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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았다. 각자에게 차려진 식탁은 늘 ‘보통’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그리고 있는 다양한 식탁의 모습은, 적어도 책을 읽는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식탁이나 한 끼 식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식탁으로 상징되는 음식에 대한 모든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모두 40개의 에피소드가 포함된 다양한 식탁의 풍경들이, 그래서 나에게는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문득 나에게 인상에 남는 식탁의 풍경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 밤늦도록 제사를 지내고 물린 음식들이 그득한, 풍성한 식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요즘과 달리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적어도 명절과 제삿날만큼은 온갖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쌀밥과 고깃국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나에게 할머니는 ‘밥과 국은 네 것이니, 상에 있는 다른 음식부터 먹으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지금은 음식을 놓고 서로 먼저 먹겠다고 다툴 일이 없지만은, 당시 6남매와 3대로 이뤄진 대가족에서 더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조언이었던 셈이다.
이 책을 통해서 ‘킨포크 라이프’라는 말을 비로소 접했다는 것도 밝히고자 한다. 킨포크가 ‘친척이나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파생된 ‘킨포크 라이프’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느리고 여유롭게 자연 속에서 즐기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태도를 일컫는다고 한다. 아마도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가야만 하는 대도시의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상적인 삶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리라.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지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삶을 즐기려고 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이루고 살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젊었을 때는 서울에서 벗어나는 것이 다소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40개나 되는 식탁의 풍경을 모두 4개의 큰 범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소주제를 달아 각각의 모습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첫 번째는 ‘당신의 마음 식탁’이라는 항목으로 모두 10개의 식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저자의 기억 속에서 마주쳤던 인상적인 식탁의 풍경이거나, 상상력을 동원하여 식탁에 앉아있던 이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때로는 영화나 사진 속의 모습을 모티프로 하여 다양한 식탁의 모습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심야식당’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식탁’에서 제시된 ‘언어가 모여 시와 소설이라는 집이 되는 것처럼, 각각의 재료가 모여 음식이라는 하나의 집을 이루는 것’이라는 표현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두 번째 항목은 ‘누군가의 슬픔 식탁’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12개의 식탁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이곳에서 ‘킨포크 라이프’라는 제목으로 식탁의 풍경을 다루면서, ‘어쩌면 킨포크 라이프라는 말은 전원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낸 허위일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루는 식탁의 모습이 ‘슬픔 식탁’이라는 주제로 일관하고 있기에,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쩌면 생전에 이루지 못할 꿈을 꾸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나아가 편의점에서 간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심경이나, 오지 않는 애인의 휴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식탁에 앉아있는 이의 모습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여기서 선택한 ‘피시 앤 칩스’라는 음식에 대한 추억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2011년 여릅무터 1년 동안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낼 때, 밴쿠버 남쪽 리치몬드라는 도시의 어시장에서 먹었던 ‘피시 앤 칩스’가 떠올랐다. 주로 대구라는 생선의 살에 튀김옷을 입혀 튀기고, 감자칩과 함께 내는 음식이었다. 이 음식은 나에게는 항상 당시 가족들과 더불어 여행을 다니며 먹었던 추억을 떠오르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힘든 노동의 일정 속에서 한 끼 때우기 위한 식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슬픔 식탁’으로 제시된 음식이 다른 이에게는 추억의 음식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이 항목의 마지막에서 제자의 장례식을 찾아 차마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화자의 심정에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내 안의 생각 식탁’이라는 제목의 세 번째 항목이었다. 모두 11개의 주제로 구성된 ‘생각 식탁’에서는 칼과 도마와 같은 주방기구는 물론 연어와 소금 그리고 광어 등 각종 식재료를 통해, 저자가 느낀 감상을 풀어내고 있었다. 여기에 쓰임새가 다해 고물상 앞에 놓인 냉장고와 주방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제빵기나 믹서 등도 좋은 글감으로 채택되고 있다. 특히 커다란 고기에서 자유자재로 살을 발라내는 정형사를 통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문득 이 항목의 글들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 책의 글들을 ‘산문이자 짧은 소설이자 한 편의 시이기도 하다’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와 산문의 경계 어디쯤에 놓여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여백이 많아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읽은 글들에 대해서도 해석의 층위가 다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묵묵히 밥을 먹는 순간만큼 삶에 대한 애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무덤처럼 붕긋하게 솟아 있는 밥이 죽음처럼, 혹은 삶에 대한 애착처럼 물끄러니, 물끄러미 놓여 있’는 숟가락의 모습을 그린 부분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마지막은 모두 7개의 식탁 풍경을 표현하고 있는 ‘우리들의 함께 식탁’이라는 항목이다. 실상 ‘함께 식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책의 전체적인 정서에 맞추어 다소 음울한 내용이 포함되고 있었다. 예컨대 몽골의 떠들썩한 잔치와 음식을 논하면서 다시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을 제시하면 끝을 맺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혐오 음식 중의 하나’라는 ‘키비악’에 대해 논하면서, ‘음식은 그저 취향과 문화의 차이일 뿐 우열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예컨대 특정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신념은 존중해줄 수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사회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신념’은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타인을 설득하려고 해야지,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보았듯이,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모습만을 강요한다면 끝내는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음식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여전히 어떤 내용에 대해서는 저자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것을 통해 개인적인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공유하면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한 끼 식사의 거룩함을 떠올리며 나는 우리 삶의 가슴 아픈 어느 지점을 생각한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식사를 하고 허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님은 자명하다. 그것은 삶을 견디는 힘이며, 삶에 대한 갈망이다. 물론 먹는다는 것은 때로 삶을 연명하는 치욕이자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먹는다는 것과 삶을 견뎌낸다는 것이 소중한 가치임은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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