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1775년∼1817년)의 작품 중 하나인‘이성과 감성’은 그녀의 첫 작품이다. 제인 오스틴은 열한 살 때 이미 풍자희곡 등을 써 부모님을 놀라게 할 정도로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녀가‘이성과 감성’을 쓰기 시작한 스무 살 무렵인 18세기말경의 영국은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었고, 프랑스는 시민혁명이 있었던 격변기였다. 여자들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시기였다.
그녀의 작품 중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맨스필트 파크 세 편을 읽었는데 결혼 적령기에 이른 여자들의 연애사가 주된 이야기였다. 두 작품은 최근에 읽었던‘21세기 자본’에서 계속 거론된 작품들이기도 하다.
너무나 통속적인 이야기도 소설로 훌륭히 제 역할을 하고 있음에 놀랍다. 아마도 제인 오스틴의 풍자적이고 위트 넘치는 필치가 현실적이다 못해 속되기까지 한 이야기를 잘 살려낸 요소가 아닌가 싶다. 당시의 풍속과 현재의 우리의 삶과 접점이 되는 부분들은 반갑기도 해 더 재미있었고, 인물의 성격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 그들의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속재산의 전부가 오빠와 조카의 차지가 된다.
게다가 엘리너(19살), 메리앤(17살), 마거릿(13살) 세 자매와 어머니는 그들이 살고 있던 노어랜드파크로 이복오빠가 들어오면서 집을 비워줘야 할 처지에 놓인다. 세 자매와 어머니에게 남겨진 재산은 총 1만파운드가 전부인 상태에서 어머니의 먼 친척의 호의로 싼 셋집을 구해 이사를 하게 된다.
새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는 결혼적령기에 이른 그들에게 연애와 결혼 문제에 자연스레 맞닥뜨리는 계기가 된다.
언니인 엘리너는 분별 있고 감성적이긴 하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반면, 메리앤은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열정적인 아가씨다.
엘리너는 올케인 패니의 남동생 에드워드와 사랑하게 되나, 그의 집안의 반대, 그의 약혼녀 루시의 등장 등 여러 가지 여건이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메리앤은 산책 중 폭우 속에서 발을 삔 자신을 안아서 집까지 데려다 준 윌러비와 사랑에 빠진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이 결혼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만큼 메리앤은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고 열렬히 사랑을 했다. 메리앤을 짝사랑하는 브랜던이 있으나 그녀에게는 오직 윌러비만 보일 뿐이다. 윌러비는 잘생겼고 생기발랄하나 낭비가 심한 젊은이로 메리앤을 사랑하지만 부자인 그레이양과 결혼을 한다.
엘리너는 에드워드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고 실연의 상처를 조용히 삭히며 지내다 루시가 결혼한 상대는 에드워드가 아닌 그의 동생 로버트임을 알게 된다. 에드워드는 철없던 어린 시절 약속한 약혼이란 족쇄에서 풀려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엘리너 앞에 나타난다.
그들은 재산이 없는 엘리너를 반대했던 어머니의 도움 없이 브랜던의 영지에 속하는 목사관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메리앤은‘아무도 인생에서 한 번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깨고 브랜던을 사랑하게 되어 그와 결혼을 한다.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의 연5% 이자수입 또는 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특별히 일을 하지 않아도 하인 여러 명을 거느리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끼리 모여 파티를 하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여행을 하고, 수다를 떨거나 때로는 토론도 하며 소일하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 하인은 결코 주요인물로 아니,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인은 그저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일손일 뿐이다.
끊임없이 재산의 소유 정도가 언급되고 또 결혼의 조건으로 간주되는 것을 보며 200여 년 전의 모습인데 현재와 조금도 달리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일찌감치 물질주의적이어서 놀라왔다.
뒤로 가면서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감정이나 행동에 대한 너무나 세세한 설명들, 윌러비의 비열한 행위에 장황하게 변명할 기회까지 제공되고, 읽다가 언제 끝나나 싶어 계속 남은 페이지를 확인하고 …
두 자매의 다른 성향은 연애와 실연에 대처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엘리너는 다정다감하나 매사에 신중하여 결정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미리 드러내는 경망함이 없다. 반면 메리앤은 자신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하며 그 외의 사항은 그녀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실연으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한 열병을 앓는다. 엘리너는 자신의 실연의 고통보다 에드워드의 배우자감이 천박함에 그가 안쓰러워 더 마음을 쓰고 괴로워한다.
두 자매 중 나는 어느 편에 가까운가를 생각해 본다. 성향은 메리앤 쪽에 더 가까움에도 첫사랑에 대한 대처는 엘리너와 비슷했던 것 같다. 사랑의 불 속에 뛰어들지 못하고 남의 일인 양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한 것 같다.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사랑의 감정이 내 안에 깃든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했었다. 상대는 내 옆에 있든 없든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보편적 시각에서 보면 온전한 사랑이 아니다.
이런 생각 자체가 실연의 고통 속으로 함몰되지 않으려는 자기합리화는 아니었을까? 헤어짐을 미리 염두에 두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자세였을까? 사랑에 관한한 비겁한 일이었지 싶다. 내가 그를 정말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이 세월이 지나면서 수시로 들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은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듯싶다. 그저 달콤한 감정의 유희다. 고통이 배제된 …
사랑도 배워야 하는 건 아닐까? 사랑의 감정 속에 푹 빠질 수 있는 방법. 처음이란 미숙함을 동반한다. 예전에 나를 휘감고 돌았던 감정이 아닌, 처음 느끼는 감정이기에 그 감정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사랑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밀고 가는,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드는 메리앤이 진정한 사랑을 한 것은 아닐까? 뒷날을 생각 않고 현재에 충실한 것. 비록 실패했을 때의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함에도 말이다. 그래야 후회도 남지 않을 것 같다. 하여 나는 부르짖는다. 사랑은 전부를 걸어야 한다. 메리앤처럼.
그래도 아픈 건 싫다. 결국 사랑을 피할 수밖에 없는 성향 ㅋㅋ
윌러비, 에드워드, 브랜던 세 남자 중에 진정한 남자는 브랜던 밖에 없다. 윌러비는 자신의 순간의 감정에 따라 행동할 뿐 더러 비겁하고 천박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원하던 조건을 위해 자신을 파는 행위이다.
이 작품에서 자신의 감정 표현이 가장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 에드워드다.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 하는 것을 보면 책임을 다 하는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으나, 자신에게도, 상대인 엘리너에게도, 그리고 영악한 루시에게도 비겁한 자 일뿐이다.
브랜던은 자신이 사랑하는 메리앤과 잘 되기 위해 윌러비와 자신의 양녀 일라이자의 관계를 폭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함구한다. 윌러비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자 그제서야 윌러비가 어떤 인간인지 말한다. 메리앤이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깨버리고 브랜던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의 고결한 성품 덕이 아닐까?
군데군데 정말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다.
* 오빠인 존 대시우드가 큰 맘 먹고 동생들에게 천 파운드 씩 주겠다고 결심하자 그의 아내
패니는 남편을 설득한다. 오백씩만 주어도 된다고 했다가, 결국에는 이사 갈 때 가구 배치
라든가 사냥해서 잡은 것 중 일부를 보내주는 것으로, 아버지와의 약속(새어머니와 여동생
들을 돌봐 주겠다고 한)을 그만하면 충분히 지키는 것이라며 이야기를 끝낸다. 그녀를 설득
의 여왕으로 칭하고 싶다. 하긴 존 대시우드 또한 아내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 이기에 쉽사리
설득되었을 것이다. 아니 동조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좁은 집에 저토록 좋은 가구,
식기가 옮겨가는 것이 못내 아깝고 아쉬워하는 데에서 그녀의 끝없는 탐욕에 두 손, 두 발
들게 한다. 하여 또 하나의 타이틀을 그녀에게 부여한다. 탐욕의 여신.
* 노래를 시켜놓고 듣지 않고 수다 떠는 미들턴 경(노래방에서도 이런 일 허다함),
수다 떤 남편을 핀잔하며 정작 본인은 직전에 부른 노래 또 신청하는 미들턴 부인
* 아이들이 누굴 닮았는지 화제에 올리기(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아 웃음)
* 이 시대의 연애 풍속 : 반지 속에 애인 머리카락 넣고 다니기, 애인 초상화 갖고 있기,
약혼한 사이에서만 편지 쓰기 가능
* 약혼 : 미래를 함께 하자는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 타인에게는 알리지 않는 비밀?
* 지금과 다른 환경으로 운치를 자아내는 대목 : 달빛이 좋은 날은 모두 선약이 있다.
첫댓글 인간사라는 것이 사람들끼리의 관계-사랑을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사랑받을 줄도 모릅니다.
"모리가 함께 한 화요일"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받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는 말에서 인생을 관통하는 가르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앞세우지만 계산을 바텅으로 '작업'으로서 공략해야하는 전투가 되어버린 사랑,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사랑도 많이 있습니다. 自强不息 해나가면 사랑의 고수가 되어 사랑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석가 법륜스님처럼.
훌륭하신 말씀이고, 옳은 말씀이지만 참, 실행하기는 힘든 저 같은 범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