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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일
새벽에 들어와 아내와 이야기를 하며 날을 샜고 6시에 잠이 들었다가 9시가 지나서 일어났다. 오전에 유언공증 집행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사과와 함께 이해를 구한다. 진정성이 있더라도 상속을 미룬 장본인으로 나로서는 감정이 남아 있고 또한 형과 친하기 때문에 불신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고향집 텃밭은 여동생 소유로 되어 있으니 함께 처리하는 방향으로 언제든 자신의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을 한다. 오전을 쉬면서 보내고 점심을 먹은 후에 신당동 중앙시장으로 나가 논술학원 예비고 학생들 수업을 위하여 의자와 화이트보드를 구입했다. 신설동과 보문동을 경유하여 학원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고 그 사이에 수학선생이 나와서 보충수업을 시작한다. 학원에서 오는 중에 오늘 구입한 의자와 깨끗한 보드를 논술교실로 들고 올라가 아내와 함께 설치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고향에 사는 동창이 김장한 것이라고 라면박스에 김치를 가득 보내와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비닐에 담고 박스로 포장하여 시골에서 택배로 신청했는데 금전적으로 따질 수도 없는 큰 정성이 고맙기만 했다. 오늘이 12월의 시작으로 보람이 남을 수 있도록 2009년 마지막 남은 달력에 내일의 계획을 수립했다.
2일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났더니 컨디션이 좋다. 고향에서 올라온 김치와 무국으로 어제처럼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하고 흥얼거리며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다녀왔다. 10시가 지나서 성산동 BMW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주문한 자동차 키가 지난주에 도착했다고 하여 게으른 서비스에 불만이 생겼다. 독일에서 만들었다는 키를 받으러 성산동에 갔다가 오는 중에 내일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동사무소에서 준비했다. 11시 지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왔더니 아내는 논술학원에 올라갔고 학교에서 딸이 돌아와 있다. 오늘 마지막으로 실시한 시험을 잘 보았다고 좋아하는데 초등학교를 마치는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있을 것이다. 오후에 어제 구입한 의자 일부를 교체하러 중앙시장에 가면서 축구 유니폼 때문에 동대문에 먼저 나와서 일을 마친 아들을 태웠다. 높이가 맞지 않은 의자를 교체하고 약속이 있어 무악재로 간다는 아들을 1호선 동묘 역에 내려준 뒤에 국어학원으로 이동했다. 2층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손원장은 함께 강의를 하는 선생한테 운영권을 맡기고 자신은 대안학교로 간다며 싱글벙글이다. 매월 임대료와 강사료를 지불하는 학원의 운영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고 나역시 고민하며 공과금부터 이번에 지출할 금액을 정리했다. 20년이 넘게 학원에서 생활한 나도 같은 업종을 운영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세상에 쉬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3일 새벽에 일어나니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린다. 식사를 마친 후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 와서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했다. 12시에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었고 논술학원에 올라가 이번 일요일부터 고등부 수업을 시작하는 이유로 대청소를 실시했다. 마음을 먹고 청소를 하니 시원하고 좋았는데 아내는 아침에 문자만 남기고 수락산 근처로 침과 뜸을 맞으러 간 상태다. 오후에 시골 논 등기이전을 하러 북부지원 근처에 있는 법무사에 갔다가 서류가 미비하여 태능 동사무소에 다녀오기도 했다. 5시경 유언집행자가 나왔고 밝은 모습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니 어색하면서도 한편 고맙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개월 만에 보는 여동생도 나왔는데 그 동안 마음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해쓱하다. 어머니로 인하여 슬픔이 컷을 것인데 오빠들까지 갈등으로 이어져 고통으로 보냈을 동생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말 할 수가 없었다. 등기이전 준비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자는 동생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나왔는데 여동생이 눈물을 많이 흘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는 정환이 학원으로 가서 마음을 다스렸고 서랍장을 싣고 내부순환도로를 달려 논술학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오늘 자율형사립고 이대부고에 원서를 접수했고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들은 미달이라 입학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경쟁률이 없어 바로 들어갔지만 마치 밀어내기로 점수를 얻은 것처럼 허망하기도 했다.
4일 아침에 식사를 하면서 이대부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경쟁률이 1.6:1로 그 중에서 남자는 168명 모집에 159명이 지원해 미달이고 여자만 2.6:1로 경쟁률이 높았는데 내신때문에 남학생들이 기피한 경우다. 같은 자사고라도 중앙고나 세화고는 2.5:1 이상의 경쟁률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지원했다면 입학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이대부고는 이 근처 학군에서는 대학진학률이 제일 높고 집에서도 가까워 좋은 점이 있지만 여학생들과 내신을 경쟁해야 하는 불리함도 있다. 고등학생 아들을 생각하다가 새벽 2시에 일어나 감리교 재단 이대부고 홈페이지를 통하여 학교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아침에 태우고 가면서 이대부고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연세대학에 들어가면 이 지역 국회의원도 가능하다고 했더니 아들이 의욕을 보인다. 집으로 왔다가 시내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었고 학원으로 들어가 평소처럼 열심히 강의를 하며 오후를 보냈다. 이제는 완연한 겨울이라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가로수들이 앙상하고 길을 가는 사람들은 종종 걸음으로 추위에 맞서고 있다. 아들이 입학할 고등학교를 보려고 이른 새벽에 일어났더니 오후가 되면서 정신이 몽롱해졌고 밤에 기온까지 내려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장라면과 곰탕라면을 사 오라는 아들의 전화가 와서 학원을 나서자마자 구입했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먹었다.
5일 새벽에 비가 내려서 기온이 내려갔고 거기에 바람까지 불어 차가운 초겨울 아침에 콩나물국으로 식사를 마쳤다. 경복궁 민속박물관으로 현장체험을 간다는 아들이 평소보다 늦게 나가서 학교에 가는 딸과 함께 거실을 나선다. 머지않아 겨울이 가고 3월이 오면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과 딸이고 또 3년이 지나면 아들은 대학생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말이라서 일찍 나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오늘 완전히 귀국한다면서 12시경 공항에 도착한다는 영식이 전화가 왔다. 상해에서 1년간 계약을 했다더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고 내일이라도 만나면 사정을 들어보겠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논술교실에 올라가 그 동안 아내가 지도했던 중학교 3학년 수강생 8명을 이제부터 내가 가르치게 되어 교재를 준비하고 수업시간도 정했다. 점심 시간이 되어 집으로 내려와 식사를 하고 오후에 학원으로 나갔다가 수업을 마치고 재경 초등학교 모임이 있어 영등포로 이동했다. 동창회는 처음으로 참가하는 것인데 학교를 떠난 지 40여년이 흘러 친구들이나 선생님까지도 가물가물하다. 연말이라 분주한 영등포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30여명의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동창회 발전기금으로 20만원을 기부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12시가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6일 오늘은 교회에 가기가 쉽지 않다고 친구에게 새벽에 전화를 하고 자다가 일어나니 9시가 지났다. 정신이 몽롱하여 식사도 거르고 안산에 올랐더니 초겨울의 바람이 매서워 어제 마신 술이 깨버렸다. 정상을 올랐다가 산악회 운동장으로 내려와 기구운동을 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와 겨울을 보내다가 오전이 지나 집으로 내려왔다. 엊그제 시험을 보기 전부터 롯데월드에 간다고 노래를 부르던 딸은 친구와 일찍 잠실로 출발했고 아내는 논술교실에 올라가 있다. 점심을 먹고 프린트를 준비하여 논술교실에 올라가 2시부터 아들을 포함한 예비고1 A반 4명을 처음으로 수업했다.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아무튼 고등학교 과정에 부족하지 않도록 잘 지도할 것이고 아들도 의젓하게 수업에 임하여 좋았다. 4시부터는 B반 수업을 했는데 대부분 중학교 성적이 상위권 학생들이어서 A반 못지 않게 진지하고 보람이 있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마친 6시에 집으로 내려왔더니 아내는 저녁수업 한다고 다시 논술교실에 오르고 아들은 수학학원으로 나간다. 혼자 저녁식사를 마치고 TV를 시청하는 중에 롯데월드에 가서 재미있게 보냈다는 딸이 10시가 되어 저녁까지 사 먹고 들어왔다.
7일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7시가 지나서 식사를 했다. 영하의 날씨에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는데 엊그제 축구하다가 인대를 다쳤다며 걷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교문으로 들어가는 뒷모습도 자연스럽지 않아 걱정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고 잠깐 잠을 자다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시작했다. 등기이전은 완료가 되었는지 동생에게 연락을 했더니 수수료가 40만원이라고 하여 법무사와 30만원으로 조정하여 다시 통보해 주었다.
시골 상희 형한테 등기이전을 완료하여 이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연락을 했더니 내년부터는 우리 농사를 안 하겠다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다. 일전에 내용증명 등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있어 감정이 상해 있을 것이고 또한 형의 친구로서 나름 입장이 난처할 것이다. 운동을 마치고 12시30분에 집에 돌아오니 동사무소에서 영어를 배운 아내가 와 있어 어제 저녁에 먹던 닭볶음탕으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방학 중에 아들과 딸 학원에 대하여 의논을 하고 특히 아들한테는 고등학교 선행학습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의견을 함께 했다. 학원에 나가면서 아들의 영어는 대치동으로 보내려고 마원장과 통화를 했고 수강료는 30% 할인하여 35만원으로 합의했다. 학원에 도착하여 수업을 하고 한국에 돌아온 영식이를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간다고 하여 다음으로 미루었다. 집으로 가는 중에 커피우유를 사 오라는 딸의 전화가 왔고 아파트에 도착하여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들어갔다..
8일 새벽 6시에 거실에 나왔더니 어제 컨디션이 좋지 않다던 아내가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있다. 아침에 된장찌개로 식사를 하고 아들을 태워 아슬아슬하게 학교에 도착하여 내려주면서는 힘내라고 용돈도 주었다. 8시가 지나 집에 도착했고 학교에 가는 딸을 보면서 생각해 보니 6년이 금방 지났고 초등학교 일정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들이나 딸이나 내가 사랑하고 잘 돌봐야 할텐데 아들과 달리 딸은 말도 안하고 이기적인데다가 욕심까지 많아 어쩌지를 못한다. 어제는 등이 가려워 긁어 달라고 부탁을 하니 한사코 거절했고 결국 가지고 있던 거울로 서너 번 긁는 흉내만 내고 나갔다. 오전에 논술학원 의자를 정리하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뒤에 학원으로 갔는데 흐린 하늘에서 첫눈이 내린다. 20여분 동안 쉬지 않고 눈이 내려 외부작업은 중단하고 교무실 페인트만 칠한 뒤에 오후 3시에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5시경부터 수업을 하고 집으로 오면서는 논술교실에 올라가 가져온 페인트로 지저분한 벽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하얗게 변한 벽이 새로운 교실처럼 좋았는데 책상위에 뒹구는 다리까지 부러진 아내의 지저분한 열쇠고리 인형은 보기가 흉했다. 집이든 교실이든 사람이든 가급적 깨끗하고 바르게 정리된 모습을 누구나 좋아하는데 아내는 대체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9일 어제 아내의 열쇠고리에 부착된 인형이 더럽고 다리까지 부러진 채 뒹굴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내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알뜰한 사람으로 변했으면 좋겠는데 사람마다 타고난 습성이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거실에서 혼자 밤을 새우고 일어났더니 몸이 편하지 않고 아침에는 청국장 김치찌개로 식사를 했다.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면서 이대부고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으니 선행학습을 많이 해 두라고 일렀다. 아들은 내가 당부하는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않고 다음 주에 반 대항 축구게임을 한다는 소리만 열심히 설명을 해 댄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나가 동성고 시험대비로 수업을 마친 뒤에 수강생들과 배달음식을 먹었다. 오후에 교재를 연구하고 수업도 하며 보내다가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이규백 선생이 찾아와 함께 식사를 했다. 사람이 모이면 과거는 화려하고 현재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우리도 대일학원부터 노량진 한샘학원까지 대단했던 과거의 시간을 반추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10일 아파트 아래에서 아들을 기다리다가 학교로 출발했고 도란도란 즐거웠는데 아들과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 집으로 왔다가 10시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12시에 동태찌개로 아내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도착하여 수업을 하고 있으니 2층 원장이 학원을 이제 떠난다며 5층으로 인사차 올라왔다. 오래 전부터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낸 좋은 사람인데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 아쉬움이 남는 오늘이다. 2층을 인수한 수학선생이 운영은 처음이라며 많은 조언을 부탁하는데 5층을 운영하는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우울한 날에 과거 정석학원에서 수학을 강의하며 나를 도왔던 홍의남 전화가 와서 내일이라도 찾아오겠다고 한다. 영식이는 혼자 산에 다녀온다고 하여 수업을 마친 저녁에 남영동 미성회관에 나가 식사를 했고 방배동으로 이동해서는 정식이와 동선이까지 자리를 했다. 영식이는 동선이를 처음으로 만났지만 내 고향 친구라고 대우를 잘 했는데 자존심이 상한다는 동선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로서는 당황스러웠어도 경제력이나 학벌에서 열등감이 많은 동선이의 자격지심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난처해 하는 나를 정식이가 동행하여 무악재에 내려주고 돌아갔다.
11일 새벽 3시에 잠을 자고 아침 7시40분에 일어나 학교에 가려는데 더 주무시라고 아들이 억지로 이불 속에 밀어 넣는다. 그러면서 어제 새벽 1시에 학원에서 돌아왔더니 내가 없었다며 술도 조금 마시고 가급적 일찍 들어오라고 한다. 어제는 장모님까지 오셔서 주무셨는데 면목이 없었고 죄송하여 방에서 나오지 않고 다시 자다가 11시에 일어났다. 거실에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딸이 사용하는 방에 갔더니 아내와 장모께서 침과 뜸을 실습한다고 부산하다. 기척도 없이 혼자 안산에 올랐고 어제 만난 친구들한테 문자를 보내는 사이에 안개비가 내려 서울 하늘이 흐려졌다. 오후 1시경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을지로에 나가서 뉴-패러다임 국어원장 명함을 만들었는데 마장동 정석학원 이후 오랜 만이다. 학원으로 돌아와 오늘 시험을 마친 수강생들과 대담을 하고 6시가 지나 고향 제월리 송년회에 참석하려고 용산 모임장소로 출발했다.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회식이 가능한 큰 식당에 도착하니 약 40여명의 반가운 사람들이 모여 있어 고향의 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찬조금도 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더니 어제에 이어 또 새벽이 되었다.
12일 연속으로 이틀이나 새벽에 들어와 가족에게 미안하고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지친 상태가 되었다. 9시에 일어나 아들을 찾았더니 벌써 식사를 하고 축구를 한다는 아현중학교에 갔다고 하여 결국 혼자서 식탁을 차지하고 앉았다. 식사 후 안산에 올라 중턱을 걷고 대운동장에서 기구운동을 하는 사이에 함께 간 아내는 예전처럼 중턱을 한 바퀴 더 돌고 왔다. 집으로 내려오니 앞집에 사는 부부가 5살 수민이를 딸에게 맡기고 아르바이트라고 2시간 비용으로 2만원을 주어 보냈다.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 학원으로 나가 새로운 2층 원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5층으로 올라가 출입구 위쪽 실리콘 작업을 했다. 앞으로 광고도 하고 현수막을 만들어 학원 홍보에 집중해야 하는데 연말이라 어수선한 부분이 없지가 않다. 오후 5시에 학원을 나서 어제 향우회 장소에 맡겨둔 선물을 찾으러 간다고 나섰다가 교통체증이 심하여 시내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광화문에 인공으로 탑을 세워 스키장을 만들고 대회를 개최하는데 서울 복판에서 어쩌자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물을 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 딸과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고 TV를 시청하며 저녁을 모처럼 함께 보냈다.
13일 어제 수업을 하는 아내가 오기도 전에 잠이 들어 새벽에 일찍 일어났지만 연속으로 과음한 탓으로 피곤이 남아 있는 아침이다. 식사를 마치고 녹번초등학교에서 자격시험을 본다는 딸을 태우고 갔다가 내려주고 응암동과 수색역을 거쳐 예배시작 30분 전에 교회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잠을 자다가 시간이 되어 경건함 마음으로 성전에 들어가 생활에 절제가 있기를 기도했고 가장 가치가 있는 책은 성경이라는 오늘의 설교를 들었다. 예배를 마치고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더니 우현이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 요즘의 나와는 반대의 모습이었다. 남을 위한 희생과 배려는 어디서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고 상황이 되면 봉사하는 내 모습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집에 1시에 돌아와 지난주에 이어 예비고 학생들 수업을 하려고 EBS 고등 교재를 배부하고 논설문과 현대소설을 강의했다. 상위권이 아니면 이해가 힘들 정도의 내용으로 빠르게 해설을 했는데 수강생들이 잘 알아들어 다행이었다. A,B반 수업을 마치고 6시에 집으로 내려와 피곤하여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가 새벽 1시에 눈을 떠 보니 아들은 아직도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14일 새벽까지 뒹굴거리다가 아침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동시에 꿈에 나타나셨다. 요즘 내가 무리한 생활로 몸까지 아프다 보니 걱정이 되어 오셨나 생각이 되었고 사실 어제 밤에도 감기로 기침을 하며 고생을 많이 한 터였다. 오늘은 어제보다 기온이 더 내려가 서울이 영하가 되었고 아침에 따뜻한 시래기 된장국으로 식사를 했더니 몸이 한결 가뿐했다. 추운 날씨라 미리 내려가 히터를 켜고 아들을 기다렸고 학교에 도착해서는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중학교를 마무리 하라고 당부했다. 11시에 체육관에 도착하여 운동을 시작했고 점심을 먹으려고 집으로 오는 중에 아내는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과 안산을 걷는다는 전화가 왔다. 오후에 집을 나서 학원에 3시경 도착했는데 감기로 인하여 기침이 나고 날도 더 추워져 으스스한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인데 한 번씩 감기라도 걸리면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생활에 리듬이 사라져 모든 일이 중지되는 느낌이다. 간신히 수업을 마치고 풀이 죽어 집에는 왔지만 10시가 지나서는 기침이 심해져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했다.
15일 감기가 독하게 걸렸다. 그래도 아들과 학교에 가려고 목도리에 마스크까지 하고 나섰고 집으로 다시 와서는 환자의 모습으로 누워서 보냈다. 11시경 연세의원에 가서 몇 년 만에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 나왔지만 연말 모임이나 일요일 수업 등 컨디션 회복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고 학원으로 나가는 중에 대치동에서 투자한 원금과 11월분 수익금을 마원장이 보내왔고 다음부터는 수익금 비율을 낮추어 받기로 양보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잔뜩 웅크려 밖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겠는데 이번 주는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는 보도를 한다. 지난 번 향우회에서 천규 형과 성완이 형 그리고 후배 성일이와 정완이가 조선일보 논픽션 어머니 책자를 요청하여 학원 건너편 우체국에서 발송했다. 학원으로 들어가 서류정리와 수업을 하고 신설동에 가서는 세입자가 부탁하여 보증금을 줄이고 임대료를 올리는 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종로를 거쳐 오면서 학원에 있는 아들에게 날이 추워 태우러 간다고 전화를 했더니 괜찮다고 하여 그대로 집에 들어왔다.
16일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는데 감기는 여전하고 하지만 컨디션은 한결 가벼워진 12월의 중반을 넘기는 아침이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태우려고 차에서 기다리는데 8시가 지나도 내려오지 않아 마음이 초조했다. 집에 연락을 하니 이미 출발했다고 하여 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가 자는 줄 알고 그냥 나왔고 지금은 시내버스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며칠 남지 않은 학교생활 잘 하라고 일렀지만 내가 감기로 고생한다고
관리실 앞에서 기다리는 나를 두고 1층으로 그냥 나가지 않았나 싶다. 체육관도 가지 않고 오전을 집에서 보내다 점심쯤에 돌아온 딸과 라면으로 점심을 하고 오후 2시에는 예비소집으로 이대부고에 가는 아들에게 의젓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들은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이대부고를 대표하는 학생으로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학원에 전화하여 오늘은 수학만 연속으로 강의하도록 지시를 하고 남영동으로 나가 친구와 부대찌개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예비소집을 한 학교에서는 방학 과제물로 2007년부터 3개년 국영수 모의고사 모음집을 배부했는데 잘 가르치는 이대부고였으면 좋겠다.
17일 밖의 날씨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새벽에 감기로 고생하다 거실에 나오니 일찍 일어났다는 아내는 책을 읽고 있다. 기침을 하는 나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아들을 태우고 학교로 출발했다. 아들이 어제 소집에 갔는데 아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고 하여 이대부고는 다른 지역에서도 지원을 많이 하는 자사고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방이나 책상이 항상 지저분한 것에 비하여 샤워는 자주 하는 아들인데 요즘은 게을러 오늘은 아예 씻지도 않아 잠을 잔 흔적이 머리에 그대로 있다. 집으로 돌아와 잠깐 잠을 잤고 10시가 되어서는 침과 뜸을 배우는 목요일이라고 아내는 또 수락산 근처에 간다며 준비를 한다. 거리도 멀고 날도 이렇게 추운데 도대체 침과 뜸을 해서 어찌할 거냐고 했더니 가지 않겠다고 하고 12시 지나서 김치찌개로 식사를 함께 했다.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왕이면 살아가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사용가능한 것을 목표로 해야 더 가치가 있다는 내 생각이다. 물론 아내가 허리가 자주 아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근본적인 처방을 생각해야지 평생 침이나 뜸만 할 수는 없다. 오후에 아내를 교보문고에 내려주고 학원으로 들어가니 3시가 되었고 임대료를 정산한 후에 사용할 카드기를 설치했다.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영식이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미리 만들어 둔 패러다임 대표 명함을 어머니 책자와 함께 전달했다. 나는 원장이고 영식이는 대표강사인데 친구가 아직은 하는 일이 없으니 소속감이라도 가지라고 만들어 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따끈한 찐빵을 구입하여 야식이라고 아내에게 주었더니 좋아하여 어머니와 찐 고구마를 먹으며 긴 겨울밤을 보냈던 나의 어린시절 생각이 났다.
18일 어제 영하 10도에 이어 오늘은 가장 추운 서울 영하 12도까지 내려가 있다. 6시30분에 거실에 나와 일요일에 할 고등부 수업을 준비하며 뉴스를 시청하니 고향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보도가 나온다. 어머니도 안 계시는 텅 비어 있을 집 마당과 앙상하게 서 있는 감나무 가지에도 눈이 쌓였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태우고 가려고 시동을 걸고 기다리는 중에 오늘은 사복 차림으로 등교를 하려고 내려왔다. 며칠만 더 가면 방학이 되는데 마지막이라고 교복을 입지 않았는지 개운치 않은 마음이 생겼다. 기온이 너무 낮아 딸을 초등학교 후문까지 태우고 갔다가 돌아와서 잠시 몸을 녹이고 학원에 사용할 전기히터를 구입하러 나갔다. 11시경에는 운동을 하려고 체육관으로 갔는데 감기로 인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고 의욕도 사라져 걷기와 샤워만 하고 나왔다. 고향 친구가 블랙야크 배낭과 바지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기에 운동을 마치고 불광동 매장에 가서 디자인과 색상을 선정하여 사진으로 보냈다. 집에 2시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논술학원에 갔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은 멀뚱하게 나를 바라만 보아 남의 집에 온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고 학원에 가서 어제 구입한 히터를 켰는데 기온이 너무 낮아 대책이 서지 않았고 여의도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입시학원 유명강사 송년회 날인데 영식이는 방명록에 서명만 했다고 연락이 와서 추워서 엄두도 못내고 바로 집으로 왔다고 내 입장을 전했다.
19일 감기로 인한 기침이 계속되어 밤이나 새벽이나 불편하다. 일찍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아침식사를 했고 자율 토요일이라지만 날씨가 추워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 오늘은 교내에서 축구를 하고 또 외부로 나가서 게임을 더 한다고 아예 추리닝 바지에 축구화를 신고 등교를 하는 아들이다. 돌아와서 어제처럼 딸을 태우고 초등학교에 갔다가 하늘이 맑고 햇살이 있어 안산에 올랐더니 겨울바람이 독했는데 영하 8도의 오전의 기온이다. 산을 내려와서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예비고1 C반 토요일 수업으로 논술교실에 갔더니 초등학교 때부터 보아온 희윤이와 태윤이가 앉아 있다. 벌써 자라서 고등부 수업을 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고 A반 B반으로 구성되어 있는 일요일 팀에 비하여 뒤지지 않는 국어실력을 가지고 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가 학원에 나가는데 어둡고 추운 날씨라서 주말이라도 활력이 사라졌고 가라앉은 우울한 기분이었다. 학원에서 교재를 정리하고 내일 사용할 프린트를 만들어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와 아들 딸은 신사임당 송년회라고 외출을 한 상태다. 가족의 모임이라 동네에 있는 식당으로 어슬렁 나갔더니 반가운 사람들이 많았고 식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한 해를 보내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모임을 마친 늦은 시간에 모두가 떠나고 가까이 사는 호성이네 집으로 우리는 별도로 올라갔다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내려왔다.
20일 아침 식사를 하는데 콩나물국이 맛이 없어 오늘 새벽까지의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 잠도 깨지 않은 상태로 교회에 나가서 예배당에 9시에 들어서니 성가대 자리에서 우현이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평소에 3부 11시에 참석하다가 오늘은 2부에 왔더니 신도들도 적고 설교마저 자장가처럼 나지막하여 비몽사몽 시간을 보냈다. 10시에 집으로 오면서 모래네 설렁탕에서 점심을 사 먹고 서대문 도서관 아래에 있는 사우나에 휴식을 하러 갔더니 지저분하고 공간도 없어 돈만 낭비하고 돌아왔다. 일요일 수업시작 2시간 전이라 집에서 잠을 조금 자고 점심을 먹은 후 노란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고 논술교실로 올라갔다. A반 4명은 2시부터 B반 4명은 4시부터 했는데 결석 없이 모두 참석하여 진지하고 보람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지난 주에 내주었던 과제는 아들을 포함하여 4명이 제출하지 않았는데 사소한 것 같아도 제출자와 미제출자의 차이는 결코 적지가 않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 상대방과 약속을 지키는 것은 평소 습관의 차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고 좋은 습관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21일 월요일을 맞이했다. 신사임당 송년회와 일요일 수업까지 정신없이 주말을 보내고 어제 일찍 잤더니 새벽에 몸이 가뿐하다. 7시에 된장찌개로 식사를 하고 아들과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니 오늘은 기온이 올라 엊그제와 달리 포근한 아침이다. 모레 수요일이 아들의 방학이니 앞으로 이틀만 더 다니면 인창 학교에 갈 일도 없는데 그 동안 다녔던 시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전에 잠을 자고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마친 뒤에 집으로 돌아와 닭볶음탕을 끓여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한성대 앞에서 다음 주에 사용할 프린트를 복사하고 학원으로 들어가 공장에서 만들어 온 현수막을 건물 외부에 부착했다.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가 내일이라 6시가 되었는데 벌써 어두워졌고 저녁강의를 마친 후 다시 논술교실 예비고1 수업으로 무악재로 이동했다. 8시부터 수업을 하기로 약속하여 모두 도착한 시간에 아들만 오지 않아 전화를 하니 도서관에 간다며 결석을 했다. 주말 수업이 아니라서 의욕이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약속된 수업시간을 지키는 것도 성실성이나 준법성과 관련이 있다.
22일 아내가 코를 심하게 골아 수업때문에 피곤하여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새벽에 잠을 설쳐 불편함이 많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고 몸무게를 줄여나가면 괜찮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고쳐지지 않는다. 피곤한 아침에 아들을 태우려고 기다리는데 오늘은 어제와 달리 교복에 목도리까지 하고 내려왔다. 학교가 오전에만 수업하고 마칠 것이니 오후에 이대부고 과제물 모의고사 문제를 풀라고 했더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말투부터 부정적이다. 가급적 아들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차 안에서는 말을 삼가는 편인데 오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1시간을 자다가 오늘 방학을 하고 돌아온 딸과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고 겨울방학 스케줄을 잘 만들기로 약속을 했다. 일이 많아 학원으로 나갔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궁싯거리며 시간을 보내게 되어 이제부터는 메모나 목록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현대카드 영업사원이 들어오더니 나를 알아보고 20년 전 대단한 강의였다고 극찬하는 바람에 신청을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7시에는 엊그제 전화한 홍의남 선생이 찾아와 반가웠는데 학원의 실패로 그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면서도 특유의 유머는 잊지 않았다. 실력이나 능력이 있어도 안 되는 일이 있나 싶었고 학원 근처에서 감자탕으로 저녁을 먹으며 깊어 가는 겨울밤을 보냈다.
23일 새벽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어제 방학한 딸만 집에 있고 시간은 오전 10시를 지난다. 아들은 학교에 아내는 논술교실에 올라가 식사를 마친 나도 학원에 가서 일전에 중단한 현수막을 다시 걸었다. 오후에 일을 마치고 나니 금방이라도 수강생이 몰려올 것 같았지만 날이 추워 일단 피신하듯 사우나에 들어갔다. 5시경 콩나물 해장국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수업을 하는 중에 오늘 야경을 구경하러 나가자는 아들 전화가 왔다. 집에 8시경 들어와 아들과 딸 아내까지 데리고 광화문에 나가 휘황찬란한 세모의 거리를 돌아다녔고 그나마 날이 포근하여 다행이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화려한 조명이 시선을 끌었는데 중국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상하이 짬뽕집이다. 최근에 개업하여 외관부터 깨끗했고 2층으로 올라가 자장면과 짬뽕을 먹었더니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해서 좋았다. 청계천 입구로 나가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고 광화문 광장 분수대와 세종대왕 이야기 그리고 서울시가 만들어 놓은 스케이트장까지 구경했다. 세종문회회관 앞에는 꼬마 전구를 이용한 아치가 있어 아름답기도 했지만 대낮처럼 밝아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간식으로 어묵을 먹고 자정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는데 예전과 다르게 여유가 생긴 내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생소하기만 했다.
24일 눈이 올 것처럼 잔뜩 날이 흐리다. 어제 광화문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들어온 아들과 딸은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식사를 마친 아내는 먼저 논술학원으로 나간다. 오전에 고향 친구의 40대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고 문자가 와서 혈육인 형제와 이별을 경험한 나로서 안타까움이 더 많았다. 어머니도 계시고 선하게 살아온 그들의 가족인데 슬픔과 고통이 클 것이라 여기어 위로와 격려의 답장을 보냈다. 영식이와 삼계탕으로 점심을 먹으려고 남영동으로 나갔는데 날이 푹하고 사람들조차 차분하여 성탄절의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방배동으로 이동하여 고속터미널 상가 안에 있는 영식이가 투자한다는 필리핀 국제학교 “에듀 포레” 사업 과정을 스크린을 통하여 시청했다. 생각보다 크고 계획도 구체적이었지만 쉽게 가 볼 수도 없는 필린핀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여 영식이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더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여러 번 일렀는데 영식이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세워 내가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선박사업을 제외하고 과거 영어마을이나 학원운영 등 내가 반대했던 사업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전력이 있다. 고속터미널에서 한강을 건너 학원으로 들어가 수업을 하고 집에 와서는 아내와 딸을 태우고 불광동 킴스클럽에 나갔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딸에게 옷을 사 주었고 명지대 근처로 이동하여 샤브샤브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25일 식사를 마친 성탄절 아침에 아내와 딸은 장모님이 계시는 퇴계원에 간다고 서두른다. 차로 데려다 준다고 하니 구태여 지하철로 가겠다고 하면서 먼저 나가고 나도 교회로 출발했다.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전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여 자리에 앉기도 힘들었고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라고 설교에 이어 축도를 한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고 우현이와 나갔는데 교회에서 멀지 않은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를 했고 부인이 떡국과 김치깍두기를 준비해 두었다. 이들이 결혼할 당시에 아름다운 신부로 우현이의 부인을 내가 미용실에서 예식장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세월이 흘러 벌써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날씨가 어두워져 눈이 올 것처럼 날이 흐리고 한강을 건너 부지런히 집에 왔더니 기다렸다는 듯 아들은 용산에 가서 MP3를 사 달라고 한다. 다음 기회로 미루려다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해서 함께 나갔고 핸드폰은 먼저 교환했는데 MP3는 2년 전의 모델이라 예약 주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김치찌개를 만들어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는데 아내가 장모님을 비롯하여 퇴계원 식구들과 함께 무악재에 돌아왔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날이라 환호성이 저절로 나올 수 있는 밤이었고 아파트 건너편 우동집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가 성탄의 밤을 즐겁게 보냈는데 자다가 일어나 잠이 깨지 않은 나는 시종일관 비몽사몽이었다.
26일 어제 눈이 많이 내려 밖의 풍경이 하얗다. 가족이 모두 늦잠을 자는 아침으로 방학 때는 언제나 그렇듯이 낮과 밤을 구별 안하는 식구들이다. 가까스로 9시가 되어 식사를 하고 10시에 밥과 김치를 준비하여 북한산 등반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정릉에 도착하니 영하 11도의 매서운 추위는 여전했고 중무장을 했다지만 겨울의 필수품인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아 고생도 했다. 보국문에 12시경 도달하여 땀을 씻고 바로 내려왔는데 칼바위와 문수봉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그 자리에 있고 다만 색깔이 다른 옷으로 갈아 입을 뿐이다. 오후 2시에 학원으로 이동하여 추워서 먹지 못한 점심을 컵라면 국물에 말아 해결하고 교재 준비를 하며 보냈더니 금방 5시가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어제 예약한 아들의 MP3를 찾으러 가려고 전화를 했더니 이제 그런 물건은 없다고 하여 할 말이 없었다. 종로 5가에 나가 등산복 겨울 T셔츠를 구입하고 집으로 바로 돌아와 김치찌개 만들어 아들과 저녁을 먹었다.
27일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오늘 수업할 교재와 프린트를 연구하고 정리했다. 오늘도 시간이 아까워 9시부터 하는 2부 예배에 참석하려고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시작 5분 전에 교회에 도착했다. 성가대 상단에 베이스 팀장으로 우현이 집사가 있어 나와 마주하며 기도와 찬송을 하지만 저녁에는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비 종교인들이다.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가자는 동갑내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집에 돌아오니 10시 30분이 되었고 오후 수업을 준비하는 중에 논술을 하는 아내가 먼저 교실에 올라간다. 아내가 마치면 내가 이어서 교실을 사용하는 옹색한 학원이라도 오늘은 수업을 가는 중에 눈이 펑펑 내려 마음이 훈훈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예비고 수강생들은 모두가 아들과 다르지 않아 풍부하고 정확하게 최선을 다하는 수업을 오늘도 다짐했다. A반 B반 연속으로 4시간 수업을 하고 마치니 날이 어두워졌고 거리는 낮에 내린 눈으로 무악재 주변까지 차량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저녁에 아내는 중학생 수업을 또 한다고 교실에 오르고 시내에서 술을 마신다는 영식이는 연거푸 전화를 하여 사업에 관한 이야기와 미래의 계획을 열심히 설명한다. 피곤하고 춥고 그것보다 눈 때문에 차량운행이 쉽지 않아 외출을 하지 않았고 딸과 저녁을 먹으면서는 정초에 가족 여행을 말했더니 눈만 껌벅거린다.
28일 어제 눈이 내려 시내가 미끄럼판인데 오늘도 기온이 영하 11도 아래로 내려가 서울이 한겨울 동장군 속으로 접어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 이불을 깔고 따뜻하게 누워 있다가 아침을 맞이했고 9시가 지나서 된장 시래기국으로 식사를 했다. 시간을 두고 정성을 담아야 음식의 맛이 살아나는데 급하게 물을 붓고 처리하다 보니 맛이 나지 않아 입이 고통을 받는 아침이 되었다. 아들과 딸까지 모두가 인상을 찌푸려 어쩔수 없이 내가 다시 요리를 했지만 그래도 맛이 살지 않아 식사를 중단했다. 10시가 지나서 체육관으로 가려고 나섰는데 어제 눈으로 인하여 엉망진창인 도로가 오늘 아침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며칠 만에 온 체육관이라 열심히 운동을 했고 아들이 원하는 복싱을 시키려고 홍제역 부근에 있는 권투도장을 방문했더니 오후 상담이라서 그냥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이대부고 과제를 수행한다고 아들은 도서관에 갔고 나도 학원으로 나가서 멀어져 가는 눈물의 2009년을 아쉬움으로 돌이켜 보았다. 밤에 집으로 왔더니 어디서 배웠는지 아내가 매생이국을 많이 끓여 저녁을 준비했는데 시원하고 맛도 있었지만 고맙기도 했다.
29일 식사를 마치고 학원에 나가서 교재 연구도 하고 한 해를 정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2010년을 설계했다. 형과 어머니가 떠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어둡고 긴 고통의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최근에 와서는 내 모습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별히 금년 여름은 어머니 논픽션을 정리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삶과 인생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았는데 정신의 살을 찌우는 시간으로 충분했다. 마음이 바쁜 날 어제부터 영식이 전화가 계속 불통이어서 궁금함이 더 했고 저녁에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도서관에 있다고 하여 추운날 일찍 들어오라고 일렀다. 저녁을 먹은 늦은 시간에 우현이 전화가 와서 택시로 마포에 나갔더니 안양에서 식당을 하는 고등학교 정이식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다. 우현이와 이식이는 전북대까지 동문이니 더 가까울 수 있지만 내가 강의하던 20대 후반에 고시공부를 한다는 이식이가 찾아와 힘내라고 고기를 많이 사 준 적이 있다. 변호사를 준비했던 이식이가 현재는 동태찌개를 팔고 있으니 직업에 귀천이 없더라도 전공과도 무관한 의외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삶에 자포자기를 했는지 불만이 가득한 이식이가 결국 인사불성이 되어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 보내주었지만 친구로서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2018년 3월 정이식 사망)
30일 새벽 2시에 들어와 잠을 자려니 잠이 오지 않는다. 아내는 늦게 들어온 나를 타박하더니 얼마 전에는 방배동에서 노래를 부르고 횡설수설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한심한 표정을 짓는다. 당시에 집으로 전화를 하고 미처 핸드폰이 꺼지지 않아 대화의 내용을 들었던 모양인데 내가 생각해도 칠칠맞지 못한 행동이다. 거실에서 새벽을 보내다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나니 8시가 되었고 식사를 마치고는 논술교실에 올라가 예비고 C반 태훈이와 희훈이 12시까지 수업을 했다. 아들이 서대문 도서관에 있다기에 점심을 함께 먹으려고 찾아가서 각각 새우볶음밥과 라면을 먹었는데 식단이 생각보다 부실하여 구청에 신고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국영수 모의고사 문제를 많이 풀어보라고 당부하고 집에 들어가니 바쁜 가족들과 다르게 딸만 먹다가 자다가 일 없이 보내고 있다. 1월 4일부터 학원에 나간다니 기다려 볼 일이지만 딸도 계획을 세워서 중학생이 되는 2010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3시에 학원에 나갔더니 무슨 일인지 수학을 듣던 수강생 3명이 동시에 탈락하여 의아했고 홍제동 복싱체육관에서는 아들만 오전에 가르치겠다고 전화가 왔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10시경 들어와 내일 연말에는 가족과 식사를 하고 새해에는 일출을 보러 가기로 아들과 약속도 했다. 또한 학원에서 만들어 온 아들의 1,2월 생활계획표를 전해주었더니 금방 실천을 할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불안함이 더 많았다.
31일 서울의 기온이 영하 12도를 가리키는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렀지만 인간사는 변화가 많아 어머니와 전직 대통령들의 서거까지 사랑과 슬픔이 세월 속에 묻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평소처럼 논술교실에 오르는 아내를 보면서 아들과 딸을 키우려고 발버둥치는 지금이 훗날에는 보람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12시 지나 집으로 돌아와 갈비탕으로 혼자 점심을 먹었다. 늦게 일어난 아들은 강남 코엑스에서 용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여 용돈을 주었고 차를 몰고 학원으로 나가서는 하루를 또 한해를 마무리했다. 5층 창가에서 바라본 거리는 표정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빠르게 오가는 차량 행렬이 그나마 연말임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새해를 잘 맞이하라고 덕담을 전하는 친구들의 문자가 연이어 들어오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광화문 거리를 바라보니 평소의 저녁과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4시간 후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많은 군중들이 몰려올 것인데 그들은 영하 10도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집에 와서 가족과 즐겁게 식사를 했고 제야의 종소리도 듣기 전에 잠이 들었는데 시간은 연속선 상에 있어 오늘과 내일의 구분이 없다는 나만의 생각때문이었다. 언제나 오늘이 중요하고 별 일이 없는 평범함이 행복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바라고 충족이 안 되면 현실을 무료하다고 여긴다. 내일도 붉은 태양은 어김없이 오늘처럼 떠오를 것인데 내가 사는 인생도 평범했던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