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미세먼지로 쾌청한 날씨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높은 하늘과 탁 트인 시야가
코로나와 돼지열병으로 막혀있던
모처럼의 강원도 산행을 부담없이 반겨줬다
금년에 들어서며 새로운 집행부를 맞이한 초사 산악회의
첫 정기산행이
민족의 영산 태백산으로 정해졌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멀리 산청의 밤머리재에서 거행되는
태달사의 시산제로 달려가서
옛 산우들과 우정을 나누고 싶기도 했으나
애써 마음을 억누르며 나름 고심을 좀 했다
*
새벽(04:00)에 집에서 나와 아산시청에서 버스를 타고
산행들머리인 화방재(어평재)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 경으로
짧은 겨울해가 이미 높은 산 위로 올라와 있었다
어제(2/4 토)가 24절기(節期)의 첫 절기인 입춘(立春)이었고
오늘은 정월 대보름으로 달은 만월(滿月)을 이루어 넉넉하다
아침식사는 야생마 전 부회장이 찬조한 김밥과 귤 등으로 차 안에서 해결했지만
잠시 볼 일들을 보기 위해 들른 천등산 휴게소는
달리는 말위에서 창검을 꼬나 든 '장군 기마상'이 있는 곳이다
어둠속이지만 씩씩한 그 기상을 한 컷 오려내어 가슴에 담는다
탄광지대였던 31번도로상의 상동을 지나
긴 오르막을 오르면 함백산(만항재)으로 갈리는 삼거리의 화방재에 닿는다
일명 어평재로도 불리는 이 곳이 오늘의 산행 출발점인데
산행거리가 약간 가까운 유일사 주차장이 아닌
이 곳으로 들머리를 잡은 이유는
짧으나마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밟아 보라는
진행자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회원들이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휴게소 주변을 둘러본다
함백산 방향
이 곳에서 부터 만항재와 은대봉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16코스는
요즘 풍력발전기가 들어선 고랭지 밭의 매봉산을 거쳐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동해와 낙동강, 한강으로 유입되는 삼수령의 피재에 닿는다
또한 우리가 진입하려는 남쪽 지역은 백두대간 15코스로
태백산을 거쳐 선달산,고치령,도래기재,국망봉으로 이어져
봉화의 소백산에 이르고!
이건 뭐지?
주유소가 있으니 유조탱크인가!
어평재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남기고 산길로 들어간다
시작부터 가파른 눈길을 올라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반갑게 만나게 되는 사길령은 길로서의 생명은 끊긴채
태백과 영월을 잇는 옛길의 역사적 의미만을 간직하고 있는 고개이다
다시 가파른 눈길이 계속 이어지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산령각에 도착한다
이런 산령각 건물은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의
고갯마루 여러 곳에 세워져 있어
이고장 사람들의 산에 대한 외경심을 엿볼 수 있으며
산을 넘어 고을을 오가던 보부상이나 마을 사람들의 쉼터겸
신변의 안전을 비는 성황당 구실도 했던 곳이다
키작은 산죽밭을 부지런히 지나고!
유일사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기 까지 꽤 숨찬 길을 걸었네!
우람한 상수리 나무밑을 지나고 나서도 오르막은 계속되는데
나뭇가지에 갇힌 햇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계속 알싸한 바람에 얼굴을 할퀴게 될 것이다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함백산의 육중한 산괴(山塊)가 드러난다
유일사 능선 마루에 마련된 휴게소
화장실도 구비돼 있어 여성분들이 불가불 쉬어 가는 곳이렸다
유일사 부처를 만나려면 오른쪽으로 30여m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게으른 걸음은 그 계단 오르내리기가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친다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태백산의 깃대종아라 할 수 있는 주목들!
우람한 모습보다는 솨잔해가는 쓸쓸한 뒷모습이 보이는 건
나만의 애틋함이겠지만...!
한 숨 돌렸는지 여기저기 휴식과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직도 가야할 눈길에는 생과 사가 교차하는 처절함도 공존한다
"그래! 인생도 결국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지 뭐!"
형제인지 부부인지 서로 의지하고 사는 고목들 앞에서는
잠깐 숙연해지려는 마음도 가져본다
외과수술로 겨우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이 고목은
끈질김도 있으나 애잔함도 지녔다
눈속에 묻힌 거친 너덜겅을 올랐으니 이제는 걸음이 좀 편안해졌고!
망경대 갈림길
함백산 뒤로 아스라히 뻗어 나간 백두대간 줄기의 산릉들
정상에 군부대 시설과 산자락에 선수촌을 지닌 함백산은
요즘 트레킹 마니아들에게 핫한 길로 뜨고 있는
운탄고도(雲炭高道)라는 새로운 트레일이 생겨
나도 은근히 구미를 당기게 하는 곳이다
무심코 지나친 '사스래나무'를 뒤돌아 보고!
아직도 건재한 이 주목(朱木)들은
태백산에 들를 때면 놓치지 않는 단골 모델들이다
햇살 고운 산정에서 고등학생 또래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내려오기도 했다
역광의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그들을 보내느라 잠시 기다려야 했고!
뒷모습도...!
우거진 잡목 대신 죽은 나무가 휑뎅그레한 이 곳은
초목이 잘 자랄 수 없는 조건인지 넓은 공간에 고사목만 외롭다
주목의 수명(壽命)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데
이 나무들은 지금 '살아 천년일까~ 죽어 천년일까~'
"별걸 다 신경 쓰며 지나가고 있네! 보이는대로 보면 되지~ㅎ"
드디어 태백산의 최공봉 장군봉(1,567m)에 올라왔다
사각으로 돌을 쌓아 만든 이 제단은
태백산의 3개 제단중의 하나로 장군단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장군단
천왕단에서 북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단으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천왕단보다는 규모가 작으며
3m남짓한 높이로 자연석을 남쪽으로 쌓아 직사각형의 단을 조성하였다
내부에는사각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자연석이 비석처럼 세워져 있다
어떤 장군을 기리는지는 전해지지않고 있다
약 300m쯤 떨어진 천왕단으로 가는 길은
예리한 칼바람 추위가 온 몸을 엄습한다
칼바람에 장갑에서 손을 꺼내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거친 산줄기를 드러내는 눈앞의 풍경들을
차마 외면 할 수 없어 셧터를 눌러보지만
이 곳이 어느 지역인지는 정확한 구분이 되질 않는다
짐작으로 칠량이 계곡이 아닐까 어림만 해 볼뿐!
천왕단의 뒷모습
죽어 천년을 살고 있는 나무
천왕단에서 백단사로 이어지는 능선
뒤돌아 본 장군봉
앞으로 달아 난 최박사님 일행을 제외하고는
내가 선두인 것 같은데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버스는 만차를 이뤘었건만...!
모진 추위에 속수무책이라 서성이다 말고 천왕단으로 붙는다
천제단
태백산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로 쌓아 만든 제단이다
천왕단을 중심으로 한줄로 북쪽에 장군단이 있고 남쪽에 하단이 있다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예로 부터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
제천 의식의 장소가 되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부족국가로부터 제사를 올리던 장소로 전해져 내려오며
지금은 개천절에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위해 제를 지내고
매년 열리는 강원도민 체전에서는 성화불을 붙이는 곳이다
산을 짧게 타려면 여기서 당골로 하산을 하면 되고
좀 길게 타려면 부쇠봉을 거쳐 문수산, 소문수산, 당골로 이으면 된다
나는 혼자이지만 긴 거리를 택했다
앞에 보이는 밋밋한 봉우리거 부쇠봉이고
문수봉은 왼쪽에 솟아있다
문수봉을 향하여 계단을 내려서고!
하단은 천제단중의 남쪽에 위치하여 하단으로 불리고
중앙의 천왕단과는 150m쯤 떨어져 있다
다른 두개의 단(壇)과는 달리 담이 없고 규모가 작으며
사방으로 十형으로 돌출된 벽을 쌓았다
그 앞에는 참판 벼슬을 지낸 분의 묘지도 있었고!
터널을 이룬 잡목들 사이를 뽀드득 거리는 눈을 밟으며 기분좋게 걷는다
양옆으로 늘어선 나뭇가지며 중간에 키큰 교목들의 몸매가 예술이다
태백산에서 아름다운 구간을 하나 꼽으라면 난 이 곳을 으뜸으로 꼽을 것이다
부쇠봉 직전에 백두대간 갈림길 이정표가 서있고!
*
개인적으로 20여년 전 대간을 걸을 때 고치령에서 시작하여
천신만고 끝에 높은 산 몇개를 넘고 넘어 저 곳을 빠져 나올 때는
승리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으나
다시 힘들여 화방재까지 태백산을 넘어가는 길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였었다
적당한 곳을 골라 쉬어볼까도 했지만
"조금만 더"를 반복 하다보니 목도 마르고 다리도 지쳐가는 듯 했다
뒤돌아 보는 태백산
드디어 태백산 주목의 '킹'이라 할 수 있는 부쇠봉 아래의 주목앞에 섰다
예전에는 달력의 풍경 사진에 빠지지 않던 나무였으나
지금은 가지도 많이 부러져 나가고 몸매도 빈약해져
옛날처럼 우아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고한 자태가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잠시 쉬었으니 또 길을 이어갈 의무가 산꾼에게는 있었고!
잠시 망서리기는 했지만
별 볼 것 없는 부쇠봉은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부쇠봉 산모룽이를 돌아가며 나뭇가지 사이로 망경사를 훔쳐본다
아직 가야할 문수봉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걸음은 느린데 눈만 바쁘구나!
은빛으로 반짝이는 사스래 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망경대 갈림길과 백천 탐방센타로 빠지는 이정표를 지나
문수봉 비탈길로 접어들었다
정상에 거의 닿을 무렵 길옆에
맷돌 바위가 눈에 띄어 모처럼 배낭을 벗었다
무릎도 투정을 부리고 약간의 허기도 느껴지니
떡과 물로 체력을 보충한다
전에 같았으면 쏘맥이 보약이었는데
지금은 안 먹는 음식이 되었으니 사탕 한 알로 입가심을 할 수 밖에!
얽히고 설킨 나무들의 사연을 바라보며 조금 힘을 냈더니
문수봉의 뿔탑이 홀연히 나타난다
어지러이 널브러진 돌들이 깔린 문수봉은
돌탑들과 치성을 드리는 돌담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
오래 된 일이기는 하지만 이 곳에 움막같은 걸 설치하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도 있었고
기를 받는다고 차거운 돌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람도 보았다
지금도 무속인들 중에는 이 곳을 기도터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
돌담을 두르고 평평한 기도 공간도 조성되어 있다
문수봉에서 바라보는 태백산
산의 이마쯤에 해당되는 곳에 자리잡은 망경사가 아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