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시는 1935년 11월 <조광> 창간호에 발표된 '일각(一脚)'이라는 사람의 작품인데, '가을의 향기'라는 기획으로 소개된 4편의 시 중 하나입니다. 이중 한 편이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백석이 발표한 '늙은갈대의 독백'입니다.
이 시의 제목에 등장하는 '제레네'는 달의 여신인 Selene의 독일식 발음인 듯한데(요즘식으로 표기하면 '젤레네'로 하겠지만), 영어로는 실리니라 발음하고 그리스어로는 셀레네라 읽습니다.
이 일각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해방 뒤 소설가 허준의 글 중에서도 등장하는데, 저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이 시가 김동명 시인의 작품으로 생각합니다.
백석-영랑과노흘다 68회에는 초허 김동명을 함께 읽습니다. 1월 20일 저녁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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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陀(불타)가 말한 慈悲의 妙法(묘법)이 무었인지, 예수가말한 사랑의眞理가 무엇인지, 나는 이것을 깨닷기前에 먼저 저 아름답고 高貴한 달의 사랑과 慈悲를 信奉(신봉)하는 使徒가 되었읍니다.
깊은밤 내가 호홀로 窓머리에 앉었을때에 남은보아 내곁에 아무도 없는법호듸 나는 내사랑하는 달과함께 끝없는 이야기에 잠기는것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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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煩惱(번뇌)로 因하야 눈이먼사람. 지팽이에 몸을依支(의지)하고 밤山을 헤맬때에 달은 내親舊되어 松林사이 고요한길로 내손목 붙들어 引導(인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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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은 千手大悲. 그리고 아름다운 손가락마다 神秘한 音譜(음보)를 가지고있어, 西窓(서창)아래 누워 잠못들때에 내 가슴을 피아노삼아 慰勞의曲調를 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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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달이 구름속에 가리워질때면 나를 버림인듯 미워지다도 다시 나타나 그溫柔(온유)하고 포근한 품속에 안아줄것을 믿는때에 나는 「기다림」의 幸福(행복)을 느낄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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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나로하여곰 괴로움을잊고 푸른꿈속에 고요히 쉬게한뒤에, 오히려 내꿈을 직혀 새도록 창머리에 앉아 銀실같은 고운노래를 불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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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나무닢함께, 춤추는 저 「제레―네」 달의女神이어. 당신의 거륵하고 아름답고 향긔로움이 오히려 원망스러운때가있음을 당신은 모르는체하고 언제나 늘 그리도 밝으렵니까.
내가 근심과 어두움의 깊은窟속에 가쳐있을때, 달님이어 당신은 「阿苑」(아원? - ‘苑’자리의 글자 판독 난. 편자)과같이 月光을타고 내우에내려와 사랑과 慈悲의 說法을 아끼는일이 없읍니다.
* 一脚(김동명), ‘제레네, 달의 女神’, 『朝光』 창간호(1935.11)
** 阿蘭若(아란야) : 불교에서 '절'을 이르는 말.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수행하기에 좋은 곳을 일컫는 말
*** 阿苑(아원) : 물가에 자리한 나라 동산. 이 경우 물가는 바다가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