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랩 시선] 20대, 프로야구 관중 1위, 정치 무관심도 1위
2024년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해가 될 것이다. 올 시즌, 관중 수가 1천만 명을 돌파하며 야구는 다시 한번 국민적 스포츠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기세의 선두에 선 것이 20대다. 매 경기 관중석을 메운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치솟는 물가와, 좌충우돌 정치의 난감한 사회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을 연상케 했고 그 열기의 선두에 20대가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 수치 비교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프로야구 티켓 판매대행 사이트인 티켓링크에 따르면, 올해 프로야구 티켓 구매비율 중 20대가 38.1%로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했다. 반면, 중앙선거위원회에서 공개한 지난 22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은 52.4%로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했다.
이런 20대의 ‘관심 편향’ 현상은 일상에서 쉽게 포착이 된다. 강원대 대학생 박현섭(22) 씨는 “친구들과 야구를 볼 때 즐겁고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지만 정치 뉴스들을 보면 극단적인 의견 대립 상황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며 정치에 관심을 잘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게 정치의 영역은 일상 속에서 멀어지고, 사람들은 복잡한 사회적 이슈보다는 일상의 즐거움을 쫓으며 스포츠나 오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것이 잘못일까.
이 문제에 대해 각자 긍정, 부정의 의견이 다르고 하나의 답이야 있겠냐만, 국내 한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20대 사회학도의 시선은 야구 관객의 입장 행렬에 합류하기 전에 한번쯤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생 김모(29) 씨는 20대의 프로야구 열광 기류에 대해 ‘비판 정신의 약화’와 ‘대중화’의 두가지 문제를 꼽으며 고대와 근대사의 레퍼런스들을 제시했다.
김씨가 소개한 시인 유베날리스가 고대 로마제국이 몰락의 행보를 밟고 있던 시절 국민들의 정치인 평가가 시민들에게 빵을 얼마나 나눠주는지, 검투사 경기를 얼마나 자주 볼 수 있게 하는지에 의해 결정되었던 우민화 시대 조류를 풍자하는 ‘빵과 서커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대목에서 군부 독재자로 분류되던 전두환 정부 시절 프로야구가 탄생한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겠다는데 웬 거대담론(?)하며 생경한 느낌을 가질 이도 있겠지만, 그 소소한 즐거움만 추구하는 삶들이 모여 사는 커뮤니티에서 비판적 시각과 태도가 실종할 경우, 과연 소소한 행복은 지속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둘째로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1859)>에서 언급한 대중화(popularity)의 문제로 저자인 밀은 대중의 의견이 개인의 생각을 지배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사고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대중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저자는 개인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어야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개념을 보며 여러 미디어를 통해 대중성이 더욱 강해지는 현대 프로야구의 관심 급증과 이와 반비례하는 정치적 상황을 대입해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1,000만 관중 달성은 단순히 스포츠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일 수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일상에서의 작은 즐거움을 추구하며 스포츠와 오락에 몰입하고 있지만, 그만큼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축소되고 있다. 우리가 이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이러한 즐거움이 일시적인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의 시기처럼, 대중의 관심이 일상의 오락으로 쏠릴수록,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책임 의식은 점차 흐려질 위험이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무관심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건강한 토론과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스포츠의 열광 속에서도 우리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눈을 돌리고, 비판적 사고와 사회적 책임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작은 행복이 지속 가능하려면, 이를 둘러싼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유호준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