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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수학은 가장 자명해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이유를 묻고 적절한가 여부를 따’지는 학문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 교육에서는 ‘수학을 배우면서 왜 그런 발상을 하게 되었고, 왜 그런 것이 문제가 되었으며, 왜 그런 것을 연구하게 되었는지, 왜 그런 정의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를 묻지 않’고 그저 공식과 정리를 위주로 암기하는 과목으로 배우고 있다. 저자는 수학에 대한 그러한 태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수학의 발전은 올바르다고 으레 당연히 여기던 것들에 의심과 질문과 비판을 던지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학교 교육에 만연된 ‘그저 따라 배우고 암송하는 식의 태도처럼 수학의 정신에 반대되는 것’이 ‘수학을 끔찍하고 지겨운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서양의 과학사에서 수학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근대 과학이나 근대 문명 전체에서도 수학의 위상이 적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수학은 이미 수식이나 이상한 기호를 사용하는 계산 기술만도, 혹은 난해한 공식과 정리의 집합만도 아’니며, ‘근대 초기의 중요한 수학자가 모두 과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음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수학은 이미 하나의 철학’으로서, ‘근본적으로 이질적, 어느 하나로 사유할 수 없는 다양한 사유의 흐름들이 모이고 분기하고 흩어지며 다시 모였다가 또다시 갈라지는 사유의 선들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수학을 통해 철학을 사유하는 것만큼이나, 철학을 통해 수학을 다시 사유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에 저자는 ‘수학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이러한 작업을 전개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실상 복잡한 공식과 정리를 암송함으로써 풀이의 난이도를 높여가는 학교 교육만을 접해왔던 사람들은 일찍부터 수학 과목을 포기하여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수학이라는 분야가 ‘철학인만큼 또한 기발한 상상력에 가득찬 시요 문학이며, 동화적 세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동화나 소설, 희곡이나 시나리오, 논문 등과 같은 여러 스타일을 넘나들면서, 수학사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나 심지어 허구적인 전설까지 글을 만들어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수학이라는 과목을 접하지 않은 기간이 상당히 흘렀기에, 실상 이 책에서 설명하는 수학의 요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학의 역사에서 그 전개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었으며, 기존의 이론에 대한 질문과 비판을 통해서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수식 없는 수학이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식의 대부분을 지워버려야 했던’ 점을 저술 과정의 아쉬움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수학과 그리 친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저자의 이러한 방식은 이 책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수학적 정리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것이 당연하지 않고 오히려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학교 교육에서 어려운 단계로 이해되는 ‘미적분학’이 탄생했으며, 해당 이론에 대한 엄밀한 탐색과 비판을 통해 다시 그 한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 성과들이 이 책에서 서술되고 있었다.
‘19세기 이래 수학자들은 수학적 진리의 낙원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한 걸음 다가서는가 싶으면 또 다른 강이 나타나고, 그걸 넘어 또 한 걸음 다가섰는가 싶으면 또 다른심연이 나타나고 하는 식으로 해결은 계속해서 연기되고 유예되었다.’ 저자는 이처럼 근대 수학의 전개를 끝없이 진행되는 탐색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이른바 기존의 수학적 정리에 대한 ‘역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다 읽은 시점까지도 독자로서 여전히 수학과 친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수학에 관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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