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앞서 폴란드 중국 독일 스위스 인사와의 회동에서도 같은 모습 보인 사실도 확인
-정규재 대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건강상태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저녁 평창 동계올림픽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의 만찬 회동에서 보인 석연치않은 행태를 둘러싸고 국민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공개연설이나 기자회견이 아닌 외빈과의 간단한 면담이나 접견에서 미리 준비한 '대본'을 읽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접견실에서 미국 측 펜스 부통령과 부통령실 보좌진,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국담당보좌관,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 마크 내퍼 주한 대사대리 등을 맞이한 가운데 먼저 모두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부통령이 이번에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평창 올림픽을 축하해 주기 위해 방한해 준 것은 우리 한국민에게 매우 각별한 의미"라며 "트럼프 대통령님의 전폭적 지지와 또 먼 길을 마다않고 와 준 부통령의 의지는 우리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드는 데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펜스 부통령의 방한이 '빈틈 없는 한미 공조'를 보여준다고 치하하면서 "미국은 이번에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출전시켰다. 이번에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원한다"고 덕담했다. "오늘 부통령과 한미관계 전반 그리고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을 맺었다.
그러나 내용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문 대통령이 수시로 A4용지 크기로 보이는 '핸드아웃'을 들여다보면서 발언을 이어간 부분이었다.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될 때까지도 문 대통령은 손 닿는 곳에 핸드아웃을 놓고 발언하거나 펜스 부통령의 발언을 청취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TV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상당수 국민은 문 대통령이 계속 '대본'을 보는 모습에 놀라고 의구심을 표시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외빈과의 접견에서 '대본'을 보면서 발언하는 모습이 나타난 적은 찾기 어렵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PenN) 대표 겸 주필은 9일 정규재 TV 페이스북에 올린 <펜스-문재인 회담장의 이상한 모습>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과 회담하는 가운데, A4 용지를 들고 읽는 장면이 목격되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설사 예민한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를 대통령이 제대로 '구사하거나 기억해 말하지 못할' 정도인가요?"라며 "대선 과정에서 사다리 타기를 제대로 못해 치매논쟁이 일기도 했었는데 그런 상황이 현실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두 가지이겠지요. 간단한 인사말도 논리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라고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설마하니 어떤 의학적 병명을 가진 상태는 아니겠지요. 대통령이 되고나면 엄청난 엔돌핀이 솟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벌써 그럴리야 없겠지요"라며 "공개된 (회동) 동영상이 1분여밖에 안 됩니다. 대통령은 이 짧은 영상에서도 서류를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A4용지를 몇장 들고 앉아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청와대는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건강 문제가 아니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이 기이한 장면에 대한 해명도 필요합니다. 기자 생활 34년에 그 어떤 나라건-쿠바의 죽기전 카스트로만 빼고 국가 지도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입니다"라고 걱정했다.
그동안 국내 언론에 부각되진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에 앞서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별대표인 한정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베르세 스위스 대통령 등 다른 외국 고위 인사들과의 회동에서도 '대본'을 보고 발언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대본 읽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10일 청와대에서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 마주보는 기자단 좌석 앞 발치 높이에 프롬프터를 두고 질의 응답을 진행했는데, 시선이 내내 정면을 향하던 모두발언 때와 달리 답변 도중 고개를 아래로 한 채 입을 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당시 기자회견을 녹화한 방송 보도 등에 따르면, 기자단 질문이 진행되는 동안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프롬프터 화면에 글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포착됐다. 문 대통령이 종종 시선을 이쪽이나 앞에 쌓아 둔 문서로 향한 채 답변하는 움직임과 맞물려, '참모진이 써 준 답변을 읽은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일각에서 일었다.
이에 대해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않던 청와대는 12일이 지난 1월22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는 문 대통령처럼 답변 써주는 프롬프터가 없다"고 공세를 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쳐드린 게 아니라 2개 이상 질문이 있을 때 질문 요지를 쳐준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보도영상 내 프롬프터 스크린이 포착된 장면을 확인한 결과, 기자 질문 직후 약 1~2줄짜리 문장으로 질문 요지가 스크린에 타이핑되는 것으로 나왔다. 문 대통령이 답변 중 시선을 아래로 했을 때 그 방향은 프롬프터보다 서류 자료에 더 가까운 것으로도 보였다. 프롬프터 스크린에는 질문하는 기자 소속사와 성명이 함께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야당 시절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메모하는 습관을 폄하하는 "수첩공주" 별명을 붙여 정치공세를 편 바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미 제19대 대선을 전후로 "대본정치"의 징후를 노출해 국민의당 등의 공세를 받은 바 있다.
지난해 2월9일 국민의당은 고연호 대변인 논평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유력후보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집중'하자며 당내 경선후보 토론을 거부한 데 대해 "박 대통령이 수첩만 보고 발언해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얻더니 문 후보는 대본이 없으면 모든 대화를 거부하는 대본정치를 할 것이냐"라고 비꼬았다.
고 대변인은 이어 "대선후보로서 (현장) 방문, 정책 발표 등 홍보활동은 별 문제가 없고 유독 '토론회만 탄핵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라며 토론·언론 기피 행태를 두고 "후보 검증이라는 민주주의 정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과의 면담에서 내놓고 대본을 읽는 모습이 공개됨에 따라 지난 대선 때 의혹 유포자 고소로 '입막음'을 했던 건강이상설도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외국 정상 등 외빈과의 공개 회담이나 비공개 회담에서 '알맹이 있는'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상대에게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비춰져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3월11일, 한 20대 네티즌 A씨가 자신의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문재인 치매? 치매 의심 증상 8가지 보여 대선주자 건강검증 필요 #증상체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자 문재인 캠프 '가짜뉴스대책단'(당시 단장 문용식)이 후보 비방이라며 검찰 고발로 대응했다.
수사에 착수한 광주지검 수사과는 한달여 지난 4월24일 A씨가 문 후보를 비방했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이 네티즌은 논란이 집중되자 원본 글 게시 당일 "첨부 자료가 신뢰성이 문제되어 허위사실로 판정됐다"며 글을 내리고 수습에 나섰지만, 결국 재판으로 넘겨진 것이다.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 이언주 의원은 기소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의문점에 대해 후보자의 해명을 듣고 싶었던 시민에게 법적 강제수단을 동원해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 대해 재갈을 물리는 탄압은 당장 중지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국민은 대선 후보의 건강, 통치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면 건강 검진을 통해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 힐러리 미국 대선 후보도 건강 이상설 해명을 위해 건강검진을 받은 바 있다"고 지적했다.
기소 이후 A씨는 비방이 아닌 검증 목적으로 게시한 것이라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 형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광주지법 형사12부, 부장판사 이상훈)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정후보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전파가능성이 매우 높은 특정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그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며 후보자 비방행위로 규정, "선거결과를 왜곡할 위험성이 있는 만큼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지난해 9월3일 항소심 재판부(광주고법 제1형사부, 부장판사 노경필)도 원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그러나 문 후보의 건강상태 확인 없이 진행된 재판이었으며 대통령이 된 지금도 정작 의혹을 둘러싼 객관적 검증은 이뤄진 바 없다.
'신년 기자회견 프롬프터 논란'에 이어 이번 펜스 부통령과의 만찬에서 보여준 석연치않은 모습으로 문 대통령의 '정신적, 육체적 현주소'를 둘러싼 우려와 의구심은 한층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