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평범한 진실입니다. 바로 그런 평범한 사실을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세상은 만만하지 않기에 대부분은 그냥저냥 타협하며 넘어갑니다. ‘불의를 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네 옛날 교과서에는 아마도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고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뭐라고 되어 있을까요? 참고 넘어간다고요? 어쩌면 그런 문제 자체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괜스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의’ 타령해봐야 돈 되는 거 있냐? 그런 식으로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니까요.
세상은 돈이 지배합니다. 거 무슨 말을 그리 합니까? 하고 대들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인정할 것입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권력을 차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을 좀 더 쉽게 얻어내려고 하는 짓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그런 교과서에나 있는 대답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돈과는 담을 쌓고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청렴한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헌신’은 말 그대로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돈 쌓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게 학교냐? 말이 안 되지요. 하기는 그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우리는 지난 1 - 2년 사이에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진행 중입니다. 오죽하면 젊은 선생님들이 스스로 세상과 별리합니까? 세상이 싫었습니다. 자기네와는 너무 맞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바꿀 힘이 없으니 다른 세상으로 탈출한 것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한두 사람으로는 될 일도 아니니 많이 모였습니다. 그마저도 벅차네요. 권력과 돈은 그렇게도 강합니다. 정말 넘어가기 힘듭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 뒤에는 반드시 그만한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뭘 믿고 그런 악행을 맘 놓고 벌입니까? 설령 돈이 없다면 그런 성품이 있을 것입니다.
젊은 선생님, 게다가 여성이니 막말로 깔보았을 것입니다. 막돼먹은 깡패나 다름없는 녀석이 먹잇감으로 삼기 좋았을 것입니다. 몰래 혼내주려고 하였지만 어설프게 대응하였으니 금방 탄로가 납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 정식으로 한판 벌이자는 쪽으로 전개됩니다. 여자가 얼마나 하겠다고, 분명 얕잡아 보았습니다. 이전 국가대표 급 선수였다는 사실은 몰랐겠지요. 학교 축제 기간에 정식으로 경기가 열립니다. ‘한수강’ 대 ‘고양이’의 대결입니다. 그 동안 말도 못하고 기죽어 지내던 학생들이 은근히 이 못된 놈이 실컷 두들겨 맞아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지는 못해도 뒤에서 속만 태우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때문에 모인 학생들 얼굴이 온통 고양이 탈입니다. 학교 전체가 고양이 편이 되었습니다. 만약 고양이가 패배하면 어쩌려고들 그런 것인지 마음의 준비들을 하고 있었을까요? 하기야 그래봤자 이 많은 사람들을 어쩌랴 싶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드디어 축제 가운데서도 가장 큰 행사(?)가 열립니다. 링이 마련되고 두 선수가 등장합니다. 도대체 이 고양이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아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모릅니다. 궁금하겠지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고양이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일입니다. 그냥 권투가 아닙니다. 소위 킥복싱입니다. 있는 힘껏 두들겨 패주는 경기입니다. 지금은 경기라기보다 원한의 대결입니다.
‘기간제 교사’ 소위 비정규직 교사입니다. 말 그대로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자동 해직이 된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니 그 기간 어떻게든 잘 보여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직장에서 살아남습니다. 기간제 교사의 꿈은 소박합니다. 빨리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배의 말대로 입 닫고, 눈 감고, 귀 막고 살아야 합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말하고 싶어도 꾹 누르고 지내야 합니다. 설령 불의를 목격해도 없는 일로 넘어가야 합니다. 부르면 가고, 시키면 하고, 소위 갑질의 대상 1호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위 죽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라야 말이지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할 정도로 정말 ‘정도’를 너무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처럼 ‘정의의 사자’가 되어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좀 어설프지요. ‘소시민’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불운까지 겹쳐서 쉽게 들통이 납니다. 결국 아예 드러내고 시합을 진행합니다. 그냥 신나게 두들겨 패줘서 우리네 숨겨졌던 분노를 대신 씻어줍니다. 사실 그 맛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고 있는듯하여 더욱 속이 후련해집니다. 일부러 때를 맞추려하지는 않았을 텐데 운 좋게 때를 잘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감동은 없어도 그냥 시원합니다. 그 정도면 되겠지요. 영화 ‘용감한 시민’(Brave Citizen)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