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개여울
님의 말씀
금잔디
저녁 때
못잊어
길
하늘 끝
밤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봄비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다면
봄 밤
반달
애모
접동새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는 봄
바람과 봄
풀따기
맘켕기는날
첫사랑
그리워
왕십리
가는 길
님의 노래
그를 꿈꾼 밤
엄마야 누나야
님에게
초혼
먼 후일
오시는 눈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나의 집
마음의 눈물
맘에 속의 사람
깊고 깊은 언약
고독
옛낯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꿈꾼 그 옛날
눈 오는 저녁
담배
비단 안개
들돌이
님과 벗
상쾌한 아침
잊었던 맘
여자의 냄새
강촌(江村)
꽃촉(燭)불 켜는 밤
물마름
바리운 몸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옛이야기
눈보라치는날...
귀뚜라미
꿈으로 오는 한 사람
산유화
구름
꿈길
팔베개 노래
희망(希望)
춘향과 이도령
찬 저녁
가을 아침에
가을 저녁에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삭주구성
산
낙천(樂天)
두 사람
마른 강(江)두덕에서
달맞이
漁人
부모
萬里成
만나려는 심사
서울밤
밭고랑 위에서
무덤
바다
무신(無信)
붉은 조수(潮水)
제비
개아미
개여울의 노래
기억(記憶)
깊이 믿던 심성(心誠)
꿈 1, 2
남의 나라 땅
널
눈
닭소리
닭은 꼬꾸요
무심(無心)
묵념(默念)
몹쓸 꿈
부귀공명(富貴功名)
부부
부헝새
비난수 하는 맘
엄숙
산(山) 위에
새벽
생(生)과 사(死)
설움의 덩이
수아(樹芽)
안해 몸
여름의 달밤
여수(旅愁)
우리 집
원앙침(鴛鴦枕)
~~월색(月色)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자주(紫朱) 구름
첫치마
합장(合掌)
황촉(黃燭)불
훗길
김소월 시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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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라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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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 김소월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나의 이러한 맘뿐은,때가 되면
그림자 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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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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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 / 김소월
세월이 물과같이 흐른두달은
길어둔 독엣물도 찌었지마는
가면서 함께가자하던말씀은
살아서 살을맞는표적이외다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모를 딴 세상의 네 길거리에
애달피 날 저무는 갓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 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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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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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후일 /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말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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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눈 / 김소월
땅 위에 새하얗게 오시는 눈.
기다리는 날에는 오시는 눈.
오늘도 저 안 온 날 오시는 눈.
저녘불 켤 때마다 오시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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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 김소월
걷잡지 못할 만한 나의 이 설움,
저무는 봄저녁에 져가는 꽃잎,
져가는 꽃잎들은 나부끼어라.
예로부터 일러 오며 하는 말에도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그러하다, 아름다운 청춘의 때의
있다던 온갖 것은 눈에 설고
다시금 낯모르게 되나니,
보아라, 그대여, 서럽지 않은가,
봄에도 삼월의 져가는 날에
붉은 피같이도 쏟아져내리는
저기 저 꽃잎들을, 저기 저 꽃잎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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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 김소월
들가에 떨어져 나가앉은 묏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라, 나의 집을,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가끔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 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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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물 / 김소월
마음에서 오늘날 눈물이 난다.
앞 뒤 한길 포플러 잎들이 안다,
마음속에 마음의 비가 오는 줄을.
갓난이야 갓놈아 나 바라보라.
아직도 한길 위에 인기척 있나.
무엇 이고 어머니 오시나보다.
부뚜막 쥐도 이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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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속의 사람 / 김소월
잊힐 듯이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말 그리운
이 나의 맘에 속에 속 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인제는 인제라도 보기만 해도
다시없이 살뜰한 그 내 사람은
한두 번만 아니게 본 듯하여서
나자부터 그리운 그 사람이요.
남은 다 어림없다 이를지라도
속에 깊이 있는 것 어찌하는가.
하나 진작 낯모를 그 내 사람은
다시없는 알뜰한 그 내 사람은
나를 못 잊어하여 못 잊어하여
애타는 그 사랑이 눈물이 되어,
한끗 만나리 하는 내 몸을 가져
몸쓸음에 둔 사람, 그 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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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언약 / 김소월
몹쓸은 꿈을 깨어 돌아누을 때,
봄이 와서 멧나물 돋아나올 때,
아름다운 젊은이 앞을 지날 때,
잊어버렸던 듯이 저도 모르게,
얼결에 생각나는 깊고 깊은 언약
* 멧나물 : [명] 산나물.
얼결 : [부] 엉겁결. 갑자기, 얼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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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 김소월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 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 시만 늘 저무누나
바잽의 모래밭에
돋는 봄풀은
매일 붓는 범불에 터도 나타나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은요
봄 와도 봄 온줄을 모른다더라
이즘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늘도 지는 해니 어서 져다오
아쉬움의 바닷가 모래밭이니
뚝 씻는 물소리가 들려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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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낯 / 김소월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의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어라, 이후부터,
우리는 옛 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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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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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꾼 그 옛날 / 김소월
밖에는 눈, 눈이 와라,
고요히 창 아래로는 달빛이 들어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겨라.
나의 베개는 눈물로 함빡이 젖었어라.
그만 그 여자는 가고 말았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 틈을 엿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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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저녁 / 김소월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 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今年은……
꿈이라고 뀌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흰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 눈은 퍼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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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 김소월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시절에
낳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앞에 쓰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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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안개 / 김소월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더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미친 날도 그런 때더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홀목숨은 못살 때더라.
눈 풀리는 가지에 당치맛귀로
젊은 계집 목매고 달릴 때더라.
눈들이 비단 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솟을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더라.
눈들이 비단안개에 둘리울 때,
그때는 차마 잊지 못할 때더라,
첫사랑이 있던 때도 그런 날이오
영 이별 있던 날도 그런 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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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돌이 / 김소월
들꽃은
피어
흩어졌어라.
들풀은
들로 한 벌 가득히 자라 높았는데
뱀의 헐벗은 묵은 옷은
길 분전의 바람에 날아 돌아라.
저 보아, 곳곳이 모든 것은
번쩍이며 살아 있어라.
두 나래 펄쳐 떨며
소리개도 높이 떴어라.
때에 이내 몸
가다가 또다시 쉬기도 하며,
숨에 찬 내 가슴은
기쁨으로 채워져 사뭇 넘쳐라.
걸음은 다시금 또 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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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벗 / 김소월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香氣)로운 때를
고초(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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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아침 / 김소월
무연한 벌 위에 들어다 놓은 듯한 이 집
또는 밤새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지 못할 이 비.
친개지(親開地)에도 봄은 와서 가냘픈 빗줄은
뚝가의 어슴푸레한 개버들 어린 엄도 축이고,
난벌에 파릇한 뉘 집 파밭에도 뿌린다.
뒷 가시나무밭에 깃들인 까치떼 좋아 지껄이고
개굴가에서 오리와 닭이 마주 앉아 깃을 다듬는다.
무연한 이 벌 심어서 자라는 꽃도 없고 메꽃도 없고
이 비에 장차 이름 모를 들꽃이나 필는지?
장쾌한 바닷물결, 또는 구릉의 미묘한 기복도 없이
다만 되는 대로 되고 있는 대로 있는 무연한 벌!
그러나 나는 내버리지 않는다. 이 땅이 지금 쓸쓸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금, 시원한 빗발이 얼굴에 칠 때,
예서뿐 있을 앞날의 많은 변전의 후에
이 땅이 우리의 손에서 아름다워질 것을! 아름다워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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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맘 / 김소월
집을 떠나 먼 저곳에
외로이도 다니던 내 심사를!
바람 불어 봄꽃이 필 때에는
어찌타 그대는 또 왔는가.
저도 잊고 나니 저 모르던 그대
어찌하여 옛날의 꿈조차 함께 오는가.
쓸데도 없이 서럽게만 오고 가는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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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냄새 / 김소월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
아니 땀냄새, 때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추거운 살과 옷냄새.
푸른 바다...... 어즈리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그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영(靈)
어우러져 빗기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 지나간 숲 속의 냄새.
유령 실은 널뛰는 뱃간의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모래 두덩 바람은 그물 안개를 불고
먼 거리의 불빛은 달 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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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江村) / 김소월
날 저물고 돋는 달에
흰 물은 솰솰……
금모래 반짝…….
청(靑)노새 몰고 가는 낭군(郎君)!
여기는 강촌(江村)
강촌(江村)에 내 몸은 홀로 사네.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 봄 오늘이 다 진(盡)토록
백년처권(百年妻眷)을 울고 가네.
길쎄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강촌(江村)에 홀로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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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촉(燭)불 켜는 밤 / 김소월
꽃촉불 켜는 밤, 깊은 골방에 만나라.
아직 젊어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해 달 같이 밝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사랑은 한두 번만 아니라, 그들은 모르고.
꽃촉불 켜는 밤, 어스러한 창 아래 만나라.
아직 앞길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솔대 같이 굳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세상은, 눈물날 일 많아라, 그들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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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마름 / 김소월
주으린 새무리는 마른 나무의
해지는 가지에서 재갈이던 때.
온종일 흐르던 물 그도 곤(困)하여
놀지는 골짜기에 목이 메던 때.
그 누가 알았으랴 한쪽 구름도
걸려서 흐느끼는 외로운 영(嶺)을
숨차게 올라서는 여윈 길손이
달고 쓴 맛이라면 다 겪은 줄을.
그곳이 어디드냐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말 먹여 물 찌었던 푸른 강(江)물이
지금에 다시 흘러 뚝을 넘치는
천백리(千百里) 두만강(豆滿江)이 예서 백십리(百十里).
무산(茂山)의 큰 고개가 예가 아니냐
누구나 예로부터 의(義)를 위하여
싸우다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三百年來)에
참아 받지 다 못할 한(恨)과 모욕(侮辱)을
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
인력(人力)의 다함에서 쓰러진 줄을.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
도독(毒)된 삼천리(三千里)에 북을 울리며
정의(正義)의 기(旗)를 들던 그 사람이여.
그 누가 기억(記憶)하랴 다복동(多福洞)에서
피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정주성(定州城)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애그친 그 가슴이 숫기 된 줄을.
물위의 뜬 마름에 아침 이슬을
불붙는 산(山)마루에 피었던 꽃을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이루며 못 이룸에 박(薄)한 이름을.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으며
세상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이 꾸밈은
닳아진 이 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두세 번 생각하라, 우선 그것이
저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장사일진댄.
사는 법이 근심은 못 가른다고,
남의 설움을 남은 몰라라.
말 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의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마저 벗긴 뒤에는
그를 네길거리에 세워 놓아라, 장승도 마치 한가지.
이 무슨 일이냐, 그날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가끔 제 비위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기자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르라, 그저 혼자, 섧거나 괴롭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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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 김소월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며는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며는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읍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읍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어 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읍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몸을 울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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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치는날... / 김소월
눈보라치는날...
동생과함께 눈싸움하고...
눈보라치는날...
동생과함께 눈사람만들고...
눈보라치는날...
따뜻한 고구마 먹고...
나는 겨울을 따뜻한 겨울로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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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 김소월
산바람 소리
찬 비듣는 소리,
그대가 세상고락 말하는 날 밤에,
순막집 붉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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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오는 한 사람 / 김소월
나이 차려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속의 꿈으로 와라
불그레한 얼굴에 가늣한 손까락의,
모르는 듯한 거동도 전날의 모양대로
그는 야젓이 나의 팔 위에 누워라
그러나, 그래도 그러나!
말할 아무 것이 다시 없는가!
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
그는 일어라. 닭의 홰치는 소리.
깨어서도 늘, 길거리엣 사람을
밝은 대낮에 빗보고는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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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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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 김소월
저기 저 구름을 잡아타면
붉게도 피로 물든 저 구름을,
밤이면 새캄한 저 구름을.
잡아타고 내 몸은 저 멀리로
九萬里 긴 하늘을 날아 건너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애스러라, 그리는 못한대서,
그대여, 들으라 비가 되어
저 구름이 그대한테로 내리거든,
생각하라, 밤저녁, 내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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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 / 김소월
물구슬의 봄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 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바람조차 가을 봄 거츠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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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베개 노래 / 김소월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날 긇다 말아라
가장님만 님이랴
오다 가다 만나도
정붙이면 님이지.
화문석(花紋席) 돗자리
놋촉대 그늘엔
칠십년 고락을
다짐 둔 팔베개.
드나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룻밤
빌어얻은 팔베개.
조선의 강산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 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 서도를
내가 여기 왜 왔나
남포(南浦)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집 가문에
시집 가서 사느냐.
영남의 진주(晋州)는
자라난 내 고향
부모 없는
고향이라우.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은 상사(相思)의
거문고 베개라.
첫닭아 꼬끼요
목놓지 말아라
품속에 있던 님
길채비 차릴라.
두루두루 살펴도
금강 단발령 (金剛 斷髮嶺)
고갯길도 없는 몸
나는 어찌 하라우.
영남의 진주는
자라난 내 고향
돌아갈 고향은
우리 님의 팔베개.
(1939. 12 시집 <素月詩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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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希望) / 김소월
날은 저물고 눈이 내려라
낯 설은 물가으로 내가 왔을 때.
산(山) 속의 올빼미 울고 울며
떨어진 잎들은 눈 아래로 깔려라.
아아 숙살(肅殺)스러운 풍경(風景)이여
지혜(智慧)의 눈물을 내가 얻을 때!
이제금 알기는 알았건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한갓 아름다운 눈어림의
그림자뿐인 줄을.
이우러 향기(香氣) 깊은 가을밤에
우무주러진 나무 그림자
바람과 비가 우는 낙엽(落葉)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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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과 이도령 / 김소월
평양에 대동강은 우리 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 가다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내 누이님
우리 나라 섬기던 한 엣 적에는
춘향과 이도령도 살았다지요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 담양,
꿈에는 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찾아 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돋고 달돋아 남원 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
찬 저녁 / 김소월
퍼르스름한 달은, 성황당의
군데군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뚝이 걸리었고, 바위 위의
까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엉기한 무덤들은 들먹거리며,
눈녹아 황토 드러난 멧 기슭의,
여기라, 거리 불빛도 떨어져 나와,
집 짓고 들었노라, 오오 가슴이어,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 더 더움이 없어라.
오오 가슴이어, 모닥불 피어오르는
내 한세상, 마당가의 가을도 갔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거리는
땅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대가 또 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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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에 / 김소월
어득한 퍼르스름한 하늘 아래서
회색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섶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말락하는 묏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이 흘러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어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새여오는 모든 기억은
피흘린 상처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 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靈)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 속이 가비업던 날
그리운 한 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래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미움도 부끄러움도 잊은 소래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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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에 / 김소월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간느 긴 들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높이 잦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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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 김소월
하루라도 몇 번씩 내 생각은
내가 무엇하려고 살랴는지?
모르고 살았노라, 그런 말로
그러나 흐르는 저 냇물이
흘러가서 바다로 든댈진댄.
일로 쫓아 그러면, 이 내 몸은
애쓴다고는 말부터 잊으리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그러나, 다시 내 몸,
봄빛의 불붙는 사태흙에
집 짓는 저 개아미
나도 살려 하노라, 그와 같이
사는 날 그날까지
살음에 즐거워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뜻이면
오오 그러면 내 몸에는
다시는 애쓸 일도 더 없어라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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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주구성 /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구성(朔州龜城)은 산을 넘은 육천리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가며 아니 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삭주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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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 김소월
산새도 오리나무
우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 넘어갈라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우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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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樂天) / 김소월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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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 김소월
흰눈은 한 잎
또 한 잎
영(嶺) 기슭을 덮을 때.
짚신에 감발하고 길심매고
우뚝 일어나면서 돌아서도……
다시금 또 보이는
다시금 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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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강(江)두덕에서 / 김소월
서리맞은 잎들만 쌔울지라도
그 밑에야 강(江)물의 자취 아니랴
잎새 위에 밤마다 우는 달빛이
흘러가던 강(江)물의 자취 아니랴
빨래 소리 물소리 선녀(仙女)의 노래
물 스치던 돌 위엔 물때 뿐이라
물때 묻은 조약돌 마른 갈숲이
이제라고 강(江)물의 터야 아니랴
헛된 줄 모르고나 살면 좋아도!
오늘도 저 너머엣편 마을에서는
고기잡이 배 한 척 길 떠났다고.
작년에도 바닷놀이 무서웠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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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父母) /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너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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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成 / 김소월
밤마다 밤마다
온 하룻밤
쌓았다 헐었다
긴 만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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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려는 심사 / 김소월
저녁해는 지고서 어스름의 길
저 먼 산엔 어두워 잃어진 구름,
만나려는 심사는 웬 셈일까요,
그 사람이야 올길 바이 없는데,
발길은 누 마중을 가잔 말이냐.
하늘엔 달 오르며 우는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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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밤 / 김소월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널따란 거리면 푸른 전등.
막다른 골목이면 붉은 전등.
전등은 반짝입니다.
전등은 그물입니다.
전등은 또다시 어스렷합니다.
전등은 죽은 듯한 긴 밤을 지킵니다.
나의 가슴의 속모를 곳의
어둡고 밝은 그 속에서도
붉은 전등이 흐득여 웁니다.
푸른 전등이 흐득여 웁니다.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머나먼 밤하늘은 새카맙니다.
머나먼 밤하늘은 새카맙니다.
서울 거리가 좋다고 해요,
서울 밤이 좋다고 해요.
붉은 전등.
푸른 전등,
나의 가슴의 속모를 곳의
푸른 전등은 고적합니다.
붉은 전등은 고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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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 위에서 / 김소월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위에 앉았어라.
일을 畢하고 쉬이는 동안의 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太陽은 내려 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恩惠여, 살아있는 몸에는 넘치는 恩惠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속을 차지하여라.
世界의 끝은 어디? 慈愛의 하늘은 넓게도 덮혔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어서,
하늘과 太陽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 새롭은 歡喜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 위에서.
다시 한 番 活氣있게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 들고 들어갔어라, 가즈란히 가즈란히,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어, 오오 生命의 向上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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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 김소월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붉으스름한 언덕, 여기저기
돌무더기도 움직이며, 달빛에,
소리만 남은 노래 서리워 엉겨라,
옛 조상(祖上)들의 기록(記錄)을 묻어둔 그곳!
나는 두루 찾노라, 그곳에서,
형적 없는 노래 흘러 퍼져,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저기,
그 누구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 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 헤내는 : 헤어나게 하는. 벗어나게 하는.
서리워 : 서리다(김이나 안개가 끼거나 어리다. 나무 줄기나 가지가 얼키다.)의 활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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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 김소월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잡이꾼들이 배 위에 앉아
사랑 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좋이 물든 남(藍)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 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니는 바다는 어디
건너서서 저편(便)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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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無信) / 김소월
그대가 돌이켜 물을 줄도 내가 아노라,
무엇이 무신(無信)함이 있더냐? 하고,
그러나 무엇하랴 오늘날은
야속히도 당장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을, 물과 같이
흘러가서 없어진 맘이라고 하면.
검은 구름은 메기슭에서 어정거리며,
애처롭게도 우는 산(山)의 사슴이
내 품에 속속들이 붙안기는 듯.
그러나 밀물도 쎄이고 밤은 어두워
닻 주었던 자리는 알 길이 없어라.
시정(市井)의 흥정 일은
외상(外上)으로 주고받기도 하건마는.
* 쎄이고 : 조수가 빠지고. 평북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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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조수(潮水) / 김소월
바람에 밀려드는 저 붉은 조수(潮水)
저 붉은 조수(潮水)가 밀어들 때마다
나는 저 바람 위에 올라서서
푸릇한 구름의 옷을 입고
불 같은 저 해를 품에 안고
저 붉은 조수(潮水)와 나는 함께
뛰놀고 싶구나, 저 붉은 조수(潮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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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 김소월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一定)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설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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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아미 / 김소월
진달래꽃이 피고
바람은 버들가지에서 울 때,
개아미는
허리 가늣한 개아미는
봄날의 한나절, 오늘 하루도
고달피 부지런히 집을 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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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의 노래 / 김소월
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
달 돋는 개여울의 빈 들 속에서
내 옷의 앞자락을 불기나 하지.
우리가 굼벵이로 생겨났으면!
비오는 저녁 캄캄한 영 기슭의
미욱한 꿈이나 꾸어를 보지.
만일에 그대가 바다 난끝의
벼랑에 돌로나 생겨났다면,
둘이 안고 굴며 떨어나지지.
만일에 나의 몸이 불귀신(鬼神)이면
그대의 가슴속을 밤도아 태와
둘이 함께 재 되어 스러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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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記憶) / 김소월
달 아래 시멋 없이 섰던 그 여자(女子),
서있던 그 여자(女子)의 해쓱한 얼굴,
해쓱한 그 얼굴 적이 파릇함.
다시금 실 뻗듯한 가지 아래서
시커먼 머리낄은 번쩍거리며.
다시금 하룻밤의 식는 강(江)물을
평양(平壤)의 긴 단장은 슷고 가던 때.
오오 그 시멋 없이 섰던 女子여!
그립다 그 한밤을 내게 가깝던
그대여 꿈이 깊던 그 한동안을
슬픔에 귀여움에 다시 사랑의
눈물에 우리 몸이 맡기웠던 때.
다시금 고즈넉한 성(城)밖 골목의
사월(四月)의 늦어가는 뜬눈의 밤을
한두 개(個) 등(燈)불 빛은 울어 새던 때.
오오 그 시멋 없이 섰던 여자(女子)여!
위에는 청초(靑草) 언덕, 곳은 깁섬,
엊저녁 대인 남포(南浦) 뱃간.
몸을 잡고 뒤재며 누웠으면
솜솜하게도 감도록 그리워 오네.
아무리 보아도
밝은 등(燈)불, 어스렷한데.
감으면 눈 속엔 흰 모래밭,
모래에 어린 안개는 물위에 슬 제
대동강(大同江) 뱃나루에 해 돋아 오네.
* 깁섬 : 비단섬. 깁은 라비단(羅緋緞)을 뜻한다.
깁과 섬의 합성어로 대동강의 능라도(綾羅島)를 지칭한다.
뒤재며 : [동] 뒤척이다.
슬 제 : 스러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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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 / 김소월
시집와서 삼년(三年)
오는 봄은
거친 벌 난벌에 왔습니다
거친 벌 난벌에 피는 꽃은
졌다가도 피노라 이릅디다
소식없이 기다린
이태 삼년(三年)
바로 가던 앞 강(江)이 간봄부터
구비 돌아 휘돌아 흐른다고
그러나 말 마소, 앞여울의
물빛은 예대로 푸르렀소
시집와서 삼년(三年)
어느 때나
터진 개 개여울의 여울물은
거친 벌 난벌에 흘렀습니다.
* 난벌 : 확 트인 넓은 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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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默念) / 김소월
이슥한 밤, 밤기운 서늘할 제
홀로 창(窓)턱에 걸어앉아, 두 다리 늘이우고,
첫 머구리 소리를 들어라.
애처롭게도, 그대는 먼첨 혼자서 잠드누나.
내 몸은 생각에 잠잠할 때. 희미한 수풀로써
촌가(村家)의 액(厄)막이 제(祭)지내는 불빛은 새어오며,
이윽고, 비난수도 머구 소리와 함께 잦아져라.
가득히 차오는 내 심령(心靈)은…… 하늘과 땅 사이에.
나는 무심히 일어 걸어 그대의 잠든 몸 위에 기대어라
움직임 다시없이, 만뢰(萬??)는 구적(俱寂)한데,
조요(照耀)히 내려 비추는 별빛들이
내 몸을 이끌어라, 무한(無限)히 더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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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꿈 / 김소월
봄 새벽의 몹쓸 꿈
깨고 나면!
우짖는 까막까치, 놀라는 소리,
너희들은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봄철의 좋은 새벽, 풀이슬 맺혔어라.
볼지어다, 세월(歲月)은 도무지 편안(便安)한데,
두새없는 저 까마귀, 새들게 우짖는 저 까치야,
나의 흉(凶)한 꿈 보이느냐?
고요히 또 봄바람은 봄의 빈 들을 지나가며,
이윽고 동산에서는 꽃잎들이 흩어질 때,
말 들어라, 애틋한 이 여자(女子)야, 사랑의 때문에는
모두다 사나운 조짐(兆朕)인 듯, 가슴을 뒤노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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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공명(富貴功名) / 김소월
거울 들어 마주 온 내 얼굴을
좀더 미리부터 알았던들,
늙는 날 죽는 날을
사람은 다 모르고 사는 탓에,
오오 오직 이것이 참이라면,
그러나 내 세상이 어디인지?
지금부터 두여덟 좋은 연광(年光)
다시 와서 내게도 있을 말로
전(前)보다 좀더 전(前)보다 좀더
살음즉이 살련지 모르련만.
거울 들어 마주 온 내 얼굴을
좀더 미리부터 알았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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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 / 김소월
오오 안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묶어준 짝이라고
믿고 살음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나운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情分)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限平生)이라도 반백년(半百年)
못 사는 이 인생(人生)에!
연분(緣分)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려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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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헝새 / 김소월
간밤에
뒷 창(窓) 밖에
부헝새가 와서 울더니,
하루를 바다 위에 구름이 캄캄.
오늘도 해 못 보고 날이 저무네.
* 부헝새 : [형] 서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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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수 하는 맘 / 김소월
함께 하려노라, 비난수 하는 나의 맘,
모든 것을 한짐에 묶어 가지고 가기까지,
아침이면 이슬 맞은 바위의 붉은 줄로,
기어오르는 해를 바라다 보며, 입을 벌리고.
떠돌아라, 비난수하는 맘이어, 갈매기같이,
다만 무덤뿐이 그늘을 어른이는 하늘 위를,
바닷가의. 잃어버린 세상의 있다던 모든 것들은
차라리 내 몸이 죽어 가서 없어진 것만도 못하건만.
또는 비난수 하는 나의 맘, 헐벗은 산(山) 위에서,
떨어진 잎 타서 오르는, 냇내의 한줄기로,
바람에 나부끼라 저녁은, 흩어진 거미줄의
밤에 매던 이슬은 곧 다시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함께 하려 하노라, 오오 비난수 하는 나의 맘이여,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에는
오직 날과 날이 닭 소리와 함께 달아나 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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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 / 김소월
나는 혼자 뫼 위에 올랐어라.
솟아 퍼지는 아침 햇볕에
풀잎도 번쩍이며
바람은 속삭여라.
그러나
아아 내 몸의 상처(傷處)받은 맘이여
맘은 오히려 저프고 아픔에 고요히 떨려라
또 다시금 나는 이 한때에
사람에게 있는 엄숙을 모두 느끼면서.
* 저프고 : 저프다('두렵다'를 옛스럽게 이르는 말)의 활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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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 위에 / 김소월
산(山) 위에 올라서서 바라다보면
가로막힌 바다를 마주 건너서
님 계시는 마을이 내 눈앞으로
꿈 하늘 하늘같이 떠오릅니다
흰 모래 모래 비낀 선창(船倉)가에는
한가한 뱃노래가 멀리 잦으며
날 저물고 안개는 깊이 덮여서
흩어지는 물꽃뿐 안득입니다
이윽고 밤 어두운 물새가 울면
물결조차 하나 둘 배는 떠나서
저 멀리 한바다로 아주 바다로
마치 가랑잎같이 떠나갑니다
나는 혼자 산(山)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해 붉은 볕에 몸을 씻으며
귀 기울고 솔곳이 엿듣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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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 김소월
낙엽(落葉)이 발이 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섬푸레히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東)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 눈물, 구름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붉으스레 물 질러 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半)달은 중천(中天)에 지새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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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과 사(死) / 김소월
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그러하면 그 역시(亦是) 그럴듯도 한 일을,
하필(何必)코 내 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오늘도 산(山)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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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의 덩이 / 김소월
꿇어앉아 올리는 향로(香爐)의 향(香)불.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초닷새 달그늘에 빗물이 운다.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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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樹芽) / 김소월
설다 해도
웬만한,
봄이 아니어,
나무도 가지마다 눈을 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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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 몸 / 김소월
들고 나는 밀물에
배 떠나간 자리야 있스랴.
어질은 안해인 남의 몸인 그대요
아주, 엄마 엄마라고 불니우기 전(前)에.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 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 밤이여
그지없이 거룩한 하늘로써는
젊음의 붉은 이슬 젖어 내려라.
행복(幸福)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 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복(福)받았어라.
뻗어 뻗어 오르는 가시덩굴도
희미(稀微)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기름 같은 연기(煙氣)에 멱감을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 들어라.
우긋한 풀대들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永遠)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 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은(銀) 슷듯이 오는 바람은
눅잣추는 향기(香氣)를 두고 가는데
인가(人家)들은 잠들어 고요하여라.
하루 종일(終日)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農夫)들도 편안(便安)히 잠들었어라.
영 기슭의 어득한 그늘 속에선
쇠스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더욱 잦을 때
나락밭 가운데의 우물 물가에는
농녀(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宇宙)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의 울음의 넘는 곡조(曲調)요.
아아 기쁨 가득한 여름 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은 목숨의
정열(情熱)에 목맺히는 우리 청춘(靑春)은
서늘한 여름 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農村)에서 지나는 여름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人間)에 이 세상에 다시 있으랴.
조그만 괴로움도 내어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기울이며
흰달의 금물결에 노(櫓)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讚揚)하여라 좋은 한때를
흘러가는 목숨을 많은 행복(幸福)을.
여름의 어스러한 달밤 속에서
꿈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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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旅愁) / 김소월
一
유월(六月) 어스름 때의 빗줄기는
암황색(暗黃色)의 시골(屍骨)을 묶어 세운 듯,
뜨며 흐르며 잠기는 손의 널쪽은
지향(指向)도 없어라, 단청(丹靑)의 홍문(紅門)!
二
저 오늘도 그리운 바다,
건너다 보자니 눈물겨워라!
조그마한 보드라운 그 옛적 심정(心情)의
분결 같던 그대의 손의
사시나무보다도 더한 아픔이
내 몸을 에워싸고 휘떨며 찔러라,
나서 자란 고향(故鄕)의 해 돋는 바다요.
* 시골(屍骨) : [명] 죽은 사람의 뼈.
널쪽 : 홍살문의 붉은 살을 표현한 대목인 듯함.
홍문(紅門) : 홍살문의 준말. 능(陵)원(園)묘(廟).궁전(宮殿) 등의 정면에 세웠던 붉은 색칠을 한 문. 지붕없이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붉은 살을 박은 문.
사시나무 : [명] 백양(白楊). 버드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산 중턱 밑의 화전(火田) 터에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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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 김소월
이바루
외따로 와 지나는 사람 없으니
밤 자고 가자 하며 나는 앉어라.
저 멀리, 하느편(便)에
배는 떠나 나가는
노래 들리며
눈물은
흘러나려라
스르르 내려 감는 눈에.
꿈에도 생시에도 눈에 선한 우리 집
또 저 산(山) 넘어 넘어
구름은 가라.
* 이바루 : 이 정도(일정한 정도의 거리나, 대략적인 거리의 정도를 지칭하는 말. 평북방언).
하느편(便) : [명]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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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침(鴛鴦枕) / 김소월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窓)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베개요
봄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
두동달이베개는
어디 갔는고
언제는 둘이 자던 베갯머리에
죽쟈 사쟈 언약도 하여 보았지.
봄 메의 멧기슭에
우는 접동도
내 사랑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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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색(月色) / 김소월
달빛은 밝고 귀뚜라미 울 때는
우둑히 시멋 없이 잡고 섰던 그대를
생각하는 밤이여, 오오 오늘밤
그대 찾아 데리고 서울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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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 김소월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 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心事)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 하나이 : 하나가. 주격조사 '-가'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이'가 주로 사용되었다.
허수한 : [형] 공허하고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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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紫朱) 구름 / 김소월
물 고운 자주(紫朱) 구름,
하늘은 개여 오네.
밤중에 몰래 온 눈
솔숲에 꽃피었네.
아침볕 빛나는데
알알이 뛰노는 눈
밤새에 지난 일은……
다 잊고 바라보네.
움직거리는 자주(紫朱)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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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치마 /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 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치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 집난이 : [명] 시집간 딸.
함빡히 : [부] 함빡. 흠뻑의 작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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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合掌) / 김소월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 빛은 배여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燈)불 빛에 거리는 헤적여라, 희미(稀微)한 하느편(便)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힌,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四方)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하고, 더 안가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감고 마주서서.
먼먼 산(山). 산(山)절의 절 종(鍾)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 헤적여라 : 헤적거리는.
가까힌 : 가까운. 가까이에는.
이마즉 : 아마직. 거리의 정도를 나타내는 이만큼의 약한 말인 이마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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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촉(黃燭)불 / 김소월
황촉(黃燭)불, 그저도 까맣게
스러져 가는 푸른 창(窓)을 기대고
소리조차 없는 흰 밤에,
나는 혼자 거울에 얼굴을 묻고
뜻없이 생각없이 들여다보노라.
나는 이르노니, 우리 사람들
첫날밤은 꿈속으로 보내고
죽음은 조는 동안에 와서,
별(別) 좋은 일도 없이 스러지고 말어라.
* 황촉(黃燭)불 : [명] 밀초불. 밀랍으로 만든 초에 켜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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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길 / 김소월
어버이님네들이 외우는 말이
딸과 아들을 기르기는
훗길을 보자는 심성(心誠)이로라..
그러하다, 분명(分明)히 그네들도
두 어버이 틈에서 생겼어라.
그러나 그 무엇이냐, 우리 사람!
손들어 가르치던 먼 훗날에
그네들이 또다시 자라 커서
한결같이 외우는 말이
훗길을 두고 가자는 심성(心誠)으로
아들딸을 늙도록 기르노라.
1920년대 민요조 서정시인
평북 정주 출생
오산중학 시절 스승인 김억(金億, 김안서)의 추천으로,
[창조(創造)] 5호에 <낭인(浪人)의 봄> 등 5편 의 작품을 발표
1922년부터 김억의 주선으로 [개벽(開闢)]지를 통해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 <못잊어> 등 발표
1923년에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1924년 김동인 등과 함께 [영대(靈臺)] 동인으로 활동
민요조의 고운 가락, 그리움의 애달픈 정서 표현
1934년 12월 사업의 실패와 세상에 대한 실의로 고민하다 자살
1925년 그의 생전에 [진달래꽃] 출간
그의 사망 후 1939년 김억의 주관 하에 [소월시초(素月詩抄)] 발간
첫댓글 아이구~ 시집 한권이 올라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