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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일 비가 갠 일요일 아침으로 하늘은 잔뜩 흐리다. Tv에서는 잠실을 출발하는 중앙마라톤 장면이 생중계 되고 있어 일주일 전의 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오전에 산행을 하려고 불광동에서 족두리봉 북쪽으로 올라가 향로봉 정상을 거쳐 사모바위에 다다르니 2시간 30분이 지났다. 새벽까지 비가 내려서인지 습기가 많고 별다른 느낌이 없이 정상을 서성이는데 도심은 안개로 가득하여 답답한 지경이다. 부는 바람에 끊임없이 낙엽이 날리는 북한산에서 점심을 먹고 중턱에 있는 승가사 경내에 잠시 머물다가 하산을 했다. 구기동 음식점에서 요기를 하고 마을버스로 경복궁에 도착하여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도서관에서 바로 학원으로 가겠다고 말을 한다. 홍제동 전철역 근처 롯데리아로 이동하여 저녁 대용으로 새우버거와 콜라를 먹이고 집에 있는 딸에게도 주려고 하나를 더 사들었다. 과거에 날이 어두워질 무렵이면 호떡 몇 개를 봉지에 담아 흔들흔들 오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았다. 딸과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시청하며 보내는 중에 주말이라 평소에 비하여 수업을 많이 한 아내가 힘든 표정으로 현관에 들어섰다.
2일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서울이 영하로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가 떨어졌는데 내일은 더 쌀쌀하다는 예보를 한다. 감기 기운이 여전하여 깊게 잠을 못자고 새벽에 거실에서 보내다 방에 들어갔더니 늦게 잠이 든 아내도 벌써 일어나 책을 읽고 있다. 낮은 기온으로 마음까지 스산한 아침에 어제 먹던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하고 11월 월요일을 맞이한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갔다. 평소처럼 출근하는 차량과 함께 가다가 독립문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이 길도 머지않아 아들이 졸업하면 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 다니며 마주쳤던 모든 장면들은 몇 장의 필름처럼 살아가는 동안 기억에 오래 남을 수가 있다. 아들을 내려주고 아직도 노란 단풍이 가을을 알리고 있는 독립문 거리를 경유하여 체육관에 도착했고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모처럼 몸무게를 확인하려고 체중계에 올랐더니 일주일 전에 긴 거리 마라톤과 감기에 걸린 채 고향에 다녀온 일 등으로 체중이 2킬로 이상 감소가 되었다. 내 키가 170센티이니 65킬로는 건강상 표준체중이라고 해도 67~8킬로는 되어야 보기가 좋은 몸을 유지할 수 있다. 기온이 내려가서 그런지 열심히 운동한 것에 비하여 그다지 만족감은 생기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하고 학원에 나갔다. 아내는 낮부터 동학이 엄마와 함께 다닌다는 문자가 왔고 기온이 내려간 저녁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태우러 가겠다고 하니 혼자 온다고 사양하여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보쌈을 만들어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어 사랑과 행복이 저절로 생겼다.
3일 신설동 3층 재계약 때문에 신경이 쓰여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서울의 기온이 영하 3도까지 내려갔고 강원도에는 눈이 내려 가을과 겨울이 어울려 있는 절경으로 변했다. 아침에 고기 김치찜이 맛이 있어 아내나 아들이나 정신없이 먹는데 몸이 아프다는 딸은 계란찜과 멸치볶음으로 간신히 식사를 한다. 날이 추워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려고 미리 나와서 히터를 틀고 기다렸는데 학교 도착시간 15분을 남기고 8시에 내려왔다. 쏜살같이 차를 몰고 가서 교문이 닫히는 순간에 아들을 들여보냈지만 학교든 직장이든 가급적 여유가 있는 출발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학교 앞에서 신설동으로 갔다가 매월 임대료로 인하여 갈등이 많은 3층 세입자에게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비우라고 통보를 했다.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주인인 내가 더 이상 연장을 하지 않겠다니 세입자도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했고 10여일 후에 이사를 가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신설동에서 청량리와 어머니가 계셨던 위생병원 앞을 지나 중랑구 동생의 학원에 도착하여 설렁탕으로 점심을 먹고 학원 이전과 새롭게 임대한 곳의 칸막이나 전기시설 등을 점검했다. 보기에는 작고 사소한 일 같지만 기존 장소를 철거하고 다른 곳에 학원을 새로 만드는 과정은 시설이나 비품 준비 등 만만한 일이 아니다. 고향에서 친구들한테 이번 주 토요일에 내려와 동창회를 새롭게 정리하고 나를 중심으로 출발하자고 여러차례 전화가 온다. 이제 나이가 50줄이 되다보니 고향이나 친구가 그리울 때지만 나는 주말에 수업도 있고 앞으로 할 일이 많아 전면에 나설 생각은 없다. 오후에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 보충강의가 있어 마무리도 할 겸 갔다가 수강생 체크와 금전처리 등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 숙제를 한다는 아들이 책만 펼쳐두고 쿨쿨 잠이 들어 화가 난 아내가 씩씩거리며 거실을 배회하여 나조차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다해도 공부는 스스로가 알아서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 부모가 야단치고 억지로 강요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4일 아들과 학교에 가려고 차에서 기다리는데 어제 잠만 잤다고 꾸중을 들었는지 울상이 된 채로 씩씩거리며 아들이 내려왔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집에서는 부모가 공부를 강요하니 힘들 것이지만 이런 상황은 비단 아들뿐만이 아니고 모든 학생들이 마찬가지다. 학교에 아들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중에 시골에서 우리의 논을 경작하는 상희 형이 전화를 하여 임대료(쌀)를 신내동에서 가져가기로 했다고 전한다. 유언공증을 나에게 하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 당연 내 몫인데 형의 욕심인지 착오인지 모르겠고 내 입장을 알리는 내용증명을 발송하여 소유권을 빨리 이전하리라 생각했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하고 계약한 논에 대하여 임대료가 다른 곳으로 지불될 때는 소작인 상희 형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내용증명을 즉각 작성했다. 장애인으로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가는 선하고 순박한 고향 형한테 감정이 실린 삭막한 내용의 서류 발송이 한편 미안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학원에 나가 수업을 하면서 아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문자를 했고 밤에는 서대문 도서관에 있다기에 단숨에 가서 태우고 집에 왔다. 문자와 전화를 하고 동행하는 과정이 아들에게는 불편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간섭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관심이고 사랑임을 이해할 때가 있을 것이다.
5일 신문을 보면서 새벽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는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감기 기운으로 컨디션이 좋지가 않다. 아내는 근처에 사는 여수댁 아주머니와 걷기를 하고 돌아와 수락산역 근처에서 장모님과 처제를 만나 침을 맞고 뜸을 한다고 다시 지하철로 나선다. 혼자 점심을 먹고 학원시설을 한다는 동생에게 인테리어 업자를 소개시키려고 신설동에서 만나 함께 묵동으로 출발했다. 동생의 학원은 11월 말까지가 계약기간이니 그 때까지 철거를 하고 새로 얻은 장소에 학원에 어울리는 작업과 시설을 해야 한다. 상해에 간 영식이 전화가 와서 다음 주 월요일에 귀국을 했다가 또 출국한다고 하여 잠시나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반가웠다. 묵동을 출발하여 성북동 학원으로 돌아와 최선배를 만났더니 중등부 수강생이 탈락하여 임대료도 주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하고 고등부 강의를 자처하고 나선다. 선하고 좋은 선배라지만 현재는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초라해졌고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까지 고통이 많다니 안타까움이 많았다. 강의를 마치고 신설동에 다시 가서 세입자와 사무실 이전에 대하여 확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왔더니 오늘 침과 뜸을 배웠다는 아내가 전문가처럼 행세를 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잠자는 딸에게 또 누워 있는 나에게 마지막에는 학원에서 늦게 온 멀쩡한 아들에게까지 시범을 보인다고 긴 침을 들고 정신없이 서성거려 무섭기까지 했다.
6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다시 잠들어 꿈을 꾸었는데 학원에 신규 수강생이 3명이나 현금으로 등록하여 기분이 좋았다. 요즘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현실의 의식이 얼마나 강하면 꿈으로 연결되었는지 오늘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침에 쌀이 떨어져 어제 먹던 밥으로 식사를 하려니 맛이 없어 힘들었고 학교에 아들을 태우고 갔다가 사무실을 이전한다는 세입자를 만나러 신설동에 갔다. 분명하게 처리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기에 11월 15일을 이삿날로 정하여 서류를 작성하고 공과금이나 세금 등을 정산한 뒤에 보증금 일부를 전달해 주었다. 밖으로 나왔더니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마음이 후련했고 새벽에 내린 비도 완전히 그쳐 맑은 하늘로 바뀌어 있다. 점심을 자장면으로 사 먹고 학원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6시부터 고등부 수업을 하고 늦은 시간에 마쳤다. 어느 때는 힘이 들어도 교재를 연구하고 강의를 꾸준히 하는 것은 금전적인 이익을 떠나 다음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가르치는 일은 곧 내가 배우는 시간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고 강의를 멈추면 감각이나 리듬이 사라져 다시 하기가 쉽지 않고 결국 어정쩡한 미래가 될 수 있다. 저녁에 SLS 원장을 만나 5층을 내가 사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 딸과 재미있게 식사를 했다. 밤에는 아내가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와인을 꺼내어 할 수 없이 조금 마셨는데 맛이 나지 않아 정신이 멍했다.
7일 수업은 없고 특기활동만 하는 토요일에 식사를 마친 아들이 가벼운 걸음으로 학교에 간다. 아침에 오늘이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여 북한산에 갈까 하다가 아내가 안산에 오른다기에 함께 따라 나섰다. 아파트를 벗어날 즈음 머리를 짧게 깎아 한 눈에 봐도 불량스러워 보이는 아들이 주말 2교시를 마치고 벌써 돌아오고 있다. 우리를 보고 달려온 아들은 오늘은 웬일인지 엄마를 갑자기 덥석 안아주어 의아한 나와는 반대로 아내는 연신 싱글벙글 좋아라고 한다. 나뭇잎이 거의 떨어진 안산에 올라 중턱을 걸었고 산악회 운동장에서 기구운동을 하는 사이에 아내는 산을 한 바퀴 더 돌고 왔다. 안산에서 홍제천으로 내려가 모래네 근처까지 걷다가 2인용 자전거를 대여하여 한강으로 나갔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아내는 연신 탄성을 올렸고 한강변 매점에서는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도 사 먹었다. 가을을 자전거와 함께 만끽하고 해가 기우는 늦은 오후에 집에 돌아왔지만 오늘은 산에서 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날이다. 초저녁에 sLs 원장을 만나 어제 이야기대로 중등부가 사용하던 5층을 내가 사용하는 것으로 최종 약속하고 저녁을 함께 먹었다. 영화를 보러 간다고 전화가 온 아내와 딸의 연락을 받고 8시경 집에 도착했더니 친구 우현이가 성경책을 들고 경비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를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으로 인도한다면서 내일 오전 자신이 다니는 부흥회에 꼭 나오라고 당부하며 성경책을 전하고 술도 사 주었다.
8일 밤새 내린 비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제 늦게까지 우현이와 술을 마셨는데 그 영향이 아침까지 미쳤고 그러나 약속을 했으니 교회에는 가야한다. 종교를 가지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라도 주말에 강의를 많이 하는 나로서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평소에 하나님과 천국의 실재를 의심하는 내가 종교인이 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일요일 아침에 홍대역을 지나 양화대교를 건너서 양평동에 도착하니 규모가 크고 오래된 예수교 장로회 영은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 신도들이 많았고 웅장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오늘은 초청 주일이라 나처럼 처음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담임목사는 제주도 출신으로 집사인 우현이와 동갑이니 나와도 같은 나이인데 작달막한 체구에 부드럽고 조용하게 설교를 잘 한다. 기념품을 받고 점심까지 먹은 후에 교회 안에 있는 커피숍에 앉아 있으니 풍금소리 울리며 마루에 앉아 기도하던 과거의 예배당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다. 집에 2시가 되어 돌아와 오후에 꼼짝하지 않고 보내는 중에 도서관에 있는 아들이 고대소설 전기성을 질문하여 바로 알려 주었더니 아빠 대단하다는 문자가 왔다. 초저녁에 방으로 거실로 들락거리는 딸과 저녁을 함께 먹었고 10시가 지나서 아내가 12시에는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왔다.
9일 어제 일찍 잠이 들었다가 SLS학원 5층을 계약하려고 새벽에 일어나 서류를 완성했더니 아침이 밝아 왔다. 수업을 많이 하여 피곤한지 늦게까지 잠을 자는 아내를 두고 아들과만 된장국으로 식사를 마친 뒤에 차를 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다. 10월 13일에 출국한 영식이가 오늘 상해를 출발하여 서울로 온다는 전화가 왔는데 거의 1개월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궁금한 점이 많이 생겼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혼자 점심을 먹는 중에 아내는 단풍이 아름답다는 산에 있다고 연락이 왔다. 오후에 sLs학원에 나가서는 5층 전체를 국어학원으로 신고하여 내가 임대하는 것으로 작성한 서류에 최종 서명을 했다. 그 동안 사용했던 최선배가 임대료를 sLs학원 측에 주지 못해 서로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약간의 시설비를 주고 인수를 하는 것이다. 돈을 받은 최선배는 밀린 임대료를 정산할 수 있고 sLs원장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어서 좋지만 나로서도 새로운 공간과 집기를 쉽게 얻었으니 세 사람이 동시에 만족한 계약이다. 기존에 강의를 했던 건너편 한신학원에 가서 꼼꼼한 원장한테 감사의 인사를 했더니 어려우면 다시 오라고 하여 무한 고마웠다. 오후에 이전한 학원으로 수강생들이 와서 처음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저녁에 남영동에 가서는 귀국한 영식이를 반갑게 만났다. 상해에서의 일이 잘 되어 1년 계약을 했고 1주일 후에 다시 출국한다면서 아내에게 주라고 실크로 된 머플러를 선물로 가져왔다. 상해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극비라면서 언급하지 않은 채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로 밤이 깊었고 안주로 먹은 생태탕만 5인분이나 되었다.
10일 어제는 학원을 인수하여 처음으로 낯선 환경에서 수업을 했고 저녁에는 영식이와 술을 마셔 맑은 정신의 아침은 아니다. 오늘부터 중학교 과정으로 마지막 실력을 점검하는 아들의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이 시작되어 식사 후에 학교에 태우고 갔다. 잘하라 격려하고 용돈도 1만원을 주었지만 어제는 안방에 들어와 문까지 열고 대화하는 나와 아내에게 조용히 하라고 외치기도 했던 아들이다. 집에 왔다가 성북교육청에 가서 어제 계약한 5층에 대하여 교습소 인가 유무를 확인했더니 문제가 없어 국어학원으로 서류를 작성하여 신고를 했다. 어제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어 거리의 은행잎이 많이 떨어졌고 오늘은 눈이 올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되어 있다. 학원 근처에서 따뜻한 시래기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 교무실과 교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8시에 수업을 하고 마쳤다. 쓸쓸한 늦가을의 거리를 달려 9시경 집에 도착했더니 두통이 심하고 속도 거북하다는 아내가 스스로 진단하고 민간요법으로 열심히 치료를 한다. 가족 누구라도 항상 건강해야 하지만 허리가 아파 누워서 보내는 아내는 그렇기 때문에 소화가 안 되어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원에 갔다가 과자를 들고 밤에 들어온 딸은 오자마자 내일이 빼빼로 데이라고 외치고 더 늦은 시간에는 아들이 소리 없이 들어왔다.
11일 아프다는 아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새벽이 되면서 속이 편하다고 하여 마음을 놓았다. 7시30분에 식사를 하고 이틀 째 시험을 보는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는데 잠을 못 잤는지 눈을 감고 있어 얼굴을 쓰다듬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대안학교를 물어와 검정고시 등과 함께 장단점을 설명해 주었고 내려주면서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라고 일렀다. 학원으로 이동하여 그 동안 함께 했던 한산학원 원장과 점심을 했는데 어려우면 다시 오라고 엊그제와 같은 이야기를 하여 거듭 감사했다. 학원에 있는 기존 복사기를 임대료가 저렴한 소형으로 교체하고 어머니가 유언으로 공증할 때 증인으로 참여한 집행자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작성했다. 유언공증은 3자가 증인으로 참석하여 유언내용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경우는 택시운전을 한다는 형의 친구가 자리를 했었다. 어머니께서 내 앞으로 유언한 시골 논에 대하여 소유권 이전을 하려면 이 집행자의 인증이 필요하고 집행자는 당연히 이에 응해야 한다. 하지만 형과 친분이 있어 불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제부터 고향의 논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으니 집행자는 즉각 소유권 이전에 협조하라는 내용을 썼다. 내일이 2010학년도 수능일이라 오늘은 수험생 예비소집을 마쳤고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흐르는 밤이 되었다. 수험생을 둔 부모는 누구나 초조하게 내일을 보낼 것이고 직접 수능을 가르친 나도 언제나 심판대에 서는 마음으로 일 년 중에서 가장 큰 고비를 넘는 날이다.
12일 우현이의 딸과 영식이의 아들이 수능을 보는 날이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새벽에 문자를 보냈다. 수능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아들을 향하여 아내는 3년 후의 일이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했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시험기간으로 도서관에 간다고 하여 태워다 주었다. 오전에 학원으로 나가 고1,2 수강생 보충수업을 마쳤더니 학원을 새로 설립하는 것이 복잡하다는 동생이 와 있어 서류나 시설에 대하여 조언을 해 주고 점심도 사 주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1시간이나 더 걸리는 고향의 둑길을 눈보라 속에 외갓집이라고 걸어온 말도 없고 순했던 동생이다. 항상 왼쪽으로 고개가 기울어 5분 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도 했다. 오후에 유언집행자에게 어제 작성한 내용증명을 우체국에서 발송하고 학원에 들어오는 중에는 수락산 근처에서 침술을 배웠다는 아내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는 아들의 문자가 동시에 왔다. 5시에 수능을 마친 모든 수험생들에게 선생과 학부모의 심정으로 격려를 했고 특히 아들 혁준이를 가르친다고 고생한 영식이와도 통화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 고기를 사다가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는 내일 수학시험에 대비하여 총정리를 했다는 아들이 들어와 식탁에 앉았다. 오늘도 침술을 배웠다는 아내는 늦게까지 딸에게 시범을 보인다고 몰두하는데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딱 맞는 밤이다.
13일 새벽에 우현이 전화가 와서 어려운 일을 부탁한다더니 이번에는 전주에 가서 인터넷으로 구입한 중고차를 이송하여 달라고 한다. 일당은 11만원으로 차비와 식사비 등을 제외하면 순이익이 많지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친구의 일이고 고향인 전주에 볼 일도 있어 승낙을 했다. 아침에 아들부터 학교에 태워다 주고 집에 왔다가 지하철로 이동하여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에 도착했다. 월드컵경기장 근처에서 차를 인수받고 친구와 갈비로 점심을 하는 중에 빨리 오라는 우현이 전화가 왔지만 시간을 지체하고 오후에 출발하여 안성휴게소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매매되어 운송하는 차는 보험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고 빨리 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부산에 내려간 영식이는 연락이 없어 사업이 궁금했고 고속도로에서 한남대교를 건너 집에 10시에 도착하니 수학 만점을 맞았다는 아들이 의기양양하다. 독수리가 토끼를 잡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하라고 아침에 일렀는데 그대로 시험지에 써 놓고 보았다며 뜬금없이 나를 붙들고 김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14일 새벽에 신설동 3층 세입자가 오늘 사무실 이사를 가는데 벌써 이삿짐 준비가 끝났다고 전화를 해 온다. 어제 가져온 차부터 우현이에게 전달해야 해서 새벽에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출발했고 북항에 도착하니 8시가 되었다. 북항은 한국의 중고차를 외국으로 수출하는 인천의 북쪽에 있는 항구라는 뜻으로 1년 만에 왔더니 사무실 주변이 복잡하게 변해 있다. 가까스로 친구 사무실을 찾아가 차를 두고 운동하는 마음으로 벌판을 걸어 시내버스가 다니는 대로변에 도착했더니 30분이 걸렸다, 등산복에 배낭을 메어 큰 어려움은 없었고 인천시내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다행히 출근하는 우현이를 만나 그의 차를 타고 동인천역으로 나왔다. 동인천을 출발하여 환승도 없이 1호선 그대로 신설동에 도착하여 보증금에서 미납임대료와 공과금 등을 제외하고 이사를 가는 세입자와 최종 정산을 했다. 긴 갈등 끝에 이사를 가게 되어 아쉬움보다 마음이 후련했고 청소를 해 두고 1층 앞 식당에 내려가 아침과 점심을 동시에 먹었다. 아내는 오늘은 딸까지 동행하여 또 침과 뜸을 배우러 간다기에 이렇게 바쁜 시간에 멀리까지 제 정신이 아니라고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식사를 마치고 3층에 다시 올라갔더니 두고 간 배낭이 사라져 황당했고 배낭보다 안에 두었던 자동차 키의 분실이 더 난감하기만 했다. 수업시간이 촉박하여 학원으로 갔다가 수업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배낭을 찾는다고 건물 주변과 신설동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휴지를 줍는 사람들이 왔다가 버리는 것인 줄 알고 가져갔을 것이라고 하여 폐지집하장에도 달려갔는데 흔적이 없다. 아무도 없는 3층에서 배낭이 사라지다니 또 우리 건물 입구 쪽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고 혼란스럽고 답답한 저녁을 맞이하였다.
15일 어제 배낭과 자동차 키를 분실하여 신경을 쓰고 술까지 마시고 들어왔더니 당연히 일요일 아침이 힘들다. 식사를 마치고 산에 갈까 하다가 열쇠수리공을 불러 5만원을 주고 먼저 세피아 키부터 만들었다. 기도라도 하면 좋은 일이 있을까 싶어 차를 몰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마쳤고 우현이와 지난주에 이어 점심도 함께 했다. 자동차 키를 분실한 나를 위하여 은혜가 있는 기도를 부탁했더니 평소에 신중하고 조심하라며 오히려 훈계만 한다. 영식이가 오늘 상해로 출국하는 날이라 서운함이 있었지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그에게 행운이 있기를 기원했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문자도 보냈다.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미아리 진출로를 이용하여 학원에 도착하니 먼저 온 선생이 수업을 하고 있어 마지막 시간에 국어수업을 했다. 신설동에 가서 주문한 임대 현수막을 3층에 설치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날이 어두워졌고 차가운 바람까지 불어 겨울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손수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가 시끄러워 눈을 뜨니 초저녁 10시가 지났다. 문을 조금 열고 소리가 나는 식탁을 바라보니 학원에서 돌아온 아내와 아들 딸이 배달한 음식을 손이 분주할 만큼 맛있게 먹고 있다.
16일 꿈을 꾸며 새벽을 맞이했다. 유쾌한 꿈도 아니어서 기분도 개운치 않은데 창밖을 보니 하늘은 잔뜩 흐리다. 오늘 아침 서울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가 강원도는 물론이고 따뜻하다는 제주도에도 11월 중순에 눈이 왔다고 보도를 한다.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을 보는 아들과 감독으로 가는 아내까지 학교에 태우고 갔다가 마무리 잘 하라고 아들의 얼굴과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려다 신설동 임대하겠다는 문의가 와서 부지런히 달려가 대화를 했고 점심쯤에는 sLs학원장을 만나 약속된 대로 시설비와 권리금 2백만 원 가운데 1백만 원을 먼저 입금해 주었다. 임대계약서는 건물주와 직접 작성하기로 했고 완전 별개의 학원으로 간판은 물론 교육청에도 새롭게 등록을 하는 조건이다. 오후에 수업을 하면서 히터가 없어 추워서 힘들었고 더구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이 많이 아픈 채로 집에 어렵게 돌아왔다. 얼음으로 찜질을 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밴드효과를 설명하며 양말을 4켤레 정도 겹쳐서 신고 잠을 자면 괜찮다고 처방을 이야기한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아들의 말이라서 실행을 했는데 답답하여 잠도 오지 않았고 혈액마저 순환이 되지 않아 고생을 했다.
17일 발목 통증으로 뒹굴다가 새벽에 거실에 나와 양말을 벗어 던지고 찜질을 했더니 통증이 가라앉는 듯했다. 어제 아들의 말을 듣고 양말을 신고 잔 것이 어이가 없었고 그것도 한 쪽 발에 4켤레나 신은 것은 가난한 시절 엄동설한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는 아들을 보내고 통증이 조금 가라앉아 BMW 자동차 키를 주문하려고 서대문구청에 가서 등록증을 교부받았다. 차에 등록증이 있는데 키가 없어 열지 못하여 번거로운 일을 하게 되었고 구청에서 곧바로 상암동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등산화를 발목까지 묶고 불편하게 다니면서 일을 보았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는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 성산동 센터에서는 독일에서 키를 만들어 15일 후에 전달된다고 하고 7만7천 원을 비용으로 요구하여 홀가분한 마음으로 접수를 마쳤다. 집으로 오면서 체육관으로 들어가 기구운동만 조금 했고 오후에는 성북교육청에 가서 뉴-패러다임 국어학원(교습소)으로 명칭을 등록했다. 날이 추워 빠른 길로 신설동 풍물시장에 히터를 사러 갔다가 마땅치 않아 4시에 학원으로 돌아왔고 이후 교무실과 강의실 대청소를 실시했다. 저녁에는 평소처럼 수업을 했는데 이제는 내가 학원장이라니 마장동 정석학원 이후 오랜만에 운영자로 돌아왔다.
18일 새벽 5시에 거실에 나왔다가 서늘한 기운이 엄습하여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7시까지 잠을 잤다. 아침에 청국장으로 식사를 하고 날이 추워 오늘도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이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아들과 내가 부자지간으로 살아가지만 지금부터 30년 정도의 한정된 시간인지라 나로서는 열심히 아들을 응원하고 도와야 할 것이다. 집에 왔다가 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금방 10시가 지났고 오늘처럼 추울 때는 산에 가는 것이나 마라톤을 하는 것보다 실내에서의 활동이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동생 정환이의 학원 계약이 있는 날이라 내부순환도로를 이용하여 묵동에 도착했더니 임대인이 처음과 다른 요구를 하여 결정을 미루었다. 학원으로 돌아와 점심을 한 뒤에 교육청에서 나온 실사 팀과 미팅을 했고 특별한 문제가 없어 뉴 패러다임 국어학원 등록증을 내일 수령하기로 했다.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번 주말에는 주변의 고등학교를 둘러보기로 약속했다.
19일 기온이 내려가 마치 겨울이 온 것 같은 으스스한 아침이다. 밤이 긴 요즘에는 딸이 자주 늦잠을 자서 걱정인데 오늘도 모두가 식사하는 시간에 가까스로 일어나 눈을 부비며 나온다. 중학생이 되는 내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아들부터 학교에 태우고 가려고 집을 나섰다. 교문에 다다라서는 이제 1개월 남은 중학시간을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보람이 있게 보내라고 당부하고 갔던 길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 오전에 성북구청으로 들어가 면허세 납부를 하고 성북교육청에 가서는 사진이 붙어 있는 국어교습소 허가증을 수령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교육청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들어가 4천5백 원을 지불하고 식사를 했는데 외국식당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의 메뉴였다. 오후에 성북세무서에 가서는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았고 오는 중에 히터를 사 가지고 왔는데 도착하여 확인하니 불량품이라 실망스러웠다. 오전부터 구청과 교육청 마지막에는 세무서까지 바쁘게 다닌 오늘 이제는 본격적으로 내 이름을 걸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노량진을 나온 지 2년이 지났다. 저녁에 학원허가증과 사업자등록증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감격과 기대에 찬 마음으로 아내에게 보였더니 아무 표정도 반응도 없다. 만점을 받고 반장이 되어 집에 와도 칭찬이 없었던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던 소년기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도 내 삶과 운명은 바뀌지가 않았다.
20일 새벽에 눈을 뜨니 5시가 되었고 식사를 마치니 7시40분이다. 아들보다 먼저 내려가 시동을 걸고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더니 8시가 되어 차를 탔고 시간이 촉박하여 신호등도 무시하며 학교까지 달렸다. 언제나 도착하면 학생들은 대부분 등교가 끝났고 정문이 닫히는 직전에 아들이 아슬아슬하게 들어선다. 학교나 직장이나 일찍 나가서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준비하는 자세가 사람의 미래를 좌우하는 엄청난 출발점인 것을 아들은 모르고 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선생들과 함께 한 적이 많은데 일찍 나와 복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시작하는 사람과 정시에 들어와 허둥대며 시작하는 사람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집에 돌아와 운동을 하려고 10시에 체육관에 나갔는데 기온이 내려가 의욕이 사라졌고 일찍 나가서 어제 산 히터를 불평을 하며 교환했다. 단추를 부탁한 아내의 심부름으로 동대문 쇼핑센터에 들어가 여기저기를 누비다 겨우 구입했고 문구 골목에서는 복사지와 학원에 필요한 비품 등을 샀다. 동대문에서 가까운 신설동에 가서 새로운 인테리어 업자를 만나 정환이 학원시설에 대하여 상담을 하고 학원에 들어와 저녁수업을 마쳤다. 저녁에 기온이 내려가 날이 차가웠고 따뜻한 국물에 소주라도 하고 싶은 초겨울의 밤이었는데 아들이 집에 있다고 하여 서둘러 돌아왔다.
21일 식사 중에 시내버스로 학교에 가라고 아들에게 이르고 토요일 아침을 보냈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청주에 가기로 약속해서 먼저 일처리를 하려고 학원으로 가는 중에 디자인공장을 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 임대문의 전화가 왔다. 신설동에 가서 만나보니 33살 젊은 청년이었고 천을 이용하여 옷을 만든다기에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보증금이나 월세가 넉넉하여 서류를 작성하고 계약금 일부도 받았다. 신설동은 시내에 위치하고 교통이 좋아서 공실이 장기화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번에도 열흘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 것이다. 또한 세입자 전화가 오는 경우에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내가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비용이나 시간을 줄이고 있다.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늦은 오후에 청주로 가려고 며칠 전부터 당부를 해 둔 아들한테 출발 준비를 알리니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못 간다는 답변이다. 처가의 오래된 집이 다음 주에 철거된다고 하여 꼭 가기로 약속한 것인데 말을 무시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내려가는 동안 운전도 아내에게 맡겨 버렸다. 복대동에 도착하여 과거에 기세가 등등했을 류씨 종가를 둘러보고 봉명동 아파트로 이동하여 삼겹살 홍어 갓김치 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처가에 가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없고 재미라고는 거동이 불편한 장인어른과 장기나 몇 판 두는 것이 전부인데 오늘도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초저녁에 잠깐 자다가 11시경 아파트를 나와 한적한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퇴계원에 들렀다가 집에는 새벽 1시30분에 들어왔다.
22일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고속도로를 다니면 낮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지만 교통체증이 없으니 결국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과거에 고향에 다닐 때도 일찍 자고 새벽에 출발하면 출근시간 전에 서울에 도착하여 하루의 일과를 볼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것도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제 오면서 장모님의 정성이라고 음식과 식자재를 퇴계원에 전했고 나에게는 보약(개소주)을 만들어 주시어 감사하기도 하다. 눈이 올 것처럼 하늘이 잔뜩 흐린 아침에 독립문과 연대 앞을 경유하여 교회에 갔더니 시간 활용을 잘 하라는 지난주 설교에 이어 오늘은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목사님의 말씀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라고 해도 우리가 평소에 당연히 새겨야 하는 삶의 기본적인 지침으로 문제는 실행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교회에는 행사가 많은데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라고 떡과 과일을 나누어 주어 풍성했고 점심과 커피도 제공하여 우현이와 먹었다. 학원으로 가려고 양화대교를 건너 30분을 달렸고 도착해서는 비가 오면 불편한 교무실 밖 옥상부분을 천막을 이용하여 가림막 형식으로 설치했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2시간을 낑낑대며 고생했고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는 집에 들어와 혼자 식사를 했다. 대화를 나누고 언제나 정답게 식사하는 가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일과 공부를 하는 가족의 일정으로 일요일 오늘 밤도 썰렁하게 보냈다.
23일 해마다 11월의 하순에는 서울에 첫눈이 내렸는데 오늘부터 이번 주 토요일까지 낮 기온이 13도를 유지한다니 의외의 초겨울이다. 포근한 아침에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다녀왔다가 잠깐 TV를 시청하는 중에 화려한 사람도 이면에는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다고 강연을 하는 대한항공 최초의 여성 이사가 나왔다. 올해 나이가 60세가 된 윤택금으로 인간은 강하다고 하지만 감정이 있는 한 나약한 존재라며 굴곡 많았던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말한다. 오전에 영어를 배운다고 동사무소에 가는 아내를 보면서 차라리 뛰고 달리고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건강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걸어서 체육관으로 나가 열심히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학원으로 가는데 오후 2시가 지났음에도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동지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학원에 도착하여 상봉동 유언집행자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학원에 설치할 현수막 준비 그리고 6시부터는 수업을 시작하여 8시에 마쳤다. 규모도 작고 수강생도 적은 학원이지만 사업이라고 시작을 하다 보니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고 생각지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차가운 초겨울의 늦은 밤에 집으로 들어오니 논술 은상과 컴퓨터 한글 3급과 영어 5급을 받아온 딸의 상장이 냉장고 벽면에 가득하다. 기특하다고 칭찬을 했고 중학교에 가서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라고 용돈을 1만원 주었다. 밤에 아들의 고등학교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일반고와 자사고 서대문과 강남에 있는 학교를 선택한다고 신중을 기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24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서 아들이 신청하고자 하는 환일고 경복고 이대부고 충암고 세화고 현대고 등을 일일이 검색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고등학교 마다의 장단점이나 특성을 준비했더라면 판단이 쉬웠을 것인데 부모로서 미안하기도 했다. 아침 7시에 아들을 평소보다 일찍 깨워 30분간 대화를 하면서 자사고는 이대부고를 일반고는 1차 환일고 현대고 2차는 명지고 충암고를 정했다. 고등학교 지원서를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지만 최종적으로 수정할 기회가 있어 연필로 기록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 함께 차를 타고 학교로 나섰다. 아들이 교문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환일고를 답사하기 위해 갔더니 집에서부터 교통이 불편하여 일반고 1순위를 경복고로 바꾸라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알렸다. 집으로 돌아와 오전을 보내다가 오후에 학원에 가려는데 아내는 알고 지내는 사람의 남편이 사망했다고 동신병원 영안실에 조문을 간다. 우리 딸과 같은 학년의 젊은 아버지라서 더 안타까웠는데 사람은 언제 이승을 떠날지 모르는 순간의 현실을 누구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학원에 도착하여 창가에 비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긴 시간 멈추지 않은 전쟁같은 시간들이 스쳐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시학원에 들어와 시련이나 어려움이 많았는데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오기와 집념 그리고 무엇을 하든 어느 때든 프로의 정신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었다. 교재 연구를 하든 술을 마시든 뜬 눈으로 날을 새도 새벽에는 반드시 강단에 섰고 평일부터 주말까지 강의에 인생과 목숨을 걸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다. 수업을 마치고 11월 하순의 도로를 달려 집으로 오는 중에 딸에게 전화를 했고 독립문에서 치킨 한 마리를 구입하여 들어왔다.
25일 아내의 논술학원 수강생 7명이 중학교 3학년이라 겨울방학 고등국어와 논술을 내가 맡아서 강의를 한다고 부모들에게 보낼 안내서를 새벽에 작성했다. 아직까지 우리 아파트 주변에서는 강의를 하지 않았는데 같은 주민으로서 자녀를 빌미로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내의 카드내역서가 식탁에 있어 보게 되었는데 딸 영어학원 수강료가 월 30만원으로 그것도 2개월 분 60만원을 선불로 지출을 하고 있다. 원어민 수업이라지만 학력이 낮은 홍제동에서 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생 비용으로는 지나친 금액이라 차라리 과외로 돌려보리라 생각을 했다. 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신설동 3층 새로운 임차인에게 열쇠를 전달하고 학원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되었다. 아내가 중학교 수업을 준비한다고 교재에 몰두해 있어 바로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동생을 만나러 묵동으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공릉동 북부지원 법무사에 들어가 유언집행자가 유언을 실행하지 않거나 외면을 하는 경우를 가정하여 상담을 하였더니 그런 경우 가정법원에서 집행자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생의 학원에 도착하여 교육청 관련 서류를 확인하고 강의실 구조와 칸막이 등까지 점검한 뒤에 대구탕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와 수업을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는 중에 아들이 다가오더니 중학교 내신이 최종 14%라며 외고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갈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만족할 만큼의 성적도 아니고 외고에 합격할 넉넉한 퍼센트가 아니어서 나로서는 기대가 생기지 않았다. 혹시나 외고에 간다고 해도 어려운 수업에 적응은 잘 할 수 있을까 또한 늦지 않게 학교에 다닐 수는 있을까 아들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26일 아침에 식사를 마쳤는데 일찍부터 서두른 아내는 오늘도 수락산 근처까지 침(뜸)을 맞으러 간다고 나선다. 4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 노인처럼 침이나 뜸을 좋아하다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강변이나 체육관에 나가 뛰고 달리고 땀을 흘리면 더 아름답고 건강할 수 있는데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체육관에 나가면 4,50대의 아주머니들의 정열적인 현장이 부러웠고 반대로 틈만 나면 허리가 아프라고 누워서 보내는 아내가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매력이 있는 법이고 그들이 또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밥 생각도 없어 식사를 대충하고 학교에 아들을 태우고 갔다가 집에 돌아와 10시까지 안방에서 누워서 보냈다. 어제 아들이 중학교 내신이 14%라고 외고에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청심중학교를 낙방했을 때 고등학교는 반드시 외고에 가라고 당부한 그것은 오히려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고 돌이켜보면 2학년 때의 시험사고가 생각할수록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오전에 학원으로 나가 5층 난간에 현수막을 걸고 옥상의 시설도 점검하다가 점심은 중화요리 배달을 시켜서 먹었다. 오후에 서초동 변호사 사무장과 유언집행자 교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상해에 있는 영식와 통화도 했다. 겨울의 초입이라 날이 금방 어두워져 집에 들어오니 아들은 학원에 딸은 방에만 있어 혼자 삼겹살로 식사를 하고 저녁을 보냈다.
27일 새벽에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파 일어났다. 어제 저녁에 혼자 먹은 삼겹살로 인하여 체를 한 것 같은데 하품이 나고 분명히 속이 막힌 병이다. 식사도 거른 채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려다 무악재역 주변이 심하게 정체되어 어쩔 수 없이 전용차선을 달리는 시내버스로 보냈다. 집으로 들어와 손가락에 피를 내고 소화제를 먹은 후 잠을 잤더니 컨디션이 좋아졌고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는 지하철로 서초동 가정법원에 나갔다. 하지만 어머니 유언집행자를 해임하고 새로운 집행자를 선임한다고 상담을 하니 관할 주소지인 전북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여 발길을 돌렸다. 법원을 나와 근처에서 친구 동선이를 만났고 평소 다니던 곳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한다고 서초동까지 출근하는 과정이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패러다임 국어학원으로 돌아가는 중에 일찍 나와서 문도 열고 수업을 한다던 수학선생이 오히려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이 와서 혼란스러웠다. 중국 상해에 있는 영식이와 일주일 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운동 열심히 하고 국제적인 감각을 많이 익히라고 조언을 했고 조만간 서울에 오면 만나자고 했다. 학원에 도착하여 수업을 하며 저녁을 보냈고 일찍 온다는 선생은 늦게는 커녕 결국 결석을 하여 무엇을 하든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다. 집에 들어오면서는 연신내까지 가서 놀고 온다는 아들을 만났는데 이 늦은 시간까지 무었을 하고 오는지 아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28일 은평구 대성중학교로 축구를 하러 간다는 아들이 일찍 일어나 토요일 주말이지만 평소와 같은 시간에 식사를 했다. 아들이 나가고 10시가 되어 거의 20일 만에 안산에 올랐더니 푸른 소나무 일부를 제외하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알린다. 그래도 변함이 없는 산새 소리를 들으며 정상을 오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구운동까지 하고 내려왔더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축구를 하고 돌아온 아들과 선릉역으로 미술전시회에 참가한다고 준비를 하고 안내장을 열어서 보니 실력이 탁월해 보이는 강민희다. 점심으로 딸과 라면을 먹고 오후에 집을 나서 신설동 3층 시설하는 현장을 둘러보고 동생을 만나 학원 책걸상과 화이트보드 등을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구입했다. 저녁에 학원으로 들어가 수업을 하고 지하철로 종각역으로 이동하여 시골에서 올라온 동창을 기다렸는데 서울의 지리를 몰라서 늦게 도착했다. 식사를 하며 동창회를 논의한 후에 시골로 내려간다고 용산역으로 떠났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오니 잠실에 사는 민정이 엄마가 와 있다. 마침 포항에서 올라온 과메기가 있어 안주삼아 함께 소주를 마셨고 10시가 되어 대리기사를 불러 잠실로 떠났다.
29일 어제 늦게 잠이 들었고 일요일 오늘은 9시에 일어나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식사 전에 안산에 올랐다.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하여 걸음을 재촉하며 중턱을 걸었고 내려오는 중에는 비가 와서 속력을 다해 달리기도 했다. 집에 10시 30분에 들어왔더니 늦게까지 잠을 잔 아내와 아들과 딸이 일어나 있고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모두가 여유로운 모습이다. 11시에 양복을 입고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나서는데 식탁에 앉은 가족들은 천국에 갈 수도 있는 나를 보고도 감동은 고사하고 관심도 전혀 없다.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계속 내리고 예배를 마친 후에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은 우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화도 불통인 것을 보니 아마 일이 있나 싶었고 교회를 나와 양화대교를 건너 곧바로 학원으로 직행했다. 영어와 수학 강의가 이미 진행되고 있어 마지막에 국어수업을 마쳤고 곧바로 묵동 동생한테 갔더니 아담하고 깨끗한 학원이 꾸며져 있다. 기존 학원에서 집기일체를 이동하기로 했는데 비가 내리는 이유로 내일로 미루고 가까이에 사는 유언집행자 집에 주소를 들고 찾아갔다. 그의 부인이 놀라 어쩔 줄을 모르더니 오늘은 운전 중이고 내일 쉬는 날 다시 오라고 간청하여 나왔다. 유언집행자는 내 입장이나 주장을 이해하고 있어도 형과 친분이 있다 보니 중간에서 어려움을 격고 있는 상황이다.
30일 11월의 마지막 월요일이다. 식사를 하고 아들을 학교에 태우고 갔다가 우체국에서 친구 동선이에게 어머니 책자를 보내고 체육관에 들어가 운동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대치동 마원장에게 가는 도중에 유언집행자 전화가 와서 설전을 벌이며 통화를 했다. 어제 집까지 찾아갔으니 당황했을 것으로 형의 말만 듣고 어정쩡하게 있는 그에게 원칙대로 신속하게 일처리를 하라고 윽박질렀다. 마원장 학원에 들어갔더니 일전에 비하여 안정이 되어 있어 즐겁게 대화를 마쳤고 신설동에 가서는 3층 세입자한테 보증액 잔금을 받았다. 학원으로 들어가 저녁수업을 마치고 어제 갔던 유언집행자 집에 내용증명 2장을 작성하여 들어갔더니 오늘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낮에도 실컷 언쟁을 벌이고 늦은 시간에 법적인 서류를 가지고 들어와 목소리를 높였더니 그도 놀라지만 그의 가족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유언공증은 가족이 아닌 3자가 집행자로 즉 증인으로 참석하게 되는데 당사자가 사망을 하면 책임있게 조정을 하는 역할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할당된 땅에 대하여 유언대로 집행하라는 내 주장이었고 그렇다면 이런 갈등도 애초에 생기지 않았다. 결국 조만간 법원에서 만나 나를 포함하여 여동생 소유의 고향 집 텃밭까지 자신의 역할을 하겠다는 확답을 받고 나왔다. 학원을 마치고 달려온 동생과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고 시내로 나오면서는 정식이를 만나 오늘의 상황을 이야기 하다보니 12시가 지났다.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에 와 있는데 캐럴이 울리는 성탄절이 오기 전까지는 나와 유언집행자 서로에게 새로운 일상이 와야 할 것이다. 화려한 불빛에 취하고 지나간 시간과 세월의 빠름을 되뇌이는 사이에 택시는 어느새 무악재에 도착해 있고 나는 12월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