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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도시 생활자의 어린 날의 고향부터 살던 도시 탐구기’라는 긴 부제의 이 책은 저자의 한국어로 저술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출생의 학자로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오랫동안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어로 책을 저술할 정도의 언어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살고 싶은 도시는 어디인가?”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했던 저자에게 던져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저자와 ‘인연이 깊은 여러 도시를 책에 담으면서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려고 했’고, 그렇게 마련된 기획이 이 책의 저술로 이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미국을 떠나 처음 일본에 유학을 하면서 6년여를 살았던 쿄토, 그리고 부산을 거쳐 서울에 정착하면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한국 생활을 했음을 토로하고 있다.
이 책은 2019년에 저자에 의해 출간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의 개정판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존의 저서 내용을 살짝 바꾸는 정도의 단순한 개정이 아닌,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엮어낸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초판에서 참고한 내용조차 문장 그대로 전재하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구성했기에 전혀 다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와 출판자와의 소통과 그에 걸맞은 노력이 빚어낸 결과라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초판을 이미 읽었음에도, 이 책의 내용이 전혀 새롭게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처음부터 한국어로 기획하고 저술하여 출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저자의 한국어에 대한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저자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표현을 구사하고 있기에, 독자들도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이 책에 소개된 도시는 모두 14개로, 저자가 태어난 미국 미시간주의 앤아버를 시작으로 현재 거주하고 있는 미국 로드 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까지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와 뉴욕까지 저자와 인연이 있는 4개의 도시 생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펼쳐놓고 있다. 처음 외국 생활을 했던 일본은 도쿄, 구마모토와 가고시마 그리고 교토에 이르기까지 4개의 도시를 3개의 항목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더블린과 영국의 런던에 대한 생활 경험이 저자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다. 단순히 여행자의 시선으로 관광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느끼고 겪었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하겠다.
이 책이 한국어로 출간되는 만큼 저자의 생활 경험에서 한국의 도시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게 드러나고 있다. 저자가 처음 발을 디뎠던 부산을 비롯하여 저자가 교수로 직장 생활을 했던 서울과 대전, 학회 혹은 관광을 위하여 찾았던 전주와 대구 그리고 인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5곳의 도시 생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각 도시마다 저자가 느낀 감상들이 각 항목의 서술로 제시되어 있는데 예컨대 부산은 ‘이국성, 이 도시의 정체를 드러내는 메타포’라는 표현이며, 서울은 ‘새 시대의 주인공 또는 고립과 쇠퇴의 갈림길’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한 한국의 도시들을 나 역시 대부분 가보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바와 비슷한 면도 혹은 전혀 새로운 관점도 엿볼 수 있었다. 그저 이색적인 면모를 포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자 나름의 애정을 담아 자신이 겪은 도시의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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