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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절 고려 시대의 문화
Ⅰ. 국가 불교의 발달
1. 불교정책
가. 고려시대 불교의 성격
불교는 수신의 학문, 유교는 치국의 학문으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했다.
나. 고려시대 숭불정책
불교는 신라시대 이래로 호국적 기능, 사회통합에 유리한 이론 제공 및 토착신앙과 융합하여 민족신앙으로 자리 잡았고 훈요십조에서 비보사찰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승과제도를 두고 국사와 왕사를 임명하고 사원에 여러 혜택을 부여하고 대장경을 간행하고 각종 불교행사도 거행하는 숭불정책을 시행하였다.
2. 불교통합운동
가. 광종
여러 종파를 교종은 개경에 귀법사를 짓고 균여(均如)를 주지로 임명하야 화엄종(華嚴宗)으로 중국에서 혜거(惠居)를 귀국시켜 선종은 법안종(法眼宗)을 중심으로 정리하려 했다. 제관(諦觀돠 의통(義通)을 남중국에 보내 천태학(天台學)을 전하게 했다.
나.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의 해동천태종
⑴ 의천의 활동: 국청사, 천태종, 교장도감, 신편제종교장총록
⑵ 의천의 교선 통합 성격 : 교관겸수
다. 지눌의 조계종
⑴ 수선결사운동
⑵ 지눌의 교선통합 : 송광사, 정혜헤쌍수(定慧雙修), 돈오점수(頓悟漸修)
⑶ 영향
라. 혜심(惠諶. 眞覺國師 惠諶) : 유불일치설
마. 요세(了世, 圓妙國師 了世)의 백련결사운동 : 정토신앙
3. 대장경 간행
가. 대장경 간행의 의의
나. 성격
다. 고려의 대장경 간행사업
⑴ 초조대장경 1011~・1087
⑵ 속장경 1011~1111
⑶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1236~1248
교장도감(敎藏都監) 13대 선종(宣宗) 3년 1086년 설치
대장경 | 시기 | 간행 | 보관 |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 1011~1087 | 부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격퇴하고자 송나라 관판대장경(官版大藏經)의 내용과 체제를 토대로 간행 | 대구 부인사 보관중 몽고2차침입시 소실. 강화 인쇄본 일부 잔존 |
속장경(續藏經) | 1101~1111 | 大覺國師 義天이 초조대장경을 보완하기 위해서 선종(宣宗) 3년 1086년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간행했으며 간행목록으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 해동유본견행록 3권 | 흥왕사 보관중 몽고 침입중 소실. 판본의 일부는 전라남도 송광사(松廣寺)와 일본 도다이사(東大寺) 잔존 |
재조대장경(八萬大藏經) | 1236~1248 | 몽고침입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재현 | 강화도 선원사에서 제작되어 1398년 합천 해인사에 보관 |
주전도감(鑄錢都監) : 15대 숙종 2년 1097년(1101년) 대각국사 의천의 주청(청주전표)에 의해 주전도감(鑄錢都監)을 설치하고 화폐를 발행
교정도감(敎定都監) : 반대세력을 수색하고 비위를 감찰하는 기능(장관 敎定別監(교정별감))
경사교수도감(經史敎授都監) : 25대 충렬왕 22년(1296년) 7품 이하의 관리들에게 경학(經學)과 사학(史學) 가르치던 관청(이산, 이진 경사교수도감사)
사림원(詞林院) : 26대 충선왕 즉위년(충렬왕 24년 1298년) 개혁운동
정치도감(整治都監) : 29대 충목왕 3년(1347년)에 개혁운동
화통도감(火筒都監) 우왕 3년 1377년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설치하여 우왕 9년 1383년 남해현(南海縣)의 관음포 싸움에서 왜구 격퇴. 아들 최산해(崔山海)는 조선 태종 세종때 우수한 화약 제조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 : 31대 공민왕 15년 1366년에 설치. 辛旽 判事
공민왕의 개혁운동 : 대외적으로 배원친명정책 대내적으로 권문세적의 억압
간경도감(刊經都監) : 조선 세조 7년 1461년 왕명으로 설치되어 성종 2년 1471년 까지 존속한 불경을 언해해서 간행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
4. 불교행사
가. 연등회(燃燈會, 上元. 1월 15일)
신라시대부터 있어온 것으로 고려에 와서 더욱 중요시 되었다. 전국적인 행사로서 등불을 밝히고 다과를 베풀고 왕과 신하들이 음악과 춤을 함께 즐기고 부처님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었다.
나. 팔관회(八關會, 仲冬. 11월 15일)
개경과 서경에서 왕과 신하들이 함께 춤과 노래를 즐기고 부처, 천지신명,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에게 제사하면서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천지신명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었다.
다. 기복도량(祈福道場) : 국왕의 생일
라. 기신도량(忌辰道場) : 국왕의 제삿날
마. 법회(法會) : 석가탄신일
바. 보살계도량(菩薩戒道場) : 6월 15일 국왕이 보살계 받는 도량
사. 우란분도량(盂蘭盆道場) : 7월 15일 돌아가신 부모의 명복을 비는 도량
아. 제야도량(除夜道場) : 12월 30일
자. 인왕회(仁王會) : 국가의 평온을 비는 모임
차. 무차대회(無遮大會) : 모든 사찰에서 잔치를 열고 물품을 분배
카. 반승(飯僧) : 승려에게 음식을 제공
타. 수륙회(水陸會) : 주인없는 귀신[영혼]을 진정
파. 방생회(放生會) : 가축을 놓아주고 그물 소각
하. 소재도량(消災道場) : 천재지변 제거
팔관계율(八關戒律)
1. 불살생(不殺生) 2. 불투도(不偸盜) 3. 불음일(不淫佚) 4. 불망언(不妄言) 5. 불착향화(不着香華) 6. 불좌고대상(不坐高大床) 7. 불음주(不飮酒) 8. 불자락관청(不自樂觀聽)
Ⅱ. 경사(유학과 역사학)의 발달
1. 유학의 발달
가. 발달 배경
나. 발달과정
다. 성리학의 전래
2. 교육기관
가. 관학의 설립
⑴ 태조 : 개경, 서경에 학교설치
⑵ 성종11년 (992): 국자감 - 국립대학
* 과목:국자학, 태학, 사문학, 기술학 == 신분에 따라 과목결정
(문무관 3품, 태학 5품, 사문학 7품 이상, 律書算學 8품이하 자녀 및 庶人,
- 일반 백성도 입학 가능, 기술학 교육 실시
학문연구기구+- 개경 : 비서성, 서경 : 수서원,
고려 | 국자감(國子監)(국자감→국학→성균감→성균관)→국자감→성균관 | 6대 성종 11년 992년에 설치 | |
경사육학(京師六學) 인종때 설치 | |||
國子學 | 3품 이상 관리의 자제 | ||
太學 | 5품 이상 관리의 자제 | ||
四門學 | 7품 이상 관리의 자제 | ||
律學 | 8품이하 관리의 자제와 서인이 입학 | ||
書學 | |||
算學 | |||
국학(國學) | 충렬왕 원년 1275년 원의 간섭으로 관제를 고치는 가운데 국학(國學)으로 개칭 | ||
성균감(成均監 | 충렬왕 24년 1298년 충선왕(忠宣王)이 한때 즉위하여 사림원(詞林院)관제를 개혁할 때 성균감(成均監)으로 개칭 | ||
성균관(成均館) | 그후 충렬왕 34년 1308년 충선왕이 재즉위하여 다시 관제를 개혁하면서 성균관(成均館)으로 개칭 | ||
국자감(國子監) | 31대 공민왕 5년 1356년 원의 간섭으로 격이 낮추어져 개편되었던 관제를 문종 때의 것으로 복구시키는 가운데 다시 국자감으로 개칭 | ||
성균관(成均館) | 31대 공민왕 11년 1361년 다시 성균관이라 고쳤으며 그 명칭은 그후로 고정 | ||
동서학당 | 1261년(원종 2)에 개경(開京)에 설치한 국자감(國子監)의 하위학교. 처음에는 동·서의 2학당으로 출발했으나 나중에 5부학당으로 발전하였다. | ||
12공도 | 고려시대 개경에 있었던 12개 사학(私學)의 총칭. 12공도라고도 한다. 최충(崔沖)의 문헌공도(文憲公徒), 정배걸(鄭倍傑)의 홍문공도(弘文公徒), 노단(盧旦)의 광헌공도(匡憲公徒), 김상빈(金尙賓)의 남산도(南山徒), 김무체(金無滯)의 서원도(西園徒), 은정(殷鼎)의 문충공도(文忠公徒), 김의진(金義珍)의 양신공도(良愼公徒), 황영(黃瑩)의 정경공도(貞敬公徒), 유감(柳監)의 충평공도(忠平公徒), 문정(文正)의 정헌공도(貞憲公徒), 서석(徐碩)의 서시랑도(徐侍郞徒), 구산도(龜山徒) 등인데 각 사학의 명칭은 설립자의 시호나 호, 벼슬이름을 딴 것이다. 1055년(문종 9) 벼슬에서 물러난 최충이 문헌공도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황영의 정경공도가 문종 이후에 설립된 것 외에는 대체로 문종 중기 이후부터 말기 사이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 ||
서경학교 | 태조 13년 930년 서경 (西京)에 초등단계의 학교를 세워 서학박사(書學博士)가 교육을 담당하였다 | ||
7재(七齋) | 1109년(고려 예종 4) 국학(國學:국자감)에 설치한 7개의 전문 강좌. 최충(崔冲)의 9재를 모방하여 설치했으며, 이에 따라 국자감 학생은 본래부터 있어온 국학학생과 재생(齋生)으로 분립되었다. 하나의 재(齋)에서 한 과목을 전문적으로 강의하여 〈주역 周易〉을 강의하는 곳을 여택재(麗澤齋), 〈상서 尙書〉를 강의하는 곳을 대빙재(待聘齋), 〈모시 毛詩〉를 강의하는 곳을 경덕재(經德齋), 〈주례 周禮〉를 강의하는 곳을 구인재(求仁齋), 〈대례 戴禮〉를 강의하는 곳을 복응재(服膺齋), 〈춘추 春秋〉를 강의하는 곳을 양정재(養正齋), 〈무학 武學〉을 강의하는 곳을 강예재(講藝齋)라 했다. 7강좌를 다시 유학(儒學) 6강좌와 무학(武學) 1강좌를 분류함에 따라 앞의 6재는 유학재라 하고, 강예재는 무학재라 했다. 1133년(인종 11)에 무학재인 강예재를 폐지함으로써 7재는 6재로 개편 |
나. 사학(12공도)
유교의 정치이념인 도덕적 합리주의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귀족정치를 지향하는 속에서 귀족들은 문벌을 중시하게 되었고, 이는 사학의 발달을 초래하게 되었다.
⑴ 대표적 : 문헌공도(9재학당) -최충; 문종때 海東孔子로 불리움, -> 당시 유명한 사학 12개를 사학 12도라 부름. 사학의 창시자는 대개 전직고관으로서 또 당시 대학자로서 과거제의 지공거였던 경우가 많았다.
⑵ 영 향 : 왕권의 약화
다. 관학진흥책(사학의 발전에 대한 대응책)
⑴ 숙종 : 서적포 설치 - 도서출판
⑵ 예종 : 7재(예 강예재 -무예교육), 양현고-관학진흥재단, 학문연구기구- 청연각,보문각-
⑶ 인종 : 개경- 경사 6학, 지방 - 향학
⑷ 충렬왕 : 섬학전(관학진흥기금)
3. 역사서 편찬
가. 전기
구삼국사, 7대실록, 고금록
나. 중기
삼국사기, 편년통록(김관의)
다. 후기
동명왕편, 삼국유사, 제왕운기
제2절 고려시대의 자기
Ⅰ. 청자와 백자의 시작
1. 중국의 청자 백자
당대의 백자소호(7세기 황룡사지9층목탑지의 심초석 하부)
당삼채(唐三彩)
2. 가마터
황해남도 배천군 원산리,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도기+청자 백자), 용인시 이동면 서리, 여주군 중암리,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고양시 원흥동, 안양시 비산동, 충청남도 서산군 성연면 오사리, 보령면 천북면 사호리, 대구시 동구 진인동, 강원도 강릉
Ⅱ. 고려자기의 제작과 조형
1. 청자생산의 변화
가. 10세기 청자 생산 시작
나. 11세기 강진 요업의 중심지
다 12세기 고려의 특성
2. 청자의 표면장식
순청자(純靑瓷) | 무늬 장식이 없는 순수한 청자. 소문청자(素文靑瓷). 무문청자(無文靑瓷) |
음각청자(陰刻靑瓷) | 순청자 위에 음각기법으로 꽃이나 기타 식물 또는 장식문양을 넣은 청자 |
양각청자(陽刻靑瓷) | 무늬를 돋움새김하거나 문양물을 사용하여 압출(壓出)함으로써 도드라지게 하는 청자 |
철화청자(鐵畵靑瓷) | 유약(釉藥)을 입히기 전에 붓에 철분 안료를 묻혀 회화적 방법으로 무늬를 그린 청자 |
진사청자(辰砂靑瓷) | 진사(辰砂)(cinnabar, 진사채(辰砂彩), 진사유(辰砂釉), 동유(銅釉))로 그릇 표면에 문양을 그리거나 또는 다른 문양의 일부에 점을 찍거나 표면을 진사안료로 바르고 청자유약을 씌워서 구워 낸 청자. 동화청자(銅畵靑瓷) |
화금청자(畵金靑瓷) | 상감 무늬의 일부에 금을 칠한 청자 |
철채정자(鐵彩靑瓷) | 산화철의 철채(鐵彩)를 그릇 전체에 발라 자기 전체가 검게 보이도록 하는 청자 |
퇴화청자(堆花靑瓷) | 철채 청자의 표면의 흑토를 긁어내 문양을 만들고 그 위에 백토를 두껍게 칠해 흑색 바탕에 흰색 문양을 나타내는 퇴화기법을 사용한 청자 .백화청자(白畫靑瓷) |
투각청자(透刻靑瓷) | 몸 전체를 뚫어 조각하는 청자 |
연리문청자(練理文靑瓷) | 서로 다른 흙을 섞어 만든 청자 |
상형청자(象形靑瓷) |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를 본떠 만든 청자 |
빈과록(蘋科綠) : 도자기에 입히는 푸른 빛의 잿물(釉藥)
3. 상감청자(象嵌靑瓷)
가. 의의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낸 청자.
나. 상감
상감이란 무늬를 넣는 방법을 말하는데 상감기법은 이미 중국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금속공예에 사용되던 방법이었으나 고려시대 도자기에 상감기법을 응용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기법이다.
다. 방법
먼저 초벌구이한 그릇 표면에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이나 글자 등을 파낸 뒤 그 패인 홈을 회색의 청자 바탕흙 또는 다른 백토(흰색의 흙)나 자토(붉은색의 흙)로 메우고 표면을 고른후 유약을 입혀 구우면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나타나게 된다.
라. 12세기 12세기 말 ~13세기 전성
4. 청자의 질 퇴보 : 몽고 침입이후 13~14세기
Ⅲ. 고려시대의 해양교역과 도자기
1. 공납품
2. 해상무역로 : 제주 신창리 해역, 군산 비안도 십이동파도, 보령 원산도, 완도 어두리, 물안 도리포
Ⅲ. 도교와 풍수지리설
1. 도교(道敎, Taoism)
1. 도교
⑴ 황로사상(黃老思想), 노장사상(老莊思想) 또는 황로교(黃老教)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하는 중국 고유의 토착 종교 또는 사상으로서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통치자인 황제(黃帝)와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 본명 李耳), 열자(列子, 본명 列禦寇)와 장자(莊子, 본명 莊周)를 신봉한다고 하여 황로사상(黃老思想), 노장사상(老莊思想) 또는 황로교(黃老教)라고도 한다.
나. 도교(道教)
도교(道教)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 또는 사상으로서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바탕으로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복서(卜筮)・무축(巫祝)・참위(讖緯)등과 도가(道家)의 철학 및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종교로서 도교는 하나인 도(道)의 세 가지 모습인 옥청(玉清, 원시천존)・상청(上清, 영보천존)・태청(太清, 도덕천존)의 삼청(三清)을 최고신으로 하는 다신교(多神敎, polytheism)이다.
나. 도교의 역사
⑴ 도가 사상(道家 思想)
황제(黃帝) 이이(李耳, 老子), 열어구(列禦寇, 列子)와 장주(莊周, 莊子)의 도가 사상이 원류이다.
⑵ 원시도교(原始道敎)
① 태평도(太平道)
산동(山東) 출신의 간길(干吉) 또는 우길(于吉)이라는 인물이 하늘의 신으로부터 얻었다는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를 교리의 핵심으로 하여 남화노선(南華老仙, 南華眞人, 장자)을 만나서 태평요술서라는 것을 받고 후한말 장각(張角: ?~184)이 창시하고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일으켰으나 사후에 오두미도에 흡수되었다.
② 오두미도(五斗米道), 천서도(天師道), 정일도(正一道)
입교 때 쌀 5두를 받아서 오두미도라고 했고 장릉(張陵, 張道陵, 34~156)이 창시하여 장형(張衡), 장로(張魯), 장성(張盛)으로 전혀졌다.
2. 도교의 성립과 발전
가. 도교의 성립
장도릉의 증손 장성(張盛)은 장시성의 용호산(龍虎山)에서 정일교(正一敎)를 개창하였고 서진(西晉, 265~317)의 재상의 딸인 위화존(魏華存, 3세기말-4세기)은 모산파(茅山波) 또는 상청파(上淸波)를 열었다. 동진(317~420) 시대에 갈홍(葛洪, 283~343)은 포박자(抱朴子)를 지어 일파를 열었다. 민간신앙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북위(北魏, 386~534)의 구겸지(寇謙之, 365~448)에 이르러 도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하여 교단도교(敎團道敎)로 확립되어 도교가 성립되고 국가적 종교로 불교와 대립했다. 구겸지는 도교를 집대성한 사람 또는 최초의 교단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나. 도교의 발전
양나라(梁, 502~557)의 도홍경(陶弘景, 452~536)은 모산파(茅山波)를 대성하였다. 당(618~907)・송(960~1279) 시대에는 조정의 지지를 얻어 도교가 성행하였다. 이후 도사들이 퇴폐풍조를 초래하여서 금나라(1115~1234) 때는 혁신 운동이 일어나 전진도(全眞道) ・ 태일도(太一道) ・ 진대도(眞大道)의 세 파가 발생하였다.
3. 내용
가. 경전(經典) : 도장(道藏, 蕊珠經, 예주경)은 도교 성전의 집성으로 현재의 도장은 5,305권의 정통도장(正統道藏)과 180권의 속장(續藏)을 합하여 총 5,48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통도장(正統道藏)은 4세기말~ 5세기초에 성립된 삼동과 5세기말~6세기초에 성립된 사보인 삼동사보(三洞四輔, 세 개의 중심부과 네 개의 보완부)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체계 | 구성 | 성립 |
삼동(三洞) | 동현(洞玄)・동진(洞眞)・동신(洞神 | 4세기말~ 5세기초 |
사보(四輔) | 태현(太玄)・태평(太平)・태청(太淸)・정일(正一) | 5세기말~6세기초 |
나. 사원 : 도관(道觀, 예궁, 蕊宮)
다. 성직자 : 도사(道士.남자), 여관(女冠, 여도사))(도교의 전문적 종교가)
라. 신도 : 도교인(道敎人) 또는 도교도(道敎道), 우류(羽流)(우화등선(羽化登仙)을 목표로 하는 무리)
마. 신 : 3청(三淸), 4어(四御), 8선(八仙)
도교는 다신교이다. 도교의 최고신("天尊 ・ 천존")은 하나인 도(道)의 다른 모습인 의이다. 삼청은 하나인 도(道)가 삼청의 신 또는 신선으로 나타나는 것을 "일기화삼청(一炁化三清: 하나의 기운이 세 가지 맑음으로 나타나다)"이라고 한다.
삼청(三清・Three Pure Ones) | 옥청(玉清) | 원시천존 (元始天尊・Yuanshi Tianzun) 태초의 시작으로서의 우주적인 존재(Universal Lord of the Primordial Beginning) |
상청(上清) | 영보천존・태상도 (靈寶天君太・上道君・Lingbao Tianzun) 영험한 보석으로서의 우주적인 존재(Universal Lord of the Numinous Treasure) | |
태청(太清) | 도덕천존・태상노군(道德天尊・太上老君・Daode Tianzun) 길과 덕으로서의 우주적인 존재 (Universal Lord of the Way and its Virtue) | |
사어 (四御 ・ Four Emperors) | 옥황상제 ・ 옥황대제 (玉皇大帝 ・ Jade Emperor ・ Yu Huang) | |
중천자미북극대제 (中天紫微北極大帝 ・ Beiji Dadi) | ||
구진상궁천황대제 (勾陳上宮天皇大帝 ・ Tianhuang Dadi) | ||
후천황지기 (后土皇地祇 ・ Empress of Earth) | ||
팔선 (八仙 ・ Eight Immortals) | 종리권 (鍾離權 ・ Zhongli Quan) | |
이철괴 (李鐵拐 ・ Tie Guaili ・ Iron-Crutch Li) | ||
한상자 (韓湘子 ・ Han Xiangzi) | ||
조국구 (曹國舅 ・ Cao Guojiu ・ Royal Uncle Cao) | ||
여동빈 (呂洞賓 ・ Lu Dongbin) | ||
장국로 (張國老 ・ Zhang Guolao ・ Elder Zhang Guo) | ||
남채하 (藍采和 ・ Lan Caihe) | ||
하선고 (何仙姑 ・ He Xiangu ・ Immortal Woman He) |
4. 도교교단
가. 교단 도교(敎團道敎) 또는 성립 도교(成立道敎)
도교 경전으로서의 도장, 도교 사원으로서의 도관, 도교의 성직자 또는 전문적인 종교인으로서 도사・여도사의 체제를 갖춘 교단으로 정일교(正一敎, 南宗), 신천사도(新天師道), 모산파(茅山波), 진대도교(眞大道敎), 전진교(全眞敎, 北宗) 등이 있다. 교단도교는 1910년 경에는 중국에서 140여 개의 도교 종파가 있었다고 하며 현세이익적인 면도 있지만 수행을 통해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전진교(全眞敎) 중국 금나라 때 왕중양(1112~1169년)이 주창한 도교의 신파이다. 강남의 정일교를 남종이라고 부른 것에 반하여북종이라고도 불린다. 칠진인(七眞人)이라고 불리는 7인의 개종조의 수제자들이 교세의 확대에 힘쓰면서 점점 교단으로서의 체제를 갖추었다.
칠진인(七眞人)
마옥(馬鈺, 단양자,丹阳子) - 우선파(遇仙派)
담처단(譚處端, 장진자,長真子) - 남무파(南無派)
류처현(劉處玄, 장생자,長生子) - 수산파(隨山派)
구처기(丘處機, 장춘자,長春子) - 용문파(龍門派)
왕처일(王處一, 옥양자,玉陽子) - 유산파(崳山派)
학대통(郝大通, 광녕자,廣寧子) - 화산파(華山派)
손불이(孫不二, 청정산인,清靜散人) - 청정파(清靜派)
나. 민중 도교(民衆道敎)
교단도교에서 벗어난 도교 단체 또는 도교 신앙을 통칭하는 것으로 민중 도교는 매우 강한 주술성을 보이며, 고타마 붓다・공자・관음보살・예수 그리스도・무함마드・관우(關羽)・토지신 등에 대한 개인적인 신앙을 토대로 형성된 보권(寶卷) 계통의 성격을 띤 종교이다. 민중 도교에 속하는 분파 또는 단체로는 무위교(無爲敎)・원돈교(圓頓敎)・홍양교(弘陽敎)・선천교(先天敎)・구궁도(九宮道)・금단팔괘도(金丹八卦道)・일관도(一貫道) 등이 있는데 이들은 전적으로 현세이익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가. 특징
유불사상+신선사상+음양오행사상
불로장생과 현세구복
나. 활동
초제(醮祭), 팔관회, 도관(도교사원, 예궁), 황정경(도교경전)
고려(918-1392)에 들어와서는 도교를 중시하는 송나라(960~1279)의 풍습이 조금씩 전래하다가 예종(재위 1105-1122) 때에 송나라 휘종(재위 1100~1125)이 도사 두 명을 보내어 도법을 전하였고, 이에 고려에서는 개성(開城)의 북쪽에 복원궁(福源宮)이라는 도관(道觀)을 세워 삼청상(三淸像)을 모시고 도사(道士)를 두었다. 팔관회에서 5악(五嶽,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삼각산), 명산(名山), 대천(大川), 부처님과 하늘에 제사하는 것과 도교의 초제와 불교가 합쳐진 종교행사였다. 그러나 도교는 국가 중심의 도교 의식에 그치고 일반 민중의 종교적 발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고, 성신(星辰)에 대한 신앙, 부적(符籍)의 사용, 경신(庚申)을 지키는 것 등만이 대중화되었다. 도교에서 행하는 제사 및 기도 의식을 초제(醮祭, 재초(齋醮))라고 하는데 고려에서는 복원궁(福源宮), 신격전(神格殿), 구요당(九曜堂), 소전색(燒錢色), 대청관(大淸觀), 청계배성소(淸溪拜星所), 정사색(淨事色)이란 마을이 있어서 여기에서 재초가 행해졌다.
다. 한계
2. 풍수지리설
가. 특징
신라말 선종 승려인 도선(道詵)은 불교의 선근공덕사상(善根功德思想)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등을 결합하여 풍수지리설을 전개했다. 지리에는 땅 기운이 순조로운 곳(明堂. 명당)과 땅 기운이 쇠약하고 거슬린 곳(凶地, 흉지)이 있는데 명당(明堂)에 양택(陽宅, 주택)이나 음택(陰宅, 무덤)을 짓거나 도읍(都邑)을 정하면 국가나 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흉지(凶地)에 양택(陽宅, 주택)이나 음택(陰宅, 무덤)을 짓거나 도읍(都邑)을 정하면 국가나 개인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므로 비보사찰(裨補寺刹)을 지어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풍수지리설은 경주 중심의 국토관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고려시대(왕건의 훈요십조 등)와 조선시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 발달
다. 영향
Ⅳ. 과학기술의 발달
1. 천문학의 발달
가. 발달 배경
인간행동의 훈계
나. 발달 과정
첨성대, 서운관
선명력(당)→수시력(원)
당나라 의사 겸 연금술사인 7세기말의 약물학자 손사막(孫思邈)은 초석과 황의 혼합물이 격렬하게 연소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거기에 목탄(木炭, 숯, charcoal)을 부가해서 흑색화약(黑色火藥)을 발명해냈다고 전한다. 화약이 전쟁에 사용된 것은 12세기초 北宋시대 부터였다고 한다. 원나라 쿠빌라이칸(忽必烈汗. 호렬한)때 Marco Polo에 의해 서양에 소개되었다. 무연화약(無煙火藥)은 1884년 프랑스인 Paul Marie에 의해 발명되었다. 우왕 3년 최무선은 원나라 상인 염초장(焰硝匠, 화약제조자) 이원(李元)으로부터 흙에서 염초를 추출하는 방법을 배우고 드디어 화통도감에서 화약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나. 화약・화포의 이용
우왕 3년 1377년 화통도감, 최무선, 나세 진포싸움
5. 조선 기술
가. 무역선
나. 조운선
다. 화포 설치 : 누전선(樓戰船, 왜구를 막 위해 만든 전함), 평저선(平底船, 배 밑이 평탄한 구조의 배, 조선시대 명종 때 개발한 전투함판인판옥선(板屋船)
목판활자와 금속활자
목판활자 | 금속활자 | 참고 | |
발명 및 세계최초 | 1040년경 북송 필승(畢昇) : 교니활자(膠泥活字). 도활자(陶活字) | 고려 21대 고종 21년 1234년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 미전 | |
고려 | 고려 고종 23년 1236년 팔만대장경 | 고려 32대 우왕 3년 1377년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旨心體要節) : 현존 |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1236년) : 우리나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서 화통도감(火㷁都監,1377), 진포(鎭浦:錦江河口, 1380) 싸움 |
독일 | 1445년 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42행 성서 |
4. 화약무기 제조
가. 고려말 화약 제조법 전래
이원
나. 화약・화포의 이용
우왕 3년 1377년 화통도감, 최무선, 나세 진포싸움
5. 조선 기술
가. 무역선
나. 조운선
다. 화포 설치 : 누전선(樓戰船, 왜구를 막 위해 만든 전함), 평저선(平底船, 배 밑이 평탄한 구조의 배, 조선시대 명종 때 개발한 전투함판인 판옥선(板屋船)
Ⅴ. 예술의 발달
1. 건축
가. 궁궐과 사원 중심
나. 고려 전기 : 주심포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entasis 배흘림양식), 예산 수덕사 대웅전
다. 고려 후기 : 다포식 건물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나한전)
2. 조각
가. 석탑
개성 불일사 5층석탑, 부여 무량사 5층석탑, 오대산 월정사 8각9층탑, 개풍(→국립박물관) 경천사사 10층 석탑
나. 승탑
여주 고달사지 승탑(원종대사 부도), 원주 법천사지(→국립박물관) 지광국사 현묘탑, 충주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
다. 불상
광주 춘궁리 철불,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영주 부석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라. 청자
11세기 순청자 12세기 상감청자 14세기말 쇠퇴
마. 금속공예
청동향로, 청동정병
바. 나전칠기 공예
나전 대모 국화넝쿨무늬 염주함
3. 글씨, 그림과 음악
가. 글씨
전기 구양순체(탄연), 후기 송설체(조맹부체, 이암)
나. 회화
⑴ 전기
이녕 예성강도와 아들 이광필
⑵ 후기
공민왕 천산수렵도, 혜허 양류관음상(수월관음도), 신흥사대부 문인화
⑶ 사원 벽화
부석사 조사당 벽화 사천왕상, 수덕사 대웅전 벽화 수화도, 신광사 5백나한도
다. 음악
아악, 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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