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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이영자가 고속도로 휴게소들의 특징적인 음식점을 소개하자,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이 그곳에 들러 해당 메뉴를 일부러 사먹을 정도라고 한다. 이른바 먹방이라는 프로그램의 엄청난 파급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다른 연예인들도 예전에는 지방 스케줄을 어렵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행선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휴게소를 미리 체크한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나 역시 출장이나 여행 계획이 잡히면, 그곳에서 먹어야하는 음식이나 식당을 가장 먼저 체크한다. 그리고 내가 들렀던 식당의 음식이 만족스러우면, 나의 추천식당 목록에 올리게 된다. 아무래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음식점의 목록과 메뉴가 가장 많이 목록에 올라 있지만, 어떤 기회에 하나씩 첨가된 각 지역의 식당과 메뉴들도 쌓여가고 있다. 그래서 지인들이 간혹 다른 지역으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나에게 식당이나 음식에 대해서 묻곤 한다.
‘피아노 조율사의 중식 노포 탐방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피아노 조율사인 저자가 다녔던 전국 각지의 중식집과 그곳에서 먹었던 메뉴들이 소개되어 있다. 종종 다른 종류의 음식들이 간략하게 언급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중식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은 디지털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어 있어서 피아노 조율사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율사인 저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전국에 산재해 있고, 조율을 위해 찾았던 곳에서는 주로 중식집을 찾아 중화요리를 먹는다고 한다. 중식 마니아인 저자는 자신의 수첩에 가보고 싶은 중식집을 기록해 두고, 일이나 여행 차 근처에 들르면 목록에 적힌 음식점을 들른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비록 먼 지역으로 출장을 가더라도, 일을 마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피아노의 흐트러진 음을 조정하여 정확하게 조율하는 일은 적지 않은 긴장을 수반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중식에 관한 내용 못지않게 피아노의 조율 과정과 관리 방법 등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때로는 만화를 통해 그 과정을 소개하고, 이후 저자가 찾아가는 중식당의 메뉴와 식당의 분위기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적인 저자의 태도와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식당을 알 수 있다는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역과 식당만 서로 다를 뿐, 일부의 내용을 제외하면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거의 유사한 패턴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때문에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나로서는 나중에는 지루함을 느낄 정도였다.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왜 나에게는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드는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에는 음식점과 저자가 먹었던 메뉴가 등장하지만, 그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중식당은 짜장면이나 볶음밥처럼 기본 메뉴가 맛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나 특징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 저자가 먹었던 메뉴들이 음식점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혼자서 먹는 메뉴라 그런지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번거롭겠지만 인터넷에서 해당 음식점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 사람들이 소개한 글들이 훨씬 더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가 일부러 먼 곳에 있는 식당을 찾아 음식을 먹는 것은 그저 단순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함께 그와 관련된 나의 추억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음식과 관련된 책을 쓰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처럼 중식 마니아로서 그 지역을 찾아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의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그 식당의 음식과 그 지역의 특징들을 함께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피아노 조율에 관한 상당한 지식과 저자가 들러 먹었던 음식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머물러 있어, 적어도 나의 기대는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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