떠올랐답니다.
언니들은 하얀 손을 내밀며 슬픈 눈으로 인어 공주를 바라보았어요.
인어 공주는 언니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기가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하려고 했지요.
그 때 선원이 갑판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언니들은 곧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다음 날 아침, 배는 이웃 나라의 화려한 도시에 닿았습니다.
배가 닿자 모든 교회의 종이 울렸습니다.
깃발이 나부끼고, 번쩍이는 칼을 찬 군인들이 열을 지어 서 있고, 높은 탑에서는 나팔 소리가 울리며 왕자를 맞이했습니다.
매일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공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공주는 멀리 떨어진 성스러운 사원에서 왕비가 지녀야 할 미덕을 배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윽고 이웃 나라 공주가 돌아왔습니다.
그래요, 인어 공주는 아름다운 공주를 보았지요. 공주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길고 검은 속눈썹과 검푸른 눈으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만한 아름다움이었지요.
"바로 당신이었군요! 바닷가에서 나를 구해 준 사람이."
왕자는 말했어요.
그러면서 왕자님은 얼굴을 붉히고 서 있는 신부를 끌어안았습니다.
"오, 난 너무 행복해!"
왕자는 인어 공주에게도 자신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졌어. 너도 내 행복을 기뻐해 주겠지? 너는 그 누구보다도 나와 생각이 같으니까 말이야."
인어 공주는 왕자의 손에 입을 맞추었지요. 하지만 몹시 슬펐답니다. 이제 왕자가 공주와 결혼을 하면 자신은 바다 위의 거품으로 변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종이 울리고, 전령들이 이리저리 거리를 돌아다니며 결혼을 알렸답니다.
도시는 온통 축제에 휩싸였지요.
그리고 신랑 신부는 서로 손을 내밀어 주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아무것도 듣거나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하얀 거품이 될 자신의 모습을, 죽음의 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신랑 신부는 뱃전으로 나갔습니다.
대포가 울려 퍼지고 온갖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배의 한가운데에는 황금빛과 자줏빛으로 치장된 방이 만들어졌습니다.
바람을 받으며 돛이 부풀어오르자 배는 가볍게 맑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오색 등불을 밝히고 갑판 위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답니다.
인어공주는 바다 위에서 맨 처음 보았던 화려하고 즐거운 광경을 생각했지요.
인어 공주도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제비가 뱅뱅 돌 듯이 춤을 추었지요.
모두가 감탄하면서 인어 공주에게 환호를 보냈어요. 인어 공주도 그토록 아름답게 춤을 추어 본 적이 없었지요.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의 연약한 두 다리를 베는 것 같았지만 느끼지 못했답니다.
그래요, 인어 공주는 두 다리보다 마음이 훨씬 더 아팠답니다.
그녀는 오늘이 왕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마녀에게 바치면서까지 고통을 참아야 했던 것은 오직 왕자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요, 왕자님과 함께 숨쉬는 것도, 깊은 바다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랍니다.
영혼을 가질 수 없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제 생각도 없고 꿈도 없는 영원한 밤일 뿐입니다.
배 위에서의 즐겁고 명랑한 축제는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가슴 속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안고서 춤을 추었답니다.
왕자님은 아름다운 신부에게 입맞추었지요.
그리고는 신부를 안고 화려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배 위는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워졌답니다. 인어 공주는 흰 팔을 난간에 얹고 아침놀이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언니들이 물 위로 떠올랐어요. 언니들도 인어 공주처럼 슬픈
모습이었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언니들의 길고 아름다운 머릿결은 더 이상 바람에 나부끼지 않았습니다.
"우린 해 뜨기 전에 널 살리려고 달려왔단다. 모두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었단다.
그 대신 칼을 얻어 왔어. 여기 있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왕자의 가슴에 꽂아라.
왕자의 따뜻한 피가 네 발을 적시게 되면 네 꼬리가 다시 자라난단다.
서둘러! 해가 떠오르기 전에 왕자를 죽여. 아니면 네가 죽어야 해! 할머니도 몹시 슬퍼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그 흰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었단다.
왕자를 죽이고 돌아오렴!
서둘러! 하늘의 저 붉은 띠가 안 보이니? 금방 해가 솟을 거야. 그러면 넌 죽어야만 해!"
언니들은 깊은 한숨을 내 쉬고는 파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줏빛으로 빛나는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왕자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자고 있는 아름다운 공주가 보였지요.
인어 공주는 허리를 굽혀 공주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맞추었지요. 그리고는 아침놀이 점점 밝아오는 하늘과 날카로운 칼을 번갈아 보았지요.
왕자는 꿈속에서 신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답니다. 공주는 칼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마침내 인어 공주는 그 칼을 멀리 바닷속으로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슬픈 눈으로 왕자를 한 번 더 바라보았지요.
인어 공주는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며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부드러운 햇살이
죽음처럼 차가운 바다를 비추었지요.
인어 공주는 죽음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어요.
그녀는 밝은 해를 볼 수 있었지요.
해 위에는 수백 개의 투명한 형상들이 떠다니고 있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그 형상들을 통해서 배의 흰 돛과 하늘의 붉은 구름을 볼 수
있었지요.
그 형상들의 목소리는 멜로디였는데 아무도 들을 수가 없었답니다.
볼 수도 없었지요.
인어 공주는 바다에서 점점 높이 솟아오르며, 그 형상들과 같은 몸이 되었습니다.
"난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인어 공주가 물었습니다.
"공기의 딸들에게로 가는 거란다."
다른 형체들이 대답했습니다.
"인어는 영혼이 없어. 그래서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그것을 가질 수 없단다.
공기의 딸들도 영혼은 갖고 있지 않단다.
그러나 그들은, 착한 일을 하면서 스스로 영혼을 만들 수가 있지.
우리는 지금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는 중이란다. 공기를 통해 꽃의 향기를 퍼뜨리기 위해서 말이야.
300백년 동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영혼을 얻을 수 있단다.
가련한 인어 공주야, 너는 온 마음을 다해 영혼을 얻으려고 했었지. 수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말이야.
그 고통이 너를 공기의 정령들의 세계로 끌어 올렸단다.
이제 너는 착하게 살아가면 300백년 후에는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단다."
인어 공주는 하얀 두 팔을 해님을 향해 뻗었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 위에서는 왕자가 아름다운 신부와 함께 자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슬픈 모습으로 진주빛 바다 거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인어 공주가 바닷속에 뛰어든 것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에요.
인어 공주는 아무도 모르게 신부의 이마에 입맞추고 왕자에게 미소를 보냈지요.
그리고는 다른 공기의 요정들과 함께 장밋빛 구름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300백년이 지나지 않아도 우린 그 곳에 갈 수 있단다. 우리는 지금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을 찾아가는 중이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착한 아이를 찾아 내면 신은 우리의 시험 기간을 단축해 주신단다.
그러면 300백년 중에 1년이 줄어들지. 하지만 나쁜 아이를 보게 되면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하고 시험 기간이 하루씩 늘어나게 되지."
어느 공기의 요정이 속삭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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