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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로 출발한 촘스키의 학문적 여정은 빈부 격차가 극심해 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당대 사회의 비판적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성과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할 수 있으며, 인간의 탐욕과 결합된 ‘지금의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적 견해가 담겨져 있다. 자본을 중심으로 영위되는 자본주의의 실체는 지금의 현실에서 무척이나 모호한 개념으로 다가오는데, 촘스키는 그것을 일반적으로 미국의 경제 시스템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미 ‘자유 시장 자본주의’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으며, 그로 인해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저자의 진단을 전제로 서술을 시작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에서 새롭게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와는 그 행태나 진행과정이 전혀 다른 무역 전쟁이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의 경제 상황은 크게 동요하고 있으며, 그동안 미국의 주요 정책 방향이 주로 금융자본의 의도에 따라 움직인다고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촘스키의 관점으로 보자면,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이러한 상황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상황으로 기울고 있다고 평가한다. 예컨대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에도, 경제 대국인 미국이 대기업과 부자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친환경 정책을 채택하지 않는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압도적인 다수의 과학자’들이 지구의 온난화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지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화석 원료와 관련된 압력단체’들의 의견을 그에 비례해서 비중 있게 다루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왜곡된 현실 인식을 재생산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자본주의’가 지닌 가장 큰 문제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 책에는 저자가 행했던 3건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글들과,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들을 지적한 4개의 논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문명은 지금의 자본주의를 견뎌 낼 수 있을까’라는 강연에서 저자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작금의 환경 상황에 대해 ‘적절한 생존의 기반을 뒤흔들어 버리기에 족한 재앙’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세계사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가 재앙의 가능성을 앞당기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고 개탄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에 대한 진단을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해법은 찾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현재의 상황이다.
환경문제에 천착한 이러한 주장은 두 번째의 강연인 ‘인간 지능과 환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도 과거에 비해 비교적 진보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미국의 오바마 정권의 정책에서도 그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논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언론도 환경의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 대안으로 저자는 ‘경제 이데올로기적인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는 거대한 민중 운동만이 환경의 위협을 이제라도 차단하는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비록 환경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지금도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가능하면, 신속하게!’ 조금이라도 빨리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과제’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동의 없는 동의’라는 글이었다. 우리는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유권자들의 기대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근의 한국 정치 상황을 보다라도 이미 너무도 익숙한 상황이 되었다.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부유한 정치인’들은 거대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에 매진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행태가 바로 ‘동의 없는 동의’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유권자의 선거로 인해 선출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선택은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문에 정치인들에 행해지는 대부분의 정책은 실제로 ‘동의 없는 동의’의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상황이 비관적이지만, 저자는 ‘느릿하지만 꾸준한 진전을 식별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위안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1969년부터 2013년까지 발표한’ 저자의 글과 강연의 내용을 엮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천착한 주제는 주로 미국의 상황을 중심으로 추출된 것이기에, 어쩌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내용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을 관류하는 저자의 비판적 인식은 여전히 날카롭고 시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경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저자의 관점은 무척이나 무겁게 인식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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