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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근세사는 제국주의의 야욕으로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서양 열강과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이른바 ‘개항(開港)’이라는 명목으로 서양의 배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한 조치들은, 결국 서양 열강들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중국 대륙은 서양 열국들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변하였고, 이에 청나라와 맞서는 ‘태평천국’이 등장하면서 장기간의 내전이 지속되었다. 이른바 ‘태평천국의 난’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1850년부터 1864년까지 중국 내륙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내전이었다.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한 ‘태평천국’을 건국하여,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조정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태평천국은 중국 대륙의 동남쪽에 위치한 강소성을 비롯한 4개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기나긴 내전 기간 동안 대륙 북서쪽 끝에 위치한 감숙성을 제외한 중국 전역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항거를 지속하였던 것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4권은 중국에서 발생한 청나라와 태평천국과의 내전을 중심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부제를 ‘태평천국 downfall(몰락)’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아, 저자 역시 태평천국의 결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겠다. 이들의 지도자였던 홍수전은 자신을 태평천국의 천왕이라고 선포하고, 마침내 1853년 중국의 난징을 장악하면서 ‘천경’이라고 명명하여 자신들의 수도로 삼았다. 초기에 장강(양쯔강)의 주요 거점들을 장악하여, 청나라 수도인 북경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리한 교전 중에 양수청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내분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증국번의 민병대가 청나라 측에 가담하여 태평천국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결국 1864년 홍수전의 사망하고, 수도인 난징이 함락되면서 기나긴 내전은 청나라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후 광동에서 태평천국 잔당들의 저항이 계속되었지만, 1866년 그 지도자가 토벌되면서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이 전쟁은 중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내전이었으며, 사상자는 수천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또한 중국 대륙 곳곳이 전쟁터로 변하면서, 이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제6장, 1850년대의 연대기’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청나라와 태평천국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의 전개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당시 중국이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열강들은 청나라와 태평천국 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장강을 지배하는 자가 전투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한다. 태평천국 세력이 초기에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장강의 주요 거점들을 장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공방 중에 장강의 물길과 주요 거점들이 청나라의 영향 아래 놓이면서, 결국 그 확장성에 제동이 걸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력을 유지하면서 청나라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청나라 조정의 힘이 그만큼 약회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청나라 역시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청나라 역시 수도인 북경이 위협을 받고 황제가 피서지인 열하로 피신을 해야 했으며, 함풍제는 끝내 북경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1861년 피난지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후 그의 어린 아들인 동치제가 즉위를 하게 되고, 그의 생모인 서태후가 섭정을 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아마도 이후 중국에 관련된 내용은 서태후의 등장과 권력 장악 과정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강력한 권력을 기반으로 한 서태후의 섭정으로 인해, 이후 중국은 ‘동치중흥’이라고 부르는 짧은 기간 동안 안정을 취하게 된다. 태평천국의 결말은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인 ‘14장, 실낙원’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결국 ‘잃어버린 낙원’으로 종결되었던 것이다. 이후 펼쳐질 중국 역사상 최고의 ‘여걸’로 평가되는 서태후의 활약상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고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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