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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구입하여 읽은 이 책은, 한 아나운서의 해외 연수와 유학의 경험을 담고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 우연히 만나 술자리를 함께 하며 얘기를 나누었던 저자의 부친 손홍렬 선생이 생각났다. 손 선생님과 만났던 시기가 2004년 무렵이기에,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의 배경이 되었던 스페인으로의 유학을 떠났을 때였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 끝에(아마도 손미나 아나운서가 나와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말끝에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자신의 딸이 손미나 아나운서라고 소개하고, 직장을 잠시 쉬며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과 그런 딸의 행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한참 만에 대학에서 퇴임한 손 교수의 부음을 들었고, 또 이번에 그의 딸이 쓴 책을 읽게 되었던 것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잠시 쉬면서, 외국으로의 유학을 떠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당시 저자는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아나운서였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겪었겠지만, 10여년을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재충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하는 생각이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신이 쉬고 있는 동안 자신의 역할이 줄어들고 그 역할을 누군가 대신하게 된다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이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저자의 과단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겪은 스페인의 생활과 그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특히 대학에서 스페인어문학을 전공했던 저자이기에 스페인이라는 곳이 더욱 뜻깊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명소를 소개하고 있어, 저자가 다루고 있는 다양한 장소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책의 내용 곳곳에 펼쳐져 있는 저자의 개인적인 감성에 때로는 쉽게 다가서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아마도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의 전제가 다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페인 여행 초기에 우연히 만난 ‘디엥’이라는 부호에게서 받은 조건 없는 호의를 다룬 부분에서는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고 여겼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1학기가 끝난 6월 무렵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주로 지리산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빠듯한 예산으로 1주일가량 산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해인가는 아무런 장비도 없이 혼자서 산행을 하고 있던 청년을 만나서 몇 일을 같이 동행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집에 돌아갈 차비가 없다고 하여 비상금을 털어 주기도 했다. 나중에 꼭 갚겠다고 하면서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였으나, 나중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준다면 나에게 갚은 것으로 하겠다는 말을 남기며 헤어졌었다. 후에 그 친구가 대학 후배의 친동생이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그 때 일을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후배의 인사도 들었던 기억이 생각났다.
이 책이 출간된 지도 10년도 더 지났지만, 아마도 저자에게는 스페인에서의 생활과 경험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내용보다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지난 생활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는 저자의 유려한 문체도 인상적이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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