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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오막살이 기차 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 큰다
은성아, 요즘 네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그동안 마음을 다 쏟아서 믿고 따랐던 사람들에게서 실망을 하고, 그러다 보니 신앙의 기초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괴로운 네 심정을 다잡기가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울지 생각하면 부모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면서 사죄를 구하는 심정이다.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몸과 마음과 시간을 바쳐서 믿는 바에 충실하게 살아오려고 몸부림을 했던 것들이 물거품같이 되어버리고, 그토록 거룩하고 존경스럽게 보이던 분들은 위선과 무책임으로 상처만 안겨준다는 현실이 끔찍하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우며 신음하는 네 모습을 그려보며 나의 마음도 너무 아프구나.
그러나 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속담에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은 아니다”고 했지 않니? 전체 중의 지극히 일부의 어떤 것을 가지고 마치 전체가 그런 것인 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지? 소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이론이다. 사실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는 이유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경험한 지극히 일부의 것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해 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실제로 자기가 다녀본 교회는 겨우 한두 교회일 때가 많고, 자기가 만난 목회자나 교인들도 지극히 제한된 몇 사람들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 경험을 가지고 모든 교회와 모든 교인들을 판단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있니? 기독교가 시작된 시간을 보더라도 벌써 2천 년이 넘었지 않니? 그러니까 기독교나 교회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면 너무 성급히 일부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가 없는 것 아니니? 네가 지금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어떠한지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과연 전체를 충분히 살피고 나서 내린 타당한 결론에 의해서 지금처럼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니?
기찻길 옆 오막살이 기차 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 큰다는 노래를 생각해 본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 시작부터 숱한 공격과 이단설들이 계속되어 왔지. 그런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는 이제는 모든 교회가 문을 닫고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1694-1778)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글을 많이 썼고, 인쇄소를 세워 책을 펴내고 열심히 팔기도 했는데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가는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그는 또한 말솜씨가 좋았는데, 불신앙에 빠진 시민들은 그의 무신론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신이 난 그는 파리의 대로에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시오!” 그렇지만 그도 나이의 벽을 뚫지 못하고 점점 노인이 되어 갔고, 결국 병들어 죽음 앞에 이르게 되자 그는 회진 온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만약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볼테르 선생님! 선생님의 생명은 6개월은 고사하고 이제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원기 왕성할 때 확신에 찼던 무신론은 의사의 선고에 흔들렸다. “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그리고 세월은 흘러 볼테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났을 때 그가 호언장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무신론 책을 펴내던 그의 인쇄기는 성경을 인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그의 저택은 성경 보관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1790 년 Tom Paine은 50 년 이후엔 세상에 단 한 권의 성경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200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경은 전 세계의 방언으로 매년 2천만 부 이상이 팔리고 있다.
「벤허」를 생각해 보거라. 미국 남북 전쟁 당시의 장군 류 웰레스는 기독교인들을 해방시켜 주고자 2년간이나 구미의 도서관, 박물관을 뒤졌는데 결국 처음 의도와는 정반대로 기독교를 옹호하는 내용의 「벤허」라는 책을 쓰게 되었고, 이 소설은 나중에 유명한 영화가 되었다.
모스크바 광장에 대포를 세워놓고 하늘을 향해 포격을 하고서 이제 하나님은 죽었으니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했던 사람들은 앞으로 자기네 눈앞에서 기독교가 남아 있을 수는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에는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있고,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있니? 중국도 그토록 기독교를 없애려고 했지만 지금은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있니?
은성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밖에 없는 분명한 증거들을 가지고 믿는 것이다. 몇 사람이, 그리고 유명한 몇 사람이 기독교를 공격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쉽게 동요할 일이 아니고, 몇 사람이 실망을 주고 신뢰를 잃게 한다고 결코 좌절할 일이 아니다. 2천 년의 역사가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보존하신다는 사실이다. 사단이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을 때에 승리를 꿈꾸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계획하셨다. 아마 사단은 가룟 유다라는 예수님의 제자를 사로잡아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하고, 드디어 십자가에 죽게 했을 때는 완전한 승리에 도취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사탄의 모든 것을 짓밟아버리셨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 주시고 교회가 시작되게 하셨고, 승천하신 그는 세세토록 살아계시며 교회 사이에 다니시며 교회를 붙들고 계신다(요한계시록 1:12-20). 사울이 교회를 맹렬히 핍박할 때에 사단은 즐거워하며 교회의 종말을 기다렸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울을 사로잡아 자기의 종을 삼고 교회에 선물로 주시어 일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작정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뜻이 사단의 어떤 방해와 공격에도 무너질 수 없고 결국 그 창조하신 본래의 뜻을 다 이루실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6:38-40) ‘내게 주신 자’ 즉 ‘예수님께 속한 자’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만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나의 몸과 영혼 모두가 나의 것이 아니라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사실이 유일한 위로’라고 고백하면서, 성령께서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부터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은성아, 이제 네가 힘들어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교회와 교인들과 관련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바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거짓 가르침을 퍼뜨린다고 이미 가르쳐 주었다. 고린도후서 11:1-5를 읽어보자. 일찍이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지금은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어서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기를 힘쓴다. 그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사단의 일군이 되었으면서도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여 교회 안에 거짓된 가르침을 퍼뜨린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사단이 자기 일군들을 시켜서 하는 일이 무엇이니? 바른 말씀 대신에 거짓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11:4). 우리의 싸움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고린도후서 10:4-5). 하나님을 대적하는 잘못된 가르침을 대항하여 바른 가르침을 전하고, 그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평생 힘써야 할 싸움이다. 우리 주변의 교회가 아무리 타락하고, 목회자들이 아무리 실망을 주어도 우리는 결코 놀라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요, 반면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디모데후서 3:12-13)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이 일을 미리 말씀하신 성경에 놀라면서 더욱 이 성경 말씀을 잘 배우고 그 말씀을 확신하며 말씀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디모데후서 3:14-17). 특히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서 성경에 얼마나 많이 기록하고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말씀이 있으니 마태복음 7:21-23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가 지도자로 알고 따르며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나 장로, 선교사나 신학교 교수라고 하는 지도자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거짓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이미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놀라지 말고 그들의 속임에 속지 않도록 주의하여 분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이 있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태복음 24:24)”. 또 요한복음에서는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고 말씀했지 않니?(10:4-5) 우리에게는 참 목자인지 타인인지 구별하여서 따르거나 따르지 않을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그만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잘 알고 그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어야 하겠지? 물론 어떤 어려움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하고.
은성아, 이제 네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나 목회자들이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행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 아픔을 안고 살게 하고, 심한 경우엔 실족할 위험에 이르게 하지만 사실은 그것 때문에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고 우리 자신을 살피게 하고, 우리를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창세기의 처음부터 인류 역사는 죄악의 역사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고 하더구나. 우리는 창조 후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을 기억함과 동시에, 곧바로 사단의 유혹을 따라 죄를 범한 인간의 전적 타락과 부패를 또한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죄에 빠진 우리를 끝까지 참으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와 지혜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요, 그에 관하여 기록된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다. 혹시 예수님과 관련한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경 교사들이 이상한 가르침을 퍼뜨리고 잘못된 행실을 보여주더라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이 잘못된 것 때문이 아니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은 믿을 수 있는 절대적인 표준이 된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리고 너는 잘못된 사람들을 바라보며 실망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향해 눈을 들어야 한다. 한숨을 쉬는 시간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하고, 슬퍼하는 시간에 오히려 성경을 읽어야 한다.
나는 이런 고통스런 시간을 몇 차례 가진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이니 진지하게 받아주면 고맙겠다. 솔직히 말해서 바로 내 주변의 교회에서, 내가 알고 존경하는 지도자가 실망을 주고 고통을 줄 때 그 깊이를 누가 다 알 수 있겠니? 기도할 힘도 잃고 성경을 펼칠 의욕도 잃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 경험을 통하여 배운 교훈이다. 연약한 사람으로서 잠시 슬퍼하고 넘어져서 울 수도 있지만 곧 마음을 정리하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돌봐주시고 계신 증거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기차 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기차 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 큰다는 가사를 자주 생각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께로 가는 날까지 이런 저런 소리도 요란하고, 그에 따라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는 일도 많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날로 굳어지고 자라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말했다. “19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가고 왔으나 오늘날도 예수가 인류의 중심 기둥이며 진보 대열의 지도자이다. 지금까지 진군하였던 모든 육군과, 조직되었던 모든 해군과, 개회되었던 모든 회의와, 통치하였던 모든 왕들을 다 합해 놓아도 이 고독했던 생애를 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큼 이 지상에서 인간 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고백에 동의합니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방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모두 일어나 경의를 표할 것이지만,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방안에 들어오신다면 우리들은 꿇어 엎드려 경배할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의 실망과 좌절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았던 분들의 고백을 배우도록 하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큰 구원과 평안을 갖다 주신 크신 하나님이시오, 구속주이시오, 다시 오실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부조리하게 여겨지고 억울하게 고통당한 것들이 모두 바르게 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을 아는 우리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분께 무릎을 꿇고 그 은혜와 지혜와 능력을 찬송하자. 어느 목사나 장로, 어느 교회나 교단이 어떠한 문제를 보여 주더라도 우리가 힘써 할 마땅한 본분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