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과 늑대> (바람이려오)
옛날 어느 깊은 산악 마을에 어린 양치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마을 사람들의 양을 돌봐주며 그 수입으로 근근히 또 어렵게 생활 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직장이자 생활 기반인 산등성이는 인적이 뜸해 소년은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보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쓸 쓸히 지내야 하는 일이 태반이었습니다.
소년이 자폐증 환자처럼 말수 도 적어지고 모든 사물을 적대시하는 이상한 습관이 생긴 것도 그때였을 겁니다. 소년의 직장이자 생활이 기반인 산등성이에는 소년의 욕구 불만을 달래줄 만한 오락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매일 보는 양과 나무, 그리고 가끔씩 불어오는 공허한 바람 이외에 소년의 호기심과 놀이 욕구를 만족시켜줄 만한 뭔가 새로운 흥밋거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생각해 보았지요.
"내가 양을 늑대에게 빼앗겼다고 소리지르면 어떻게 될까? 마을 사람들이 달려올까?"
만약 자신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급박하고 두려움에 가득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인 양을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 올 것이라는 생각이 소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년은 자신의 생각을 당장 실험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년은 목청을 가다듬고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지요.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소년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무섭게 마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뭐라구? 늑대가 나타났다구?!"
소년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장총과 도끼, 농기구 등을 들고 소년이 소리지른 장소로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은 기뻤습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어느덧 마을 사람들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소년은 놀란 사슴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둘러댔습니다.
"늑대가 저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몰려오자 숲속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그럴 듯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재산인 양을 지키고 있는 소년의 말을 의심하고 정말이냐고 되묻거나 그 장소가 어디냐고 자세히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의 재산인 양이 다치거나 없어지지 않았나 해서 양들 무리로 달려가 자신의 양을 헤아릴 뿐이었습니다.
양치기 소년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분노를 느끼게 되었지요.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면 당연히 자신에게로 먼저 달려와 걱정해 주며 안정할 수 있도록 말을 건내고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주고 있는 노고에 고맙다고 인사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양치기 소년은 더 이상 호기심이나 장난끼 차원의 행동으로 마을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치밀하게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 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히되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대담하고 치명적인 계획을 짜나갔던 것입니다.
(늑대가 한 무리를 이루는 수, 늑대 한 마리 가 한번에 물어갈 수 있는 양의 무게, 늑대들이 사냥을 다니는 시간 및 주기, 늑대가 자주 출몰하는 지형과 그렇지 않은 지형 등등….)
소년은 늑대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지요.
소년은 아무도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눈치챌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비밀이 완벽히지켜지는 공간적 이점 때문에 차질없이 계획을 실행시킬 수 있었습니다.
양치기 소년은 휴일이 되면 마을로 내려가 마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양을 맡을 수 있다고 말하며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또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은근히 알리며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신임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치밀한 위장 전술이었지요.
그리고는 다시 산속으로 돌아와 앞으로 시작할 보복성이 강한 충격적인 비즈니스를 세밀히 연구하고 검토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양치기 소년 은 그 동안 수집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이 빼돌릴 수 있는 양의 수를 계산하고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그 양들을 운반해 다른 마을로 내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자신 의 수고를 양을 빼돌린 다음 얻게 된 현금으로 대신 위로했습니다. 또 자신의 이 행위는 도둑질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권과 노동의 대가를 찾아 오는 정당한 행위라고 자기 자신에게 인지시켜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자신을 다져 나갔습니다.
다음날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자주 출몰하는 지형으로 남은 양무리를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을을 향해 힘차게 외쳤지요.
"늑대가!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양을 물어가요!∼"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는 절박하게 마을로 울려 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탁월한 연기력에 또 다시 총과 도끼, 농기구와 몽둥이 등을 들고 소년에게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허둥지둥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겁에 질린 소년의 표정과 소년이 만들어 놓은 늑대의 발자국, 그리고 여기저기 뿌려진 양의 핏자국 이외에 어디에서도 양을 물고 가는 늑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역시 소년의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 서둘러 자신들의 양이 몇 마리나 없어졌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양치기 소년은 그런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이 결코 죄의식을 가질 만큼 비열한 행동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양치기 소년은 몇 번 더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하여 마을 사람들의 양을 빼돌리고 그 수고의 대가로 어지간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순조롭게 흐르자그는 마을 사람들, 즉 작은 시골 도시의 어리숙한 촌부들을 상대로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사용하는 일이 시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타고난 웅변력과 사람을 사로잡는 목소리, 그리고 그 움직이게 하는 탁월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뭔가 더 크고 더 스케일이 웅장한 그런 일을 해보 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양치기 소년은 결심했습니다.
도시로 거대한 대도시로 나가기로 말입니다. 소년은 그 동안 자신의 비즈니스로 만들어 놓은 노동의 대가를 챙기고 직업인 양치는 목동 일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대도시로 향하는 기차를 탔습니다.
이른바 무작정 상경이라구요? 아니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주어진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이요. 새로운 운명을 위한 장엄한 첫걸음이자 활동 영역의 확장을 위한 힘찬 시도였다고 해야 옳을 겁니다.
어쨌든 양치기 소년은 그렇게 자신의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양치기 소년이 살던 마을에는 변함없이 다른 양치기 소년이 들어와 여전히 그 마을 사람들을 위해 양을 돌보고 있었으나 그 옛날 양치기 소년이 떠난 이후 한번도 늑대가 나타나는 일없이 언제나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 왜 그렇게 늑대가 많이 나타났었는지 의아해 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양치기 소년이 자신들의 양을 빼돌려 자신들에게 막대한 물질적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이 양치기 소년 아니 지금은 X정당 선전부장이 된 그때 그 양치기 소년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건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대통령 선거에서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지금의 이 자리, 즉 한 나라 정당의 핵심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는지는 미련하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이미 짐작하셨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X정당 선전부장이 된 그 옛날 양 치기 소년은 그가 양치기 일을 하며 터득한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과 방법을 더 더욱 진화시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도록 카리스마적 마력으로 발전시켰고 이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정면 승부를 하며 지금 이 자리까지 왔던 것입니다.
TV에 나온 그는 유창한 언변은 물론이고 사람을 사로잡는 몸짓과 행동도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무게로 진화돼 있었고 호소력 또한 막강했습니다. 그러니 유권자 들은 그런 그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빨려들어 가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양치기 소년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옛날 하잘 것 없던 산속 양치기가 품었던 크고 웅장한 도박판에 바로 그가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TV를 통해 전 국민을 상대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위해 이 한목숨 을 다 바쳐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떻습니까.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지금 양치기 소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