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그 후
장현숙
「301호입니다. 상의드릴 일이 있어 저녁에 찾아뵙겠습니다.」
사우나를 마치고 대충 옷을 걸친 후 휴대폰을 열었다. 아직 머리카락의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휴대폰에 손이 가는 내가 디지털 중독이지 않나 싶은 정도였다. 같은 번호로 두 번의 발신 흔적이 있고 그로부터 30분 후에 찍힌 문자다. 301호? 201호부터 402호까지 여섯 개의 호실 중 가장 무던하고 안정적인 세입자인데 대체 무슨 사연일까?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한창 일해야 하는 평일 오후 시간인데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들이 있어 마음이 무겁다. 큰 유통기업에 다녔는데 AI에 일자리를 내어주고, 40대에 구직 활동을 하는 402호. 살던 아파트를 팔아 치킨집을 개업하고, 우리 집에 들어온 201호. 그들의 차가 이 시간에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는 것은 가슴 철렁한 일이다.
“사모님, 전세로 있는 우리 집을 반전세로 바꿀 수 있을까요?”
301호 민아 아빠가 보증금의 일부를 돌려달란다. 요동치는 부동산 경기로 하우스 푸어, 깡통 전세를 넘어 전세 사기까지 출몰하니 불안해진 세입자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추세다. 혹시 민아 아빠도 나를 못 믿어서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아있는데. 결코 편하지 않은 의아심이 뭉글뭉글 올라왔다.
작년 봄 민아네가 그린 하우스에 들어왔을 때 우린 모두 잔치 분위기였다. 젊은 부부, 그것도 임산부가 입주했으니 빌라 이름처럼 연둣빛 밝음이 서렸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그들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예쁜 사랑을 키웠단다. 어리지만 당찬 신부는 남편이 대학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지원도 했단다. 그들은 막노동, 식당일, 건물 청소, 세신사...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한 결과, 출산을 앞두고 전세금까지 마련하여 우리 「그린 하우스」에 들어왔다.
“전세를 반전세로 바꾸는 것은 해 보면 되겠지만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나요?”
나는 목돈을 마련할 방법을 생각하며 물었다.
“우린 어려서부터 너무 고생하며 살았어요. 그래도 저는 대학교도 다녔고 지금 직장도 이만하면 괜찮아요. 다 민아 엄마 덕분이지요”
그는 늘 고생한 아내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했다.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의 임산부석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예쁜 인형이 그 자리를 지키며 엄마가 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보육원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마저도 얼마나 부러워했었던가? 미혼모였던 그의 생모는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첫돌을 며칠 앞둔 그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기억에도 없는 엄마가 몹시 보고 싶었다. 순간 임산부인 아내 영미를 생각했다.
‘그래 영미와 우리 아가에게는 최고로 해주리라!’
환한 미소와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찜질방, 산후 요가, 향기 방, 마사지실... 산모와 아기를 위한 최고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산후조리원을 찾아내고는 뿌듯했다. 퇴근 후 산후조리원을 들러 아내와 아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 가벼움만큼 그의 지갑도 차츰 가벼워져 갔다. 산후조리원 두 주 치 비용이 그의 석 달 치 월급보다 더 많았다. 그래도 그는 어깨를 추스르며 으쓱했다. 방글방글 웃는 딸 민아와 만족해하는 아내 영미를 보면서 그도 덩달아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빠가 된 듯 했다. 행복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유유상종, 끼리끼리란 말처럼 요즘은 같은 목적으로 서너 명만 모여도 모임을 만든다. 동창회, 산악회, 문인회, 악기 연주회 아이들이 함께 다녀서 학부모 모임이란 것도 있다. 영미의 산후조리원 두 주는 그녀에게 파라다이스였다. 그녀는 전신 마사지를 받으면서, 돈 몇 푼 벌려고 종일 다른 사람의 등을 밀어줬던 일을 지워버렸다. 끼니때마다 제공되는 최상의 영양식을 받으면서 허리가 휘도록 했던 식당 일을 까마득한 옛 기억으로 밀어내어 버렸다. 더구나 산모가 먹는 음식에 따라 모유의 성분이 달라진다며 간식을 챙겨 먹는 산후조리원 선배를 보면서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아기를 잘 키우는 것이 되었다.
산고라는 동일 체험을 같이한 산모들은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을 만들었다. 그녀도 기꺼이 회원이 되었다. 그들은 최상급 육아를 위한 정보를 서로 나누었고 아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유층이었다. 영미는 이젠 더 이상 아웃 사이드 인생을 살지는 않을 것이며 딸만은 이 사회의 인싸(inside)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산후조리원을 보내면서부터 투 잡을 하던 민아 아빠는 요즘은 쓰리 잡을 뛴다. 회사 근무를 마치고 식당에서 숯불 지피는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을 안아볼 여유도 없이 집에 오면 쓰러져 잠이 들기 일쑤다. 겨우겨우 짬을 내어 집에 있을라치면 아내는 ‘산후조리원 동기회’라며 민아를 맡기고 외출한다. 그는 이제 ‘산후조리원, 맘카페’ 말만 들어도 화들짝 놀란다. 아무리 말려도 그녀는
“다 우리 민아를 위한 일인데 이 정도도 못 해줘? 귀하게 키워야 귀하게 산다고.” 말을 남기고 나가버린다. 지난 달부터는 마이너스 통장이 한도에 찼고 이번 달은 카드 결제도 연체되었다. 301호의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새댁을 만났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유모차에 공주처럼 예쁘게 꾸민 민아를 태우고 내게 눈인사했다. 며칠 후면 민아의 돌이라는데 예쁜 옷이라도 한 벌 사서 그녀를 불러 아기 키우는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그러면 그녀가 나를 친정엄마처럼 생각하고 내 말을 조금이라도 들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