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마음의 등불로
이 책<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은 자본주의 성과사회가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교묘하게 노동을 착취하면서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를 현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칼릴지브란이 “자유가 자신의 속박을 잃을 때, 그 자체는 더 큰 자유의 속박이 된다” 고 말한 것처럼 자유는 자신의 의지로 통제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과사회의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내재화하면서,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에서 우울하게 노동하는 성과기계로 전락하였다.
이 책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할수록, 즉 과잉될수록 공허해짐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과연 이런 피로사회의 대안은 무엇일까?
이제 한병철의 피로사회로 여행을 떠나 보자. 단 제목만큼 피로하니 피로회복제는 필수 준비물이다.
<피로사회>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로 시작한다. 냉전이 종식되지 않은 한국사회도 성과사회로 진입하여 ‘피로사회’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20세기가 부정성, 이질성, 타자성이 지배하던 규율사회라면, 21세기는 긍정성, 동질성, 자아성이
과잉된 성과사회이다. 규율사회에서는 타자에 의해 '뭔가를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성이 지배한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시대이다. 그 결과 긍정성이 과잉되어 소진과 우울증 같은 다양한 심리 장애가 나타났다. 성과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고, 노예이면서 주인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상품을 생산해 낸다. 그 이유는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유롭다는 느낌'을 가지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며서 더욱 자신을 가혹하게 부려 몸과 마음, 정신이 소진되고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순간 우울증에 빠지고 심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과잉생산이나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긍정성의 폭력은 자기 안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내재시켜 삶의 생동성을 소진시킨다. 이런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킨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중독에 빠져 소진과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
저자는 자유, 쾌락, 선호를 핵심으로 하는 후기 근대,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 피로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대안으로 새로운 의미의 피로, '사색적 삶’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생존을 위해 허덕이며 바쁘게만 살 것이 아니라 사색과 깊은 심심함을 즐기면서 삶의 경이감이나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과사회에서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놀이와 평화, 막간 무차별과 우애 더 나아가 어울림의 시간이 참된 삶을 위해서는 진짜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또 커뮤니케이션 과잉 시대에 참된 소통은 없고, 수많은 이슈에 거품 물고 토론 하지만 정작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면을 사색하고 집중해야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책에서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바뀐 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하는데 나는 자본주의가
노동의 저항과 자본의 한계에 부딪치자 규율적 통제와 자율적 통제가 상호보완하면서 같은 패러다임 안에서 상대경쟁, 무한경쟁으로 변모되었다고 본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체제와 강자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외적 강제와 규율을 내면화했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냉전이 종식되지 않아 감시와 처벌 그리고 성과가 공존하면서 노동자들은 더욱 가혹하게 일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너 죽고 나 살자'식의 무한경쟁 체제 대신 일정한 기준이 넘으면 인정해주는 절대경쟁, 유한경쟁 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 또 세계의 무한 경쟁 시스템과 그것을 추동하는 조직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런 최강의 시스템과 동일시하고 있는 우리의 가치관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이 책은 정말 잘 쓴 책이다. 제목과 같이 내용도 굉장히 피로하다. 우리는 실제 피로사회를 살고 있어 굳이 어려운 동어의 반복으로 피로사회를 까다롭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피곤하다.그런데 그 대안마저 심신 기능을 저하시킨다. 고작 쓸모없는 것(무의의 피로)을 하고 내면의 탐색을 하라는 뻔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피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구체적 방법인 '어떻게'가 없어 무척 아쉬웠다.
나도 지난 5~6년 동안 승진을 위해 성과를 내려고 과도한 일로 소진과 고갈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피로의 터널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끊임 없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내면 탐구였다.
나를 알기 위해 현실의 문제을 관찰 한 후 사색을 통해 질문하고 책에서 실천 방법을 찾아 행동에 옮기면서 나를 발견하였고 정체성이 또렷해 졌다. 지금은 평온한 마음으로 중심을 잡고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 내면화 전쟁에서 부상과 전사를 피하고 자유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를 성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나도 칸트처럼 어둠을 밝힐 마음의 등불을 요청한다.(~요청한다 요론 말 하고 싶었는데...칸트 사랑해요 ㅎ)
첫댓글 책의 핵심 내용과 저자의 사상적 메시지를 잘 정리해 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