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딱 잘못했다간 정수리가 익을 거 같아. 햇빛에 꼬실라져서 딱 시껌댕이가 되어버릴까봐 얼굴을 가릴래도 조여오는 찜통더위. 보통 예전엔 이렇게 더운 날 다리 밑으로 달려갔지. 다리 밑에 평상을 펼쳐놓고 시커멓게 모여 지냈다. 집 없는 거지가 오래전부터 통째 점유를 해설랑 얼기설기 집을 지어 겨울을 나기도 하고, 여름엔 주민들이 팽나무 아래께나 기와가 거반 깨진 정자, 그리고 다리 밑에 보통들 부채를 휘저으며 앉아 계셨다.
물도 보이고 그늘도 있고, 국거리할 붕어나 피라미도 있고, 놀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와 키웠다면 서럽게 울던 애갱이들도 다리 밑 개울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 한국식 잼버리 야영이랄까.
일이 없는 농한기엔 낮부터 소주를 깠는데, 상남자들은 이빨로 소주병을 땄다. 병따개가 어디 있나 묻기도 전에. 숟가락도 아니고 이빨로 병뚜껑을 재껴야 “아따메 멋져부요~” 박수를 받게 되는 법. 저 멀리 읍내에 치과의사는 손님이 늘 테니 살판이 나는 것인데, 일제 때 ‘스루메’라고들 어른들이 부르던 질긴 오징어 안주도 그렇고, 이빨로 병뚜껑 따기 신공을 펼치면 치과병원이나 야매 ‘틀니 쟁이’랑 모종의 결탁이 있던 문화가 아닌가 의심까지 들더구만. “아따 아슴찮이(넉넉하고 고맙게) 맛나게 쪄 오셨소잉” 하면서 감자를 소금에 찍어도 먹고, 수박이 하천으로 떠내려가지 않게코롬 빙 둘러 돌담을 막아 차갑게 식히는데, 수박을 쪼갤 때쯤엔 이가 시릴 지경이야.
그 다리 밑에서 인생 선배들은 일장 훈시를 하고 그랬다. “그냐 안 그냐” 예스와 노, 오로지 양자택일. 그냐 안 그냐.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좋냐 안 좋냐까지 가고, 갈래 안 갈래, 저물녘 제집으로들 가자며 소매를 잡아끈다. 온 동네가 화끈한 우애와 사랑으로 가득 차던 시절이었지. 지금 다리 밑에는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며 죽은 들개의 뼈다귀. 큰비에 떠밀려온 냉장고까지 보이는데 세상에 누가 냉장고를 저기다 버렸는가 몰라. 혹시나 무서운 세상이라 열어보지도 못하겠어. 여기는 다리 밑 잼버리. 응답하라!
임의진 시인 20230810 경향신문
첫댓글 순수한 의도를 저버린 잼버리,
폭망해도 할 말 없겠지.
시원한 수박같이 뻥뚫리는 목사님 세상만사 이야기들. 태풍 지나간 파란 하늘, 다시 돌아온 매미소리만큼 호탕합니다.
바람길이 되고, 대화의 장소가 되는
그런 곳; 다리밑.
시원한 뚫림이 있기를!