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달의 들판은 싱그럽기가 그지없다.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의 눈부심, 장다리의 노란 꽃, 토끼풀의 흰 꽃, 여러 종류의 꽃이 앞 다투어 뿜어내는 오방색의 자태, 푸른 하늘과 대지의 초록색이 어울려 대자연은 거대한 향연이 펼쳐진다. 그 사이에 있는 공기는 찬란한 무지개를 품어낸다. 나무 이파리는 잎맥이 굵어지면서 뚜렷해진다. 산과 들에는 연한 초록색을 벗어나 갈맷빛으로 변해간다. 모내기를 하고 있는 들판에 어린모가 논배미를 초록색으로 서서히 뒤덮는다. 5월 중순부터 6월초가 모내기 제철이다. 모내기는 제 날짜에 끝을 나야 하므로 이 시기는 사람도 들판도 분주해 진다. 그래서 이때는 '발등에 오줌 싼다.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별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다.
열대여섯 살 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농촌에서는 소, 리어카, 쟁기, 써레, 지개, 탈곡기 등의 농기구로 농사를 지었다. 주로 동물의 힘을 빌리거나 탈곡기와 같이 사람의 힙으로 돌아가는 최소한의 동력을 이용했다. 나머지는 사람의 힘으로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짓다보니 농촌사람들의 몸은 골병이 들었고 햇빛에 거슬려 검은 얼굴과 팔다리, 이마에 굵은 주름, 몰골이 초라하면서 볼 폼이 없었다. 일 년 농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철이 모내기 하는 시기다. 모내기를 제날짜에 잘해야 가을 수확에 차질이 없다. 모내기는 동네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품앗이를 하지만 농사가 많은 집에서는 놉을 들여서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 하는 일꾼들의 복장은 팔과 다리에 있는 옷을 둥둥 걷어붙이고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깡총하게 동여맨다. 그리고 밀짚모자나 수건을 머리에 쓰고 일을 한다. 해가 뜨기 전에 논배미에 도착을 하면 주인은 일꾼에게 담배를 한 갑씩 돌린다. 그리고 술도 한 사발씩 마시도록 옹가지에다 표주박을 띄워 놓는다. 힘든 농사일은 밥 심과 술심으로 일을 한다. 그리고 힘든 노동을 한가치의 담배 연기로 날려 보낸다. 술을 한 사발씩 마신 일꾼들은 먼저 모판에서 모를 찐다. 모를 찌는 사이에 소가 써레질을 하여 논배미를 고른다. 일꾼들은 높낮이가 정리된 논배미로 모춤을 옮긴다. 모내기 준비를 마친 일꾼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면서 한숨 돌린 후 모를 심기 시작한다.
못줄을 잡는 사람은 신참이거나 노인으로 한사람 일손 몫을 못하는 사람이 잡는다. 먼저 장줄의 모를 심어 놓는다. 장줄이란 세로로 심은 모를 말하는데 모심는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표시를 하는 것이다. 일꾼들이 못줄 뒤에 늘어서서 못줄에 빨간색으로 표시한 나뱅이(눈표)에 모를 심어 나간다. 모를 심는 요령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여 일렬로 나란히 선 다음 자신에게 주어진 간격을 심어 나간다. 물론 이 간격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꾼들 간에 서로 조정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이 서툰 사람은 좁은 구역을 심게 되며 능숙한 사람은 넒은 구역을 담당한다.
모가 어느 정도 심겨졌으면 못줄을 잡은 일꾼이 '어이' 혹은 '넘겨' 하면서 못줄을 넘긴다. 못줄을 넘길 때도 양쪽에서 서로 호흡이 맞아야 한다. 한쪽에서는 넘기고 한쪽에서는 넘기지 않으면 일이 늦어진다. 모를 심는 사람은 자기 앞에 있는 구역에 모를 심고 허리를 편다. 손놀림이 재빨라야 허리를 펼 시간이 있다. 미쳐 못 따라 심으면 연신 못줄에 걸린다. 그러면 일꾼들이 지청구를 준다. 간혹 일을 빨리하고 많이 할 욕심으로 주인이 못줄을 잡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못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일꾼들이 잠시도 허리를 펼 시간이 없다. 그러면 나이가 주인보다 많은 일꾼이 '이 집 주인은 번갯불에 콩 꾸어 처먹는가? 못 줄 넘어가는 속도가 번갯불 보다 빨라.' 하면서 궁시랑 거리면 못줄 넘기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 당시는 농약을 잘 쓰지 않으므로 논에는 거머리가 많다.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때어 내면서 손으로 연신 허리를 두들겨 가면서 심는다. 모내기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어스름할 때까지 계속된다. 허리를 구부렸다 펴기를 하루 종일 반복하므로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잠시도 한눈 팔 시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이런 힘들고 지루함을 없애기 위하여 걸쭉하면서도 야한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한바탕 웃기도 한다. 그것도 바닥이 드러나면 농요를 구수하게 부른다. 상주 모심기 노래 중에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많아야 보면 병이 난다. 담배씨 만큼 만 보고 가소.' 라든가 '이베미 저베미 다 심어놓고 또 한 베미가 남았구나. 지가야 무슨 반달이냐 초생 달이 반달이지.' 라는 재미있는 구절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것도 밑천이 달리면 그 당시 많이 불렀던 유행가를 떼창으로 부른다.
이렇게 한참을 심다보면 새참시간이다. 새참으로는 주로 국수가 나온다. 시원한 멸치 국물에 바가지 가득 담은 국수를 먹는 맛은 지금 생각해도 입에서 군침이 돈다. 이따금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국수를 먹어보지만 그때 그런 감칠맛이 나지 않았다. 새참 먹고 좀 쉬었다가 다시 모심기를 한다. 두어 시간 일하고 나면 점심때다. 점심 반찬은 푸짐하다. 각종 나물에다가 고등어 지짐도 있다. 모심을 때 바가지에 먹는 밥은 집에서는 좀처럼 맛보지 못하는 진수성찬이다. 바가지에 고추장을 덤뻑 떠 넣고 나물하고 비벼 먹으면서 고등어를 한 점식 뜯어 먹는다. 그 비릿하면서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맴돌면 막걸리로 입가심을 한다. 술심이 없으면 힘든 일을 할 수가 없으므로 막걸리를 마셔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당당하게 품삯을 받고 한 몫을 하는 일꾼이므로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어른 앞에서 예의를 지켜가면서 동네형님들 틈에 섞여 시나브로 마시면 된다. 이런 맛으로 일요일이나 가정실습 때 어머니를 따라 모심기 가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해질녘이 되면 일이 끝난다.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몸은 파김치가 된다. 손과 발은 물에 퉁퉁 불었고 옷은 논물이 띄어 얼룩덜룩해져 얼룩무늬 옷이 되었다. 옷 밖으로 들어난 팔과 다리는 봄볕에 그을려 발갛게 익었다. 못 마시는 술을 마시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은 붉다 못해 검붉다. 어머니는 아들의 이런 몰골에 마음이 편치 않으신지 다음에는 데려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그날 받은 품삯을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나는 품삯을 도로 어머니 호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어주면 가타부타 말씀도 없이 모른척하신다. 어려운 살림에 품삯은 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므로 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일 할 때 받았던 담배는 아버지에게 드린다. 아버지는 '술 많이 마시지 마라.' 라는 말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 부모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어도 속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이해했던 속이 옹골차게 찬 아들이었다.
지금은 이앙기, 콤바인, 트랙터, 관리기 같은 동력기계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는다. 사람의 노동력이 그다지 필요치 않다. 모내기도 이앙기로 하고 있다. 기계가 일정한 속도와 간격으로 모를 심는다. 사람이 손으로 모내기 하는 것 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모내기가 다 끝난 논에는 주인이 제대로 땅에 심어지지 않은 뜬 모를 다시 심으면서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이앙기가 심을 수 없는 구석진 곳은 허튼모를 심는다. 다랭이 논이나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논배미는 요즘도 못줄을 이용하여 손으로 모를 심는다. 그리고 산골 논배미는 가족이 허튼모를 심기도 한다. 일부 마을에서는 손 모내기를 농촌체험으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기계로 모를 심으니가 언제 모내기를 했는지도 모르게 들판은 초록으로 변한다. 힘들이지 않고 일이 빨리 끝나는 게 좋지만 옛날 정취가 사라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일 년 농사 중에서 모내기를 하는 달이나 벼 타작하는 달이 가장 풍요롭다.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모을 심는 달에는 각종 채소, 감자, 완두콩, 가지, 오이 등 반찬을 만드는 종류와 먹거리가 풍부하고 날씨도 좋다. 타작을 하는 달에는 모든 곡식을 결실하는 계절이므로 눈만 돌려도 사방 천지가 먹거리로 가득하다. 그때 모를 같이 심었든 어른들은 거의 다 돌아 가셨다. 살아 계시는 마을 어른을 만나면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아쉬워한다. 지금도 가장 생각나는 추억은 바가지에다 밥을 먹는 것과 사발로 마시는 막걸리 맛이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과 옛일이 자주 생각나는 일은 무슨 조화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