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클 제887차 제7기 신곡 지옥편 제10곡 Zoom Meeting (07) 2022-02-19
지옥편 제10곡 (Inferno Canto 10)
에피큐로스와 그의 추종자들
사회: 김용동선생 강사: 김태연 선생
●<제 10곡 개요>
1. 버질이 단테의 궁금증을 풀어줌(1-21)
2. 단테의 첫번째 파리나타와의 대면(22-51)
3. 방해: 단테가 카발칸티와 대화를 나눔(52-72)
4. 단테의 두번째 파리나타와의 대면(73-114)
5. 스승의 배려와 격려(115-136)
1. 줄거리
지옥6옥은 이단과 회의론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기벨린당의 지도자 파리나타(Farinata)와 궬피당의 카발칸티(Cavalcanti) 및 프리드리히2세, 추기경을 만난다. 이들은 모두 영혼의 불멸을 부정한 에피쿠로스(Epicurus,행17:18)주의자이다.에피쿠로스(B.C.342-270)는 그리스 철학자로서 '최상의 선은 행복'이라고 주장했으며, 그것은 감각적 즐거움이 아니었고 마음의 평안이었다. 후일 에피쿠로스를 감각적 쾌락주의자로 본 것은 오해이다. 단테는 무덤 가운데를 지나며 묻고, 버질의 답변을 든는다(1-21). 두 시인이 성벽아래 길을 따라갈 때 망령 하나가 단테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토스카나 사람임을 알아본다. 불타는 무덤 속에서 단테를 부르며 그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파리나타(1264년-사망)였다. 그의 풍채가 지옥자체를 압도하는 것 같다. 그는 단테의 족보를 묻고 곧 자기의 반대당파임을 알아본다. 그들은 피렌체의 정쟁에 대하여 대화를 주고받는다(22-51). 곧 같은 무덤에서 일어선 다른 망자에 의해 그들의 이야기는 방해를 받는다. 저는 구이도 카발칸티의 아버지 카발칸테 데이 카발칸티이다. ‘그대 천재(天才)로 이 엄청난 여행을 감행한다면, 왜 내 아들은 동행하지 않았소?’라고 묻는다. 단테는 내 힘으로 여기 온 것이 아니고, 그대의 아들 구이도(Guido)가 싫어하는 분(베르길리우스)의 도움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부(父) 카발칸티 디 카발칸티(Cavalcanti De Cavalcanti)는 단테의 말을 듣고 아들은 죽었다고 지레 짐작하고 뒤로 넘어진다(52-72). 파리나타는 동료의 행동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변호를 계속한다. 그는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변호하고 단테의 질문에 답해준다(73-93). 망령들은 미래를 예견할 수 있으나 현재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설명해준다. 그리고 함께 있는 자들 중의 두 명의 이름을 말해준다. 단테는 그의 정적 파리나타에게 상당한 존경을 표시하고, 엎어진 자(카발칸티)의 아들 구이도가 아직 살아있다고 말한다(94-136).
2. 본문강의
1) 버질이 단테의 궁금증을 풀어준다(1-21행)
‘배신의 환(環)(4행)’은 불신(不信) 혹은 불경(不敬)의 환옥(環獄)들이다. ‘여호사밧(요엘3:2,12)’은 예루살렘 밖의 골짜기(기드론)이며 최후의 심판(審判)이 이곳에서 행해진다고 중세인들은 믿었다(11행). 에피쿠로스(Epicurus, 342-270BC)는 철학파의 창시자이며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인 제논과 동시대인이다. 그는 지상(地上)의 행복(幸福)이 인간의 최종목표(最終目標)라고 했다. 그의 학설은 쾌락설이나 육감적 쾌락주의자는 아니었다. 단테는 그가 영혼불멸(靈魂不滅)의 부정, 내세(來世)부정, 그리고 신의 존재(存在)를 부정했기 때문에 철저히 정죄했다. 세이어(Sayers)는 15행 (영혼이 육체와 함께 죽는다)이 에피쿠로스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동양사회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나 단테의 스승에 대한 관계는 수직적(垂直的) 권위(權威)에 대한 복종(服從)이나, 현대는 그물망사회(Network Society)로서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재설정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교육이 기능적(機能的)이며 지식매매(知識賣買)의 경향(傾向)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크게 우려되는 바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초등학교 졸업식 노래의 일절이 그리워진다. 단테의 마음을 다 읽어내는 스승(17행)이 돋보인다.
2) 파리나타와의 정쟁(政爭) 이야기(22-51행)
① 지옥을 압도할 듯한 파리나타의 풍모(風貌)(22-39행).
‘토스카나는 지방명이고 피렌체는 그 안에 있는 도시이름이다. 단테의 고향인 토스카나어는 현대 이탈리아어의 모체이고, 신곡은 토스카나어로 쓰여졌다.
② 파리나타(32행)는 피렌체 기벨린당의 지도자(AD1239)이다.
단테는 지옥 6곡79행에서 그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그의 지도하에 두 번이나 궬피당을 몰아냈다가 자신도 나중에는 추방되었다. 1264년에 죽었고, 1283년에는 이단(異端)으로 정죄되었다. 그가 죽은 지 1년 후(1265)에 단테가 출생했다. ‘저들이 쫓겨나긴 했어도(49-51행)’, 궬피당은 2번(1248,1260년)추방되었다가, 2번(1251,1266년)째 피렌체로 돌아와 그후 기벨린당을 다시 발붙이지 못하게 했다. 단테는 원수요 정적이었던 파리나타를 위풍당당하게 묘사했고 심지어 존경까지 했다. 그는 지옥무덤에 누워있으면서도 지옥을 경멸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36행). ‘재주(51행)’는 Art(Ciardi 역),혹은 Trick(Sayers 역)등의 다양한 번역이 있다. 피렌체를 탈취(奪取)하는 기술(技術)이다. ‘저들(46행)’은 궬피당이며 ‘내 당파(47행)’는 기벨린당이다. 43-51행은 단테 출생이전 의 피렌체의 정쟁(政爭)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보여준다. 파리나타가 죽은 지 36년 후에 지옥에서 그를 만난 셈이다. 파리나타가 이곳에 있는 것은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신봉(信奉)했기 때문이다.
3) 구이도의 아버지가 끼어들다(52-72행)
‘그 곁에 한 혼령(52-54행)’은 카발칸테 데이 카발칸티(Cavalcanti)이다. 그는 단테의 친구인 구이도 카발칸티의 아버지이며 궬피당의 기사이다. 구이도는 파리나타의 사위이기도하다. 단테의 첫작품 ‘신생’은 그에게 바쳐졌다. 둘의 우정은 깨어졌다. 구이도 역시 에피쿠로스 이단이었다. ‘그 곁에’는 파리나타와 같은 무덤 속에 있다는 뜻도 되고, 옆의 무덤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전자가 맞을 것 같다. 궬피당은 그 후 백당(Neri)과 흑당(Bianchi)으로 분당, 단테와 구이도의 우정은 정치적 문제로 금이 갔다. 단테가 구이도의 추방 결정에 동참했다고 한다. 같은 운동권 동지들이 여야로 갈라져 정적이 되어 우정이 깨어진 사례는 우리 정치권에서도 흔히 보는 바이다. 단테와 구이도가 적(敵)이 된 것은 정파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더 근원적인 것은 구이도가 이단사설(異端邪說)에 빠져있기 때문이었다. 구이도의 아버지는 왜 구이도가 동행하지 않았는가?(70-72행)를 묻자 단테는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내세(來世)’에 관한 사상을 구이도가 업신여겼다고(61-63행) 대답한다. 단테는 천재적 능력으로 여기 온 것이 아니고 스승의 안내로 여기 왔고, 구이도가 스승을 업신여겼기에 여기 함께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너 무어라고 말했느냐? 그가 ~어겼다고 (61-68행)’하면서 아들이 죽은 것으로 단정하고 뒤로 넘어진다(70-72행). 구이도의 아버지는 궬피당의 기사였다. 그는 파리나타에 비해 퍽 정적이다. 둘은 반대당이면서 한 무덤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나 둘 다 에피큐리안이다. 둘은 퍽 대조적이다. 파리나타는 허리춤까지 보였고, 구이도의 아버지는 턱만 보였다. 전자는 정치에 후자는 아들에 관심이 있다. 전자는 의지의 사나이, 후자는 눈물의 사나이, 전자는 애국지사형, 후자는 다정다감한 아버지형이다. 단테는 10곡에서 파리나타의 큰 키, 튼튼한 사지백체, 그의 웅변, 무공 등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단테의 현실정치에의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4) 파리나타와 다시 이야기하다(73-114행)
① 파리나타는 옆에서 고꾸라져도 얼굴, 목 그리고 옆구리를 꿈적도 하지 않았다(73-75행)
파리나타는 자기당파의 사람들이 피렌체로 돌아오는 재주(기술, 전술)를 아직 익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 관 속에 있는 고통보다 더하다(76-78행)고 말한다. ‘여기를 다스리는 마나님(79행)’은 달(Moon)이다. ‘쉰 번 타기 전에(80행)’는 달이 비치는 50개월 전이라는 뜻이다. 단테가 50개월 이내에 추방당할 것이라는 예언(Ciardi 역)이라고도 하고, 50개월 내에 고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해석(岩波 文庫,p240)하는 사람도 있다. 그 재주(기술)가 어떤 것을 가리키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파리나타가 단테에게 불길한 예언을 했다. 단테의 ‘재주’에 대한 파리나타의 반격은 단테를 실망에 빠트렸다. 궬피당이 피렌체를 마침내 장악하고 파리나타 일당의 피렌체 귀환을 금지한 이유를 단테가 설명해준다(82-85행).파리나타의 변호의 말이 계속된다(88-93행). 파리나타는 애국자임을 단테도 인정한다.
② 단테는 파리나타를 통하여 망자들이 미래를 예견(豫見)하나 현재의 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97-108행),구이도의 아버지께 구이도가 살아있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109-114행). 구이도는 1300년8월에 죽었다.
5)스승의 배려와 격려(激勵)(115-136행)
단테는 파리나타를 통하여 프레드릭 2세(AD1194-1215)와 추기경(1273년-사망)도 에피큐리안으로서 여기 묻혀있음을 알아낸다. 단테는 파리나타의 불길한 예언을 생 각하고 있으나(126행), 스승은 자기 손가락을 세우며(129행), 베아트리체 앞에 설 무렵(131행), 생애의 길을 안내 받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파리나타의 불길한 예언은 단테를 낙담케 했을 것이나, 스승의 격려는 단테를 살렸다(121-132). 스승의 ‘손가락’은 위를 보라는 것 즉 신앙(信仰)의 길이다. 10곡은 에피쿠로스 이단자(異端者)들이 지옥 6환 무덤에서 고통(苦痛)당하고 있음을 그렸다. 파리나타, 구이도, 구이도의 아버지, 프레드릭2세, 추기경 그리고 천여명의 망자들은 모두 현세주의자(現世主義者)들이었다. 단테가 에피쿠로스의 철학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그들이 내세와 하나님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단테는 진리와 정의에 충실한 사람임을 우리는 인정하지만 역시 그도 중세인의 한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세의 가톨릭은 이단 정죄에 민감했다. 단테가 속한 가톨릭은 정통표준이고 기타의 종파는 인정하지 않았다. 종교개혁 당시 서로가 인정하지 않으므로 종교전쟁 까지 치르는 비극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은 타종교와의 대화및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다. 그러므로 이단시비는 극히 신중해야한다.
(2005.12.8 홍응표씀) 2016. 1.2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