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야외에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수도가 연결되기 전 용수가 필요해서 전문가를 불러 파이프를 꽂으니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펌프질을 해주어야 한다”고 그가 강조했다. 며칠 펌프질을 하자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이후 사정이 생겨 잠시 공사를 중단하고 재개하면서 펌프질을 했더니 물이 나오질 않았다. 그 전문가를 다시 불렀다. 그 원인은 단순했다. 매일 펌프질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지하의 수맥은 마치 고무 튜브와 같아서 펌프질을 계속하면 물길이 넓어지는데, 이를 멈추면 줄어들거나 막혀버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매일 생명이 약동하면 삶이 활기차게 된다. 마음을 가꾸고 훈련하면 내면 세계가 보다 깊고 풍성해진다. 자신이 지닌 재능과 기술을 개발하면 점점 능숙해지고 숙련된다. 반대로 그대로 방치하면 이내 굳어버릴 것이다.
자기 탐구와 일에서 꾸준한 작은 실천이 소중하다. 우리는 종종 비움이나 무위(無爲)에 대해 오해한다. 비움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거나 무소유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무위는 어떤 의도나 행위가 없는 상태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비움은 채움과 무관하지 않다. 충만한 채움이 없이는 비울 수조차 없다. 역으로 온전한 비움은 충만으로 이어진다. 무위를 아는 자는 유위를 행하면서도 무위의 상태에 머문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무위를 자처하는 것은 때론 자신의 나태와 무기력에 대한 교묘한 미화가 될 수도 있다. 통합심리학자 잭 엥글러는 진정성이 없이 무아(無我)나 정신적 초월을 말하며 자신의 고고한 우월성을 내세우는 이들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그것이 ‘정합적 자기’를 갖지 않은 개인들의 자기 통합의 결여를, 즉 내면의 공허함에 대한 그들의 감정을 설명하고 합리화’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건강한 자아상과 시민적 교양부터 지닐 일이다.
작년 연말 <문화방송>(MBC) 생방송에서 광주의 한 식당의 미담을 소개했다. 그 식당은 13년째 한끼 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도 그 가격 그대로다. 시래기 된장국과 쌀밥, 그리고 반찬 3종의 소박한 구성이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무한 리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여성이 그 식당을 운영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그 딸이 이어받아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가격이 식재료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식당이 여전히 운영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식재료와 각종 물품으로 후원하고, 자원봉사로 도와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에게서 세속 속의 성자의 향기를 맡는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남긴 말이 기억난다. “만일 누군가가 거리 청소부라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이, 베토벤이 작곡을 하듯이, 셰익스피어가 시를 쓰듯이 거리를 쓸어야 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주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여기 자신의 일을 잘하는 훌륭한 거리 청소부가 있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거리를 깨끗이 쓸어야 한다.”
수도원이나 토굴에 은거하지 않고서도 수도자와 성자의 길을 갈 수 있다. 회색 도시와 빌딩 숲에서도, 거리와 시장, 일터와 찻집에서도 우리는 생수를 퍼 올려 나눌 수 있다. 내가 매일 펌프질할 작고도 숭고한 일은 무얼까?
황산/인문학연구자·씨올네트워크 상임대표
20230317 한겨레신문
첫댓글 오늘은 그걸 생각해봐야겠어요.
매일 펌프질할 작고 숭고한 일이 무엇일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