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看書痴)' 이덕무(李德懋)
선인들의 독서는 일상 자체였다. 위나라 상림(常林)은 밭을 갈면서도 책을 읽었다. 당나라의 이밀(李密)은 쇠뿔에 ‘한서(漢書)'를 걸어놓고, 꼴을 먹이면서도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않았다. 후한의 고봉(高鳳)은 아내가 장을 보러 간 사이 마당에 널어놓은 겉보리가 소낙비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만 읽었다. 홍경로(洪景盧)는 유배지에서 기름이 없어 밤에 책을 읽지못하자, 먼동 트기만을 기다려 창 아래 서서 여명의 빛을 받아 14년간 책을 읽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독서도 과히 광적이다.
그는 스스로를 책읽는 바보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쓴 글에서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를 못하였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도록 일찍이 하루도 손에서 옛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으며 글을 읽었다”고 썼다. 가난한 서얼출신인 그는 남의 책을 베껴주는 품을 팔면서 책을 읽었다. 이뿐만 아니다. 풍열로 눈병이 걸려 눈을 뜰수 없는 가운데 실눈을 뜨고 책을 읽었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 피가 터질 지경인데도 책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치열했다.
▲이런 그가 언급한 독서의 유익함은 그래서 그 울림이 크다. 첫째, 배고픈 것을 잊게 해준다. 속이 비면 책 읽는 소리가 더 낭랑하고, 낭랑한 소리 속에 담긴 뜻을 음미하느라 몰두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추위를 잊게 해준다. 소리내어 읽다보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셋째,근심과 번뇌를 없애준다.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에 고정되고, 마음은 이치에 몰두하므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다. 넷째, 기침을 낫게 한다. 기운이 통하여 막힌 것을 뚫어주기 때문이다.
▲그의 독서예찬론은 춥고 배고픈데 근심많던 가난한 서생의 서글픈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21세기 정보화 시대, 우린 굶주리지도, 춥지도 않지만 책을 읽지 않는다. 프랑스엔 지난 6월 파리 지하철역과 도심에 책 자판기가 설치됐다고 한다. 문화대국의 힘은 바로 책읽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엔 책 자판기에 줄을 서는 풍경은 미래의 이야기 일까. 독서광인 이덕무는 ‘우리같은 무리는 단지 물 마시고 밥 먹고 잠만 퍼잘 뿐'이라고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제 그 부끄러움을 알아야할 때인 것 같다. 가을 달빛 아래 책을 꺼내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