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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글로 인해 통쾌한 느낌이 들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답답함이 밀려들기도 했다. 나는 이 책에 비판 대상으로 삼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학자를 자처하면서 현실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 책을 펴내고, 그것으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그 책을 펴내는 출판사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언론에서 다뤄진 내용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통해서 그 책이 지닌 폐해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호기심 때문에 혹은 그릇된 ‘신념’으로 그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 책의 번역본이 일본에서는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역시 저들의 글이 지닌 문제들을 꼼꼼하게 비판하고 반박하여, 저들의 행태가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에게 영합하려는 ‘신친일파’에 다른이 아니라는 호사카 유지의 <신친일파>를 먼저 읽었다. 이어서 그 책의 주요 저자인 이영훈 등과 같이 동문수학을 했던 저자가 출간한 이 책을 통해서, 저들의 논리가 지닌 문제점들을 다시 한 번 깊이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반일종족주의>의 경제사 서술 부분’을 비판 대상으로 삼아, 저들이 쓴 글의 내용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자료와 논리로 검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저들의 책이 출간 된 후 칼럼을 통해서 몇 차례에 걸쳐 비판을 한 바 있는데, 이 책에도 그 글들이 다소 수정된 채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그에 대한 이영혼의 반론은 한 차례 있었지만, 더 이상 저자의 비판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반일종족주의> 저자들이 한국 사람들을 일컬어 ‘반일종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저들이 펼치고 있는 논리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혐한론’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 3부로 구성된 목차의 1부 제목이 바로 ‘<반일 종족주의>의 혐한론’이다. 특히 상황에 따라 논리와 근거가 ‘오락가락하는 반일 종족주의론’의 실상에 대해 1부의 글들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일본의 경제 수탈을 부정하다’라는 제목의 2부에서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의 수탈의 실상을 밝히고 있다. 사실에 근거하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을 취해서 '침소봉대'로 다루는 논리적 허약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결국 그들의 논리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에 영합한 '혐한종족주의'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인 셈이다.
이와 함께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된 한국인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의 승소에 대해 억지를 부리는 저들의 논리적 허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저들이 일본 극우 세력들의 주장에 영합하여 엉뚱한 주장을 펼치는 이면에는 한국에서 ‘극우 세력이 장악한 일본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친일 보수 정권’을 세우려는 의도가 개재되어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권의 일본에 대한 행태로 보아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고 여겨진다.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각종 매체에서 떠들썩하게 다루어진 것에 고무된 탓일까?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에 후속작까지 출간했지만, 그 역시 논리적 비약과 자료의 자의적인 취사선택은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더욱 궁색한 논리를 펼치는 모습에서 저자는 이미 학자로서의 자격마저 의심스러운 그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의 <신친일파>라는 책에서도 충분히 다뤄졌지만, 이 책 역시 3부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왜곡하다’라는 제목으로 저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비판하면서 반박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정의연’ 문제를 빌미로, 광화문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결국 저들의 왜곡된 논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정의연에 관한 비판은 그대로 법적 판단을 지켜보되, 그들이 이룩한 업적마저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들이 역시 일본 우익들의 그릇된 논리의 판박이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충분하게 밝혀졌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록은 침소봉대하면서, 정작 불리한 기록들은 진위가 의심스럽다면서 애써 무시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반일종족주의>의 저자들이 자신들의 논리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환상과 광신’으로 인해 현실을 비뚤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바란다.
이 책을 통해서 저들이 기대고 있는 논리가 과장과 왜곡으로 점철되고 있기에, 저자는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과의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들의 논리가 정합성을 갖는지, 사료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사료의 활용 방법이 적절한지 등에 초점을 맞춰’ 검토를 해보았지만, 저자는 저들이 출간한 두 권의 책에 기술된 ‘내용이 예상보다 너무 형편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명백히 친일적이고 자학적인 책’의 출간과 저들의 행태는 ‘한국에서 때때로 출현했던 친일 행각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결국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와 현실을 직시할 때, 저들이 주장하는 허상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를 왜곡하면서 '일본 극우적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채 떠드는 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역사적 심판'을 받게되는 결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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