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비밀을 밝히고 생명의 신비를 풀겠다고 덤비지만,
정작 삶의 고통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이 인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나약한 인간에게 신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이 종교에 매달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철학과 종교는 모두 이걸 다루죠.
안병욱 선생과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제일 소중한 게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가 내린 결론은 ‘성실하게 사는 것’이에요. 성실을 잃어버리면 인간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성실한 마음으로 살면 철학이 돼요. 거기서 신앙은 나오지 않아요.
신앙을 가지려면 성실성에 경건성이 더해져야 해요.
산속에 호수가 있어요. 바람이 불 때는 호수에 파도가 쳐서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요. 달 그림자, 별 그림자가 없어요. 그런데 호수가 조용해지면 그림자가 보여요. 달 그림자가 생기고 별 그림자가 생겨요. 인간도 호수와 같아요. 자기 자신을 믿을 때는 달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요. 자기 한계를 깨달을 때 비로소 성실이 경건으로 바뀌어요. 그때 신앙이 생겨요.
왜 그럴까요? 내 인생의 짐은 내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서울대 박종홍 교수는 학자답게 성실히 노력한 분이었어요. 그분이 말년에 암으로 고통을 치러야 했어요. 가족들과 제자들이 조심스럽게 신앙으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권고를 했어요.
박 선생은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기독교와 종교를 반대하지 않았으나 철학도는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어요. 죽을 때까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기 때문이죠. 성실하게 탐구하는 지성인 되기를 바랐어요.
그러다가 신앙적 권고를 받았을 때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라면서 마음의 문을 열었어요. 그렇게 해서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의 도움을 받아 신앙에 입문했어요. 교회에 나갈 기회는 갖지 못했어요. 병세가 심했으니까요.
세상을 떠난 후에는 새문안교회에서 영결 예배를 갖게 되었어요. 그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제자들 모두가 경이로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분이 신앙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장례식이 치러진 새문안교회는 교인들보다는 사회인으로 초만원이 되었고요.
내가 대학 연구실에 있는데 옆방을 사용하던 배종호 교수가 들어왔어요.
“김 선생, 아침 신문 보셨어요? 박종홍 교수 장례식이 새문안교회에서 있다는 소식이데요. 그분이 언제 크리스천이 되었어요?”
내가 아는 대로 얘기해 주었더니 “아아, 그렇게 되었구나, 처음 듣는 얘긴데요. 하기야 그렇지 갈 곳이 없었으니까…”라면서 돌아서 나갔어요.
돈과 권세를 추구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사람은 신이나 종교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지 않아요. 인생의 의미와 사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면 ’영원한 것‘에 대한 기대와 갈망을 포기할 수 없어요.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교는 정신과 영혼의 문제입니다.
김태길 교수도 말년에 신앙을 받아들였어요. 딸을 슬프게 잃었는데 그분의 슬픔을 철학이 해결해 줄 수 없거든요. 인간이 한계를 느끼고 더이상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신을 찾게 됩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 종교는 한마디로 ’영원에의 동참‘이에요. 그렇게 본다면 신앙은 인생의 마지막 물음에 대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김형석의 인생문답 중 28문
첫댓글 주교님께서는 '영원한 옷자락'이란
표현으로 하느님을
표현하기도 ㅡ
유한의 존재 내가
무한 무한성, 영원에 동참은?
루시리님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자녀 형제에 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성실성에서 경건으로 가는 길, 정처없이 멀고 멉니다.
하나님~
제 삶 속에서 늘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