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다. 사실은 어제부터다. 밥한끼 먹는다는게 쉽지않는 일이 되어버린 지금은 기일이라던가 생일이란게 부담스러운 날이 되고있다. 나 역시 소꼽놀이 삼아 기일이며 명절을 지내는 중인다. 음식도 제사음식은 이미아니다. 내가 할수있는 것들중에서 손이 덜가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것도 귀찮고 번거롭다는 생각이 커가고 있다. 딸은 언제고 그만두라고 부축인다. 아마 조만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싶다고 원하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협력하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닌데, 혼자서 ( 딸이 거들고는 있다) 지지고 복는 일에 지치고 짜증까지 더해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엔 스스로 그만둘때가 된것이다. 제사도 명절도 그렇게 그만두게되면 가족이랍시고 만날날이 있을까 싶은데,,,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안하고 사는것일까. 내 경우, 내가 보고싶은 사람이 누군가. 친 형님( 손위 동서가 여러분 계신다) 얼굴본지 오래다. 고모 이모는 어떻고? 사촌들은 어디사는지도 모르고 살고있다. 나만 그런가. 인사차리고 산다는게 그렇게도 어려운일인가. 나는 늘 돈을 생각한다. 빈손으로 못간다고 핑개를 대고있다. 정말 그렇까. 내 얼굴이 누구에게 보고싶은 얼굴일지 자신이 없는게 사실이다. 오랜만에 찾아가면서 빈손으로 불쑥 얼굴만 내미는게 정말 자신이 없다. 어려서는 눈치가 없어서 빈손으로도 당당했다. 아니,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어른이랍시고 나이를 먹게되니까 이런 저런 눈치를 안볼수가 없더라. 그러다보니 준욱도 들고 기도 죽고,,, 사람노릇 차라리 포기하고 살게되더라다. 친동서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모르지는 않지만 어느듯 남남처럼 살고있다. 피를 나눈 고모 이모도, 다른 일가친척도 다 남으로 지낸지 오래다. 우둑커니 홀로지내는 시간속에서 한가닥 그리움 같은게 살며시 드러날때면 잘못 살아온 날들이 후회처럼 밀려오기도 하지만 내가 가난한걸 어찌할수는 없다. 가난은 참 무서운 폭력이다. 인구중에 얼마쯤이 가난속에 시달리고 있을까. 얼마쯤 갖었으면 사람노릇 하고 살수있을까. 아니면 빈손으로 갈수있는 용기가 더 시급한것일까. 몇일후면 친정에도 기일이 온다. 친정에서는 합동제사를 지낸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양할머니 양할아버지. 작은어머니 입장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분들도 있다. 어머니 아버지 양할머니 양할아버지는 사실 내가 아들이었으면 내가 지내야할 분들인데,,, 억울할수도 있는데, 대놓고 억울하다는 말은 안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것도 이세대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앞으로는 어떻게될지 모르겠다. 장남 장손들이 대접받는 세상도 아닌데 기대할게 뭐가 있겠는가. 딸과는 부지런히 준비해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손주들과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 이게 내가 준비한 기일 수순인셈이다. 이나마 올해로 끝일수도 있다. 섭섭하다고 하는말은 아니다. 그렇다는 말이다. 제사상은 물론이고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나마 당행이지. 아니, 기억해주면 어떻고, 아니면 또 뭐가 달라?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