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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변기에 사인을 하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마르셀 뒤샹은 천재적인 화가로 불렸지만, 보통 사람들의 견해로는 과연 그것도 작품이 되는지 여전히 궁금하기 짝이 없을 정도라고 하겠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은 예술사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으며, 그때마다 대중들의 비판과 옹호가 뒤따르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을 뒤바꾸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소개함으로써, 뒤샹은 ‘예술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성상 파괴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전문가들에게는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는 현상일 터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사건‘의 하나로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할 때, 아름다움에 대한 의미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의 입장과 그것을 단순히 바라보는 대중들의 관점이 동일할 수는 없을 터이며, 더욱이 작품을 소유하려고 하는 소비자의 처지에서는 작품이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체로 현재의 미술 시장을 바라보는 저자의 비판적인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때로는 저자의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가 있는 내용들도 있었음을 먼저 전제하고자 한다. 책을 덮고 나서 곰곰이 따져보니, 그것은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로서 저자가 바라보는 예술과 단지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로서 바라보는 예술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한 재벌회장이 보유한 예술 작품을 어디에 소장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그로 인해 한동안 언론의 기사거리로 회자되기도 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지역에서 순회전시를 할 때, 지인 가운데 누군가는 이번 기회에 꼭 가서 관람하겠다는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지인이 그 뒤 전시회를 다녀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마감을 앞둔 원고와 싸우느라 그 전시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벤야민은 진품과 복제품의 차이를 ‘아우라’의 유무로 정리를 했지만, 나로서는 그가 소유했던 작품들을 인터넷이나 도록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진품을 보는 것과 사진으로 접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으나, 진품을 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경우 도록을 통해서라도 작품을 만나는 것도 나에게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은연중에 예술신비주의와 예술숭배주의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경향이 있음을 전제하면서,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과 그 속에서의 우월감과 열등감, 추종심 등을 형성해 미술로 하여금 도에 넘치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술은 겉으로는 항상 다르게 보기와 새롭게 보기를 요구하지만, 속으로는 기존의 권위에 지배되고 함몰되어 새로운 목소리를 억압하는 모순과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토로한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직업 예술가이고, 예술에 대한 날선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 책은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관점에 대한 소신 있는 비판과 새로운 목소리가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는 저자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현재의 미술시장을 염두에 두고 펼쳐낸 저자의 비판적인 견해는 매우 진지하여, 초고는 ‘추리고 추려도 도판을 빼고 글만으로도 책 세 권 정도의 분량’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출판사와 상의’하여 초고의 ‘3~40% 정도’의 내용을 간추려, 전체 2부로 목차를 구성했음을 밝히고 있다. 먼저 ‘예술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과 전문가와 미술 시장에서 드러나는 현상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펼치고 있다. 저자는 미술사에서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를 ‘똑같이 잘 그리는 것에 집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표현 방식을 개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밖에도 이우환이나 잭슨 폴록 등의 작품 또한 대단하다고 평가되면서 거액에 팔리고 있지만, 비슷한 형식이라고 해도 무명작가들의 작품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논리와 서사가 있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성공한 작가에게 논리와 서사가 부여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2부에서는 ‘지금까지 알던 건 진짜 답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미술시장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작가로서 저자가 겪고 느꼈던 불합리한 면모를 토로하는 내용이라고 이해된다. 거창한 논리가 동원되어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하지만, 미술시장에서는 ‘위대한 건 가격’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리하여 높은 가격이 형성되는 작가의 경우 ‘가짜 이유를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진짜 실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미술시장에서는 가격이 작품의 수준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일단 높은 가격이 형성된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그 ‘의미나 이유의 상당 부분은 나중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저자는 바우리치오 카텔란이 내걸었던 바나나가 2억원에 팔리기도 했다는 사건을 언급하면서, ‘예술가와 사기꾼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저자는 ‘작품에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 위대한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그 능력에 위대함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충분히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동의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작품의 평가를 가격으로 평가하는 미술시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작가이기도 한 저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격으로 평가되는 미술시장의 부조리한 면모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작가와 전문가들을 제외한다면, 작품의 가격은 이미 나와는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예술가로서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술가의 작품 가격이 미술시장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일반 대중에게는, 어쩌면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평가되는 시스템에 기대어 ‘사기꾼’의 행태를 보이는 문제도 있음을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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