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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인문학자’김응교 교수를 만나다
답변자: 김응교(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질문자: 차익종(서울대학교 강사)
때: 2013. 2. 28.(목)
곳: 서울 목동 기독교방송국 회의실
국립국어원이 2012년 말에 발표한 신어 중 ‘SNS 피로증후군’이 있다. 누리소통망(SNS)에서 얼마나 열심히 놀았으면 피로증후군까지 생겼을까. 요즘 유행하는 이 ‘놀이’는 ‘보고 듣고 퍼 나르기’를 넘어서 ‘쓰는 일’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트위터가 독자와 작가의 구분이 없어지는 ‘쓰기와 읽기를 겸하는 이’, 즉 ‘작독가(作讀家)’를 탄생시킨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권위 있는 문학 출판사가 ‘트위터 백일장’을 열기도 했다. 인터넷 글쓰기가 막말과 말장난만 낳는다고 염려하던 모습과는 딴판이 아닌가.
‘이곳 이 사람’ 이번 호에서는 누리소통망이 ‘작독가’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트위터 글쓰기를 대학 강의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혀서 화제를 모은 이를 찾았다.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 일본 문학 번역가인 숙명여자대학교 김응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대학 바깥의 인문학 강사, 기독교방송(CBS)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인 ‘크리스천 나우(NOW)’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트위터 딸림벗(팔로어, follower)이 3만 명인 ‘시냇물(@sinenmul)’이 바로 이분이니, 일간지에서 연재하는 오늘의 ‘말말말’난에 이분의 트위터 문구가 자주 오르기도 했다.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줄 적격자를 찾은 셈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강의에도 유용해
차익종 안녕하세요, 트위터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문학 평론가로 꼽히셨고, 페이스북도 친구가 4,700명이나 된다고 들었습니다(페이스북은 친구 맺을 수 있는 숫자가 최대 5,00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김응교 아이고, 당치도 않은 말씀이에요. 트위터 딸림벗이 140만 명이 넘는 작가도 있는걸요. 저는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못 되는데…….
차익종 그래도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학 강의는 물론 사회 밖의 인문학 강의, 방송 진행도 하시는데, 과연 가능하긴 한가요(웃음)?
김응교 가짓수가 많아 보이긴 해도 서로 연관되어 있어요. 학교 강의에서는 글쓰기로 트위터나 인터넷 카페를 활용하고 있고요, ‘맹자와 함께’라는 고전 공부 모임도 트위터 딸림벗과 페이스북 친구 중에서 지원자를 모아 운영하고 있어요. 제가 진행하는 방송은 사회 현장이나 기독교계의 쟁점을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인데, 이것도 매번 방송을 페이스북에 공유시켜 놓고 의견을 나누기도 하죠. 최근에는 강릉원주대학교, 대구 영남대학교, 안산 중앙도서관, 포항 한동대학교, 부산 지역 등 전국을 순회하는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누리꾼들의 요청으로 만든 행사였죠.
차익종 선생님에게는 누리소통망이 이미 활동의 터전이 되었군요.
김응교 그런 셈이지요. 작년에 ≪그늘≫이라는 문학 에세이집을 냈는데 몇 달 안 되어 2쇄를 펴냈어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소식을 들은 분들이 구입해 주신 것이지요.
차익종 그러면 아무래도 글을 올리고 읽는 데 시간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김응교 그렇지요. 열심히 할 때는 하루에 8번 이상 글을 써서 올리기도 했고 밤늦게 집에 와서도 새벽 1∼2시까지 읽고 쓰곤 했지요. 그렇지만 자칫 중독되겠다 싶어서 요즘에는 자제하고 있어요. 트위터는 하루 평균 두세 개를 올리는 편이지요. 페이스북은 한 주에 두세 개 정도 글을 올립니다.
차익종 학교 강의에도 활용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김응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학부생들의 교양 필수 과목으로 ‘인문 고전 강독’을 맡고 있는데요, 강의 과제로 고전을 읽고 그 핵심어를 찾아서 트위터에 올리게 하고 있지요. 가령 ≪감시와 처벌≫이나 ≪죄와 벌≫을 여섯 번 나눠서 읽기로 했으면, 거기서 중요한 구절을 매주 뽑아서 트위터에 올리는 것이지요.
차익종 학생들이 올리는 트위터를 일일이 보고 평가하려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김응교 물론이지요. 트위터는 글이 죽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딸림벗 전체가 공유해야 하는 공간에서 첨삭 내용을 일대일로 답신으로 올리는 것은 트위터 공간에 맞지 않는 행동이죠.
차익종 그러면 어떻게 하시나요?
김응교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다시 올리게 하죠. 그리고 다른 학생이 서로 두 개 이상 댓글을 달게 하죠. 그러면서 서로 토론하도록 하지요. 사실은 제가 더 배워요. 학생들이 제가 못 본 것까지 발견하니까요. 그래서 수업이 아주 입체적으로 이뤄집니다. 학생들의 사고력과 문장력도 늘어요. 주제를 파악한 뒤 거기에 맞는 간결한 어휘와 표현을 찾아 써야 하니까요.
140자 문장력 키우기, 강의에 활용
차익종 핵심을 찾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겠군요.
김응교 그렇지요. 저도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 능력이 중요함을 새삼 느끼지요. 방송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의 하나가 시작 발언인데요, 한 주일에 있었던 일을 다듬어서 50초로 줄여 ‘오프닝’을 말해야 해요. 어떤 단어를 줄이고 어떤 말을 꼭 넣어야 하는지, 핵심 단어와 구조를 찾아내는 능력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지요.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에 대해 누가 “그 책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 책은 역사는 현재와 과거가 영원히 대화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건 무엇이고, 구성은 6장까지 되어 있는데 각 장은 어떻고……” 등등, 이렇게 원하는 대로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는 거죠. 원고지 두 장이든 에이포(A4) 석 장이든 길이에 상관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 자기표현 능력도 이런 과정에서 길러지는 법이지요.
차익종 트위터를 활용하는 이점이 있군요.
김응교 그렇게 강의에 활용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강의가 그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아요. 트위터에 올린 것은 메모니까, 이를 꼭 모아서 넉 장 이상짜리 논문을 손으로 써서 제출하게 하지요. 전체 학생들의 학기 말 논문을 교수들이 심사해서 15명을 뽑은 후 학생 전체가 참석하는 발표 대회를 열지요. 저는 그 과정을 트위터부터 시작하게 하고 이를 카페에 올리고, 카페에 올렸던 메모들을 모아 논문을 써서 내고, 마지막에는 15분짜리 파워포인트로 발표하게 하죠. 토론하는 과정, 말하는 훈련까지 이어지게끔.
차익종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다 포함하는 과정이네요.
김응교 그렇지요. 저희 학교에서 하는 고전 강독 수업에는 ‘창의 발표’ 방식도 권장하고 있어요. 가령 지난 학기는 예술대 수업에서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같이 읽었는데 무용과 학생은 이를 무용으로, 음대 학생은 이를 음악으로 발표했지요.
차익종 ‘창의 발표’라면?
김응교 고전을 읽고 이를 자기 전공으로 표현해서 발표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론≫을 읽고 음악으로 표현한다거나,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춤으로 표현한다거나.
창작과 인문학 나눔의 공간
차익종 한마디로 경계가 없는 수업 방식이군요. 더 듣고 싶습니다만(웃음), 일단 트위터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지요. 트위터로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응용하고 계신데, 그런 분이 선생님만은 아니겠지요?
김응교 작품을 쓰는 공간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문인들이 꽤 있지요. 시구를 트위터에 올린 후 다시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려 보곤 하더라고요.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린 후 거기에 글을 붙여서 계속 수정할 수도 있잖아요. 주로 시인들이 많아요.
차익종 산문도 가능할까요?
김응교 박범신 선생이나 이외수 선생이 창작에 활용하고 있지요.
차익종 선생님도 당연히 그렇게 활용하시겠지요?
김응교 수필이나 논문 청탁이 올라오면 트위터에 초고를 한 문단씩 차례로 나눠서 올려 봐요. 누구의 시에 대해 평을 써 달라는 청탁이 올 때에도 이렇게 올리면 딸림벗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얻을 수 있지요.
차익종 그다음에 정리해서 정식으로 글을 쓰시나요?
김응교 아뇨, 그걸 또 고쳐서 한꺼번에 붙여 페이스북에 올리죠. 그러면 거기에 또 댓글이 올라와요. 그러면 그 반응을 보고 다시 고쳐서 정식으로 써서 보내지요. 작년에 낸 ≪그늘≫의 머리말도 초고 전체를 올려서 댓글을 보고 고친 것이고요, 책 표지나 제목도 이런 과정을 밟아 정하곤 하죠.
차익종 독작가, 작독가라는 것이 그것이군요.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 소통 공간으로도 활용하시겠지요?
김응교 그렇지요. 저는 보통 네 가지 인문학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차익종 네 가지라면?
김응교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소통의 인문학’, 벤야민, 아렌트, 레비나스가 얘기한 ‘책임의 인문학’, 그리고 ‘나눔의 인문학’, ‘창의의 인문학’이 있지요. 그런데 ‘소통의 인문학’으로서는 트위터 이상이 없는 것 같아요.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고흐 전 보러 갑시다”
차익종 인터넷 대화로 그치지는 않겠지요?
김응교 실생활로도 연동이 됩니다. 가령 “고흐 전 보러 갑시다” 하는 식으로 알려서 전시회 감상 모임도 갖는데, 너무 많은 분이 오실까봐 인원을 제한하기도 하지요. 제가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행사의 주인공 대접을 받은 것이 몇 번 안 되었는데요, 처음엔 출판사에서 기획했지만 이후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친구분들 요청으로 계속하게 되었죠.
차익종 이전까지는 생각하기 어려운 장면이군요.
김응교 저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였어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던 ‘맹자와 함께’라는 오프라인 공부 모임이 있는데 ‘와와 클럽’이라는 인문학 교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고전번역원 선생님을 모셔서 격주 월요일마다 오프라인 공부 모임을 열고 있는데, 저를 포함해 모든 회원들이 만 원씩 내서 운영하고 있어요. 조교도 두고 있어요. 아, 숙대 학생은 무료로 들어올 수 있어요(웃음).
차익종 인원이 다 차겠지요?
김응교 그럼요. 여러 분이 대기 상태로 기다리고 있지요. 직업도 다양하고요. 이 모임을 페이스북으로도 운영하고 있어요. 페이스북은 트위터와 달리 그룹 방을 만들 수 있어서 ‘맹자와 놀자’라는 모임방을 만들었죠. 예전 인터넷 카페와는 달리, 맹자를 낭송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립니다.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에 올리는 거죠.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회전하는 것이지요.
차익종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것인가요?
김응교 처음에는 제가 부탁을 했죠. 제가 머리가 나빠서 기억을 못하니까 누가 찍어서 올려 달라고 했죠. 그런데 재미있으니까 회원들이 점점 자발적으로 올리는 거예요. 한자음을 적은 노트를 찍어서 올리기도 하고요. 누리소통망의 폐쇄성을 오히려 생산적인 만남으로 만든 셈이니까 오시는 분들이 좋아하지요. 이런 공부를 십 년도 아니고 평생 계속하자고들 해요. 사람들이 꼭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도 이런 매체를 이용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차익종 신문, 방송, 출판 같은 대형 매체가 작가와 공동으로 판을 만들고 독자가 혼자 책을 읽거나 방송을 보는 시대는 끝난 것이군요.
김응교 독자는 더 이상 작가를 신비한 존재가 아니라 직접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요. 요즘에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인데, 페이스북으로 직접 소통하는 혜민 스님, 공지영, 박경철 같은 분들은 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트위터 딸림벗이 많아요. 이분들의 세계는 제가 상상도 못할 정도이겠지요. 아무튼 인터넷에서는 의사소통 구조가 바뀌는 것 같아요.
차익종 어떤 식으로 바뀐 것일까요?
김응교 인터넷 공간도 3단계를 밟아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 중심주의인 누리집(홈페이지)이 있었지요. 그다음에는 다(多)중심주의인 블로그가 나왔고, 지금은 탈(脫) 중심주의인 누리소통망이 나와 비로소 개별적인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개개인을 만족시킬 수 있게 되었어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다르죠”
차익종 에세이집을 발간하고 2개월 만에 2쇄를 찍으신, 드문 경우도 이래서 가능한 것이군요(웃음). 그러고 보니까 인터넷 글쓰기가 언어 파괴나 막말을 낳는다고 논란이 되곤 하는데, 선생님이 경험하시는 공간은 일부러 막 쓰는 일은 없는 것 같네요. 왜 그럴까요?
김응교 책임감이 있는 공간이지요. 또 글을 쓰는 주체를 아니까 글을 정확히 만들어서 올리는 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차익종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꼭 익명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군요.
김응교 그렇죠. 특히 페이스북은 그 사람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더하지요. 재미있는 점은,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페이스북 관계가 트위터 관계보다 책임성이나 신뢰가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사실 트위터에서는 그 사람이 올린 문구만 보게 되는데, 페이스북은 문장은 물론 그 사람의 사진, 친구 관계, 활동 정보까지 다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지요. 제가 하는 맹자 공부 모임 회원이 서른 명인데, 그중 두 명만 트위터 친구이고 나머지 스물여덟 명이 모두 페이스북 친구들이에요.
차익종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차이가 있군요.
김응교 전혀 다르죠. 트위터는 한 순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영향력이 굉장히 큽니다. “어디어디가 물에 잠겼어요” 하고 글을 올리면 실시간으로 확산되지요. 그럴 때는 신문보다 훨씬 무섭죠. 어떤 이념보다 훨씬 무서울 수 있어요. 또 집중도가 강합니다.
차익종 중심인물이나 화제가 부각된다는 뜻이지요?
김응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 의제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중심인물이 되기 어렵지요. 반면에 페이스북은 관계가 더 번져 나가거든요. 트위터에서는 리트윗을 얻어야 자기 글이 퍼지는데, 그러려면 읽는 사람이 두 번 클릭해야 해요. 기술적으로 두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죠. 클릭 한두 번 하기가 몇 천 리 가는 일보다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한 번에 눈으로 보는 것과 클릭을 두 번하고 또 회원 가입까지 하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페이스북은 ‘좋아요’ 한 번뿐이잖아요. 그래서 ‘좋아요’를 얻기가 아주 간단해요.
차익종 ‘좋아요 취소’만 있지요(웃음).
김응교 그래서 제 경험으로는 페이스북은 대인 기피증이 있는 사람에게 굉장히 좋더라고요. 당신 삶이 좋다, 당신 글이 좋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위로가 되지요.
차익종 세대, 취향, 목적에 따라 트위터나 페이스북 어느 한쪽을 주로 이용하게 되겠군요.
김응교 그런 셈이죠. 일단 저는 학생들에게는 양쪽을 다 해 보라고 권장해요. 그런데 대학생들은 트위터에는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트위터는 너무 방대해서, 대학생들이 자기 담론으로 딸림벗을 만들어 낼 수가 없어요. 2년을 해도 1,000명을 넘기기 힘들어요. 제 강의를 듣는 학생도 트위터에서는 저하고 ‘맞팔’을 안 하지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트위터가 두려운가 봅니다. 140자를 만들어 올린 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딸림벗이 되면 자기도 ‘맞팔’을 해 줘야 하는데, 받아 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냥 숙제용으로 140자를 맞춰 올리는 정도이지요.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많이들 합니다. 친구만 가지고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제 큰아들이 대학 1학년인데 금방 하더라고요. 재미있는 점은, 제 아들이 저보고 페이스북의 자기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말라고 하는 거죠. 아빠가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친구들이 다 끊어진다고(웃음).
차익종 폐쇄된 그룹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군요.
김응교 네, 자기들만의 공간을 유지하려는 것인데. 그게 또 페이스북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처음 시작은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차익종 누리소통망에 대해서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요? 숙명여자대학교에 자리 잡기 전에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10년간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셨는데 그때부터였나요?
김응교 아닙니다. 2009년 귀국한 이후부터지요. 정확히 말하면 2010년 8월 18일에 트위터라는 것에 처음 글을 올렸어요. 사실은 제가 대인기피증을 벗어나기 위해서 시작했지요.
차익종 그런가요?
김응교 일본에서 10년을 살다 왔지요. 거기서는 제가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었는데 여기 오니까 적응이 안되었어요. 게다가 귀국하자마자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 했어요. 1년 가까이 대인 기피증에 시달렸어요. 친구며 친척도 안 만나게 되고,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질 않았지요. 그런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밖에 나가지 않고도 할 수 있잖아요. 저도 글을 올리고 남이 올린 것도 읽다 보니 차츰 ‘아, 한국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지요.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를 배울 수 있다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1년이 지나다 보니 트위터의 장점으로 열 가지를 꼽을 수 있었어요.
차익종 열 가지라면?
김응교 외로운 저에게는 쉼터이고, 정확한 뉴스이고,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매체이며, 자질구레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메모장 역할을 하고, 문장력이 좋아지고요, 좋은 일을 하는 수단도 되고, 사업하는 이에게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고, 존경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고, 또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차익종 정확히 열 가지군요(웃음). 실제로 그런 내용으로 평론과 논문을 쓰시기도 했지요(김 교수는 트위터와 문학이 만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다룬 평론인 <트위터러처, SNS시대의 문학>을 발표한 바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주로 어떤 글을 올리셨나요?
김응교 트위터에는 주로 하루에 곡 하나씩을 올렸어요. 새벽이든 아침이든 아무 때나, 제 공간에 들어오신 분들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었지요. 명상 음악 위주로, 심지어 두세 시간짜리를 올리고 저도 듣곤 했지요.
차익종 쉼터군요.
김응교 둘째로는 제가 공부하다가 발견한 좋았던 글, 신문 사설 중에 좋았던 것, 셋째로는 저의 철학적인 생각이나 정치적인 견해도 올렸지요. 넷째로는 되도록이면 대화를 나누려고 했어요. 대화를 안 하고 자기 글만 올리는 분도 있긴 하지만, 저는 저에게 질문하거나 응답해 주신 분들에게 일일이 답을 드렸어요.
차익종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요. 저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누가 올린 글을 보아도 잠깐 다른 일에 신경 쓰다 보면 놓치기 일쑤인데요.
홀로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려 애써
김응교 저는 개별적인 단독성을 존중하려 애썼어요. 저의 단독성을 존중해 주셨으니까 저 역시 그분의 단독성을 존중하려 애썼지요.
김응교 교수의 트위터 계정 차익종 페이스북에서도 그렇게 활동하셨나요? 김응교 페이스북에는 일단 정치적 내용은 잘 안 올립니다. 페이스북 친구 4,700명은 이미 친구 관계니까요. 제가 페이스북 습관이 들어서 학생들에게도 ‘내 벗’이라고 해서 깜짝 놀래키곤 하는데요, 페이스북은 모두 친구잖아요. 어차피 서로 함의가 있으니까 다 아는 점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지요. 그래서 저는 극우나 극좌와는 친구 맺지 않지요. 종교적인 글을 그대로 올리는 분과도 친구 맺기 힘들지요. 성경이나 불경 구절을 그대로 올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경전이란 자기 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 구절을 그대로 옮기는 일은 어떤 종교든 거부감만 줄 뿐이니까요. 차익종 지금 트위터 딸림벗이 3만 1,000여 명을 헤아리는데, 딸림벗이 늘어나면서 뭔가 달라지는 점도 있지 않을까요? 김응교 사실 처음 트위터를 시작할 때는 딸림벗이 200명 정도였어요. 그때만 해도 트위터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지요. 그냥 세상을 배우는 재미, 제 외로움을 해소하는 재미로 살았지요. “나 같은 ‘듣보잡’을 누가 신경이나 쓰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낯 뜨겁고 부끄러운 내용도 많지요. 그런데 꾸준히 글을 올리다 보니 1년 만에 딸림벗이 1만 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2만 명을 넘으니까 또 달라지더라고요. “딸림벗이 늘어나니 적이 생겨요” 차익종 어떤 점이 달라지던가요. 김응교 이 매체의 부정적 기능을 경험하는 것이죠. 우선 제가 쓴 글을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김응교가 이렇게 말했다’는식으로 올려놓는 사람이 생기는데, 제가 한 말의 맥락을 완전히 뒤집어서 공격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3만 명을 넘으니까 ‘적’이 생겨요. 차익종 적이라면? 김응교 자기와 반대되는 입장을 용납 못하는 사람들이죠. 욕설, 비난을 올리지요. 불특정 다수의 모습이지만, 아주 조직적으로 합니다. 학교에까지 계속 전화를 하죠. 요즘에는 ‘봇’이라는 기능까지 이용해 새벽에도 저한테 계속 고약한 문구를 보내는 사람까지 있어요. 차익종 보통 일이 아니겠습니다. 김응교 그래서 신문사나 인터넷 회사에 연락해서 “그 글은 내가 쓴 글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한 것이니 지워 달라”라고 요청하는 일도 가끔 있을 정도지요. 차익종 그만큼 공인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김응교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사회적 영향력을 이제야 실감한 것이죠. 딸림벗 3만 명이 되면서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언론사에서 자주 전화가 온다는 것이죠. 제가 올린 글을 보고 기사화하면서 추가로 인터뷰를 하겠다는 기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차익종 모 신문의 ‘말말말’에서 선생님이 트위터에 올린 문구가 자주 인용되긴 하더군요. 그런데 딸림벗이나 친구는 아직도 늘고 있나요? 김응교 트위터는 점점 더 늘고 있는 것 같아요. 하루에 몇 십 명씩. 페이스북은 친구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좀 다르고요. 차익종 누리소통망에 대한 글에서는 긍정적 측면을 주로 강조하셨는데, 부정적 측면을 경험하시면서 생각이 또 달라진 면도 있겠군요. 김응교 그렇지요.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긍정만 하지는 않습니다. 딸림벗 2만 명, 3만 명 단계에서 느낀 것을 정리한 글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분들이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세계는 어떨지, 저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 분야의 전문가가 저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이의 학자, 그것이 나의 몫 차익종 그렇게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누리소통망의 삶을 계속하시겠지요? 김응교 그렇지요. 사실 제 삶 자체가 ‘사이를 이어 주는 존재’를 지향했었어요. 특히 와세다대학교에서 강의한 10년의 경험, 저의 개인적인 철학 공부, 그리고 귀국한 후의 노숙인 인문학 강의를 통해 크게 느꼈지요. 차익종 조금만 들어 볼까요? 김응교 와세다대학교에서는 한국학 강의를 전담했는데, 거기서는 ‘공개 수업’이라고, 학부 1년 동안 전공의 벽을 허문 교양 강의를 운영합니다. 방식도 독특해서 학기 말 강의에는 동문, 학부모들에게도 강의를 개방해서 젊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게 했어요. 졸업생과 후배,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지요. 저는 한발 더 나아가서 강의를 동영상으로 실시간 중계해 다른 지역의 학생들에게까지 강의를 개방했어요. 일본어가 엉망이었으니 지금은 생각만 해도 부끄럽습니다. 차익종 귀국해서는 노숙인 인문학 강의를 하고 계시지요? 김응교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노숙인을 위한 민들레교실에서 강의했지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배우고 있어요. 제가 맡은 강의가 글쓰기인데, 첫 시간에 가서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을 쓴다”라고 말하자, “우리는 도서관에서도 안 받아 주는 사람들인데” 하며 당황해하시는 겁니다. 그 순간 “아, 이게 아니구나!”하고 깨달았어요. 곧바로 “여러분의 삶이 곧 텍스트입니다. 자기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글로 쓰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날씨가 더운데 윗도리를 벗어도 되겠습니까?” 하고 허락을 받고 러닝셔츠만 입고 강의했지요. 차익종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된 듯한 경험으로 들리네요. 김응교 크게 반성했지요. ‘어쩌면 나는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해 온 것이 아닐까. 어려운 책을 읽고 어려운 글을 써야만 좋다는 식으로.’ 그때부터 제 강의가 바뀌더라고요. “김애란 소설을 보세요. ≪두근두근 내 인생≫, 우리들의 엄마 아빠 시절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는데도 훌륭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삶을 곧 고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렇게 말이지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문학이나 학문의 의미도 결국 일반 대중에게서 나오는 것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라캉이니 들뢰즈니 하는 이들도 대중 강연을 평생 계속한 것 아닐까. 박지원도 탑골공원 뒤에서 매일 밤 술을 마시며 대중을 만났기에 틀에 박힌 전통 문체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저는 그래서 ‘사이의 인문학’을 하려고 하지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요구를 하고 있어요. 일본에서는 윤동주에 관한 강의와 강연을 부탁해 오고,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와 문학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일본과 한국의 사이, 교실과 대중 강연의 사이, 학술과 작가의 사이, 이런 사이를 이어 주는 존재로 되려고 노력하지요. 차익종 ‘사이의 인문학자’로서 사명 의식을 갖고 계시군요. 김응교 학술적으로는 분명히 채워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하이데거, 레비나스 같은 분한테서 새삼 배웠지요. 하이데거에게선 사이의 존재학을 배웠고, 레비나스에게서는 ‘타자를 받아들이면 내가 무한하게 향유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리고 유대인들의 대화형 교육인 하브루타를 일본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실제로 체험하면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몸으로 배웠지요. 차익종 아무튼 그런 모든 것이 다 합해져서 선생님의 오늘날 모습이 형성되었으리라 느낍니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결론 삼아서 말씀하신다면, 누리소통망이란 선생님에게는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김응교 외로운 이를 위한 쉼터,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는 매체, 그렇지만 부정적 기능도 있는 미지의 대상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차익종 긴 시간 동안 말씀을 나눠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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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해 여름독서캠프에 오시는 이야기 손님
김응교 교수님은 탁월한 SNS소통가입니다.
이해를 위해 미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